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8)
자신을 찾아온 고모부의 말에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어떻게 아셨어요?”
“얼마 전에 면회를 갔다 오지 않았느냐. 근데 온몸에 멀쩡한 곳이 없더구나. 반갑다고 포옹하는데 비명을 지르더구나.”
“끙.”
평소에도 걱정 많고 겁이 많은 고모가 왔다면 별거 아닌 거라고 하고 말았겠지만, 진중하고 쉽게 움직이지 않는 고모부가 왔다면 그건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소리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
“저도…… 영 방법이…….”
사촌 형이 있는 부대는 자신의 관할이 아니다. 물론 다른 검찰관에게 신고한다면 해결해 줄 수도 있지만 지난번 사건 이후 자신을 좋게 보질 않으니 그것도 무리였다.
‘설사 부탁한다고 해도 결말이 뻔하니.’
일종의 경고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 후에 상황이 좀 심해지면 부대를 전출해 주고 땡일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타 부대로 가면 거기서도 이방인, 즉 왕따 취급받는다.
“아니, 왜요?”
소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체적으로 약한 것도 아니고 멍청한 것도 아니다. 한국 3대 대학교 중 한 곳인 한국대 경영학과에 과 대표까지 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는 스킬이 장난이 아니다. 나쁘게 말하면 일단 친해지려고 들이미는 타입이랄까?
“하사관 한 명이 문제라더구나.”
“하사관요?”
“이규연이라는 하사인데…… 학력 콤플렉스가 대단한 모양이야.”
“네?”
“어떻게 입대한 건지는 모르지만 하사를 달고 있기는 한데 멍청해서 중사로 승진도 못 하고 몇 년째 그 자리에 있단다. 그래서 학력이 높은 애들을 무척이나 싫어한다는구나.”
“몇 년째요?”
“그래.”
“이런 미친…….”
보통 하사에서 중사로 올라가는 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사라는 건 인격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골 때리는 놈이네.’
그런 놈들이 있다. 진짜 답이 없는 놈들. 그런 놈들은 진리나 이성적인 조언을 들어 먹질 않는다. 문제는 그런 녀석들이 군대라는 조직에 있으면서 생기는 일이다. 사실 실력으로 보면 사회에서는 노가다를 뛰거나 짜장면이나 배달할 녀석이 지휘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 제정신이겠는가? 기고만장해서 자기 마음대로 부대를 망치는 것이다.
“방법이 없겠니?”
“끙.”
그런 녀석은 자신이 가서 검찰관이라고 들이밀어도 눈 깜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돈 좀 쓰셔야겠는데요?”
“돈?”
노형진의 말에 고모부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놈에게 돈을 주자는 말이냐? 그건 싫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다. 한번 돈맛을 본 녀석은 또다시 돈을 뜯어내기 위해 발악할 것이다.
“그 녀석에게 주자는 게 아닙니다. 방법이 있기는 한데…… 살짝 불법이거든요. 뭐, 피해자가 생기는 건 아니긴 한데…….”
“검찰관이 불법을 자행하라고?”
“원래 법은 안 걸리는 게 관건인 겁니다.”
“허허허.”
“어떻게, 해 보시겠어요? 뭐,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만.”
“설마 몇억씩 드는 건 아니지?”
“한 200만 원 정도요?”
“그 정도야 뭐…….”
사업하는 고모부이니 부담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정도 투자해서 부대 내 왕따를 멈출 수 있다면 아까울 것도 없다.
“그래, 어떻게 하면 되냐?”
“제가 준비해 둘게요. 뭘 준비하느냐면요…….”
노형진은 그날부터 체대 몇 곳을 돌아다녔다. 몇몇은 어이없어했지만 몇몇은 일당을 준다고 하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체대라는 특성상,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조금 불편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건강미라도 쳐주겠지만 남자는 덩치만 봐서는 쓸데가 없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예약을 하러 다녔다. 고모부는 면회를 가서 작전을 설명했고, 드디어 디데이가 왔다.
“이래도 되는 거냐?”
“불법은 아니잖습니까?”
“그래도…….”
“뭐, 불법이면 뭐 어때요? 피해자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어, 한 명 있긴 하네요. 그 멍청한 하사관.”
“…….”
함께 차를 타고 움직이는 노형진과 고모부. 주말을 맞이해 면회를 가는 것이다. 단, 오늘은 인원이 좀 많았다.
“사전에 이야기는 해 놨지요?”
“그래.”
처음엔 아니라고 발뺌하던 사촌 형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은 군 생활을 맞으면서 보내고 싶진 않았으니까.
“도착!”
저 멀리 보이는 부대. 대대 규모의 작은 주둔지였다. 노형진은 전화기를 들었고 몇 마디를 건넸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나저나 이거, 좋은 방법이네요. 우리 후배들한테 써먹어도 됩니까? 군 생활이 편할 것 같은데.”
“저작권 행사는 안 할게요.”
“하하하.”
대화가 끝나자 노형진은 전화를 끊었다.
차들은 천천히 위병소로 다가갔다.
“정지!”
위병소를 지키던 병사들은 잔뜩 긴장했다. 번쩍거리는 차를 따라 무려 네 대나 되는 시커먼 SUV들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끼이익.
노형진은 딱 그 앞에서 멈췄다.
“누구……십니까?”
“면회 왔습니다.”
“면회요? 누구를…….”
힐끔거리면서 뒤에 서 있는 차들을 보는 하사관.
“2중대 박노진 이병입니다.”
“뒤의 분들은?”
“아, 직원입니다.”
“직원 말입니까?”
“네.”
그 말에 약간은 이상하게 바라보는 하사관. 하지만 온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었기에 일단은 들여보내기로 했다.
“신분증을 주셔야 합니다.”
“형님, 신분증.”
“여기.”
고모부는 뒷좌석에 있다가 모른 척 신분증을 건넸다.
“전부 다 주셔야 합니다.”
“전부 다요?”
“네.”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본격적으로 장난칠 때가 된 것이다.
“야! 갈치야! 신분증 모아 오란다!”
“네, 형님!”
그 즉시 뒤쪽 차에서 한 남자가 내려 신분증을 모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노형진에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형님, 망구랑 덩어리가 신분증이 없다는데요?”
“뭐? 이런 미친 새끼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작자가 신분증도 안 들고 다녀?”
“주의하겠습니다, 형님.”
“하는 수 없지. 두 놈은 위병소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나머지만 들어간다.”
“네, 형님!”
그 말에 차에서 내리는 두 명의 덩치. 그들은 짜증스럽게 위병을 노려보다가 위병소 구석으로 향했다.
“여기 있습니다.”
“아, 네…….”
우르르 몰려와서 신분증을 몰아서 제출하는 사람들을 본 위병은 잔뜩 긴장했고, 그사이 차는 천천히 면회소로 향했다.
“얘들아! 깔아라!”
“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르르 차에서 음식을 까는 사람들. 그런데 그 양이 한두 명이 먹을 게 아니었다.
“제가 우리 아들이 있는 소대의 대원들을 위해서 음식을 준비했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아…… 네…….”
약간은 주저하던 하사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한 명이 내려오더니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아들!”
“아빠! 애들 데리고 다니지 말랬잖아!”
“아니, 요즘 분위기가 안 좋아서 말이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떼거리로 오면…….”
“미안하다. 그래도 소대원들 음식까지 싸 왔으니 좀 봐 다오.”
“끄응.”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련님.”
덩어리 한 명이 인사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박노진. 그는 음식을 보다가 하사관에게 다가갔다.
“충성! 이병 박노진, 하사관님에게 청이 있습니다.”
“응?”
“소대원들 음식까지 싸 왔다는데 소대원 몇 명만 불러서 가지고 가라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그래…….”
입구에서 근무하던 하사관은 다름 아닌 박노진을 괴롭힌다는 그놈이었다. 물론 그가 근무하는 때라는 것을 알고 온 것이다.
“애들 몇 명 보내라.”
음식이라는 말에 좋다고 뛰어왔던 일병들은 엄청나게 많은 음식들과 그 뒤에 있는 덩어리들을 보고 바짝 얼어붙었다.
“가지고 가십시오.”
“네.”
김밥 한 줄 남기고 음식을 넘기자 눈치를 보며 받아 가는 일병들. 특히 이규연 하사는 계속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먹어라.”
“네.”
식사하려다가 눈을 찌푸리는 고모부. 그러자 노형진은 화를 버럭 냈다.
“이 새끼들아! 형님 식사하시는데 뒤에서 그렇게 서 있으면 넘어가겠냐!”
“죄송합니다, 형님!”
“이리 와. 우리는 쭈쭈바나 빨고 있자.”
생각해 보라. 한쪽에서 스무 명에 가까운 덩치들이 우르르 뭉쳐서 쭈쭈바나 빨고 있으니 얼마나 웃기겠는가? 하지만 그 당사자인 이규연 하사는 등골이 오싹해져서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박노진을 괴롭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사님.”
“응?”
“아버지가 인사드리고 싶다는데요?”
“아…… 아버님이?”
“네.”
“크흠.”
그 말에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서 다가가는 그였다.
“반갑습니다. 노진이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이규연입니다.”
“우리 노진이가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규연은 그 말이 왠지 자신의 사망진단서에 사인하는 듯한 소리처럼 들렸다.
“신세는요, 무슨…….”
“아닙니다. 남자가 신세를 졌으면 갚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미소를 지으면서 박노진의 손을 잡는 고모부. 그리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규연.
“제가 비록 요즘 주변에 파리들이 꼬여서 이렇게 왔지만 다음번에는 어디 조용한 곳에서 독대하고 싶군요.”
“네…….”
이규연의 머릿속에는 땅속에서 머리만 나온 채로 묻혀 있는 자신과 그걸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건…….”
고모부는 명함 하나를 건넸다.
“서울에 있는 우리 가게 이용권입니다. 이걸 가지고 가시면 잘해 드릴 겁니다.”
“이용권이라니, 무슨 가게를 하시기에…….”
“뭐, 작은 룸살롱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이규연의 기분은 죽을 맛이 되었다. 누가 봐도 조폭이었던 것이다.
‘내가 미쳤구나.’
공부만 하는 샌님인 줄 알고 질투에 차서 죽어라 괴롭혔는데, 뒤에 생각지도 못한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노진이가 우리 가문의 희망입니다. 비록 제가 이 짓으로 먹고살지만 우리 노진이는 공부를 잘하니 크게 성공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가문에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아이니까 특별히 신경 좀 써 주십시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까지 강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고모부.
“형님,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래? 그럼 가야지.”
“네, 형님. 얘들아, 가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고모부를 일으켜 세우는 노형진. 그리고 구석에서 이제는 다 비어 버린 쭈쭈바를 빨던 덩치들도 일으켜 세웠다.
“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까지 인사하는 고모부. 노형진은 그런 고모부와 차을 타고 부대를 나왔다. 고모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잘한 거냐?”
“잘하시던데요? 연기자 하셔도 되겠습니다.”
“하하하.”
진지한 타입이라 그런지 고모부의 연기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이런다고 괴롭히는 걸 멈출까?”
“멈출 겁니다.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저런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건 단 하나다. 바로 자신에게 피해가 오는 것. 그것도 저항조차 할 수 없는 피해가 오는 것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자들의 특징이다.
“아마도 그 녀석은 형님이 거물 조폭인 줄 알겠지요.”
물론 그럴 리 없다. 조폭인 척 조용히 있던 애들은 그냥 체대에서 온 알바생이고 차들은 렌터카 회사에서 빌린 것이다.
“의심 안 할까?”
“그래서 제가 그 이용권을 준비한 것 아닙니까?”
분명 저 인간은 저 이용권을 사용할 것이다. 한두 푼짜리도 아닌 고급 룸살롱에서 쓸 수 있는데 안 쓸 리가 없다. 룸살롱에는 이미 다 이야기하고 돈까지 계산해 놨다. 당연히 그가 가면 그쪽에서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슬쩍 몇 마디를 할 테니, 그에게는 그 룸살롱이 명백한 고모부의 가게로 보일 것이다.
“자기가 건드리지 못할 강자라고 생각하면 알아서 기게 되어 있어요, 저런 놈들은.”
“그러면 좋겠다만…….”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저런 놈들은 회귀 전 만 단위로 만났던 놈들이다. 입만 살아 있는 놈들. 진정한 힘이라고 느끼면 알아서 길 게 뻔하다.
“이제 편안하게 군 생활을 보내면 됩니다.”
노형진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