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47)
‘현금만 쓸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나온다는 건 누군가에게서 카드를 빌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디래?”
“강원도유.”
“강원도?”
“네. 그기 숨어 있대유.”
“멀리도 갔군.”
“가서 때려잡을까유?”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면 문제가 커질 거야.”
자신들이 그를 죽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도망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일이다.
“일단은 그 녀석의 동태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강원도는 동태가 없는디유. 황태는 유명하지만서도…….”
순간 노형진은 강성태의 썰렁한 농담에 얼어 죽을 뻔했다.
* * *
“저 녀석이어유.”
“연기 잘하네.”
초로의 촌로처럼 유유자적 자기 개와 산책하는 남자 그는 누가 봐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간땡이가 부었네유.”
“여기까지 누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겠지.”
분명 그는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유유자적 산책을 즐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냥 잡아 놓고 밟으면 안 되나유?”
“너도 새론에서 일하게 된 이상 일단은 기본적으로 법을 지킨다고 생각해. 그런 건 최악의 수단이야.”
“절대 어기지 말라는 말씀은 안 하시네유.”
“세상은 법이 못 지켜 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노형진은 변호사지만 법을 믿는 사람은 아니다. 법은 언제나 늦는다.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한다.
“그럼 어쩌시려구유?”
“일단은…… 우리가 필요한 정보를 얻어 내야지.”
“어떻게유?”
“비밀?”
“야?”
“후후후.”
노형진은 웃으면서 등산객인 것처럼 등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앞으로 나아갔다.
“어이구, 반갑습니다.”
“뉘슈?”
“지나가는 등산객입니다. 여기 참 산 좋네요.”
“좋지요. 산도 좋고 물도 좋고.”
마치 고향을 자랑하는 듯 뿌듯한 얼굴이 되는 감성락을 보면서 노형진은 구역질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좋아서 사람을 등쳐 먹고 숨냐?’
그렇지만 그걸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여기 주민이신가요?”
“아, 예정입니다.”
“예정요?”
“네, 낙향하려고요. 바글바글한 도심은 이제 지겨워서요.”
“아.”
노형진은 마치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가 보면 마치 거대 기업의 중견 관리직쯤 되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래요?”
“네.”
“재산이 좀 있으신가 봐요?”
“좀 모아 놨지요.”
“그렇군요. 하하하, 부럽습니다.”
“그쪽 분은 젊은 분 같은데 이 시간에는 어쩐 일로?”
“그냥 산을 좋아해서 좋은 산을 찾아다닙니다.”
“그래요?”
“이렇게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다 좋지요. 하하하.”
노형진은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것은 살랑살랑 흔들었다.
“막걸리 한잔 안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그걸 본 감성락의 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 * *
“캬! 취한다.”
감성락은 기분이 좋았다. 한탕 크게 하고 여기까지 내려왔지만 혹시나 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술을 마시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게도 차를 타고 30분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자, 쭉쭉 들이켜세요.”
“거 동생이 세상 살 줄 아네.”
쭉쭉 막걸리를 들이키면서 허허 웃는 감성락. 물론 노형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역시 술에 약탈 때는 막걸리가 최고지.’
막걸리는 자체적으로 맛도 강하고 냄새도 강하다. 그래서 어지간한 약을 타도 그렇게 티가 안 난다.
“어…… 취한다.”
아니나 다를까, 감성락은 얼마 먹지도 않아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우우우.”
노형진은 막걸리 안에 수면 유도제를 타 놨다. 수면 유도제는 약국에서도 쉽게 살 수 있는 데다가 술과 함께 먹으면 효과도 빨리 온다. 바로 사람이 쓰러지게는 만들지 못하지만 말이다.
“크으으…….”
결국 평상 위에 쓰려져서 코를 골기 시작하는 감성락. 노형진은 그를 마구 흔들었다.
“감 형! 감 형! 일어나요!”
“음냐…… 놔둬. 여서 잘 거야…….”
해롱거리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감성락.
그러자 노형진은 빙긋 웃고는 그를 번쩍 들었다. 누가 보면 술 취한 사람을 방으로 들여보내 주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감성락을 바라보았다.
“어이, 감성락. 증거 어디 있어.”
“증거…… 증거…… 뭔 증거?”
“다른 아가씨들이 탈세했다는 증거 말이야.”
“내가 알 게 뭐냐? 그게 뭔데?”
기억을 읽기 시작하자 손을 타고 들어오는 수많은 기억들.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기가 막혔다.
‘이거 완전 개쓰레기잖아?’
지금 노형진이 쓴 방법은 일반적으로 질 나쁜 술집에서 바가지를 씌울 때 쓰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의 기억을 읽어 보니 그 녀석 역시 그런 방식으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던 것이다.
‘결국 자기 방법에 자기가 당한 거네.’
사실 사람이 착하다가 갑자기 돌변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증거 어디 있느냐고.”
“증거…….”
사람이 취하면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 중에는 진실이 있다. 물론 노형진은 진짜로 말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한 번만…….’
딱 한 번이라고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면 그곳에서 꺼낼 수 있으니까. 더군다나 유일한 사람인 감성락은 이미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 그러니 바로 꺼내서 도망가면 된다. 애초에 내려온 목적도 그거고 말이다.
“감성락! 증거 어디 있어! 증거!”
“음냐…… 문…… 증거…… 음냐…….”
“장부 말이다!”
“명부? 아아, 장부…….”
그 순간 노형진의 기억 속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한 장소에 대한 기억. 그리고 노형진은 그 기억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 * *
“뭐라고? 금고?”
“네, 돈과 함께 그 안에 넣어 놨다고 하더군요.”
“이런 젠장…….”
송정한은 보고받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거 꺼낼 수 있겠나?”
“안 됩니다. 아시다시피 가압류 상태이지 않습니까?”
“끄응…….”
기본적으로 가압류 상태에서는 그 안에 있는 것을 꺼내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장부에 손대지 못한다.
“머리를 잘 썼네.”
“그러게요.”
“결과적으로 그게 열리면 우리가 손해입니다.”
“망할 년!”
“제소는 했습니까?”
“했는데 자네도 알지 않나? 변호사협회의 처벌은 솜방망이일세.”
“끄응…….”
그게 문제다. 변호사협회는 기본적으로 변호사들의 집단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처벌해도 무척이나 약하다. 역사적으로 변호사협회에서 쫓겨난 변호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슨 뜻이냐면 변호사가 되면 철저하게 그들에게 보호받는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성추행으로 쫓겨난 검찰은 변호사가 되어서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고 있다. 심지어 의뢰인의 돈을 횡령하거나 빼앗은 인간들조차도 말이다.
“기껏해야 벌금 얼마 정도 내고 끝날 걸세.”
“흠…….”
노형진은 한참 침묵을 지켰다. 이런 상황이면 자신들이 불리하다.
“금고에 있는 것을 꺼낼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일단 없지요. 이 사건으로 봤을 때는요.”
“그렇겠군.”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송정한이 얼굴을 찌푸리고 노형진 역시 침묵을 지켰다. 그때 마침 옆에 있던 무태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 다른 사건으로는 못 꺼내는 건가요?”
“뭐, 꺼낼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소송해야 하는데 그때쯤이면 그걸 공개하고도 남을 겁니다.”
“음…….”
노형진의 말에 무태식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깝네요. 당장 열 수 있으면 좋은데.”
“당장 열 수 있다면야…… 당장?”
노형진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다면 어쩌면 새로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강성태를 불러오세요.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방법이?”
“네.”
자신이 아는 유흥가의 상황이라면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찾았어유.”
“찾았어?”
“야.”
강성태는 다음 날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대략 7천쯤 빌린 게 있더라구유.”
“역시!”
화류계는 돈이 돌고 도는 곳이다. 쉽게 말해서 감성락 역시 누군가에게서 돈을 빌렸다는 소리이다.
“하지만 그쪽에서 안 준다는데유?”
“달라는 게 아니야. 산다고 해.”
“네?”
산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강성태.
“음…… 9천에서 산다고 해.”
“하지만 그건 7천짜리 채권인데유?”
“상관없어.”
노형진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어차피 얼마든 그걸 받아 내면 그만이니까. 후후후.”
* * *
감성락은 느긋하게 천장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마 후면 10억이 내 돈이란 말이지. 후후후.”
그 돈이면 평안한 노후를 보내는 데는 문제가 없는 돈이다. 물론 지금까지 같이 일한 사람들을 속이는 것은 미안한 것도 있다. 하지만 화류계가 왜 더러운지 다들 알 만한 사람들이 아닌가?
“해결되는 대로 일단은…… 미국으로 튀어야겠네. 하와이도 좋고 거기에서 늘씬한 백인 미녀를 끼고 살아야지.”
그는 그런 생각에 히죽 웃으면서 텔레비전을 켰다. 그때였다.
따르릉.
“응?”
전화기가 울리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자신의 전화번호는 이미 폐기했다. 당연히 지금 가지고 있는 전화기는 대포 폰이다. 그리고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 강화선뿐이다.
“잘못 온 전화인가?”
물론 잘못 온 전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울리는 전화기에 그는 몸을 일으켜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터지는 째지는 고함 소리.
“너 미쳤어!”
“누구야?”
“이 새끼야! 왜 금고를 연 거야!”
“금고를 열다니?”
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강화선이었다. 그런데 평소 목소리가 아닌 잔뜩 흥분한 목소리였다.
“금고를 열지 않았으면 우리 계약서가 어떻게 재판부에 들어가는데!”
“뭐?”
그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무슨 말이야? 우리 계약서라니!”
“지금 경찰이 왔다 갔다고, 이 개새끼야! 업무상 배임으로 말이야!”
“무슨 소리야?”
감성락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찰이 왜 강화선을 찾아간단 말인가? 하지만 그다음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등골이 오싹해졌다.
“안전한 곳에 넣어 놨다며! 우리가 계약한 거 잘 보관했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그게 새론에 넘어갔냐고!”
“뭐라고!”
감성락은 그 말에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강화선과 계약을 한 것이 있다. 자신이 돈을 빼돌릴 시간을 만들어 주면 20%, 그러니까 2억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계약서는 자신의 개인 대여금고 안에 넣어 놨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왜 열어!”
“그럼 어떻게 경찰이 그걸 알고 찾아오는데!”
아무리 강화선이 노력한다고 해도 경찰에 접수된 사건을 없는 일로 만들 수는 없다. 더군다나 업무상 배임이면 생각보다 문제가 크다. 그것도 돈을 받고 한 거면 실형이 나올 수도 있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잠깐 기다려. 나중에 전화할게!”
감성락은 황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자신이 금고를 열었던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아, 고객님.”
“방금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요?”
“안 그래도 금고 때문에 몇 번이나 연락드렸습니다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금고를 왜 열어요!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은행 쪽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법원에서 영장까지 나왔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연락드리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연락도 못 드렸습니다.”
“뭐라고요?”
그 말에 감성락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화류계를 등치면 가장 거북스러운 존재가 어깨들이다. 경찰이야 대응하는 법을 알지만 그들은 말이 안 통한다. 그래서 꽁꽁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도리어 독이 된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열리다니! 아직 가압류인데!”
“확정된 판결을 가지고 왔던데요?”
“확정된 판결?”
“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저희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판결문이 있는데 압류면 막을 수가…….”
“당장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는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 서울로 올라가서 상황을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럴 필요 없을 겁니다.”
문을 열고 나가자 보이는 한 사람. 지난번에 모습을 보인 그였다.
“넌…….”
“오랜만입니다, 감 형.”
자신과 함께 즐겁게 막걸리를 주고받은 그 사람.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하다니요. 말 그대로 법대로 하는 거죠.”
“법대로?”
노형진은 뭔가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알아챈 감성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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