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50)
“아니, 무슨…….”
이번 사건에서 당사자는 차민규다. 차민규가 의뢰하지 않으면 자신들은 사건에 끼어들 수가 없다.
“우리 소속사에서 그냥 해결하면 안 됩니까?”
“그게 될 리 없잖아요. 물론 차민규 씨가 동의하면 된다지만 차민규 씨한테 말도 안 하고 어떻게 해결합니까?”
“어떻게든.”
“아니, 이봐요. 현행법상 그럴 수가 없다니까요. 차민규 씨가 성인인데 우리가 어떻게 동의도 없이 그의 사건을 담당합니까?”
노형진은 성차길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애써 이야기했지만 성차길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건 절대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끝장난다고요! 안 그래도 계약이 끝난 애들이 나가서 남은 애들도 얼마 안 되는데.”
“그래도요.”
“로비를 해도 좋고 뇌물을 써도 좋습니다. 제발 수습만.”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요!”
노형진이 발끈하는 그때였다. 침대에 누워서 까불거리면서 있던 유소미가 ‘띠링’ 하는 소리에 뭔가를 확인하듯 핸드폰을 꺼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성차길 부장님, 걱정은 이제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네?”
성차길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유소미를 바라보았다. 유소미는 그런 성차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이미 까발려진 것 같거든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이미는 유소미. 그러자 시야에 들어오는 뉴스 헤드라인.
텔런트 차민규. 강간 의혹
“억!”
그걸 본 성차길은 자신도 모르게 뒷목을 잡고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 * *
“어떻게 생각해요?”
“이번에 나온 아이스크림은 맛없어요. 역시 구관이 명관인가 봐요.”
노형진은 말을 하다가 말고 유소미를 바라보았다.
‘아, 맞다. 이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지.’
결국 성차길이 쓰러지고 회사가 발칵 뒤집히고 나서여 차민규는 만나겠다는 의견을 전해 왔다. 그나마도 사장이 온갖 소리를 다 해서 한 모양이었지만.
“그나저나 왜 다른 사람은 안 데려가요? 보통 다른 변호사님이랑 팀 짜서 일하잖아요?”
“이건 언론을 조심해야 하는 사건이니까요.”
“그런가요?”
“네.”
연예인 사건이다 보니 기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기삿거리를 꺼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히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다.
“아직 이런 쪽에 대응할 만한 변호사가 없어서 말이죠. 물론 무태식 변호사 정도면 가능하겠지만.”
송정한은 이번 사건을 담당하기에는 좀 부담이 된다. 일단 대표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문제라고…….”
“거물이 끼면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라고 받아들이거든요.”
뭔가를 덮기 위해서 거물을 쓴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서승진 변호사님을 쓰자니 그분은 인권 변호사라 이쪽은 경험이 적고요.”
지금까지 훈련된 전문 변호사들이 지방으로 가 있는 바람에 마침 내부에서 이 사건을 담당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무태식 변호사는 사건이 많으니까요.”
“예은이 언니는 어때요? 잘할 것 같은데?”
“예은이 언니?”
“아, 손 변호사님요.”
“아.”
확실히 손 변호사 역시 쓸 만한 카드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너무 무표정해요. 그래도 언론을 상대하는 건데 연기를 좀 해야 하거든요.”
“하긴 예은이 언니가 완전 얼음이기는 하죠.”
“친한가 봐요.”
“그럭저럭.”
어깨를 으쓱하는 유소미. 하지만 언니라고 부를 정도면 어느 틈엔가 친해진 모양이다.
‘하긴. 넉살이 좋으니까.’
이렇게 넉살이 좋으니 손 변호사가 끌려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저를 부른 이유는?”
“대변인이라는 말 들어 봤어요?”
“대변은 들어 봤어요.”
“…….”
“쏘리.”
“하아, 말 그대로 대변인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언론을 상대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연예 쪽 애들이죠. 그 애들이 완전히 소설을 쓰는 애들인 거 아시죠?”
“알죠. 그쪽 지망생이었는데.”
지금까지 많은 기자들을 만나 왔지만 보통은 사회부 쪽이었다. 그에 반해 연예부 기자들은 말 그대로 소설가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슈를 던져 줘야 합니다.”
“이슈?”
“네.”
“그런데 왜 저예요?”
“예쁘잖아요.”
“헐.”
“그 애들은 그거면 돼요.”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일단 대변인이 저쪽보다 예쁘면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우와…… 너무하다.”
“너무한 거 아닙니다. 일입니다.”
“추가 수당 줘요.”
“들고 있잖아요.”
“왕 치사 빤스! 아이스크림 하나로 퉁치다니.”
“원래 세상은 그런 겁니다.”
“그럼 하나 더 사 줘요. 이거 진짜 잘못 골랐어. 실패야! 실패!”
티격태격하면서 사무실로 다가가는 노형진. 하지만 사무실에 접근하자 몰려 있는 기자들 때문에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이거 어쩐다?”
당장 들어가는 차는 무조건 사진을 찍어 대는 판국에 조용히 들어갈 방법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제가 나가 볼까요?”
“아니, 나가서 뭐하려고요?”
“쇼 한번 해 보죠.”
“쇼?”
유소미는 대답하는 대신에 뒷좌석에 있는 자신의 가방에서 화장품을 꺼내더니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화장품이…….”
노형진은 그 안에 가득한 화장품을 보고 기겁했다.
“여자의 기본 아닌가요?”
“기본치고는 좀 많은데요? 딱 봐도 쉰 개는 넘어 보이는데.”
“정확하게는 여든일곱 개죠. 그래도 연예인 지망생이었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헐.”
그렇게 화장하고 나니 유소미의 모습이 점점 바뀌는 듯했다. 그러고는…….
“어?”
노형진은 살짝 놀랐다. 얼핏 봐서는 차민규를 고소한 사람과 흡사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까지 뒤집어쓰는 영락없이 딱 그 사람이었다.
“아니, 기껏 화장하고는 왜 얼굴을 감춰요?”
“당당하게 내밀면 더 의심할 거 아니에요. 상대는 기자들이라고요. 얼마나 눈썰미가 좋은데요.”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의 눈썰미는 생각보다 좋다. 눈치 빠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감추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겠군요.”
“네.”
그러면 당연히 기자들은 이쪽으로 우르르 붙을 것이다.
“자, 그럼 이따가 봬요, 변호사님.”
차에서 내린 유소미는 마치 조심하는 듯 건물 쪽으로 가다가 멈칫했다. 누가 봐도 거기에 몰려 있는 기자들을 보고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잽싸게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미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보던 상황.
“어, 저거?”
“그 여자 아냐?”
“맞지?”
“맞는 것 같은데?”
이 사건의 핵심인 여자가 나타났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인터뷰도 못 하는 판국에 그 여자가 나타났다는 말에 기자들의 눈이 돌아갔다.
“인터뷰 좀 해 주십시오!”
“이야기 좀 잠깐만.”
“강간당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들에게 피해자에 대한 배려나 걱정은 없었다. 오로지 단 하나 특종만이 목적이었다.
“한 말씀만 해 주세요!”
“어느 모텔에서 강간당했습니까?”
“강간당할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유소미는 마치 진짜인 것처럼 얼굴을 감추면서 계속 빠르게 걸었고 기자들은 오징어가 집어등을 따라가는 것처럼 우르르 그녀를 따라서 멀어져 갔다.
“끝내주네.”
노형진은 그걸 보고는 피식 웃고는 천천히 안쪽으로 차를 몰았다. 몇몇 기자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당장 고소 당사자가 나타나서 그런지 흔해 빠진 국산차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노형진이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자 성차길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
“병원에서 나오셨습니까?”
노형진은 성차길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는 뒷목을 잡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 갔으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한가롭게 쓰러져 있을 수가 있습니까?”
벌써 여성 단체는 차민규를 때려죽이려고 하고 있었고 그의 인기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저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노 변호사님이 머리가 좋다는 소리는 들었거든요.”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아니라 유소미가 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쯤 유소미의 얼굴을 보고 황당해하고 있겠군.’
하지만 자신은 조용히 들어온 후니 그들이 황당해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일단 올라가죠.”
“네, 바로 올라가시죠.”
노형진이 위에 올라가자 차민규는 머리를 부여잡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 새끼야, 너 어쩌자고…….”
“형…….”
“형이라는 소리가 나와.”
성차길은 답답한 듯 한숨을 쉬었다.
“인사해라. 노형진 변호사님이시다. 이번에 새론에서 우리 사건을 담당해 주실 분이야.”
“난 이미 끝났어. 끝났다고…….”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네가 이러면 어쩔 건데? 너만 끝인 줄 알아? 우리도 끝이야. 거기에다 속해 있는 애들은? 그리고 연습생들은? 같이 죽자는 거야.”
텔레비전에서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패닉에 빠진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 일단 두 분 다 진정하시고.”
노형진은 그들을 진정시키면서 자리에 앉았다.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무슨 이야기요. 난 다 끝났는데……. 이제 망했어요…….”
“그건 일단 해 봐야지.”
“해 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이제 끝났다고요! 끝! 모르겠어요!”
노형진은 그런 차민규를 한심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이거 좋지 않아.’
상대방과 싸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돈? 아니면 능력 있는 변호사?
아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결심이다.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기운이 빠져 있으면 도와줄 수가 없다. 당장 어떤 정보도 안 줄 텐데 어떻게 소송하고 어떻게 싸운단 말인가?
“다 끝났다고요. 흑흑.”
고개를 푹 숙이고 질질 짜는 차민규를 보던 노형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나서 그의 뒤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갑자기 그의 뒤통수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퍽.
엉겁결에 맞던 차민규는 그 공격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자 발끈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짓입니까!”
“반항은 하시네요? 가만히 있기에 그냥 호구인 줄 알았더니.”
“뭐라고요!”
“안 그래요? 진짜 꽃뱀에게 물렸으면 저항해야지, ‘나는 호구예요. 나는 끝났어요.’ 하면서 죽어 가는 게 사람입니까? 그건 시체죠.”
“이익!”
“그리고 시체는 법적으로 아무런 권리도 없죠. 그러니까 이 사건은 할 이유도 없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법조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그냥 호구로 살다 죽겠다는데 그냥 호구로 죽으라고 해요.”
노형진은 계속 뒤통수를 치면서 말했고 그걸 보고 성차길은 안절부절 못했다. 결국 차민규는 벌떡 일어나서 노형진의 멱살을 잡았다.
“뭐하는 짓거리야!”
“알면서 왜 물어보십니까? 그나저나 왜 나한테는 덤비면서 다른 사람한테는 안 덤벼요? 내가 한 건 당신 뒤통수 몇 대 친 것뿐인데 정작 나한테는 덤비고 당신 인생을 망치겠다고 덤비는 사람한테는 징징거립니까? 당신, 바보 아니에요?”
“끄응…….”
차민규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최후까지 믿고 싶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배신했다.
“물론 배신감에 완전히 침몰한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걸 자기 탓을 해요? 바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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