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3)
“자네 미쳤나?”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국가 기밀을 왜 수사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그걸 조사하겠다고 보고하자마자 위쪽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는 그저 뭐라고 하는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대놓고 개새끼 소새끼 하는 욕설까지 나오고 있었다.
“수사하는 게 우리 검찰관의 소임 아닙니까?”
“그건 군사기밀이라고!”
“군사기밀이라고 판단되지 않습니다. 모든 비리가 군사기밀은 아니잖습니까?”
“아오, 야! 이 꼴통 새끼야! 너, 지금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네 주제를 알아!”
“알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자신이 할 일은 수사다. 자신의 꿈이 변호사라고 하지만 검사로서 일하는 것도 대충할 생각은 없다. 아니, 이 모든 게 나중에 자신이 변론할 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 미친 새끼…… 끄응.”
노형진의 직속상관은 화를 버럭버럭 냈지만 노형진은 꿋꿋했다. 하지만 법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노형진의 말이 맞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노형진이 나가고 난 후 그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디서 저런 꼴통 새끼가…….”
이 바닥에 있다 보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노형진은 그걸 대놓고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위가 발칵 뒤집힌 상태였다.
그가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면서 깔끔한 차림의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 중령님, 오랜만입니다.”
“아…… 오셨습니까?”
그를 보고 움찔하는 이중령.
“이야기는 잘되었나요?”
“말이 안 통합니다. 이만저만한 꼴통이 아닙니다.”
“그 정도입니까?”
“이 새끼가 불독 같은 새끼라서 안 놓을 겁니다.”
노형진은 한번 표적이 되면 절대로 물러나는 일이 없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압력을 행사했지만 단 한 번도 그 압력이 먹힌 적이 없다.
“윗분들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제어할 수 있는 놈이 아닌지라…….”
물론 처음에 온 놈들은 정의를 외치지만 그건 초반일 뿐이다. 한번 실전을 겪고 나면 알아서 긴다. 그런데 노형진은 아니었다. 길들이려고 던진 사건부터 홀라당 뒤집어 버리는, 기고만장하고 통제가 되지 않는 놈이었다.
“제가 한번 만나 봐야겠군요.”
“말이 안 통할 텐데요.”
“누구나 처음은 그렇지요.”
남자는 피식 웃었다. 누구나 처음은 깨끗하고 순수하다. 그러나 때가 묻기 시작하면 그런 작자들이 더 더러워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노 중위님, 손님이 오셨는데요.”
“손님?”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에게 손님이 오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다. 자신이 찍혔다는 사실 때문에 내부에서도 자신과 왕래를 하지 않는 데다가 누가 오든 청탁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외부에서도 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데?”
“남상진이라고 하십니다.”
“모르는 사람인데? 일단 들어오시라고 해 주십시오.”
제보하기 위해 온 사람일 수도 있기에 노형진은 남자의 방문을 수락했다.
잠시 후 깔끔한 복장을 한 남자가 들어왔다.
“노형진 중위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남상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어쩐 일로 오신 건지?”
“뭐, 별거 아닙니다. 안부차.”
“안부차?”
안부라는 건 아는 사람끼리 묻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남상진이라는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데다가 접점도 없었던 것이다.
“그냥 요즘 너무 일을 열심히 하신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 말에 노형진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말씀대로입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면 여러모로 힘들지 않습니까? 체력적으로도 딸리고.”
“제 체력은 멀쩡합니다만.”
도리어 상부에서 자신에게 다른 사건을 배당하지 않아서 이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압니다. 하지만 미래는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슬쩍 자신의 가방으로 책상 위로 올려놓는 남상진.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가방을 슬쩍 노형진에게 밀었다.
“이게 뭡니까?”
“뭐가 말입니까?”
“이 가방 말입니다.”
“아니, 그냥 놓을 자리가 없어서 올려 둔 건데 기분이 나쁘셨다면 내려놓도록 하지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면서 가방을 내려놓는 그를 보면서 노형진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브로커로군요.”
“제가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전 그저 컨설턴트일 뿐이지요.”
“왜 온 겁니까?”
자신이 잡아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이놈이다. 저놈을 잡아야 그 뒤에서 장난치는 놈들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직접 자신을 찾아온 것이다.
“뭐, 헛수고하지 말라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어서요.”
“헛수고?”
“당신이 그렇게 발악한다고 바뀌는 건 없습니다.”
“최소한 발악이라도 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그런데 그 발악이 의미가 없다면 그게 무슨 발악이겠습니까? 헛수고지.”
아까와는 다르게 차가운 눈빛으로 노형진을 바라보는 남상진.
“윗분들은 안 좋아하십니다. 그만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적당히 보상해 드리지요.”
그 말에 형진은 웃음이 나왔다.
“싫다면요?”
“당신이 싫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난 여기서 당신을 구속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저 가방에 돈을 채워서 왔을 것이다. 그러니 뇌물 공여의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상진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해 보세요.”
“뭐라고요?”
“해 보시라고요. 당신이 헌병을 부르는 동안 난 벌어질 일에 대해 이야기해 줄 테니까.”
의자에 기대 노형진의 책상에 발을 올리는 남상진.
“당신이 저를 긴급체포 할 수는 있겠지요. 네, 그 가방에는 돈이 들었습니다. 3억이죠. 그래서요? 돈을 들고 다니는 건 자유입니다. 아마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겠지요.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을 겁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는 순간 당신이 아닌 새로운 검찰관이 배당되겠지요. 그 후에 그 검찰관에게 전화 한 통이 갈 겁니다. 그리고 그 검찰관은 오해라면서 기소를 포기하고 날 풀어 줄 거구요.”
그 말에 노형진은 이를 빠드득 악물었다.
맞는 말이다. 이번 사건은 자신이 찾아내서 수사했지만 자신이 저 작자를 체포하면 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수사 권한이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배정될 것이다.
“그 후에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난 집으로 갈 테고 당신은 계속 헛고생을 하겠지요.”
“그런다고 내가 물러날 것 같습니까?”
“이런, 이런, 오해하셨나 보군요. 당신을 물러나게 할 방법이 없어서 당신을 놔둔 게 아닙니다. 그저 귀찮아서 놔둔 것뿐이에요. 하지만 당신의 행동이 정도가 지나치면 그렇게 하지 못하지요.”
“협박입니까?”
“협박이라니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문화 시민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겠습니까? 후후후.”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를 지으면서 노형진을 노려보는 남상진.
“그냥 조언입니다. 당신이 법을 믿고 법을 집행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리를 내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상진. 그는 천천히 노형진의 귓가에 얼굴을 대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믿는 그 법을 만드는 게 누군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잔인하리만치 완벽한 공격에 노형진은 문 바깥으로 나가는 그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USB를 98만 원에 구입했단 말입니까?”
“그건 일반적인 USB가 아닙니다. 군사용으로 특수 제작되어 영하 30도, 영상 40도의 극한의 상황에서도 작동되는 물건입니다.”
“극한의 상황이란 말이죠? 재판장님, 다음 증거를 제출합니다. 시중에서 구입한 총 쉰 개의 USB에 대한 실험 결과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중국산을 제외한 쉰 개의 실험물 중 마흔다섯 개가 피고가 주장하는 상황에서도 멀쩡하게 작동되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즉, 피고가 주장하는 극한의 상황이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대다수의 저장 장치가 이겨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브로커가 갔다 왔다고 물러날 노형진이 아니었다. 도리어 가는 전투 본능이 깨어나 완벽하게 재판을 준비해서 피고, 즉 해당 물품의 구입 담당자를 제대로 박살 내고 있었다.
‘남상진, 넌 꼭 잡아 주마.’
저 인간을 잡는다면 그 뒤에 있는 장군이라는 작자들도 잡을 수 있다.
“이상입니다.”
판사는 뭐 씹은 표정이었다. 위에서 사건을 적당히 처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지만 노형진이 워낙 반박할 수 없게 완벽하게 준비하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피고 측 변호인, 할 말 있습니까?”
“그게…….”
심지어 피고 측 변호인조차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누가 봐도 완벽한 승리가 눈앞에 있을 때였다.
“재판장님.”
문이 열리면서 장교 한 명이 재판자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뭐라고 하면서 쪽지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휴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의 다음 기일은 사흘 뒤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바깥으로 나가는 재판관. 노형진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기일을 정하는 것은 재판관의 책임이기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너희들은 못 벗어나.’
이런 사건은 거래 내역이 확실하게 남아 있기에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아는 노형진은 이번에도 역시 승리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윤보미 중사였다.
“무슨 일입니까, 윤 중사님?”
“노…… 노 중위님…… 이런 게…….”
“뭐기에 그렇게 얼굴색이 질렸습니까?”
무심결에 그녀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 든 노형진은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눈을 파르르 떨었다. 이건 누가 봐도 생각지도 못한 형태였던 것이다.
국방부 장관의 명령으로 작성된 명령서.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제대…… 명령서…….”
엄친아? (1)
노형진은 위병소를 나오면서 부대를 돌아봤다.
“충성!”
환송식도, 인사도 없는 홀로 나오는 위병소는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제대를 축하하는 것이 아닌 패잔병을 쫓아내는 듯한 공간.
‘헐.’
그에게 떨어진 것은 1계급 특진과 더불어 제대를 명령하는 것이었다. 사유는 그동안 훌륭한 실적을 보여 줘서란다. 물론 노형진이 여러 가지 실적을 보여 주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도리어 유능하다면 제대를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떨어진 것은 포상 차원에서 나온 제대 명령이었다.
“제대로 당했군.”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상급 부대에서 제대를 명령할 수 있다. 그리고 명령이기 때문에 하급 장교인 자신은 그걸 거부할 수도 없다. 물론 자신이 진짜 잘해서 제대 명령서가 나온 게 아니다.
‘당했어.’
재판의 다음 기일은 사흘 후. 하지만 제대 명령 날짜는 이틀 후. 당연하게도 자신은 재판에 참석할 수 없다. 아니, 하고 싶어도 그 이틀이 지나고 난 후에는 민간인이기 때문에 어떠한 접근도 불가능하다.
“한 방 먹었네.”
법으로 자신을 지켜 온 노형진이기에 법으로 이렇게 크게 한 방 맞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그렇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나올 때였다.
“여, 노 중위님. 아니, 대위님이라고 하셔야 하나요?”
노형진이 문 밖으로 나오자 그를 부르는 한 사람. 그를 본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남상진.’
자신을 바라보는 남상진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미소가 가득했다.
“좋으시겠습니다, 벌써 제대하시고.”
“…….”
“표정이 왜 그렇습니까? 웃어야지요, 좋은 날인데.”
“망할 놈.”
“이런, 이런, 저한테 화내시면 안 되죠. 애초에 이기지 못한다고 경고드렸잖습니까?”
미소를 보이는 남상진이었지만 노형진이 봤을 때 그는 잔인한 악마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상대방이 상대방이다 보니 말이 좋게 나올 수는 없는 노릇
“구경하러 왔습니다.”
“구경?”
“네, 패배한 자가 힘없이 퇴장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더군요.”
자신에게 맞서던 사람이 패자가 되는 것. 그리고 쓸쓸하게 물러나는 것. 그게 남상진에게는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노형진도 어쩔 수 없는 힘에 패했으니 속이 쓰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 새끼가 미쳤나?’
노형진은 솔직히 그렇게까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지기는 했다. 그래서? 재판을 하다 보면 숱하게 지기 마련이다. 한 번 졌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할 정도의 멘탈로는 변호사를 하지 못한다.
“그래, 패배자님의 소감이 어떤가요?”
“너, 미필이지?”
“뭐?”
생각지도 못한 노형진의 말에 남상진은 순간 당황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를 악물고 이를 빠득빠득 갈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미필이라니?
“분명해. 너, 미필이야.”
“그게 무슨…….”
“그러니까 제대라는 게 뭔지를 모르는 거지? 짜식, 미필이 무슨, 훗……. 솔직히 내 심정? 생큐 베리 머치다.”
“새…… 생큐?”
“그래, 덕분에 이 지긋지긋한 군 생활이 고작 1년도 안 하고 끝났잖아?”
그는 회귀 전에도 군 생활을 했다. 그때는 말 그대로 땅개처럼 박박 기었다. 안 그래도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싫어서 출근할 때마다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제대라니.
‘못 잡은 건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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