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2)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검찰에 1천 개가 넘는 고발장이 들어왔다. 제대한 사람들이 한데 뭉쳐서 자신들이 군에 있던 시절에 받았던 성 상납 요구와 돈을 갈취당한 것에 대해 고발하면서 발생한 것인데, 문제는 그 대상이 한 부대의 하사관들과 장교들 모두라는 점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천 단위의 사람들이 고발장을 넣어 버리니 군대에서 아무리 덮고 싶어도 덮을 수가 없었다. 해병전우회의 정보력 덕분에 해당 부대 제대자들이 재빠르게 뭉친 것이 주효했다. 그리고 가장 날뛰는 건 해병전우회와 국내 최대의 군대에 가 있는 남자들의 부모님들의 모임인 ‘군인들의 어머니’였다.
해병전우회는 장교라는 작자들이 병사들의 돈을 갈취하고 그 돈으로 성 접대를 받았다는 사실에 분개하면서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하는 등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군인들의 어머니’는 부모들의 돈을 갈취해서 성매매를 한 장군들과 장교들을 처벌해야 한다면서 연일 시위를 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연하게도 냄새를 맡은 기자들은 피라냐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국방부로 몰려왔다.
“어떻게 된 거야?”
“그동안의 제대자들이 한꺼번에 고발을 넣었습니다.”
“그게 가능해?”
“해병대라는 조직이 아무래도 다른 조직과 다르다 보니.”
한 해에 절반은 제대하니 최소 1년에 삼백 명은 제대한다는 소리인데, 육백 명이 정원이 부대가 4년간 그 짓을 했다면 총 1,200명이 된다. 그중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발한 것인데, 그 이후에도 뒤늦게 고발하는 사람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이번 일을 심각한 문제로 판단한 해병전우회에서 정식으로 항의하고 해당 부대 출신 부대원들을 모으고 있어서…….”
“끄응…….”
그렇다면 아직 고발장을 접수하지 않은 나머지 이백 명도 고발장을 넣을 가능성이 높다.
“기자들은?”
“국방부에 장사진을 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습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닌 듯합니다.”
“젠장, 어떻게 안 거야?”
아니, 예상은 간다. 하지만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노형진이 외부에서 누군가를 만났다고 하지만 그건 고작 세 명뿐이다. 그런데 그 후에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방법이 없잖아! 대대장뿐만 아니라 소속 장교들도 다 구속시켜!”
“네? 하지만…….”
“같이 죽자는 거야?”
위에서 상납받은 장군들을 보호해야 한다. 만일 대대장이 입을 나불거리면 한두 명 다치는 걸로 끝날 리가 없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분명히 그 녀석이 한 건 맞지만 법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으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하사관들과 장교들 그리고 대대장이 구속되면서 끝났다. 워낙 고발자가 많고 뉴스에도 나왔던 중요한 사건인지라 덮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 속이 다 시원하네.”
“하지만 위에서는 속을 바짝바짝 태우고 있는 거 아시죠?”
“뭐,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착복한 돈을 대대장이 혼자 먹었을 리는 없을 테니 당연히 위에서는 대대장이 입을 나불거릴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대대장이 입을 열면 좋겠는데.’
노형진이 대대장의 기억을 통해 누구에게 얼마가 갔는지 정확하게 읽어 낼 수는 있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만일 자신이 입을 열면 일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이 이러니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잔챙이 몇 명만 잡혀 들어가면 위쪽에는 절대 손을 댈 수가 없다. 게다가 위에서는 판사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형량을 깎아 주니 말이다.
“뭐, 일단은 하나가 끝났으니 다음 걸 해야지요.”
“다음 일이 있다면 말입니다.”
텅 비어 버린 서류철을 가리키면서 어깨를 으쓱하는 윤보미 중사.
“끄응…….”
자신이 자꾸 일을 키우자 아예 자신에게 일 자체를 배정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배정하더라도 절대로 위와 관련이 없을 만한 사건들만 배정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군대 문제가 위와 관련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노형진에게 배정되는 사건의 수는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좋아해야 하나요?”
“말년이라면 좋겠지만.”
아예 자신에게 업무 자체를 배당하지 않는 걸 보니 제대로 찍히긴 한 모양이다.
“솔직히 노 중위님이 미친 짓 많이 하신 건 아시죠?”
“압니다.”
위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하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자르지도 못하니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참에 휴가라도 가세요.”
“휴가요?”
“외출이야 자유 아닙니까?”
수사를 하는 직책이다 보니 아무래도 외출이 자유로운 것이 검찰관이다.
“하지만…… 위에서 찍혔는데…….”
“어차피 일도 안 주지 않습니까?”
일이라도 줘야 뭐든 하는데 아예 업무 자체를 배당하지 않으니 별수 있나.
“저도 좀 나가 봐야겠네요.”
안 그래도 집에 간 지 오래되기는 했기에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으하하하.”
역시 군인에게 주말은 보물과 같은 날이었다.
“위하여!”
노형진이 아무리 초고속으로 학교들을 끝냈다고 하더라도 아예 인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학원에 다닐 때 만났던 사람들과 중학교 친구들이다.
“캬! 죽이네!”
“그렇게 말이야.”
오랜만에 만나는 중학교 친구들의 모습에 노형진은 기분이 좋았다. 적대적이지 않고 사심도 없는, 오로지 친목을 목적으로 만난 사람들.
“그래, 군 생활은 할 만하냐?”
“하겠냐? 우리는 너처럼 장교가 아니란다.”
“맞아, 이 녀석은 진짜 운이 좋다니까.”
“운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게 만든 거지.”
“하여간.”
중학교 친구들 역시 형진의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나이도 비슷해서 대부분 군대에 있었다.
“그나저나 검찰관인지 뭔지는 할 만하냐?”
“뭐, 그다지. 위에서 찍혔지.”
“네가 했던 짓을 하면 그러고도 남지.”
노형진이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놨던 걸 기억하는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성격, 어디 가겠냐.”
“그렇게 말이야.”
“그나저나 미영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사람?”
“모르지. 연락도 없잖아.”
“좀 너무하지 않냐? 형진이가 진짜 학교에서 잘릴 각오까지 하면서 싸워 줬는데 연락도 안 하고.”
그 말에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어.”
“뭐?”
그 말에 깜짝 놀라는 사람들. 그들은 노형진이 윤미영을 목숨 걸고 도와준 건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니?
“설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
그런 인간들이 있다. 여자가 명백하게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더럽다는 식으로 말하는 인간들. 물론 노형진이 그런 썩어 빠진 부류일 리가 없다.
“아니야. 그 일은 과거로 남아야 하니까.”
“과거로?”
“그래, 나를 만나든 너를 만나든 좋은 일은 아니잖아. 문제는 우리를 만나면 지금 그곳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서 알게 된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거지.”
“아…….”
“우리야 그때의 일이 어떤 일인지 알지만.”
모르는 사람 중에는 분명 피해자인 미영이를 더러운 년이라 칭하며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한창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나이에 그런 소문이 나면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그러니 이런 일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게 낫다.
“역시 노형진.”
“우리 시대의 진정한 애늙은이.”
“애늙은이는 무슨.”
피식거리면서 웃는 노형진. 그렇게 거나하게 술이 한 바퀴 돌았을 때였다. 한 명이 거나하게 취한 목소리로 노형진에게 말을 건넸다.
“야, 제보도 받냐?”
“제보?”
“그래, 히끅.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뭔 이야기?”
“내가 기계화 부대잖아.”
“그래, 나도 들었다.”
“그래서 부품을 받았는데…… 히끅…… 그게 무려 98만 원짜리라더라, 히끅.”
그 말에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기계화 부대라면 부품의 가격이 그 정도 된다. 전투 장비다 보니 워낙 고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근데 98만 원짜리라면서 뭘 줬는지 아냐?”
“뭔데?”
“USB.”
“뭐?”
“USB, 그 작은 거 있잖아. 커커커…… 뭐더라?”
“컴퓨터.”
“아, 컴퓨터에 꽂아서 쓰는 그거.”
“그걸 98만 원을 줬다고? 특수한 거 아냐?”
“얌마, 내가 컴공과다. 그걸 모르겠냐?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일반용이야. 그것도 무슨 딱히 보안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히끅.”
그 말에 노형진은 눈이 꿈틀거렸다.
“그게 98만 원이라고?”
“그래, 소문으로는 5천 개인가 납품받아서 전국에 있는 기계화 부대에 배당되었다는데 기가 막혀서 말이지.”
“얌마, 군대에서 그런 게 한두 번이냐?”
워낙 비리가 많은 곳이 군대다 보니 말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 그런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얌마, 제보하면 잡혀가.”
“아, 맞다. 설마 우리 형진이가 날 제보자라고 찌르겠냐?”
“그럴지도?”
“한 번만 봐주, 이히히.”
그저 술주정으로 나온 이야기였지만 노형진은 이게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심각하군.”
노형진은 눈앞의 물건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있었다. 용산에서 산 16기가 외장형 메모리. 속칭 USB. 자신이 이걸 사는 데에 들어간 돈은 2만 원. 친구의 기억을 살펴본 결과, 국방색으로 되어 있는 껍질 말고는 다른 점이 없었다.
“이게 98만 원?”
친구의 말로는 이게 5천 개가 공급되었다는 건데, 그럼 49억 원어치다. 그런데 자신이 산 가격은 2만 원. 그럼 총가격은 1억이다.
‘아니지. 난 소매로 산 거잖아?’
국방부에서 소매로 사지는 않았을 테니 공장에서 직접 납품받았다고 하면 개당 15,000원 정도로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총 7,500만 원 정도 된다는 뜻이다.
‘도대체…… 나머지는 어디로 간 거지?’
무려 41억 5천만 원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친구한테서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요.”
“이상한 소리라니요?”
노형진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해 줬고 윤보미 중사는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브로커가 끼었군요.”
“브로커?”
“네,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브로커 소행입니다.”
보통 브로커가 군수품을 살 때 끼어들어서 다리를 놔 주는 건 동일한 물품일 때 자기들이 좀 더 유리하게 거래하기 위한 포석을 깔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거나 가짜 장비를 공급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도 해군 탐사정에 싸구려 탐사 장비를 공급하지 않았습니까?”
“저도 기억합니다.”
최신예 탐사정을 만들었는데 어쩐 일인지 정부에서는 그걸 운항도, 작동도 시키지 않았다. 이를 의심한 기자가 조사했는데 최신예 탐사정에 달린 탐사기가 고작 1,200만 원짜리 어군탐지기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탐지기의 가격으로 무려 58억이 지급되었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배 자체가 워낙 부실하여 출항하면 돌아올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원양 함대용으로 만들어진 배인데 모든 부품이 근해용이라 내구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기업이 다 먹는 게 아니다. 보통은 절반 이상을, 심각한 경우에는 상당 부분을 군 수뇌부가 먹는다.
“설마…….”
“해야지요.”
“하지만 이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건이 될 겁니다.”
노형진이 그걸 수사할 생각을 하자 윤보미 중사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기존에는 어쩌다 보니 수뇌부가 엮여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애초부터 수뇌부가 엮여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건입니다.”
“그래서요?”
“위에서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제가 이 짓을 하고 있겠습니까?”
“하긴, 그러네요.”
노형진이 하는 일을 보면 그가 상부에 대해서는 신경조차도 쓰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차피 검사 생활도 해 봐야 하니 하고 있는 건데, 기왕 할 거면 완벽하게 해야지요.”
“호호호.”
노형진의 말에 웃는 윤보미 중사.
“안 그래도 저도 예편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막판에 큰 건을 하게 되는군요.”
“아, 그런가요?”
“장기 해 봐야 의미가 없으니까요.”
확실히 여군 하사관들은 장기 해 봐야 의미가 없다. 상급 하사관들은 남자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럼 마지막 선물 삼아 화려하게 일을 해 볼까요?”
형진은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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