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49)
“군대?”
“네, 그 당시에 군대가 많았나요?”
“많았지. 주변이 주둔지였으니까. 왜?”
“역시.”
그 당시는 군사정권 시절이다. 당연히 엄청나게 군대의 권력이 강했다. 어떤 면에서는 경찰 이상으로 강하게 군대였다. 더군다나 군인의 장성급은 부대와 함께 있어야 하므로 시골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당시에 간첩 문제나 그런 걸로 군대의 권한이 무척이나 강했지요?”
“엄청나게 강했지. 말 그대로 기침하면 새가 떨어질 정도로 말이야.”
“설마?”
“장군의 자녀라면 어떨까요?”
“음…….”
송정한은 그 말에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 당시 군대의 파워는 절대적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인지라 그들이 죽어라 하면 죽어야 할 정도였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네. 그 당시 분위기를 봐서는 군대라는 조직에 있는 사람은 말 그대로 저승사자였지.”
그 당시는 군대와 국정원 그리고 안기부 등에서 경쟁적으로 간첩을 잡아들일 때였다. 좋게 말해서는 간첩을 잡아들이는 거지, 사실상 간첩 사건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경쟁 단체, 즉 군대라면 경찰이나 국정원 요원을 간첩으로 의심해서 감청하거나 조사하는 일도 흔했다.
“특히 그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군대라는 조직이 이 지역에서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군대라는 조직이 있는 지역은 경제가 그 군대를 위주로 돌아가지 않나.”
“그렇지요.”
군대가 있으면 면회객이 있고 면회객이 있으면 지역 상권은 면회객 위주로 구성된다. 하지만 장군이 미친 척하고 면회 금지나 외출 금지를 내려 버리면 해당 지역의 상권은 처절할 만큼 무너지게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해당 지역 경찰은 군대에 예속되게 되는 편이지. 군인의 아들이라…….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은데. 그 당시에 이 지역에 있는 군인이 몇 명인데.”
“군인은 많을지언정 그 군인이 다 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어중이떠중이들은 당연하고 중대장이나 대대장급이 이 정도 사건을 덮는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아무래 그래도 이 정도 사건을 해결하려면 못해도 연대장급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아니, 연대장급으로도 안 될 거야.’
사고사가 아닌 계획 살인. 그것도 연쇄 살인다. 그렇다면 그 이상급의 힘이 필요하다는 뜻.
“결국 장군급 이상이라는 건데 그중에서 자녀가 그 당시 유학을 가거나 다른 이유로 해당 지역을 떠난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그게 좋겠군. 자네 말이 맞다면 그들 중 한 명일 테니까.”
“네.”
노형지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분명히 범인은 그 안에 있습니다.”
노형진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 * *
“어렵지는 않더군요.”
고문학은 서류철을 넘겨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 당시에는 유학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지요.”
지금이야 유학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여건이 되는 사람은 다들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유학이라는 것 엄청난 부잣집만 가는 것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89년에 시행되었으니 말이다. 즉, 그 전에 유학이라는 것을 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범인이 가진 자에 속한다는 걸 뜻하는 다른 증거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나씩 퍼즐이 맞춰질 때마다 그 방향은 한쪽으로 쭈욱 흐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지역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자녀가 유학은 간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한 명은 그 당시 시장이었던 사람이고 한 명은 그 당시 해당 지역 유지였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노 변호사님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을 것 같은데 다름 아닌 그 당시 해당 지역에 주둔하던 부대의 장군이었습니다. 그 당시 3성급 장군이었지요.”
“3성요?”
“네.”
3성이면 중장 대한민국에서는 군단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을 꽉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일 거라는 다른 증거도 있습니다.”
“있다니요?”
“그 사람을 좀 조사해 봤는데 젊은 나이에 중장을 달았더군요. 말 그대로 초고속입니다.”
“네?”
노형진은 파일을 살펴봤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자녀가 유학을 간 나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문제는 아무리 빨라도 그때쯤 중장을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를 빼고는 말이다.
“쿠데타 세력이군요.”
“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서 대한민국을 지배하던 시기. 당연히 그 쿠데타 세력에 들어갔던 수많은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했다. 그리고 이 나이에 중장급에 올랐다는 것은 생각보다 쿠데타 당시에 핵심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 정도면 확실히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지요.”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그 당시 서슬 퍼런 쿠데타 시절. 당연히 그 정도 파워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사건을 덮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아직도 장군인가요?”
“아닙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장군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렇겠지요.”
정권이 바뀌면서 쿠데타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협조했던 수많은 장군들이 모두 그만둬야만 했다.
“뭐, 그는 그렇다고 치고 결국 중요한 건 그 범인입니다. 그 아들에 대한 정보는 있습니까?”
“아들의 이름은 전진만. 국내에 그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 그곳에서 영주권을 취득해서 아예 뿌리를 내렸더군요.”
“뿌리를요?”
“네, 지난 수십 년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없다고요?”
“네.”
“이상하군요.”
아무리 미국에 있다고 해도 한국인인 이상 한국에 한 번은 와야 한다. 가족도 다 여기 있고 다른 사람들 역시 여기 살고 있고 하다못해 누군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한국인인가요?”
“네?”
“아내 말입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나요?”
“아…… 아내는 한국인입니다.”
“미국에서 만나서 결혼했을 테고 말입니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고문학은 보고도 하기 전에 그런 사실을 아는 노형진을 보면서 약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간단한 거죠.”
그런 상류사회 놈들은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당연히 코쟁이 외국인보다는 한국인 아내를 만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세력이 친미주의자이므로 미국인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힘이 있는 가문들에 대해서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힘도 없는 일반적인 미국 시민을 며느리라 받을 리 없다. 물론 미국의 명문가가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 사위로 받아 줄 리 더더욱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때도 안 왔고요.”
“네.”
“역시 범인은 그 녀석이 맞군요.”
“네? 그게 그렇게 되나요?”
“쓸데없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도주한 뒤 한국으로 들어와서 다시 잡히거나재수사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지만 그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법이지요.”
“네?”
“전진만이라고 했던가요? 그 녀석이 미국에서 만나서 미국에서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본인도, 아내도 한국 사람입니다. 아무리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한국인인 이상 국내에 들어와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정상이지요.”
“아!”
고문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렇다. 미국에서 한국까지 그 비행기 비용은 적은 게 아니다. 그런데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어쩐 일인지 미국으로 직접 가서 결혼식에 참석했다. 상식적으로 미국에서 두 명이 오는 게 훨씬 싸고 좋으며 빠른데도 말이다.
“아마도 전진만은 한국에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자기가 범인이라 이건가요?”
“네.”
그런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간 녀석이 한국으로 들어오려고 할까? 그럴 리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데요?”
“어떤 문제죠?”
“그는 미국의 영주권자입니다. 이 녀석이 미국에 있는 이상 우리가 힘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음…….”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은 상황을 의뢰인한테 말하는 게 좋겠군요.”
“의뢰인에게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의뢰인에게는 당분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요. 이 정도 사건이 진행되려면 당연히 알려야 합니다.”
“아, 네…….”
고문학은 노형진의 말에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누구나 다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자신이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기는 했다. 송정한은 그가 안 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확인이 필요했다.
* * *
“지…… 진범요?”
배갑성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떨렸다.
“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이제 와서 진범이라니……. 사실입니까?”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진범은 잡혀야지요.”
노형진은 그러면서 그의 어깨에서 손을 얹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분노와 반가움 그리고 당혹감. 모든 것이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진짜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걸 알려 드릴 겸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확인이요?”
“네, 전진만을 아십니까?”
물론 진짜 목적은 그가 진범인지 알아내는 것이었지만 그게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기대도 안 했다. 그저 둘러대기 위해서 전진만이라는 이름을 물어본 것이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노형진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진만이 범인인 겁니까?”
“전진만을 아십니까?”
“몇 번 만났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제 삐삐에 연락해서요.”
“삐삐로 말입니까? 왜요?”
그 당시에는 핸드폰이란 말 그대로 엄청난 고가의 물건이었다. 그 당시 일반적으로 한 달 임금이 100만 원도 안 되던 시절이었는데 핸드폰의 가격이 350만 원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쓰던 것은 소위 말하는 삐삐였다. 연락을 주면 그 전화번호로 전화하는 물건 말이다.
“성적표 때문이었습니다. 그다지 공부를 잘하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음…….”
“워낙 흔하게 있었던 일인 만큼 이상한 것은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성적표를 빼돌리거나 고치는 시도를 안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렇게 흔한데도 불구하고 이름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그 녀석, 뭔가 이상했죠?”
“네?”
“그러지 않다면 25년이나 지난 지금 그 녀석을 기억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단순히 불량한 것 이상으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게…….”
배갑성은 오래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오래된 기억이다. 그를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왜 그를 기억하는지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