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36)
“하지만 그게 누군지 알고? 한두 명도 아닌데.”
“압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를 건드릴 수는 있지요.”
“어떻게 말인가? 당사자는 죽었네. 그에게 가족도 없고.”
박두민은 평생을 홀로 살았다. 자신의 돈만 믿고 살았고 친인척과 거리를 두면서 살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싫어했다. 어찌 보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
“친척들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연을 끊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누군가는 유산을 상속받지 않겠습니까?”
“글쎄…… 누군가라……. 가족이 없는데 누가 받겠는가?”
“일단은 그걸 찾아봐야지요.”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얼마 후 고문학은 한 사람을 찾아왔다.
“이름은 박거태. 현재 지방의 모 고등학교에서 윤리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집안에서 둘째이자 막내인 박두민의 형의 핏줄입니다. 박두민의 형은 죽었고요. 실질적으로 재산을 물려받을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렇군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송정한은 그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은 약간은 삶에 주눅이 든 듯한 안경을 쓴 깡마른 남자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 사람이 상속자라고?”
“네.”
“노 변호사. 그런데 진짜로 알려 줄 건가?”
“그래야지요.”
송정한은 한편으로는 이대로 사건을 묻어 버리는 건 어떤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두민에게 고통 받은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그가 죽음으로써 그들은 그 사채를 갚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송 변호사님의 말씀도 이해는 갑니다. 심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동조하고요. 하지만 살인범들은 그걸 노리고 살인한 겁니다. 만일 여기서 그냥 물러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음…….”
박거태에게 상속에 대해 알려 준다는 것은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소리이다. 채권도 상속재산에 들어가니까.
“지금은 우리 의뢰인을 꺼내는 걸 생각해 보죠.”
“하아, 그러세.”
송정한은 약간은 안타까운 듯 입맛을 다셨다.
* * *
“재산요?”
“네, 대략 120억 정도 됩니다.”
박거태는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변호사가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자신이 작은아버지의 유일한 상속자란다.
“돌아가신 거 모르셨습니까?”
“네…… 아무래도 우리 집안과는 연을 끊고 지내신 분인지라.”
“현재 그분의 시신은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런가요?”
박거태의 표정은 담담했다. 노형진은 그를 보면서 되물었다.
“사이가 좋지 않으셨나 봅니다?”
“뭐…… 좋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저희한테도 사채 이자를 받던 분이니.”
“돈을 빌리셨습니까?”
“아버지가 암으로 입원하셨을 때요.”
그때도 작은아버지는 무지막지한 이자를 붙여서 자신들에게 빌려줬었다.
“옛날이야기네요. 벌써 10년이나 지났으니.”
“그래서 연을 끊으셨나요?”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연을 끊었습니다. 가지도 않았구요.”
‘쩝…… 어찌 보면 아주 자초한 거구만.’
자기 형이 죽어 가는데 거기에다 대고 사채놀이를 하다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의뢰인만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어지네.’
하지만 의뢰인을 꺼내기 위해서는 진범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저한테 알려 주시는 이유가 뭐죠?”
“아무래도 진범이 따로 있으니까요.”
“진범? 지금 잡혀 있는 사람이 진범이 아니라고요?”
“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분은 저희 의뢰인입니다. 함정에 빠지신 거죠.”
“함정…….”
“일단은 이번 사건에서 그 함정을 판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박거태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요?”
“네.”
노형진은 박거태에게 진지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입니다. 누군가 돈을 갚지 않기 위해서 벌일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그럼?”
“하지만 박거태 씨가 상속을 받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당연히 그가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지지요.”
“제가…… 위험해지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120억에 달하는 막대한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되지요.”
그 말에 박거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고만 있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이 있지요.”
노형진은 말을 하면서 박거태의 눈치를 살폈다. 박거태는 잠시 고민하는 듯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겠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이건 생명이 달린 일입니다.”
“하겠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밉기는 하지만 돈이 필요한 시대니까요.”
“알겠습니다.”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바로 수속을 밟아 드리지요. 그 대신 조건을 좀 달아도 되겠습니까?”
“조건?”
“수임료를 채권으로 받고 싶습니다.”
“채권으로 받다니요?”
“저희가 수임료를 받아야 합니다. 아무래도 유산 상속에 관한 건은 전혀 다른 거니까요. 그걸 그만큼의 채권을 구입하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에 약간 고민하는 박거태. 노형진은 그런 박거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채권을 전부 다 달라는 건 아닙니다. 다만 받을 가능성이 낮은 것에 한해서 달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채권 할인율이 20%니까 저희는 30% 쳐 드리겠습니다.”
“흠…….”
채권 할인율이란 악성 채권을 추심 업체에 넘기는 조건을 말한다. 가령 채권이 100만 원짜리인데 악성이라서 받아 내기 힘들거나 하면 채권자는 그걸 추심 업체에 20%인 20만 원에 판다. 추심 업체는 그걸 독하게 받아 내서 40%만 받아 내도 수익이 남는다.
“어차피 받기 힘든 채권 아닙니까? 그렇게 독종이었던 박두민 씨도 못 받았던 겁니다. 손해는 아닐 텐데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사인을 받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송정한은 노형진과 나오면서 빙긋 웃었다.
“좋은 생각이군.”
“네?”
“채권으로 받은 거 말이야. 그 채권을 모두 받지는 않을 거 아닌가?”
아마도 송정한은 그 채무자 중에서 불쌍한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려고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뭐,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네.”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뭐, 나중에 보면 알겠지요. 일단은 계획대로 진행하지요.”
* * *
얼마 후, 새론은 유산상속 과정을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망한 박두민의 재산을 정리하고 박거태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형진이 필요로 하던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요.”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사채놀이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기업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사채놀이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돈을 빌려간 사람들은 대략 육십여 명. 그 금액은 천차만별이었다. 적게는 몇백에서, 많게는 2억까지. 그중 오마중이 빌려간 돈은 1억 2천만 원.
“일단은 3천만 원 이하로는 제외하죠.”
“어째서?”
“글쎄요……. 3천만 원이라는 돈이 비싸기는 하지만 살인을 불사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요.”
“하긴…….”
물론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3천만 원이라는 돈이 살인을 불사할 사람은 없다. 돈을 갚지 못하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남은 것은 대략 스무 명 정도군.”
“흠…….”
노형진은 그 기록을 보면서 그들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했다. 물론 고문학에게 부탁을 하면 알아다 주겠지만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단순히 기록을 봐서 알 수는 없다……. 분명 주범도 기록을 보면서 함께 일할 사람을 골랐을 거야. 기록을…… 어?’
노형진은 기록을 정리하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이 기록을 얻기 위해 재산을 넘겨주는 유산상속 과정에 끼어들었다. 그만큼 이 개인적인 채권 기록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넘겨받았다?
“흠…….”
노형진은 한참 입을 다물고 컴퓨터 화면을 노려볼 뿐이었다.
“노 변호사, 뭐하나?”
“네?”
한참 그렇고 있는데 들어온 송정한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노형진.
“아닙니다. 그냥 뭐 좀 생각하느라고요.”
“그래서 사람을 좀 골랐나?”
“대충요. 일단 이 사람이 의심스럽습니다.”
노형진은 채권 각서 한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 거기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의 주민등록증 복사본이 함께 붙어 있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핸드폰 가게를 한다고 되어 있더군요.”
“핸드폰 가게?”
“네, 요즘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죠.”
핸드폰 가게가 이렇게 우후죽순을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매달 엄청난 양의 핸드폰을 팔아서는 먹고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버틸 수 있는 건 매달 나오는 지원금 덕분이다. 쉽게 말해서 이 핸드폰 회사에 가입시키면 그 고객이 가입되어 있는 동안에는 일정 부분의 돈이 지원금으로 나온다. 즉, 충분한 가입 고객만 확보되면 손님이 없어도 가게는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글로벌 호구가 되어 가는 거지.’
노형진은 몇 년 후에 만들어지는 법을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현실을 전혀 모른 채로 만들어진 법 때문에 도리어 핸드폰 요금은 오르기만 하는 현실.
“흠…… 확실히…… 그가 중간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군.”
아무리 이들이 서로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더라도 서로 연락할 방법은 찾아야 한다. 당장 오마중에게서 돈을 받은 강성태가 움직이는 것을 살인범에게 알리기 위해서도 핸드폰이 필요한데 이 정도로 계획을 짠 녀석이 멍청하게 자기 핸드폰을 썼을 리 없다.
“이 녀석이 그 폰을 공급했겠군.”
“네, 업자라면 대포폰 몇 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이 녀석이 감시 역까지 같이 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요.”
일단 첨부된 한 명. 그럼 두 가지 과정이 완성된다. 돈을 준 자와 강성태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알려 준 자.
“남은 건 살인을 직접 실행한 사람일 겁니다.”
“그게 쉽지 않군.”
“그렇게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독하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쟁 같은 상황에서 죽이지 않으면 죽는 상황에서도 사람을 죽이면 정신적으로 쇼크를 먹는 것이 인간인데 하물며 이런 평화로운 때에 죽인다는 건 더욱더 큰 충격이 된다.
‘그런 사람은 분명 얼마 안 될 거야. 한 1억 이상 대출한 자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범인도 그런 걸 기준으로 삼아서 실행할 사람을 구하겠지.’
희생양을 구하고 돈을 전달해 주거나 그를 미행하면서 움직임을 알려 주는 것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살인이라니…….
“잠시만요.”
노형진은 뭔가 생각난 듯 현장 사건 파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시신이 찍혀 있는 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뭔가?”
“흔적을 좀 볼까 생각 중입니다.”
“흔적?”
“네, 문득 상처가 너무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가?”
“네.”
경찰은 이게 강성태가 범인이라는 증거라고 했다. 그는 전과가 있고 또 정보 계통에서 일했으니 솜씨가 있다는 것이다.
‘완전 개소리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런 깔끔한 것은 일하는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숙련도의 문제다. 아무리 이런 바닥이라고 해도 직접 손에 칼을 잡을 일은 없다.
“이 기록에 따르면 피해자는 단 한 번에 찔렸습니다. 갈비뼈 사이의 폐를 찔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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