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52)
실제로도 송종환은 그 모든 범죄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왜 절 찾아오신 겁니까?”
“왜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진실을 압니다. 다만 그걸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난 모릅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몰라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우리는 진실을 안다고 했지, 무슨 일이라고는 말 안 했습니다. 아무래도 신기라도 있나 봅니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다 아시는 걸 보니.”
그 말에 입을 꾹 다무는 서규택.
“물론 가만히 있는 것도 방법이지요. 하지만 그런다고 과거가 따라오지 않는 건 아닙니다. 지금쯤이면 느끼셨을 텐데요?”
노형진은 지하 방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좁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지하의 좁은 방. 이곳의 서규택의 세계다. 과거에게 잡아 먹혀 버린 남자의 마지막 안식처.
‘미안하지만.’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서라도 노형진은 그의 세계를 깨 버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서규택이 무슨 충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충격이 없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갈 수는 없다. 자신의 세계를 깨는 사람만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압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간단합니다. 진실. 그거면 됩니다. 당신도 진실을 알려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노형진의 말에 서규택은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진실요? 그걸 말한다고 뭐가 바뀐답니까? 진실을 말하면? 그 후에는요? 제가 뭐가 나아진다는 건가요? 결국 주소지가 여기에서 감옥으로 옮겨지는 것밖에 더 있지 않습니까? 여기는 그나마 온전한 제 공간입니다. 하지만 감옥은 그마저도 아니죠.”
그는 절망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요. 진실을 밝힌다고 해서 당신이 감옥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진짜 피해자들인 가족들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요.”
“제가 감옥에 안 간다고요? 말이나 되는 소리를 하세요……. 난…… 난…….”
사람을 직접 죽이지 않았다고 해도 그걸 보고만 있었다. 명백하게 살인의 종범인 것이다.
“압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누가 범인인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신은 감옥에 안 갑니다.”
“누가 그래요?”
“제가 그럽니다. 아니다, 정부의 법이 그래요.”
모든 사건에는 공소시효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수사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찰이 아닙니다. 우리로서는 당신을 처벌할 권한이 없지요. 그리고 공소시효는 25년입니다. 그리고 25년 전에는 공소시효가 15년이었습니다. 즉, 당신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노형진의 말에 서규택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자신은 세상이 두려워서 나가지 못한 채로 스스로 이곳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공소시효는 끝났고 자신이 처벌받을 수 있는 시점이 지났다니?
“뭐라고요?”
“말 그대로입니다. 공소시효는 지났고 당신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스스로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당신 스스로 나가야 합니다.”
“자유…….”
지난 25년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제대로 한 발자국 나가는 것도 힘들었고 언제 경찰이 들이닥치는 것이 아닌지 무서웠다. 그런데 이제는 자유라니.
“오늘은 춥기는 하지만 날씨가 좋더군요.”
“날씨?”
무슨 뜬금없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는 두 사람. 하지만 노형진은 그냥 꺼낸 말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햇볕을 느껴 본 게 언제인가요?”
“햇볕…….”
기억도 안 난다. 애초에 사람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었던 기억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자신이 접촉하는 유일한 사람은 가끔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가족들뿐이다.
“내가…… 나갈 수 있다고요?”
“하지만 당신 스스로 가둬 둔 세계에서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증언이 필요하고요.”
“그…….”
노형진의 말에 서규택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유라는 말이 오늘따라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자유.”
“자유를 위해서라도 당신이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서규택에 얼굴에 가득한 자유에 대한 열망 그리고 뭔지 모를 용기.
‘당근은 이쯤이 적당하겠지?’
노형진은 그의 편이 아니다. 공소시효를 말한 이상 그가 진실을 말하든 하지 않든 그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에게 당근만 줄 생각은 없었다.
“물론 당신이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세계는 박살 날 수도 있습니다.”
“뭐라고요?”
“우리는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압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은 그걸 모르고 있지요. 물론 당신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민사적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지요.”
“민사적 손해배상?”
“네, 모든 것을 빼앗긴 채로 길바닥에서 삶을 이어 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에 서규택은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형진이 그가 이제는 처벌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그래서 문득 자유가 그리워졌다고 하더라도 그는 수십 년간 제대로 바깥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길바닥으로 쫓겨난다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그 부분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우리는 경찰은 아닙니다. 형사처벌을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변호사입니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말해서 민사는 걸 수 있습니다.”
“으으으…….”
“당신에게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기회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규칙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권주를 받을 것이냐 벌주를 받을 것이냐, 그건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으으으…….”
서규택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사로 보이던 노형진이 갑자기 악마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뭘 선택하든 그건 당신 마음입니다만.”
하지만 그 결과 역시 그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도 뻔했다.
“결국 선택할 만한 카드가 하나뿐이잖습니까!”
“그렇게 느끼신다면 그건 하나밖에 없는 거지요.”
“…….”
그는 애써 눈동자를 돌렸다.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벌써 25년이나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왔다. 뭔가 나올 리가 만무했다.
“그러면 전진만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결국 나보고 진실을 말하라는 건 그를 처벌하겠다는 건데 공소시효가 지났으면 그 녀석도 지난 거 아닌가요?”
그는 최대한 노력해서 말한 게 그거였다. 하지만 노형진이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할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요. 전진만은 사건 이후에 미국으로 도피했지요. 그리고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중지됩니다. 즉, 그의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았지요.”
“…….”
그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다면 그를 그냥 둘 수는 없다. 당연히 그 벌을 받게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선택하십시오. 과거와 함께 몰락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고발할 것인가.”
“…….”
서규택은 말하지 않고 있었지만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카드는 하나뿐이었다.
* * *
“다 좋은데 말이야. 자네가 말하는 모든 것에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거 알지?”
결국 서규택은 노형진에게 도움을 주겠노라고 대신에 민사에 대해 최대한 선처해 달라고 했다. 그를 몰락시킬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바로 노형진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선택할 만한 카드가 없었다.
“어떤 문제요?”
“전진만 말이야.”
그 모든 것이 다 전진만이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는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자발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강제로 추방할 수가 없다.
“그 녀석이 과연 한국으로 올까? 노 변호사가 송종환이랑 서규택한테 그 녀석이 한국으로 들어올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녀석이 여기 올 이유가 없거든.”
이미 미국에서 영주권을 따서 잘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더군다나 과거에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사건을 조작할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던 그의 아버지 역시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말 그대로 선 끊어진 연처럼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다. 즉, 과거처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녀석이 여기까지 오겠어?”
“오지 않겠지요.”
“그럼 어쩌려고? 자네는 두 사람한테 그 녀석이 여기 온다고 한 거야?”
이 모든 것은 그 녀석이 한국으로 입국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게 만들어야지요.”
“오게 만들다니? 인도 조약을 이용하려고? 과연 쉬울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도망갈 텐데.”
물론 미국은 한국과 범죄인인도 조약이 되어 있으니 잡는다면 넘겨주겠지만 그 넓은 미국 땅에서 도망 다니면 언제 잡힐지는 요원한 일이다. 더군다나 돈만 있으면 가짜 신분을 가지고 살기 쉬운 것도 사실인 만큼 그 녀석이 가짜 신분으로 살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그건 기대도 안 합니다. 솔직히 그거 있다고 해도 그쪽에서 오기 싫어서 소송을 걸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미국땅에서 잡혔다고 바로 한국으로 넘어오는 것도 아니다. 잡힌 뒤 별의별 핑계를 대면서 소송을 걸면 그때까지 그 녀석은 미국에서 남아 있을 수 있다.
“결국 그를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녀석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을 어떻게 돌아오게 만들 건데?”
“그런 말 아십니까?”
“어떤 말?”
“제 버릇을 개는 못 준다는 말요.”
“무슨 말이야?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 * *
“흠…….”
전진만은 뒤를 흘끗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씨발…….’
얼마 전부터 눈에 거슬리는 몇 대의 차량들. 물론 미국이라는 나라가 흔하게 차가 널려 있는 곳이니만큼 이상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찝찝한 것이 보였던 차가 자꾸 보인다는 것이었다.
‘뭐지?’
그는 주위 상황에 대한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정체 모를 차량들이 회사나 집 근처에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별거 아니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몸을 돌려서 그 차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자동차는 급하게 시동을 걸더니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주차장을 나갔다.
‘역시.’
이곳은 회사 주차장이다. 그것도 직원용 주차장.
이 시간에는 모두 근무하기에 그가 다가간다고 해서 움직일 리가 없다.
‘영 꺼림칙해.’
그 차들이 영 꺼림칙한 이유는 그 차들이 다른 차들과 다르게 선팅이 무척이나 강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 그것도 햇빛이 강하기로 소문난 남부인 만큼 강한 선팅을 한 차량이 없으라는 법은 없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차의 모델이 너무 흔한 모델이었다.
‘더군다나 SUV라니.’
흔하게 나오는 SUV에 선팅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들. 그건 한 가지를 뜻하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 안 거지? 시체는 완벽하게 처리했는데.’
연쇄 살인. 그건 고칠 수 있는 질병이나 그런 게 아니다.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당연히 미국으로 왔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멀쩡하게 살아갈 리 없다.
“어이, 미스터 전.”
“네?”
그가 차가 떠나간 장소를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자신의 팀장이었다.
“미스터 전, 혹시 자네 뭐 실수한 거 있나?”
“무슨 말씀이신지?”
“요즘 어떤 사람들이 자네에 대해 묻고 다닌다고 하던데?”
“저에 대해서요?”
“그래, 신분은 안 밝히고 말이야. 혹시 알아?”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전진만을 고개를 돌려서 모른 척했다. 그리고 팀장도 그다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건 전진만은 그의 팀에서 일을 가장 잘하는 팀원이었기 때문이다.
“조심하게 사기를 치고 다니는 녀석도 있으니까.”
“네.”
“그럼 바로 일 시작하지.”
팀장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지만 전진만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