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49)
>4장. 플라워 스네이크>
“실례합니다.”
노형진이 출근하는 그때였다. 건물로 막 들어가려는 찰나 한 남자가 잡자기 노형진의 팔을 덥석 잡았다.
“누구세요?”
“노 변호사님 맞으시죠?”
“그런데 누구시죠?”
“사건을 의뢰하고 싶은데요?”
“네? 저한테요? 그런 거 새론에 정식으로 수임하시면 됩니다. 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직접 사건을 담당하지는 않아서요.”
가끔 다짜고짜 사건을 맡아 달라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노형진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절대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 번만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아, 글쎄, 일단은 새론에 맡기시라니까요.”
노형진은 더 이상 들어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손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었다.
“한 번만 들어 주세요.”
“아니, 이건 뭐…….”
더운 여름이다. 그런데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꾹 눌러쓰고 심지어 잠바까지 걸친 그는 노형진에게 매달려서 거의 읍소를 하고 있었다.
“어이, 노 변호사, 뭐해?”
그렇게 매달리는 사람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당황하는 노형진에게 다가오는 한 사람. 그건 다름 아닌 서승진 변호사였다.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노형진이 설득해서 합류한 사람이었다.
“아, 서 변호사님.”
“아니, 이 사람아 출근했으면 들어가야지.”
“아, 그게…….”
노형진은 물끄러니 자신의 손에 매달린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서승진의 시선을 느꼈지만 절대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보게나, 젊은 양반. 아무리 다급해도 과정을 밟아야지. 일단은 들어가서 정식으로 사건을 수임하게나.”
“그럴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아니, 그러면 우리가 아니라 경찰을 찾아가야지. 왜 우리를 찾아와?”
서승진은 애써 그를 진정시키고 보내려고 했다. 흔하게 있는 일종의 ‘억울병’ 같은 환자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억울병’이란 변호사끼리 하는 말로 진짜 병은 아니라 뭐든 억울하게 생각하면서 소송을 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진짜 답이 없다. 소송할 돈이 없으면 변호사에게 매달리기도 하니까.
“말할 수가 없어서 그럽니다. 제발 한 번만 들어 주세요.”
“그럼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제발 좀.”
“안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럼 저기 커피숍에 가서 이야기합시다.”
“안 됩니다.”
“그럼 어디 가자고요?”
그 말에 어딘가를 바라보는 남자. 노형진은 그곳을 바라보고는 발끈했다.
“아놔, 쫌!”
그 남자가 바라본 곳은 뜬금없게도 회사 근처에 있는 모텔이었던 것이다. 가끔 철야한 사람들이 가서 자는 곳이다.
“내가 왜 당신하고 그곳을 가요?”
“제발 가 주십시오. 돈은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마구 매달리는 남자.
“안 되겠네. 경찰을 부르세.”
“그러지요.”
“경찰은 안 됩니다! 절대! 경찰은 안 됩니다!”
그 말에 펄쩍 뛰면서 반대하는 남자. 그리고 손도 처음으로 놓기까지 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제발 한 번만 믿어 주세요.”
“당신이 누군지 알고.”
노형진이 발끈하려는 찰나였다.
“믿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윤소미 씨? 어쩐 일입니까?”
마침 출근하고 있던 유소미가 갑자기 그들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이 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아니, 나쁜 사람이려나?”
“네?”
“차길 씨? 맞죠?”
“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갑자기 이름을 부르자 흠칫 놀라면서 부정하는 차길. 그러자 유소미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주변을 빙 돌았다.
“아무리 봐도 차길 씨인 줄 알았는데요. 헤에…… 나도 이제 늙어서 가물가물한가?”
“무슨 소리입니까?”
“차길 씨 맞으면 안 부르려고 했는데 차길 씨가 아니라는데 뭐 기꺼이 경찰을 불러 드리지요.”
핸드폰을 꺼내는 유소미. 그러자 허겁지겁 유소미에게 매달리는 남자.
“아니요…… 잠깐만요. 네, 차길이 맞습니다. 성차길이 맞습니다.”
그 둘의 관계를 모르는 노형진과 서승진은 멍하니 서서 그들의 시트콤 같은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고 유소미는 마치 이겼다는 듯 빙긋 웃었다.
“이 사람 압니까?”
“좀 알죠. 이분은 절 잘 모르겠지만.”
“누군데요?”
“성차길이라고 고수엔터테인먼트의 부장님이세요. 제가 오디션 보러 갔을 때 가차 없이 뻥 차 버린 남자죠.”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의 신분은 알겠는데 유소미가 자신을 뻥 차 버린 것에 대한 가벼운 복수 중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어이고, 그래요? 이렇게 예쁜 유소미 씨를 발로 차다니. 가능성이 없는 남자군요.”
“그렇지요?”
“그러면 들을 필요도 없네요. 그냥 들어갑시다.”
“그럴까요?”
총총 걸음으로 다가와서 노형진에게 매달리는 그 모습에 성차길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바로 뽑아 드리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노형진에게 매달리는 남자. 그리고 피식 웃는 유소미.
“장난은 이쯤할까요? 하여간 절 차기는 했지만 평판이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게 매달리는 게 안쓰러웠는지 유소미는 슬쩍 그의 편을 들어 줬고 노형진은 잠시 고민하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들어나 볼까요?”
물론 유소미의 관계나 아니면 그의 신분 때문에 만나자고 한 게 아니었다. 그는 연예계 관계자다. 그런 그가 이렇게 조심한다는 것은 외부에 드러나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미 씨도 같이 가시죠?”
“엥? 저도요?”
유소미는 피식 웃으면서 사무실로 가려다가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이쪽 사정은 저보다는 소미 씨가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음…… 그렇기는 한데.”
그걸 보고 있던 서승진은 조용히 물러났다.
“연예계 쪽은 내가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 난 이만 들어가겠네.”
“네.”
그가 들어가자 잠시 고민하던 유소미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그럼 대신에 여기서 10분만 기다려 줘요.”
“아니, 왜요?”
“저는 노 변호사님처럼 변호사가 아니라서 출근 카드를 찍어야 하거든요. 호호호.”
그 말에 노형진은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노형진은 자신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인장을 지나서 모텔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왜 저렇게 보는 거야?”
“아침부터 남자 둘이 예쁜 여자 한 명 끌고 모텔로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안 보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끄응…….”
하여간 모텔로 가야 한다고 극구 주장하는 성차길 때문에 노형진은 어쩔 수 없이 모텔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차민규라는 배우가 꽃뱀에게 물렸다 이거죠?”
“네.”
노형진은 그 말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유소미에게 향했다. 유소미는 그 시선만으로 노형진이 뭘 요구하는지 알아서 바로 입을 열었다.
“차민규, 나이 32세. 남자. 직업은 배우. 한창 잘나가는 배우로 >가족끼리 이러는 거 아냐>라는 시트콤으로 데뷔. 성격은 무난한 편으로 적이 많은 편은 아님. 다만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음.”
그 말이 끝나자 다시 시선을 돌리는 노형진. 방금 차민규에 대해서 말한 것이 맞는지 이야기해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성차길은 이해하지 못한 듯 바라볼 뿐이었다.
“설명 좀 해 주시죠.”
“하아, 맞습니다. 한 가지만 빼고요.”
“한 가지?”
“그 녀석이 여자 좋아하는 건 그냥 단순히 세엑…….”
슬쩍 유소미의 눈치를 보는 성차길.
“그냥 말해요. 내가 무슨 애도 아니고.”
“네. 하여간 섹스를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그 녀석이 애정 결핍이 좀 있어요.”
“헤에?”
“그건 몰랐네요.”
“그다지 알려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성차길에 말에 따르면 차민규의 집은 무척이나 가난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맞벌이를 하러 나갔고 그는 홀로 집에 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여자한테 홀랑 넘어가기 쉬운 성격이죠.”
“그리고 이제는 성공한 사람이니 주변에 여자가 넘쳐났을 테고 말이죠.”
“네.”
그래서 여자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의 애정 결핍에서 시작된 문제였다.
“문제가 뭡니까?”
“문제는 그 녀석이 엉뚱한 여자에게 빠졌다는 겁니다.”
어디서 만난 건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를 만나면서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그건 뭐, 우리가 말릴 수가 없죠.”
잘나가는 배우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막을 수는 없다. 물론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은 하지만 말이다. 사실 그런 말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문제는 여자가 꽃뱀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여자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돈을 달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 금액이 터무니없이 커졌다는 것이다.
“얼마나 달라는데요?”
“처음에는 돈 100만 원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얼마 전에 2억을 달라고 하더군요.”
“2억요?”
“네, 차민규가 애정 결핍이 있는 거지, 바보는 아니거든요.”
당연히 그걸 거절했다. 그러자 돌변해서 갑자기 강간했다며 신고하겠다고 난리 법석을 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헤에, 고전적인 방법에 당했네.”
유소미는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고전적인 방법?”
“고전적인 방법이죠. 일단 조금씩 달라고 하면서 재력을 확인하는 겁니다. 그 와중에 조금씩 시기를 노리는 거죠.”
노형진은 그 말을 듣고는 대번에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2억 이상을 달라고 하겠군요.”
“20억을 이야기하더군요.”
“20억이라. 미쳤군.”
물론 차민규가 잘나가는 배우니까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적은 돈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해요?”
노형진은 유소미를 바라보았다.
“쩌한테 물어보는 거예염?”
“웬 애교?”
“그냥 해 봤어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면서 발을 흔들던 유소미는 벌떡 일어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글쎄요. 아마 뒤에 누가 있을 것 같은데요?”
“네? 뒤에 누가 있다니요?”
유소미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는 성차길. 노형진은 그런 성차길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뭐, 일반적으로 꽃뱀이라고 하면 혼자 일하는 걸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런 경우는 뒤에 누가 있는 경우가 보통이죠.”
“네? 누가 있다고요?”
“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마치 마법처럼 어디선가 만나서 친해졌다? 그건 말도 안 되죠.”
하물며 차민규는 잘나가는 연예인이다. 그런 사람과 만나서 친해지고 결혼까지 이야기할 정도면 그냥 우연히 만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으으으…….”
너무 생각이 많은 건지 성차길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일단은 제가 차민규를 만나 봐야겠군요.”
“안 됩니다. 그러면 언론이…….”
“이미 언론은 적이라고 봐야 합니다. 더군다나 자세한 정보도 없이 어떻게 일을 해결하란 말인가요?”
“으으으…….”
성차길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최대한 이런 사건은 감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설마…….”
노형진은 그런 행동을 보고 직감이 오기 시작했다.
“차민규한테 말도 안 한 겁니까, 여기 온다고?”
“그 녀석은 이미 그 여자한테 빠져서 안 믿어요. 협박이 들어왔다고 해도 그럴 리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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