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19)
‘그리고 후자를 선택할 기업은 없지’
당장 약을 개발하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채로 기다리면 그 피해는 누가 봐준단 말인가?
“그러면 그런 피해자들이 많습니까?”
“많지요.”
“흠…….”
“제가 알기로는 새론에서는 이런 사회적 문제에 대한 변론도 해 준다고 하던데요.”
“그건 그렇지요.”
“한번 이야기를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그거 완전 마루타 아닙니까? 아니, 지금 같은 시대에 대명천지에 마루타라니, 말이 됩니까!”
“진정해, 무 변호사. 우리가 그런 걸 막으려고 변호사 노릇을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이게 진정할 일입니까? 저희 할아버님이 독립운동가셨고 그 보복으로 저희 할머니가 그놈의 마루타인지 뭔지 당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21세기입니다. 그런데 마루타라니요!”
무태식은 듣자마자 발끈하면서 방방 뛰었다. 하긴 그의 집안에서 당한 사람이 있으니 더 화 날만도 했다.
“진정하게나. 자네가 그렇게 화내지 않아도 우리가 해결하려고 할 걸세.”
송정한은 무태식을 바라보는 한편 노형진을 바라보면서 진실 여부를 확인했다.
“노 변호사, 그게 사실인가? 이건 큰 사건일세. 단순히 의사의 말이 아니야?”
그런데 그 대신 대답한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 부분은 제가 답변하는 게 더 빠를 것 같네요.”
“고 팀장이?”
“제가 좀 확인해 봤습니다.”
그는 엄청나게 두꺼운 서류철을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최대한 간단하고 핵심만 뽑아서 보고를 올리는 게 그의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박스로 서류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게 뭔가?”
“우리나라의 임상 실험 관련 서류들입니다.”
“서류들이라니?”
“딱히 비밀도 아니라서 구하는 게 쉬웠거든요.”
“쉬웠다고 해도…… 이건…….”
송정한은 표정이 창백해졌다. 엄청나게 두꺼운 서류철들. 그게 다 임상 실험이라는 소리였다.
“그나마 이건 일정 수준 이상의 피해가 발생한 것만 뽑은 겁니다.”
“일정 수준이라니?”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작용 말입니다.”
“그게 이 정도라고?”
“네, 전 세계 약 70%의 임상 실험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는 게 농담이 아니더군요. 그나마 최대한 줄인 겁니다. 한 건당 대략 열 장 정도입니다.”
“뭐? 그럼?”
“대략 이백 건 이상 된다는 소리죠.”
그 말에 심각한 얼굴로 그 서류를 바라보던 송정한은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무래도 그냥 있으면 안 될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안에 사망자도 있으니까요.”
“사망자?”
“한 해 평균 임상 실험으로 인한 사망자가 스무 명 정도 나오더군요.”
“그러면?”
“보통 그러면 2천만 원 안팎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끝냅니다.”
“끝?”
송정한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친기업 정책을 고수하니까요.”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기업 위주로 판단한다. 이런 경우 다른 나라 같으면 자국민에 대해서 위험한 실험을 한 것으로 보고 엄청난 압력과 보복을 행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전에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감형되거나 아예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부분이 말인가?”
“네.”
“아니, 도대체 왜……?”
“일종의 비리가 있더군요.”
“비리?”
“네.”
“무슨 비리?”
“실험 결과는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송정한은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고는 노형진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의사 집단 중 일부가 주가 놀음을 한다는 건가?”
“아마도 일부 의료 관련 청치인들도 있겠지요. 일단 신약 테스트를 하려면 국가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요.”
신약 테스트인 임상 실험에 들어가면 조만간 그 약이 발매된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 약이 특출 날 경우 그 주식은 엄청나게 오를 수밖에 없다.
“기가 막히는군.”
기본적으로 임상 실험은 비밀이다. 그렇지만 국가나 의사는 그것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건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걸 알고 있는 자들이 그냥 넘어갈 리 없군…….”
“그렇겠지요.”
송정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한 가지만 묻겠네. 이거 이길 수 있나?”
“아니요.”
“벌써 검토해 본 모양이군.”
“네.”
노형진은 약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그는 어떤 방식이든 법적으로 방법을 찾아내서 해결 방안을 만들어 내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게 불가능했다.
“기업에 대한 보호 조항이 몇 겹이나 됩니다. 설사 소송한다고 해도 그들은 재력을 가지고 있지요. 성화와는 비교도 못할 만큼 말입니다.”
“끄응…….”
세계적 다국적기업. 그 규모는 노형진과 대룡의 적인 성화와는 비교도 못할 만큼 강력하다. 괜히 다국적기업이라고 하는 게 아닌 것이다.
“설사 이긴다고 해도 그들은 2심이나 3심까지 질질 끌 겁니다.”
“그렇겠지. 전 세계에서 이런 소송을 어디 한두 번 당해 보겠나?”
“그렇지요.”
“힘들겠군.”
분명 막아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언론에 공표하면?”
“소용없을 겁니다. 그들이 몰랐을까요?”
“끄응…….”
이 문제가 단순히 근래에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피해자가 나타났을 테고 가끔은 그들로부터 언론에 정보가 들어갔을 것이다.
“우리나라 언론의 한계죠.”
“하아.”
대한민국의 언론은 유독 탐사 보도에 약하다. 무슨 뜻이냐면 스스로 나서서 뭔가를 취재하는 게 아니라 뭔가 나타나면 그제야 매달려서 물어뜯으면서 뉴스를 만든다는 뜻이다.
“물론 이건 누군가 이슈화시키면 지금 언론에서 물어뜯어 줄 겁니다. 자극적이고 무척이나 물어뜯기 좋은 거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나서서 먼저 물어뜯는다? 그럴 리 없지요.”
상대방은 다국적기업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절대로 강한 상대를 먼저 물어뜯지 않는다.
“그러면 어쩌지? 그냥 물러나나? 캠페인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진짜 대책이 없네…….’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서류를 바라볼 뿐이었다.
* * *
“역시 안 되겠어……. 이쪽으로도…….”
노형진은 법전을 덮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쿠우울.”
그러고 나서야 눈앞에서 다른 사람이 코를 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피식 웃었다.
“피곤했나 보네.”
무태식은 임신한 아내를 놔두고 철야에 돌입하면서까지 일에 매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희생자 가족이라는 점에서 느낌이 다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대책이 없네.”
물론 소송에 들어가면 이길 자신은 있다. 하지만 그 한 건만이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저들에게 한 건만 이겨서는 안 된다. 그럼 그들은 당연히 한국에서 계속 실험할 것이다.
‘사실 실험이 문제가 아닌데…….’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신 물질로 질병을 정복하기 위해서 임상 실험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하나 노형진이 화가 나는 것은 대한민국은 동의서 하나만 써 주면 그 모든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원래는 엄청난 안전 절차와 비상시 대응, 치료에 관련된 모든 부분을 준비해야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
‘미래에 벌어질 가습기 살균제 부분도 그렇지. 이번에 그 버릇을 못 고치면 또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야.’
다른 나라는 문제가 생기면 그 기업에 엄청난 불이익을 준다. 그래서 안전이 확실하지 않은 물건은 팔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게 아니다. 그냥 순간만 넘어가면 된다. 살균제를 만든 회사는 애초부터 그게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았다. 그것도 단 한 곳, 대한민국에서만. 만일 다른 나라에서 팔면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제일 좋은 건 징벌적 배상제도인데…….’
애석하게도 그건 절대 통과될 수 없는 법이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그걸 막기 위해서 엄청난 로비를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망할 놈들.’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도 유명한 호구 국가였다.
“추릅.”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무태식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 노 변호사님. 아…… 죄송합니다. 살짝 잠들었나 보네요.”
“하하하, 살짝은 아닌 것 같은데요.”
무태식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뭐 좀 나왔습니까?”
“전혀요. 아무리 법전을 뒤져도 이런 걸 막을 수는 없겠어요.”
노형진이 고개를 흔들자 무태식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역시 철저하네요.”
“그렇게 말입니다. 어떻게 한 번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소용없다면서요?”
“그렇지요. 한번 이기고 나면 분명 저 녀석들이 로비를 해서 그걸 틀어막을 테니까요.”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다시 법전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길. 자신이 미래를 이끌려고 만들었던 길.
‘내가 잘못 선택한 건가?’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리 머리를 써도 법적으로는 길이 없어 보였다.
“그냥 확 때려 부술 수도 없고.”
“하아, 전이라면 말리겠는데 이번에는 진짜 동감입니다.”
지금도 저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임상 실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단 경험자에게 한번 찾아가서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경험자?”
“인터넷에서 찾다 보니까 이런 소송을 하신 분이 있던데요?”
“있다고요?”
의외의 소식에 노형진은 살짝 놀랐다. 대부분 이런 소송은 피하기 때문이다.
“네, 유명한 분은 아닌데.”
“유명할 수가 없죠.”
유명한 사람이 이런 소송을 할 리 없다.
“한번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죠.”
“그럴까요?”
경험이 있는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반갑습니다. 노형진입니다.”
“반갑네. 구찬우라고 하네. 자네 소문은 많이 들었지.”
구찬우는 이제 반백이 되어가는 노인네 변호사였다. 사람 좋은 그는 작은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었다.
“사무실이 좋군요.”
“좀 작지?”
“아니요. 정감 있고 좋습니다.”
“이제는 큰 욕심 안 부리고 그냥 동네 사건이나 소일거리로 하면서 뒤로 물러난 변호사인데, 뭘.”
“하하하.”
그는 제법 나이가 많은 변호사였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힘든 싸움은 피하고자 아예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소송도 할 수 있는 거겠지.’
만일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사건은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화로 이야기는 들었네. 임상 실험 가지고 소송하고 싶다고?”
“네.”
“그 사건, 진 거네만?”
“그래도 경험이 중요한 거니까요.”
“음…….”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차에다가 녹차 두 잔을 가지고 와서 노형진과 무태식에게 건넸다.
“뭐가 궁금한 건가?”
“모든 것요.”
“모든 것이라……. 뭐, 법적인 건 충분히 찾아봤을 테니 알 테고.”
“네, 외람되지만 판결만도 찾아 봤습니다.”
“뭐, 보라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거기서 그곳에 있던 일을 알 수는 없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일이야 있었지. 그 사건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
원래 그는 뒤로 물러나서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인 중 한 명의 아들이 그런 실험에 걸려서 폐인이 되어 버리자 소송을 진행했다.
“난 말일세. 솔직히 그걸 막지는 못해도 그 사건은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네.”
“그래요?”
“그래.”
그도 노형진과는 좀 달랐다. 노형진이 아예 그들의 행동에 족쇄를 채우려고 한다면 그는 지인을 위해서 그 재판을 이기면 땡이었다. 당연히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도 많았다.
“그래서 현장에 갔는데…….”
“그런데요?”
“상대방 변호사가 대법원장 출신이더군.”
“네에?”
노형진은 그 말에 입을 쩍 벌렸다. 대법원장 출신이라는 것은 저쪽에서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1심 판사로 대법원장 출신을 만났는데 판사가 어떻게 할 것 같나? 깍듯이 고개를 숙였지. 그제야 알았지, 이건 못 이긴다는 것을.”
“흠…….”
“자네도 알지?”
“네.”
대한민국 법에 현실을 통렬하게 비꼰 말이 하나 있다. 전관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전관이란 전관예우의 약자로, 기존에 판검사를 하던 사람이 나오면 그만큼 우대해 주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그게 심각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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