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84)
단한 명도 남지 않았다. 남은 건 친일파에 매국노라는 그의 신분과 14억의 빚뿐이었다.
“이건 꿈이야…….”
그는 옆에서 일렁이는 한강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검은색으로 빛나는 한강의 수면.
“그래, 꿈이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면서 난간을 기어올랐다.
“찬물이 필요해……. 찬물…….”
찬물을 뒤집어쓰면 정신이 번쩍 나면서 꿈에서 깨어날 것 같았다. 그리고 한강의 검은 물은 여전히 얼음이 둥둥 떠서 무척이나 차가워 보였다.
“그래…… 꿈이야.”
그가 난간을 매달리는 순간 차들이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멈추기 시작했다.
“이봐요!”
“멈춰요!”
하지만 변재만은 멈추지 않았다. 저 안으로 뛰어들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꿈에서 깰 테니까.
“이건 꿈이야!”
그는 그렇게 외치면서 허공을 향해서 몸을 날렸다.
* * *
“맞습니까?”
“네.”
노형진은 시체를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깝네요.”
“좋은 사람이었나요?”
“아뇨. 이 사람한테 받을 돈이 있거든요.”
“얼마나요?”
“한 12억쯤 남았을걸요? 압류한 거 빼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자살한 게 이해가 가네요.”
“그렇지요. 하지만 이 녀석의 인생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네?”
노형진은 그냥 웃고 말았다. 하긴 변재만의 인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쯧쯧. 그러니까 착하게 좀 살지.”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그의 가족 중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예 다른 가족들은 그와 연을 끊은 상태였고 유일한 가족은 아내와 자식은 빚을 떠안기 싫다면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씁쓸한 결말이군요.”
박대현은 옆에 와서 서서 이제 파랗게 변한 변재만의 시신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결말이죠. 벌써 인터넷이 조용해졌다면서요?”
“네…… 기가 막히게도 말이죠.”
지금까지 일본군 성 노예 사건을 두둔하면서 그들을 편든 사람이 변재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변재만은 그들의 한 명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변재만이 몰락했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인터넷에서는 그런 모욕적인 글들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었다.
“수십 년간 노력했는데 말이죠.”
그 글들을 지우기 위해서 박대현은 수십 년을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단 한 명이 자살하고 나니 지우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지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결국 인간은 그런 겁니다.”
그런 인간들은 뻔하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아니면 이권 때문에 헛소리를 해 댄다. 하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온다고 하면 발 빠르게 꼬리를 만다.
“일벌백계라는 것이…… 가끔은 필요하지요.”
노형진은 씁쓸한 얼굴로 변재만의 시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6장. 가장 싫어하는 것>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호와 불호라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 게 사람이다. 그건 단순히 음식이나 취향이 아니라 변호사의 사건 성향에서도 나타난다.
“노 변호사님은 무슨 사건을 가장 싫어하시나요?”
“네?”
노형진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 말고 질문을 던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싫어하는 사건요?”
“네.”
“아니, 왜요?”
노형진이 놀라는 것은 그 질문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손예은이었기 때문이다. 업무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말도 안 하는 그녀가 갑자기 먼저 질문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냥 그런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해서요.”
노형진은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사건을 만나는 변호사지만 그중에서는 진짜 지랄 같고 엿 같아서 하기 싫은 사건도 있기 마련이었다.
“글쎄요……. 딱히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은 하죠.”
“안 하려고 한다?”
“네, 그래야지 뭐든 다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지요.”
그 말에 손예은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 건지, 아니면 부족한 건지 말도 안 하고 그냥 노형진의 앞에 식판을 내려놓고 앉았다. 노형진은 그걸 보고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냅킨으로 입 주위를 한번 스윽 닦고는 그녀에게 생각을 말했다.
“사건이 진짜 싫으면 차라리 피하는 게 나을 때도 있지요.”
“피한다?”
“네, 돈 때문에 하는 건 의뢰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돈 때문에 사건을 맡게 되면 제대로 변호를 안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서로에게 피해만 주기보다는요.”
“전 싫어하는 사건에 대해서 질문드렸습니다만?”
그녀의 말에 노형진은 그 말에 머쓱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었다.
“글쎄요…… 굳이 뽑으라면 성범죄죠.”
“성범죄요?”
“네, 상해는 입원해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치료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지요. 사기는 돈을 돌려주면 그 피해를 복구할 수 있지요. 제일 강력한 죄는 살인이지만 그건 호나 불호를 따질 수 없는 극악한 범죄이니 그건 제외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그러면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성범죄입니다. 그중에서도 친족 간 범죄를 가장 싫어합니다. 그건 진짜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죄니까요. 솔직히 그런 사건은 가해자를 보고 면상을 안 날리면 잘 참았다 싶네요.”
“그럼 가해자가 의뢰한다면요?”
“당연히 안 하죠. 아까도 말했지만 극단적으로 싫은 건 안 하는 게 나을 겁니다. 차라리 그게 서로에게 좋은 거죠. 전 스트레스 안 받아서 좋고 그쪽은 제대로 해 줄 변호사 찾아서 좋고.”
“역시 그렇군요.”
“역시?”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손예은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형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지고 온 밥이 다 식도록 노형진을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에 노형진은 머쓱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부탁할 게 있나요?”
“네.”
“어떤 건데요?”
“말씀하신 대로 하고 싶습니다.”
“제 말대로?”
“하기 싫은 사건이 있거든요. 노 변호사님이 해 주십시오. 가해자의 면상만 보면 주먹을 날리고 싶어져서요.”
그 말에 노형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 * *
“허허. 손 변호사가 그런 부탁을 다했다고?”
“네.”
“이거 참…… 신기한 일이구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하기 싫었으면 그런 부탁을 하나 싶더군요.”
“그래서 해 줄 건가?”
“그게 서로를 위해서 좋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노형진은 서류철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보니 자네도 그다지 하고 싶은 사건은 아닌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건이라서요.”
“싫어하는 사건?”
“친족 간 성추행.”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는 송정한이었다.
“하긴 그건 누구나 다 싫어하지.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넘기다니 손 변호사가 그렇게 안 봤는데 좀 그렇군.”
“하하하, 사실은 하기 싫어서 떠넘겼다기보다는 강제로 쫓겨난 것에 가까울걸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가해자 면성을 돌려 차기로 차 버렸답니다.”
“…….”
순간 송정한은 뭐라고 해야 하나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손예은이 그랬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손예은의 별명이 뭔가? ‘얼음 공주’다. 그런데 ‘얼음 공주’가 상대방을 돌려차 버렸다니?
“설마 진짜로 차 버린 건가?”
“애석하게 빗나갔다고 그러더군요.”
“애석하게?”
“네, 안 그랬으면 벌써 폭행으로 우리한테 연락이 왔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니 그게 말이나 되나?”
손정한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손예은 변호사가 그랬다는 것이 말이다.
“하여간 그래서 피치 못하게 사건을 담당하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솔직히 제가 봐서는 이건 배당부의 잘못이 맞기도 하고요.”
“배당부의 잘못?”
“네, 도대체 왜 이게 손 변호사한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 사건, 완전 하이 클래스 난이도입니다.”
“하이 클래스?”
“네.”
“잠깐 줘 보게.”
송정한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서류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는 노형진의 말대로 배당부에서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난이도의 사건은 당연히 노형진에게 떨어졌어야 정상이다.
“이게 왜 손 변호사한테 간 거지?”
“글쎄요. 하여간 이건 쉬운 사건은 아닙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새론에서 팀을 구성해야 하는 정도입니다.”
“인정하네.”
송정한조차도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사건 그건 다름 아닌 친족 성추행 사건이었다. 문제는 그 사건이 심각하게 꼬여 있다는 것이었다.
“피해자 나이는 서른 살. 아이가 둘 있고 어려서부터 친족 간 성추행 및 폭행을 당한 적이 있음. 양측 아버지는 이혼. 가해자는 그 당시 생존해 있던 할아버지. 현재는 사망.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가문에 누가 된다면서 도움을 거절……. 그들이 살던 곳은 인구수가 이백 명 되는 집성촌이라…….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결하라는 거야?”
송정한 기가 질려 버렸다.
“아마도 배당부에서 단순 양육비 소송으로 잘못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런 모양이군.”
두 아이는 아버지가 달랐다. 초혼에 결혼해서 나은 아이와 재혼해서 나은 아이. 양육비 소송은 어려운 게 아니니 배당부가 실수할 수도 있다.
“이거 심각하군.”
“네…… 아주 심각하죠.”
하지만 송정한도, 노형진도 심각하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양육비가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벌어진 친족 간 성추행과 폭행이었다. 수많은 성범죄들이 피해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신적 타격을 많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친족 간에 벌어진 성범죄다. 그 상황에서 다른 친족 간이 함께하거나 지금처럼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는 거의 복구 불가능한 수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좋은 것은 손해배상금을 받아서 치료받는 것인데…….”
“나이를 보게나……. 이건 무리야.”
나이를 보면 피해자의 나이는 서른 살. 그런데 성추행이 벌어진 시기는 미성년자였던 시기다. 손해배상의 청구 시기는 3년. 미성년자일 때 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만 18세가 되고 성인이 된 후에 3년 안에 신청했어야 했는데 그 기한은 지난 지 오래다.
“망할…… 이건 진짜 대책이 없는데?”
송정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배당부에서 단순 양육비로 빼 버렸겠지요.”
3년이라는 시간이 훨씬 전에 지났으니 아예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부분은 아예 제외하고 양육비를 배당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손 변호사 말로는 추가적인 상담 같은 걸 어려워한다고 하더군요.”
“그렇겠지.”
악순환이라는 것이 있다. 정신적 쇼크를 받은 사람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런 사건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나쁜 사람이 아니다. 아니, 나쁠 수가 없다. 나쁜 사람이라면 가족이고 뭐고 일단 경찰서에 처넣었을 테니까. 그들은 과거에 일에 대해 자책하면서도 누군가가 자신을 보듬어 주려고 한다.
‘문제는 개놈의 새끼들은 그런 걸 참 잘 알아차린다는 거지.’
정작 약간 순한 타입의 남자들은 그런 걸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진짜 나쁜 놈들은 그렇게 정신적으로 약한 여자들을 귀신같이 알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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