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67)
“현대에 와서는 가문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런가요?”
“네, 그렇기 때문에 전보다 훨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미스 힐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전에 좀 조사했습니다. 많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오나코 가문은 아마도 지온란드 가문의 방계로 추정이 되더군요.”
“방계요?”
“네, 지온란드 가문은 역사적으로 시계로 유명했던 집안입니다. 지금도 활동하지요. 수많은 장인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면 아까 그곳에 가서 지온란드라는 성으로 찾아야 하나요?”
“아까도 말슴드렸다시피 지오란드는 원래 성이고 지오나코는 그곳에서 파생된 방계죠. 지오란드라고 찾는다고 해서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설사 나온다고 한들 그들이 이제 와서 지오나코라는 성과 알고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수많은 박씨의 성이 박혁거세인 셈이니까.
“하지만 그 지오나코라는 성이 어느 도시에서 분파되었는지는 찾을 수 있었죠.”
그녀는 컴퓨터에서 뭔가를 찾아서 출력했다. 그리고 뭔가를 정리하면서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최초의 지오나코는 지오란드 가문의 여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순수하게 정실로부터 태어난 게 아니었죠. 당연히 지오란드 가문의 성을 이을 자격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지오란드의 장자이자 그의 아버지는 지오나코라는 성을 주고 다른 도시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줬지요.”
그녀는 뭔가를 정리하면서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원래 지오란드 가문은 시계에 대한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가문을 이을 자격이 도지 않았던 지오나코에게는 당연히 그 기술이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어요. 그들은 나름 기술을 갈고닦았지만 결국은 본가의 기술을 물려받지는 못했지요. 그들은 19세기 초까지 특정 지역에 모여서 살았습니다. 그 지역은 지오란드 가문의 권역이었고 방계라고 하지만 지오나코 가문의 혈통 중 하나로 인정되는 지오나코가 생활하기에는 좋은 곳이었죠. 하지만 현대화가 진행되고 시계 장인들의 극히 일부만이 살아남았지요. 지오나코의 시계는 좋은 편이었지만 현대에 와서 그 정도의 퀄리티는 중국산 시계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결국 그들은 도시를 떠나서 점점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지오나코 가문도 마찬가지였죠. 극히 일부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명품 시계 기업에 초빙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주로 수리 쪽에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출력된 서류를 정리해서 노형진에게 건넸다.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오나코 가문의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시계 브랜드 수리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떠났지만 시계에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하죠. 아마 원하는 사람은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노형진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역시.’
성명학자들은 단순히 계보만 파는 게 아니다. 그 가문의 역사 자체를 파고든다. 족보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조사할 이유가 없었던 한국과 다르게 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조사하여서 역사적인 사실을 추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저 역시 스위스인으로서 누군가 스위스의 시계를 모욕하면서 가짜를 파는 것을 그냥 두고 보고 싶지는 않네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안에는 은은하게 자부심과 분노가 녹아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끝날 겁니다. 후후후.”
* * *
“이곳인가?”
지오나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 모 브랜드의 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주로 수리하는 곳이라면서? 그런데 이곳에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차라리 본사 쪽에서 제조 쪽에 있는 사람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쪽에서는 이름을 빌려주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
“네, 한국에서는 장인을 무시하지만 스위스나 이런 유럽은 장인을 무척이나 인정합니다. 당연히 그들의 자존심도 강하지요. 그런 사람들이 과연 한국의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시계 사업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 자들에게 가문의 이름을 빌려줄까요?”
“그런가? 하지만 그런 식이면 수리 쪽에서 일하는 사람도 그럴 것 같은데?”
김성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가문 자체가 시계라는 사업에 헌신하는 가문이라면 누구도 이름을 빌려주고 싶어 하지 않을 게 뻔하다.
“그거야 그렇지요. 하지만 어딜 가나 이단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단?”
“네, 누군가는 돈이 필요하니까요.”
“아!”
누군가는 돈이 필요하다. 그게 좋은 이유일 수도 있지만 나쁜 이유일 수도 있다.
“물론 가문 자체를 대표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자기 이름을 빌려줄 수는 이지요.”
“무슨 소리야?”
“이겁니다. 제가 요즘 잘나가는 사람의 이름을 딴 상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돈을 주려면 엄청난 개런티가 들지요. 그러면 그 대신에 아무것도 아닌 동명이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와 계약하는 거죠. 한자로 표현하면 전혀 다르지만 한글과 영어로 표현하면 같습니다. 난 그럼 그 이름에 대해서 개런티를 지급했으니까 그걸 사용할 수 있는 거죠.”
“아!”
김성식은 바로 알아차렸다. 누군가는 지오나코라는 이름이 들어간 자기 이름의 사용을 허가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화 측은 그걸 슬쩍 줄여서 쓴다는 조항을 넣고 거기에 지오나코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 판 것이다.
“그러니까 그걸 명확하게 해야지요.”
“하지만 누가 그런 놈인지 알아?”
“상식적으로 가문에 대한 자존심이 있는 놈이라면 그럴 리 없지요. 이곳은 한국으로 치면 집성촌 같은 곳입니다. 물어보면 막 나가는 놈 하나쯤 있지 않겠어요?”
노형진은 웃으면서 답했다. 그리고 노형진의 확신대로 집성촌이라는 곳의 특성상 그런 녀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거 캐런 지오나코 그 새끼 이야기 인 것 같은데?”
“캐런요?”
“그래. 딱인데?”
펍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로 보면 가볍게 술을 먹는 호프같은 곳에서 노형진은 어렵지 않게 지오나코 가문 사람들을 만나 가장 가능성이 있는 녀석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 녀석 얼마 전부터 갑자기 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펑펑 쓰고 다니던데?”
다른 사람들까지 수긍하는 걸 보니 아마도 그 사람이 맞는 모양이었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내 조카쯤 되는 녀석인데 완전 루저야.”
가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어려서부터 그다지 시계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계가 가문의 중요한 전통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시계만 강요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허송세월만 보냈다는 것이다.
“그마저도 부족해서 도박에 빠져서 허우적대던 놈인데.”
“그렇게 그 녀석이 도대체 돈이 어디서 생긴 건지 참 궁금했는데 말이야.”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녀석이군.’
한국에서 도박에 빠지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이 있다. 이름 빌려주는 게 집안의 재산을 축내는 것도, 무언가를 훔치는 것도 아니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기분 나쁘군.”
조용히 듣고 있던 사람이 입을 열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도 한국으로 치면 가장 어른인 모양이었다.
“비록 지오나코가 그렇게 시계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가문이라고 해도 한국? 그런 곳에서 사기꾼 도구로 취급될 만큼 허접한 가문은 아닌데.”
“맞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가문의 전통을 어렵게 어렵게 이어 온 자신들이다. 점점 기계가 정밀화되고 그래서 사람이 만든 시계의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고 해도 전통이라는 이유로 하나하나 깎아 가면서 만들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자신들 가문의 이름을 딴 가짜 시계가 판치고 있다니.
“거기에다가 뭐? 우리 가문의 이름을 딴 시계를 다른 곳도 아니고 중국에서 만들어? 허! 기가 막히는구만.”
그는 스윽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아무래도 그냥은 못 넘어가겠네. 내 가문 회의에서 말해보지.”
‘아싸!’
노형진은 속으로 환호를 보냈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었다. 저들이 항의 서한을 보내는 것은 한국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스위스 쪽에서 보낼 것이다. 시계 산업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시위스인 만큼 아마도 이건 외교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성화는 곤혹스럽겠지.’
당장 그게 이슈화되면 그들이 사기를 친 것이 드러나는 셈이니까.
“그건 내가 알아서 하네. 하지만 캐런 녀석의 문제는 자네들이 알아서 하게.”
“그래야지요.”
노형진은 그 캐런이라는 작자의 집 주소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캐런 지오나코 씨! 계십니까?”
허름한 건물. 노형진은 그 앞에서 문을 두들기면서 소리를 질렀다.
“허, 기가 막히는군.”
그 옆에서 김성식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노형진에게서 사정을 들었기 때문에 별거 아닌 녀석에서 이름을 빌린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별거 아닌 정도가 아니라 언제 관리했는지도 알 수가 없는 허름한 집이었다. 그나마도 캐런 지오나코의 부모가 안 물려줬다면 이것마저도 없었을 거라는 게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 집도 그의 명의로 주면 도박으로 날릴 게 뻔해서 믿을 만한 친척의 명의로 주면서 부탁한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그 녀석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을 가능성은 없으니까. 그 녀석이 죽으면 그 집을 가지는 조건으로 말이다.
“누구······?”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그리고 완전히 눈동자가 풀린 남자가 그 안에서 비틀거리면서 걸어 나왔다.
“캐런 지오나코 씨?”
“네.”
“허.”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이건 듣던 것보다 더 심각한데?’
눈동자가 풀리고 흔들리는 다리. 그건 단순히 술에 취해서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었다.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마약에 찌들어서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이었다. 회귀 전 노형진이 미국에서 질리도록 봤던 그 모습 말이다.
“누구세요?”
마약에 찌들어서 정신없이 물어보는 캐런은 노형진을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이건······.”
김성식이 뭐라고 하려는 순간 노형진은 머릿속에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기회다.’
사람은 마약에 취하면 정신이 없어진다. 당연히 판단력도 떨어지고 다음 일은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운이 좋다면 자신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성화에서 나왔습니다.”
“성화요?”
“성화?”
반문한 것은 캐런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김성식조차도 무슨 소리를 하느냐면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이거 참, 눈치 없기는.’
노형진은 슬쩍 김성식의 옆구리를 찔렀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테지만 완전히 마약에 찌들은 캐런은 전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추가적인 계약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추가적인 계약요?”
“네.”
“하지만 더 이상 추가적인 계약은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의 눈에 서리는 은근한 기대. 노형진은 그 기대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뭐, 기업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아무래도 일을 하다 보면 상황이 바뀌기 마련이지요.”
“전······ 하기 싫은데요?”
이미 마약에 취했지만 그는 탐욕은 그를 최대한 머리를 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 어쭙잖은 탐욕이 바로 노리는 바였다.
“압니다. 저희가 그냥 갈 리가 있나요? 적당한 보상을 해드릴 겁니다.”
“보상······.”
“지난번처럼 드리면 되죠?”
“아······ 네네네.”
눈에서 불을 켜는 캐런 지오나코.
“그 전에 저희가 확인할 게 있습니다.”
“확인?”
“저희는 지난번에 왔던 팀이 아닙니다. 당연히 지오나코 씨의 얼굴을 모르지요. 지오나코 씨가 저희 얼굴을 모르듯이요.”
그 말에 캐런은 노형진과 김성식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약에 취한 그의 눈이 그걸 확인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네요.”
결국 포기하고 쉽게 납득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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