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42)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자신을 태워 준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트럭에서 내렸다.
“조심하슈.”
“네.”
노형진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산을 타기 시작했다. 제법 거친 산이었지만 미리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온 덕분에 어렵지 않게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망할 조폭 놈들. 이런 데서 훈련을 한단 말이지. 힘들어 죽겠네.”
좋게 말하면 훈련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육이다. 신입이 들어오자마자 중요한 자리에 자리 잡을 리 없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몸 빵. 그러니까 선두에서 공격받는 자리다. 그러다 보니 살을 찌워야 해서 이런 곳에서 돼지 사료 같은 것을 먹이면서 몸집을 키우고는 한다.
“헉헉.”
그렇게 거친 단내를 풍기면서 산으로 올라가는 노형진.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올라가고 나자 작은 분지와 함께 허름해 보이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다.”
무척이나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 가운데 창고를 중심으로 그 뒤쪽에는 집이 한 채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축사로 보이는 건물이 한 채 있었다.
“그쪽에서 말한 건물이 저곳이군.”
노형진은 서슴없이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낡아서 부서지는 벽지들이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 곳에 누가 오지는 않겠는데.”
그러니 뭔가를 감추기에는 최고의 조건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소리인데.”
노형진은 집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집에 감춰 놨다는 소리는 듣기는 했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찾았다.”
노형진은 오래된 벽난로 위쪽에 살짝 붙여 준 작은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만일 누군가 불을 피웠다면 바로 불타 버릴 수도 있는 위치였지만 아마도 이곳은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곳에 붙인 모양이었다.
“녹음기? 범인과 대화를 녹음한 모양이군.”
살인을 문자로만 받아서 하는 놈이 있을 리 없다. 더군다나 전문 킬러도 아니니 말이다. 당연히 그는 그를 직접 만났을 테고 그 현장에서 녹음한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일 것이다. 목소리만 들어도 주변에서 알아들을 테니까.
“빙고.”
노형진은 그걸 꺼내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녹음기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뭐야?”
탁탁 녹음기를 두들기는 노형진. 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녹음기.
“아무래도 배터리가 다한 모양인데.”
노형진은 그걸 가지고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어둑어둑하게 지는 해를 배경으로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박거태 씨? 여기는 어떻게?”
노형진은 문 앞에 있는 박거태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박거태는 대답하는 대신에 천천히 들고 있던 총을 들이 밀었다.
“그거 내놔.”
“그건…….”
“잔말 말고 그거 내놔.”
사냥용 엽총이었다. 아마도 박두민의 재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들고 있는 박거태의 얼굴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 무슨 짓이기는. 내 진실을 감추려는 거지.”
“진실?”
그 말에 노형진은 얼굴이 점점 찡그러 들었다.
“설마…… 박거태 씨가 범인이었단 말입니까?”
“그래. 그 망할 새끼를 죽인 건 나야. 그 새끼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총을 들이밀면서 이를 빠드득 가는 박거태.
“돈독이 오른 그 새끼 때문에 우리 집은 시궁창으로 빠졌어. 아버지 병원비조차도 사채를 쓰게 하는 그 새끼 때문에!”
“그래도 그렇지…….”
“어차피 죽어도 아무도 안 슬퍼할 쓰레기야. 안 그래?”
“…….”
노형진은 그 부분에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죽었다고 슬퍼한 사람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 녀석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어. 그러니 그걸 보상받아야지.”
그 말에 노형진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처음부터 당신이었습니까?”
“그래, 처음부터 나였지. 후후후. 그런데 그 망할 새끼가 증거를 남겼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
“우리가 찾아간 건…….”
“의외는 아니었어. 누군가 변호사가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 가장 가까운 친척은 나였으니까.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형은 죽었고 남은 친척은 자신뿐이다. 그러면 그 재산은 자신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다.
“그걸 알고…….”
“그래. 후후후.”
광기에 번득이면서 총을 드는 박거태. 그는 천천히 노형진에게 다가왔다.
“그 멍청한 새끼들은 빚을 안 갚아도 된다니까 좋다고 시키는 대로 하더군. 도금학 같은 경우는 아예 관심도 없었지만 말이야. 10억을 준다고 하니 넘어오더군.”
하긴 도금학 같은 경우는 어차피 막장이다. 돈을 빌리기는 했지만 진짜로 갚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여간 이제 그 녀석이 죽었으니 그 재산은 내 꺼야. 모른 척 적당한 시점에 나타나려고 했더니 의외로 너희들이 먼저 나타난 거야. 나야 고마웠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재산을 넘겨받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희들이 이렇게 악착같이 주범을 찾으려고 할 줄은 몰랐지.”
일반적으로 변호사들은 자기 일만 하고 만다. 주범을 찾거나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진짜 의뢰인을 빼내려면 범인을 잡아야 해서요.”
“하? 웃기는군. 그 몇 푼 안 되는 녀석을 꺼내기 위해서 진짜 돈 되는 사람을 놓친다고?”
“그런 돈은 안 반갑거든요.”
“그래? 난 반가워. 너무나도 반가워서 누구든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총을 들이 밀고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노형진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럼 도금학 씨도?”
“그래, 그 녀석도 내가 죽였지.”
“도대체 왜요?”
“첫 번째는 네놈 말대로야. 그 녀석은 내 정체를 알고 있지. 절대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야. 두 번째는 돈 때문이지. 내가 어떻게 얻은 돈인데 그런 깡패 새끼한테 10억이나 줘야 해?”
“결국 자기 신분이 드러날까 봐 그런 거군요.”
“일은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은 거니까.”
자신이 범죄에 이용했던 녀석들이 잡히거나 자수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은 저들과 접점이 없었다는 것. 하지만 어찌 되었건 도금학은 접점이 있는 상황이고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죽였군요.”
“그래, 후후후.”
집에 가서 가스선을 잘라 두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모르고 도금학은 술을 잔뜩 사 와서는 술안주로 같이 먹을 만한 것을 데우려고 불을 켠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도 멍청한 놈은 아니었나 보군. 이런 걸 준비한 걸 보니.”
그 말에 노형진은 한숨이 푹 나왔다.
“아뇨, 멍청했습니다.”
“하긴 네놈보다 멍청할까.”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어느 틈엔가 안으로 들어온 노형진. 그리고 유일한 입구를 막고 있는 박거태.
“적당히 물러났다면 목숨은 건졌을 텐데 말이지.”
천천히 엽총을 치켜 올리는 박거태였다. 그는 애초에 노형진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아니, 살려 둘 수가 없었다.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잘 가라, 멍청아.”
노형진만 죽이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은 가난뱅이가 아니라 갑부가 되는 것이다.
딸깍.
“응?”
박거태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런데 들리는 건 ‘탕!’ 하는 발사 소리가 아니라 ‘딸깍’ 하는 쇳소리뿐이었다.
“뭐야!”
그는 황급하게 다시 당겼지만 총알은 날아가지 않았다. 다만 딸깍 소리만 날 뿐이었다.
“이런 썅!”
그는 그걸 던지고 미리 준비해 온 칼을 꺼내 들었다.
“준비성 하나는 철저하군요.”
노형진은 그걸 보고 마치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그걸 본 박거태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총알이 안 나가면 도망치거나 자신에게 덤벼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감탄이라니? 거기에다가 그의 얼굴에는 묘하게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저도 준비성은 철저해서요.”
“뭐?”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꼼짝 마, 손들어!”
구석에 쌓여 있는 박스들이 무너지면서 나오는 사람들. 그들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미는 마크를 보면서 박거태는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경찰…….”
“네. 경찰이죠.”
도대체 경찰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 된다. 여기는 아무도 모르는 장소라고 했다. 박거태는 머리를 쓰면서도 도망갈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 틈엔가 입구를 다른 경찰이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내가 멍청하게 제 발로 이 막혀 있는 창고로 들어왔겠습니까?”
그는 노형진이 물러나면서 창고에 갇혀 버린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대였다. 도리어 노형진은 그가 도망갈 수 없도록 창고 안으로 그를 유인한 것이다.
“어…… 어떻게…….”
박거태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자신이 이렇게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움직이지 마. 칼 버려. 안 그러면 총알이 날아갈 테니까.”
경찰의 경고. 그는 자신의 칼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서 노형진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빨라도 총알보다 빠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쨍그랑.
결국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칼. 그리고 그런 박거태에게 다가와서 수갑을 채우는 경찰.
박거태는 허망한 표정으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한 거지? 어떻게…… 내가 범인인 걸 안 거야?”
“그냥…… 처음에 당신이 한 실수 때문에요.”
“실수?”
“네. 그때 당신은 작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잡혀 갔다는 소식은 안다고 했지요.”
말도 안 되는 두 가지 사항의 충돌. 노형진은 거기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당신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 봤지요. 과거에 소위 말하는 영재라고 할 만한 사람이더군요. 그런데 어느 순간 몰락해서 지방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그런…….”
“그래서 좀 알아봤습니다. 당신이 망가진 이유 중 가장 큰 게 바로 박두민 당신의 작은 아버지 때문인 것 같더군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쓴 사채는 박거태의 인생을 좀먹었다.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박두민은 악착같이 받아 내려고 했고 돈을 갚을 수 없자 박두민은 박거태를 데려다가 거의 공짜로 부려 먹었다. 그 과정에서 온갖 모욕은 다 줬다.
“그만뒀다고 하지만 당신이 그 아래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한 가지는 성립되지요. 도금학이 어떻게 몰래 그곳에 접근할 수 있었는가?”
박거태는 박두민을 위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 보안 같은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현장에는 문을 부수고 들어간 흔적이 없더군요. 그곳은 번호 키로 되어 있으니 그건 그 번호를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과연 박두민이 자신의 채권자들에게 번호를 알려 줬을까요?”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럴 리 없다.
“사실 사건을 분석해 보면 결론은 뻔했던 거죠.”
박두민이 죽음으로써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뻔한 거 아닌가요?”
더군다나 그곳을 그만두고 난 후 몇 년간 왕래도 없다. 그러니 무슨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 애초에 나한테 접근한 건?”
“그 채권 기록을 보려면 당신이 필요했거든요.”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건 채권 기록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신들에게는 그걸 요구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당신의 상속을 대행하는 변호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채권 기록을 보고 그 안에서 대신 일했던 사람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뿌드득.
박거태의 입에서는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리고 당신이 보낸 트럭 운전수는 이미 잡혔습니다.”
“뭐?”
“설마 나 혼자 온 게 진짜로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인 줄 알았습니까?”
이미 그의 방식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어…… 어떻게…….”
“트럭의 번호를 확인하셨어야지요. 강원도 트럭이 거기서 갑자기 나타나면 누가 봐도 의심합니다.”
“강원도?”
“네.”
이 시대는 구형 번호판을 쓰던 시대다. 미래에는 ○○가 ○○○○ 같은 식으로 번호를 표기하지만 이때는 경기 ○○가 ○○○○ 같은 식으로 표기한다.
“이런 평일에 강원도 트럭이 여기까지 온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아마 우리를 감시하라고 보냈을 텐데.”
“그런데 경찰은 어떻게…….”
아무리 감시를 위해서 보냈다고 해도 경찰이 온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올 걸 알고 기다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제법 유명했거든요.”
“뭐라고?”
“도금학 씨 조직 소탕 사건 제법 유명했지요. 사실 누구도 모르는 폐건물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상당히 언론에 노출된 곳이기도 하죠. 당연히 인터넷을 조금만 찾으면 관련 정보가 나옵니다.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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