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46)
>1장.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다>
[20권 시작]“의뢰요?”
“그래. 이번에는 노 변호사가 직접 해 줘야겠어.”
“무슨 일이신데요?”
“그게 말이야, 이번 사건은 난이도가 있어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아.”
“난이도?”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어려운 사건이라고 하면 그에게 배당된다. 그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보아하니 그것 말고도 뭔가 다른 게 있는 눈치였다.
“사실은 말이야, 이 사건은 끝난 거라네.”
“끝났다고요?”
“그래, 3심까지.”
“그러면 제가 나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법률상 한 사건당 최대 세 번까지 재판이 이루어진다.
1심과 2심은 그 사건에 대한 판결이고, 3심은 그 사건에 제대로 법이 적용되었는지 살피는 법률심이다. 사정이 어찌 되었건 그 세 번의 기회를 다 쓰면 추가적인 재판은 없으며 그의 형량은 확정된다.
“그래, 그렇기는 하네. 하지만 말이야, 자네라면 진실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부탁하는 거네.”
“부탁?”
“사실은 내가 변호사 초년생일 때 했던 사건일세.”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변호사로서 사회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당시에 담당했던 사건 중 하나라고 한다.
“무슨 사건인데?”
송정한이 초년생으로 시작했을 때 사건이라면 형량마저도 끝내고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다시 해 달라니?
“살인 사건일세.”
그 말에 노형진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살인 사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자 용서받을 수 없는 사건으로 다른 범죄와 다르게 그 피해조차 돌이킬 수 없다. 다친 건 치료하면 되고, 부순 건 새로 사 주면 되며, 사기 친 건 돌려주면 되지만, 살인은 저질러도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살인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해 달라는 건…….”
“맞네. 사형일세.”
“…….”
사형. 법적으로 내릴 수 있는 최고 형량.
“그럼 아직도 감옥에 있겠군요.”
“그렇지.”
“음…….”
사형은 말 그대로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몇십 년째 사형을 하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미결수 신분으로 계속 감옥에 있어야 한다.
“그럼 그 사람도 감옥에 있겠군요.”
“그렇지. 25년째 감옥에 있는 상황이네.”
“25년이라.”
노형진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쉽지는 않은데’
과거에 판결을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재판부는 과거의 판결을 뒤집는 데 무척이나 인색하다. 누가 봐도 잘못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판결을 다시 뒤집는 데 30~40년씩 걸리는 것은 자기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대한민국 법원의 특성 탓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송 대표님은 그 사람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러네.”
“개인적으로 알아서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사건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이었네.”
송정한은 노형진에게 그 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의 시작은 한 지역에서 나타난 연쇄 살인 사건이 문제였다네.”
한 지역에서 벌어진 연쇄적인 강간살인 사건. 사망자만 다섯 명에 이르고 대한민국이 온 통 그 이야기뿐이었따. 사망자들은 살해당하고 난 후에 숲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정액이나 유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이 피해자가 된 겁니까?”
“그 지역에서 사는 사람이었거든.”
“고작요?”
“직간접적으로 그들 모두를 알고 있었다네.”
“네? 그게 가능합니까?”
사망자가 다섯 명이나 되는데 그들 모두를 알고 지냈다면 의심받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송정한은 그런 노형진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인지 두 손을 흔들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 사람은 우편배달부였다네.”
“아, 우편배달부요?”
“그래, 알 수밖에 없었던 거지.”
우편배달부, 속칭 우체부는 한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우편을 배달해 주는 것이 생업이다. 지금은 택배가 잘 되어 있어서 그들이 배달하지만 25년 전에는 그런 게 없었으니 당연히 그들이 택배, 아니 소포를 배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대부분의 우편배달부는 지역의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해당 지역은 도심지보다는 낙후된 지역에 가까운지라.”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골의 경우 우편배달부와 친밀해지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가끔 시골에서 우편배달부가 쓰러진 할머니,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구한다는 소식이 나오는 것은 그들이 돌아다니면서 우편을 배달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소식을 듣고 안부를 살필 만큼 친밀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희생자가 다섯 명이 나왔다는 거군요.”
“그래. 그 후에 그가 범인으로 지목된 거지.”
“대충 알겠네요.”
25년 전이면 군부독재 시절이다. 그때는 많은 비밀과 비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범인 만들기였다. 뭔가 심각한 일이 터지고 언론의 집중적으로 취재받으면 정부에서는 해당 지역의 경찰을 조사한다. 그러나 가끔 범인이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경찰은 적당한 범죄자를 만드는 것이다.
“당한 거군요.”
“그래.”
유일하게 전 동네를 돌아다니고 다섯 명의 여자를 다 아는 사람. 혼자 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알리바이를 알 수도 없는 사람. 지금이야 CCTV가 있으니 동선 파악이 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내가 봐서는 그는 억울했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변론을 했지만.”
“이빨도 안 먹혔겠지요. 아마 범인이라고 자백도 했을 테고요.”
“그렇지.”
범인이 될 만한 사람을 정하면 그다음에 벌어지는 것은 잔혹한 고문이다. 물고문이나 구타는 기본이고 소위 통닭이라고 하는 매달기 고문 등등. 그 당시에는 상대방의 억울함과 상관없이 일단 범인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었다.
“그래서 25년을 사신 겁니까?”
“그래. 법정에서 고문당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누구도 들어 주지 않더군.”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지금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시죠?”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는 거네.”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다. 더군다나 고문당했다고 해도 자백했다.
“완전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군요.”
“그렇다네.”
“그걸 알면서 소송은 해 보셨습니까?”
“해 봤지.”
고문으로 위증했다고 몇 번이나 소송을 걸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증거 없음. 고문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판결이 잘못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거 심각한 문제인데?’
재판부는 어지간하면 선배 재판부의 판결을 바꾸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25년이면 어지간한 증거는 모조리 사라지고 없을 시간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네.”
“그런가요?”
“어떻게 해 줄 수 없겠나?”
노형진은 그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노형진의 사이코메트리 능력. 그 능력이라면 증거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걸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25년이라……. 너무 오래된 사건인데.’
하지만 노형진은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25년이라…….’
만일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노형진은 법률가 보다는 역사학자가 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있었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볼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노형진에게 부탁한 송정한이다. 그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일단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송정한의 얼굴이 환해졌다. 수십 년간 자신을 괴롭힌 사건이다. 그런 만큼 어쩌면 진짜로 사건을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형진이 무조건 해 주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네, 당사자에게는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혹 쓸데없는 기대를 가지면 곤란하니까요.”
“음…….”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자네 능력을 쓰기 위해 꼭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한 건 아니지.”
“더군다나 25년 전 사건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그곳에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랜덤이라 제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마저도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거랑 상관없네. 조금이라고 가능성이 있으면 시작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송정한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노형진이 거의 유일한 희망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짜로 억울한 사람을 위한 마지막 기회.
“법을 공부할 때 배운 게 이런 말이지.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네. 자네가 그 억울함을 풀어 줄 거라 믿고 싶네.”
자신의 손을 잡으면서 말하는 그를 보면서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실이 그곳에 있다면 전 꼭 알아낼 겁니다.”
* * *
“음…….”
노형진은 사건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사건에 대한 검토였다. 그러나 그걸 할수록 영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사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가 않았잖아. 이래서는…….”
너무 오래된 사건이다 보니 제대로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냥 닥치는 대로 물어보고 따라다니고 의심스러우면 두들겨 패 보고 하는 식의 말 그대로 쌍팔 연도식 수사 방식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너무하잖아. 이건 뭐, 제대로 수사된 게 전혀 없어.”
하긴 그 당시 시골 경찰이 능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말이 특별 수사 팀이면 뭐하나.”
노형진은 한숨을 쉬면서 경찰 측 사건 기록을 덮었다. 자신이 아무리 읽어 봐도 제대로 된 정보를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결국 남은 건 이것뿐인데.”
경찰 측 조사 기록이 아닌 그 당시 현장에 대한 감식 기록들. 일단 이건 제대로 처리되기는 했다. 그 당시 수준으로는 말이다.
“희생자는 대략 20세에서 30세 사이. 모두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강간의 흔적은 발견되었지만 정액이나 유전자는 없음. 사망한 후 배수로 등지에 버려져 있었음. 목에서는 끈으로 보이는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특정되지 않음. 손바닥과 무릎에 상처 많음. 사망 원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에 의한 질식사. 특이점으로 입고 있던 속옷으로 추정되는 팬티를 머리의 씌워서 버렸다라……. 이거 완전 미친놈인데?”
노형진은 그 사진을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사건 자체를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다섯 명이나 되는 피해자들의 신체에서는 분명 강간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자도 없다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하긴 그 당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사건이라고 하니…….”
이런 변태적이고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으니 상당히 보수적인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 언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뻔하다. 더군다나 그 당시 대통령의 입김은 말 그대로 기침해도 나는 새가 떨어질 지경이었으니 대통령이 노했다는 말 한마디면 없는 범인도 만들어서 가져다 바쳤어야 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사건 이후에 안 터진 게 이상하단 말이지.”
배갑성이 범인으로 의심받는 다른 이유. 그건 배갑성이 잡힌 뒤 동일 범죄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아서였다.
“다른 사건이 터졌다면 벗어날 수도 있는데…….”
어떻게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건 미스터리다.
‘다른 사람이 범인이라고 잡혔다는 사실을 알고 멈춘 걸까? 아니야…….’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사건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연쇄 살인범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연쇄 살인범이 다른 사람이 잡혔으니 그에게 뒤집어씌우려고 더 이상 풀어 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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