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18)
>1장. 마루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3권 시작]“으…… 덥다…….”
노형진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막 여름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언제나처럼 끈적거리고 후덥지근한 날씨가 시작된 것이다.
“보양식이라도 먹으러 갈까?”
“전 이상하게 보양식은 안 당기데요?”
“나이 먹어봐.”
‘벌써 먹어 봤습니다.’
체질적으로 안 맞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노형진은 이상하게 보양식이 몸에 안 맞았다. 한번 먹고 나면 더워서 잠을 못 잘 지경이었다.
‘이건 역사가 바뀌어도 그대로네.’
이제는 건강 관리한다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먹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걸 보니 체질적인 문제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보약이라도 하나 먹던가.”
“보약요?”
“그래.”
“흠…….”
생각해 보니 보약을 먹은 기억이 없어 노형진은 ‘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어려서는 먹어 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님이 가져다주신 걸 먹은 거고, 나이 먹고 결혼한 뒤에는 아내가 그에게 관심이 없어 먹을 기회가 없었다. 직접 챙겨 먹기에는 그 역시 관심이 없었고 말이다.
“한의원 가서 지어 먹어 볼까요?”
“아무 곳이나 가려고?”
“안되나요?”
“이봐 의사도 변호사처럼 실력이 천차만별이야. 어줍지 않게 한의사라고 바가지만 씌우는 녀석 말고 제대로 된 곳에서 해야지.”
“아는 곳 있어요?”
“잠시만. 내 수원에 아는 곳이 있지.”
“수원? 헐…….”
“아니, 수원이 무슨 먼 동네도 아니고.”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했다.
‘뭐, 잘한다면야.’
확실히 변호사도 마찬가지지만 의사도 실력이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송정한이 수원까지 가서 지어 올 정도면 상당히 잘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었다.
“여기 있네. 한번 가서 진찰 받아 봐.”
“네.”
노형진은 전화번호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한약 잘못 드셨네요.”
“네?”
노형진은 가서 앉아마자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신지?”
“어려서 부모님이 한약 가져다주셨다면서요?”
“네.”
“한약은 기본적으로 체질에 따라 처방하는 겁니다. 그렇게 본인이 가지도 않고 정해진 규격대로 나오는 건 몸에 안 맞아요.”
“그…… 그런가요?”
“그건 보약이 아니라 총명탕 같은 걸 겁니다. 보약을 사람도 안 부르고 체질도 없이 확인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하하.”
노형진은 머쓱하게 웃었고 한의사는 노형진의 손목을 잡고 지그시 맥을 재기 시작했다.
“헐? 맥을 재시네요? 다른 곳은 안 그러지 않나요?”
“할아버지한테 배웠지요. 저희 집안은 다 한의사라서요.”
“아아.”
요즘은 한의사들이 한의대를 나와서 오픈한다. 그런데 그 한의대에 있는 동안 맥을 짚는 걸 배우기에는 무척이나 시간이 촉박하다.
“맥은 단순히 심장이 뛰는 게 아닙니다. 그 안에서 그 흐름과 시간차 그리고 강도를 보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지요.”
“그런가요?”
“어디 보자…… 심장 쪽은 튼튼하신데 열이 너무 없네요.”
“네에? 더워서 못 자는데요?”
“장기에 열이 도는 체질이 아니라서 그럽니다. 바깥으로 열기가 다 돌아서 바깥에서는 더워서 난리인데 안쪽은 추워서 난리죠. 이런 체질은 보양식을 먹어도 그 열기가 바깥으로만 나가죠. 사람이 건강하려면 안쪽에도 열이 나가야 합니다. 일단 처방해 드릴 테니까 드셔 보시고…….”
노형진에게 하는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저씨 한 명이 들어왔다.
“이 사기꾼 새끼야!”
“사기꾼?”
“내 아들 내놔! 내 아들!”
술에 거나하게 취한 그는 다짜고짜 의사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선생님!”
깜짝 놀란 사람들이 뛰어 들어와서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그는 절망한 듯 울부짖으면서 외쳤다.
“내 아들……. 흑흑…… 내 아들 돌려줘.”
‘이게 무슨 일이래냐?’
노형진은 멍하니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마치 익숙한 듯 그의 등을 두들기면서 다독거렸다.
“무슨 술을 이렇게 드셨어요?”
“아들……. 내 아들…….”
“자자, 진정하시고……. 숙직실에 가서 좀 주무시고 가세요.”
횡설수설하는 그를 한참동안 진정시키고 나자 간호사들이 그를 데리고 나갔고 노형진은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누굽니까?”
보통 이런 상황은 의사가 처방을 잘못해서 그가 죽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노형진이 봐서는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 그런 경우라면 엄청나게 화를 내거나 쫓아내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의사는 마치 다 안다는 듯 이해하는 얼굴이었다.
“아, 저분요? 전 환자의 아버지입니다. 제가 살리지 못한 환자죠.”
“살리지 못하다뇨?”
“사람을 살리지 못하거나 살리는 것도 다 의사의 일 아닙니까.”
사람들은 한의사가 편하게 돈 버는 줄 안다. 하지만 한의약이라는 것이 천연 재료를 사용하는 건데, 처방전 하나만 잘못 써도 먹고 죽을 수 있는 천연 독들도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설마…….”
“사고요?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여기서 이렇게 있지 못하죠. 애초에 제가 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저 분은 이해는 하지만 아직까지 아들을 잊지 못해서 술 마시면 가끔 저러시구요.”
“살릴 수 없는 상태였다고요?”
“네.”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변호사라고 하셨죠?”
“네? 아네.”
노형진의 직업란을 보다가 잠깐 고민하던 그는 눈을 문지르면서 의자에 기대앉았다.
“저분 아드님 저한테 왔을 때는 장기가 다 상한 상태였습니다. 대학 병원에서도 포기하고 저한테 매달리신 거죠. 그런데 아무리 저라고 해도 신은 못되니까요.”
결과적으로 아들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암이었나 보군요.”
“하아.”
의사는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요. 변호사라고 하니 솔직히 말씀드리죠. 가끔 그런 환자들이 보이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요.”
“네?”
“제가 이름이 좀 있다 보니 매달리려고 오는 분들이 좀 있죠?”
“무슨 말씀이신지?”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보아하니 암이나 백혈병 같은 일반적인 질병에 대한 걱정이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다.”
“문제죠. 아직 대한민국은 마루타니까요.”
“마루타라니요.”
마루타. 일본어로 통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생체 실험이라는 말로 더 쉽게 통용된다. 과가 일제시대 일본은 한국인을 납치하여 731 부대라는 곳에서 산채로 생체 실험을 했는데 그 당시 그 피해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기 위해서 마루타, 즉 통나무로 부르고는 했다.
“한국은 아직까지 주요 인체 실험국입니다. 대부분은 모르죠.”
그 말에 노형진은 등골이 오싹하면서 부르르 떨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 비참한 역사는 일제시대가 끝나고 없어진 줄 알았다. 그런데 주요 인체 실험국이라니?
“그런데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자세하게 듣고 싶군요.”
노형진은 진지하게 자세를 잡았고 그 한의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바깥으로 전화해서 잠시 손님을 들이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기다리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일단은 이게 급해 보이니까요.”
“아까 하던 얘기 좀 듣고 싶은데요. 한국에서 아직도 인체 실험을 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요.”
“임상 실험이라고 아십니까?”
“듣기는 했습니다.”
임상 실험이란 말 그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새로 개발된 의약품을 실험하는 것이다. 의약품은 ‘짠’ 하고 나오는 게 아니다. 뭔가 개발되면 일단 일반적 실험을 하고 난 후 동물실험을 해서 그 안전성을 테스트한다. 그리고 그 후에 임상 실험이라는 것을 해서 인간에 대한 안전성을 테스트함과 동시에 일반적인 복용량을 확정한다.
“임상 실험을 생체 실험이라고 하시는 건가요? 그건 좀 오버 아닙니까?”
그 말에 의사는 얼굴이 참담해졌다.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임상 실험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임상 실험을 하는 국가는요?”
“글쎄요? 인도나 중국 아닐까요?”
임상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환경이 필요하다. 일단 사람을 구하기 쉬워야 하고 또 그 사람이 표본 수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장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 같은 극빈국은 무리이고 사람이 많은 인도나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의사의 말은 의외였다.
“아니요. 한국입니다. 전 세계 의약품의 임상 실험의 약 70%를 한국에서 하고 있지요.”
“약 70%요? 그게 말이 됩니까?”
그 정도면 거대 제약사들은 죄다 한국에서 한다는 소리다.
“네.”
“아니, 왜요?”
“그들에게는 한국이 천국 같은 곳이니까요.”
일단 공통적인 건강 상태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데 인도나 중국 같은 곳은 가난한 사람이 지원한다. 문제는 그 가난한 사람들이 영양 상태가 적당한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인도나 중국은 아직은 개발 중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서 한국은 영양 상태도 고른 편입니다. 실험을 하기 위한 병원도 많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정부가 친 기업적이라는 겁니다.”
“친 기업?”
“네, 다른 나라는 이런 임상 실험의 결과에 대해서 제법 혹독하게 책임을 묻는 편이죠.”
인도나 중국에서는 임상 실험을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엄청난 배상을 해야 함은 물론 그곳에서 하던 사업도 치명적일 정도로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한국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임상 실험 전에 동의서 한 장만 써 주면 어떤 법적 책임도 묻지 못하게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게 문제죠.”
아무리 동물실험을 했다고 해도 그게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될 리 없다.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더군다나 그 실험 목적 중에는 적당한 투여량을 확인하는 실험도 있다. 그 말인즉슨 사람에게 극한까지 아직 안전성도 확인되지 않은 약을 투약한다는 소리다.
“아까 그분 아드님도 신장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신장을 어떻게 할 수는 없더군요.”
“끄응…….”
노형진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다.
“그 피해자들 대부분이 학교 등록금이 다급한 청년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임상 실험의 일당은 하루에 10만 원선의 고액 알바다 보니 청년들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멋모르고 한다는 것이다.
“그걸 경고를 안 해 줍니까?”
“몇몇 의사들이 해 주기는 하죠. 그런데 의사들이 해 줄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어요.”
“한계?”
“네.”
이 임상 실험을 하기 위해서 엄청난 로비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일부 양심적인 의사들이 반대해도 파워에서 밀리죠.”
“끄응…….”
“얼마 전에 학회에 갔다 왔는데 정부 관계자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더군요.”
“헛소리요?”
“네.”
그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임상 실험이 가장 많이 하는 곳이며 이는 한국이 약학에 관해서는 선진국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있는 의사들에게 그 말은 말 그대로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약학의 선구자가 아니라 그냥 국민들을 마루타로 팔아먹는 겁니다.”
“음…….”
선진국이라고 하려면 그 실험을 하는 기업들이 한국 기업이어야 한다. 그러면 이해라도 하지, 우리나라에서 실험하는 기업의 95%는 외국계의 거대 제약 회사들이다. 즉, 대한민국이 선진국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 게 왜……?”
“그쪽에서 받는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대충 알 것 같네요.”
단순히 임상 실험을 하기 위해서 알바비만 뿌리는 게 아니다. 정체권에 로비를 해야 하고 또 병원에도 일정 부분 돈을 줘야 한다. 끝도 없이 들어가는 것이 바로 돈이다.
“저는 그냥 한의사지만 이 꼴은 아니다 싶더군요.”
‘하긴.’
한의사들의 진료 방식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안전성이 보장된다. 그에 반해 새로운 약은 안정적이지 않다. 당연히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실험하든가 급박하게 실험하든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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