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37)
“그래서?”
“이걸 한번 잡아 보시겠어요?”
노형진은 송정한에게 칼처럼 생긴 은박지를 건넸다. 그걸 받아 든 송정한은 얼떨결에 그걸 잡았다.
“이게 왜?”
“보다시피 일반적으로 칼을 잡으라고 하면 사람들은 칼날을 아래로 해서 세로로 잡습니다.”
“아…… 그렇군.”
그런데 상처는 명백하게 가로로 나와 있다.
“가로로 되어 있으면 갈비뼈 사이의 좁은 틈을 쉽게 들어가지요.”
“설마?”
“그쪽 계통으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이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군.”
누군가 생각난 건지 송정한은 서둘러서 파일을 뒤지더니 한 남자의 파일을 꺼내 들었다.
“확실히 그렇군요.”
기록에 따르면 그는 고기 장수였다. 얼마 전 정육점을 열었다가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그대로 망해 버린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빚의 수준은 1억 5천이다.
“정육점이 돈이 되기는 하지만 이런 경우는 부담스럽지요.”
“그렇겠지.”
송정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도 주범은 이런 식으로 증거를 모았을 겁니다.”
“음…….”
기록을 보면서 자신이 실행하고자 하는 작전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작전을 실행할 사람은…… 운전사겠군요.”
“운전사?”
“네.”
“웬 운전사? 세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추정이었지요. 하지만 현장을 답사하면서 한 가지를 알아차렸습니다. 그곳은 CCTV 천지더군요.”
“그렇겠지. 부잣집이니까.”
“그런데 살인범이 들어가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더군.”
분명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단 한 사람, 강성태뿐이다. 그의 말로는 들어갔을 때 막 죽었다고 하니 분명 그곳에서 강성태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죽이고 도망갔다는 소리가 된다.
“그거랑 운전사가 왜?”
“아마도 열쇠 기술을 가진 운전사일 겁니다.”
“……?”
“칼에서 강성태의 지문이 나왔습니다. 기억하시죠?”
“그렇지?”
“강성태도 자신이 집에서 쓰던 칼과 같은 거라는 점을 인정했고요.”
“그 부분은 좀 이상하더군.”
“만일 칼을 바꿔치기한 거라면요?”
“응?”
송정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문이 있는 흉기를 얻는 건 어려운 일이지요.”
물론 사람은 여기저기에 흔적을 흘리고 다닌다. 당장 사람의 지문을 불법적으로 얻고자 한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리컵에 커피만 마셔도 지문이 남고 캔 콜라 하나만 마셔도 지문이 묻는다.
“하지만 완벽한 지문을 얻는 건 힘듭니다. 더군다나 그걸 이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칼에 지문을 묻히려면 그거 어떤 자세로 칼을 잡아야 하는지 안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칼과 바꿔치는 건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이 사람이 가장 강력한 후보인 것 같더군요.”
마지막 한 사람. 그는 열쇠공이었다. 자신의 차량이 있고 문을 열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차량은 봉고입니다. 아시다시피 봉고의 천장이 다른 차량에 비해서 상당히 높습니다. 그 위로 올라서면 담벼락을 넘어갈 수 있을 정도이지요. 더군다나 영업용 차량인 만큼 그곳에 서 있는다 해도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렇겠군.”
그 동네는 명백하게 부촌이다. 싸구려 차량이 돌아다니거나 오래 정차해 있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열쇠’라고 쓴 차량이 서 있으면 누가 열쇠공을 부르겠거니 했을 것이다.
“게다가 차의 크기가 작아 CCTV가 없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기도 좋지요.”
물론 움직이는 모습은 찍혔겠지만 업무용이니 경찰의 의심을 피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아볼 것이 있습니다.”
“알아볼 것?”
“위조지폐 말입니다.”
“아!”
저들 중에서 위조지폐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위조지폐는 구하기 쉬워 보이지만 컬러 복사기로 복사하면 확연하게 다르게 나온다. 특수 물감을 쓰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위조지폐는 주동자가 구했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하지만 쉽지 않을 텐데?”
그가 직접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꼬리를 감출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이번 사건에서 그는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압니다. 하지만 해 봐야지요.”
어쩌면 고문학이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형진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면 어쩔 건가?”
“일단은…… 열쇠공을 털어 봐야지요. 다른 녀석들은 접점이 없었지만 열쇠공은 강성태의 집에 가야 하고 범인을 태우고 다녔어야 했으니까요.”
“그렇군!”
최소한 살인을 직접 실행한 녀석과는 접점이 있다는 소리였다.
“잡을 수 있는 놈부터 하나씩 잡아 봐야지요.”
노형진은 열쇠공을 사진을 보면서 탁자를 톡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9장.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저 사람입니까?”
“네.”
노형진은 고문학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름은 김길태. 열쇠공으로, 기록에 따르면 박두민에게 4,800만 원을 빌렸습니다.”
“과연 저 녀석이 그 통로를 알까요?”
“알 가능성이 높지요. 아니, 알 겁니다. 그러니 일단 저 녀석을 찔러 봅시다.”
그 말에 고문학은 고개를 끄덕인 뒤, 무전기로 어디론가 말을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세 사람이 그의 가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잘될까요?”
“잘될 겁니다.”
그러면서 노형진은 무전기의 볼륨을 키웠다.
“어서 오세요.”
김길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노형진은 자심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네가 김길태냐?”
“그런데 누구신지?”
“우리 빚 받으러 왔다.”
“뭐라고요?”
김길태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박두민 씨 알지? 그분한테 4,800만 원 빌린 거 있잖아?”
“네? 전 그런 적이…….”
“이 새끼 봐라? 어디서 약을 팔아? 차용증이 폼인 줄 알아?”
“그…… 그럴 리가요. 박두민 씨는 죽었는데…….”
‘잡았다.’
노형진은 여기서 김길태가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죽었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가 죽었는데 왜 갚아야 하냐는 투였던 것이다.
“상속이라고 모르냐? 상속?”
“사…… 상속요?”
“그래, 상속받으신 분은 그다지 인내심 있는 분이 아니거든.”
“말도 안 돼요!”
“말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어이쿠!”
안에서 벌어진 작은 실랑이. 하지만 노형진은 그걸 말리지 않았다. 이번 작전을 위해서는 약간의 위법은 눈감아야 했다.
“잘 들어. 이번 달 안으로 갚지 않으면 길바닥으로 주소를 옮겨야 할 테니까 알아서 해!”
거칠게 바깥으로 나오는 세 사람.
그들이 멀어지자 노형진은 들고 있던 무전기를 내려놓고 다른 장비를 들어서 전원을 넣었다. 그리고 그 전원을 넣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이런 씨발!”
“설치가 잘되었군요.”
세 명이나 들어간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두 명이 시선을 가리면서 으름장을 놓는 동안 다른 한 명이 그 안에 작은 도청기를 심은 것이다.
“다행입니다.”
“뭐, 프로시잖습니까?”
이런 작전은 낯설기 때문에 침을 꿀꺽 삼키면서 걱정하는 고문학. 노형진 역시 조용히 그 스피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럴 리 없는데…….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김길태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 일이 끝나면 모든 게 끝이라고 했는데…….”
자신은 모르는 누군가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 이번 일이 끝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건 말도 안 돼.”
그 후에 들리는 것은 그가 사무실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소리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드르륵.
뭔가 당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렇다가 갑자기 뭔가 패대기치는 듯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안 받잖아.”
뭔가 부서지는 듯했지만 그는 안중에도 없는 듯 끊임없이 안쪽으로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바깥으로 나와서 어디론가 차를 몰고 가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까요?”
“글쎄요……. 운이 좋다면 살인범에게 가겠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낮다.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고 다른 것도 아닌 살인 사건이었으니 통성명 같은 걸 했을 리 없다.
“아마도 갑갑한 마음에 나간 것이겠지요.”
“그럼…… 어쩌죠?”
“전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어떤 거요?”
“일단 저 사무실에 들어가 봐야겠네요.”
노형진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 깜짝 놀란 고문학 역시 그를 따라서 내렸다.
“문이 잠겼는데요?”
“문 딸 줄 아시잖아요.”
노형진이 빙긋 웃으면서 말하자 고문학은 묘한 표정이 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문으로 달라붙었다.
“비밀입니다.”
“네.”
철컥 소리와 열리는 문.
노형진은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전 감시하고 있겠습니다.”
고문학은 혹시나 김길태가 돌아올까 봐 바깥에서 감시하기 시작했다.
‘빙고.’
노형진은 들어가자마자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가지고 있었어.’
박살이 난 전화기. 아마도 그 당시 사용된 대포폰일 것이다. 노형진의 예상대로 그걸 얼마나 세계 집어 던졌는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마구 짓밟았는지 여기저기 부품이 흩어져 있었다.
‘뭐, 그건 상관없지.’
노형진이 찾는 것은 그게 아닌 유심이었다.
“빙고.”
유심이 약하기는 하지만 일단 핸드폰으로 한번 보호된다. 그리고 고정 장치 안에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해도 잘 부서지지는 않는다.
“찾았다.”
노형진은 구석에 있는 유심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 부품을 모조리 다 가지고 가면 그는 이상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유심을 가지고 간다면 그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자…… 이제 면상을 보자고요, 범인 씨.”
노형진은 빙긋 웃었다.
* * *
“김길태는 어때요?”
“안절부절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핸드폰에 대해서는?”
“쓰레기통에 나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유심 침이 없어진 걸 모르는 모양이군요.”
“일반적으로는 잘 모르죠.”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유심이라는 건 핸드폰을 살 때 한번 넣고 신경을 안 쓰는 물건이다. 당연히 이런 경우에 쓰레기 안에 유심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유심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지요. 하지만 유심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형진은 유심을 다른 핸드폰에 넣어서 그걸 작동시켰다.
“유심에는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지요.”
그리고 화면에 떠오르는 단 하나의 전화번호.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히죽 웃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면 누가 개통시켰는지도 알 수 있지요.”
대포폰이라 명의는 다른 사람의 것일 테니 그 명의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핸드폰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직원이 등록해야 한다. 그러니 그 번호를 알면 그 직원을 잡을 수 있다.
“자, 그럼 우리 살인의 종범을 만나 보러 갈까요?”
* * *
이성균은 매일 밤 악몽을 꾸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간접적으로 도왔다고 하지만 살인에 엮여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성균아, 일어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무슨 식은땀을 그렇게 흘려?”
“아…… 미안…….”
잠깐 존다고 존 것 같은데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한 상태였다.
“누가 널 찾던데.”
“누가?”
“저기.”
그는 같이 일하는 동료의 말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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