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6)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노형진은 경찰서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는 한숨을 돌렸다.
“커어어.”
손채림은 여전히 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변호사님도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하하.”
“그나저나 진짜 재수 없는 경우가 있긴 하군요.”
“그렇게나 말입니다.”
노형진의 핸드폰마저 배터리가 없고 그 흔한 공중전화는 보이지도 않는데 오밤중이라 사람은 지나가지도 않고 가게마저 모두 닫아 버린 상황인지라 경찰을 부를 수도 없었던 노형진은 결국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면서 그녀를 업고 다녀야 했다.
“뭐, 일단 신분은 확인되었고요. 가족분들한테도 연락했습니다. 지금 데리러 온답니다. 그리고 오해해서 미안하다네요.”
“하하하.”
아니나 다를까, 가족들 역시 그녀의 길치 증세가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가출도 못 하는 거냐?’
사이가 안 좋다고 듣긴 했는데 이래서는 가출했다가 그대로 실종될 것 같았다.
“그럼 먼저 가 보시겠습니까?”
“아니요…… 일단 가는 건 봐야지요.”
어찌 되었건 가족이 올 때까지는 지켜 줘야 한다.
“음냐…… 야…… 엄친아, 나…… 밥 사 줘, 밥아압.”
잠꼬대하는 손채림을 보면서 노형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알았다, 이 화상아. 에효…….”
그렇게 그날 밤의 작은 에피소드는 노형진에게 길치와의 대면이라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안겨 주고 끝났다.
첫 번째 사건 (1)
“제대 축하해!”
“역시 넌 괴물이야. 학교는 그렇다 치고 제대까지 속전속결?”
송정한 변호사는 기가 막혔다. 학업 기간이야 머리로 단축할 수 있다지만 복무 기간을 줄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하하.”
노형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이 잘해서 상을 받은 게 아니라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음모에 당한 것이니 말이다.
‘뭐, 덕분에 제대했으니 좋지. 세금이 아깝기는 하지만 내 세금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어쩔 거냐?”
“글쎄요. 생각보다 빨리 제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사무실을 내야겠지요.”
“아예 우리 쪽에 들어오지그래?”
새론은 제법 커다란 회사가 되었다. 대룡그룹에서 사건을 몰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새론으로 오라구요?”
“그래, 남상주 변호사도 여기로 왔어.”
“남 변호사님이 오셨다구요?”
“그래.”
그 말에 노형진은 깜짝 놀랐다. 남상주 변호사는 원래 자기 회사를 세우고 거기서 승승장구해야 한다. 그런데 새론으로 왔다고?
‘역사가 바뀌었다.’
명백하게 역사가 바뀐 것이다.
‘아니, 당연한 건가?’
서서히 흔들리고 있어야 할 대룡그룹은 다시 제자리를 되찾고 성화그룹과 전쟁 중이다. 이처럼 벌써 역사가 바뀌었으니 그의 삶 역시 바뀔 수밖에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자네랑 남 변호사라면 환상의 콤비가 될 거야.”
그 말에 형진이 미안한 듯 웃었다.
“전 개인 변호사 사무소를 오픈하려고요.”
“뭐! 개인 변호사 사무소?”
깜짝 놀라는 사람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좀 크다 하는 사건은 결국 로펌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야 좀 더 잘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즉, 개인 변호사는 그다지 크게 돈이 되는 사건은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니, 왜? 자네가 온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밀어줄 의사도 있네만.”
새론은 이제 제법 대형 로펌에 속한다. 따라서 그가 들어온다면 상당한 지원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새로운 스타일을 한번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새로운 스타일이라니?”
“친서민적 변호사 말입니다.”
“친서민적 변호사? 설마 무슨 인권 변호사를 꿈꾸는 건가?”
“그럴 리가요.”
형진이 봤을 때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극도로 경직되어 있고 갑을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 일단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데다가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바로 판검사가 되어 버리니 사회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변호사들도 마찬가지.
‘세상을 아는 변호사를 만들자.’
지금까지 변호사들은 세상을 몰랐다. 웃기게도 세상을 판단하고 지켜야 하는 변호사들의 대부분이 갑이라는 자신들의 위치에 서서 피고를 재단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건 검사의 일이지, 변호사의 일이 아니다.
사실 범죄자에 대해 그렇게 재단하는 것까진 그렇다고 치자. 강간범을 아무리 좋게 판단해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변호해 줄 수는 없으니까. 문제는 그 판단의 기준이 인성이나 전과가 아닌 돈이라는 것이다. 돈만 있다면 최고의 손님이고 돈이 없다면 최악의 손님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후불제 변호사를 계획한다는 거야?”
“후불도 되고 할부도 되고.”
“이런…….”
새론의 변호사들은 당황했다. 그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모든 변호사들은 갑이니까.
“하지만 주변에서 좋아하지 않을 텐데.”
“제가 언제 주변 눈치 봤습니까?”
“하긴…….”
새론과 연이 닿았던 사건의 경우, 자신들이었다면 그렇게 완벽하게 싸워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소송의 천국이라고 하죠.”
“그렇지.”
“그런데 왜 소송의 천국일까요?”
“응?”
그 말에 곰곰이 생각에 빠지는 사람들.
사람이 많아서? 아니다. 미국은 사람이 많은 만큼 변호사도 많다. 우리나라처럼 사법연수원에서만이 아닌, 모든 로스쿨에서 매년 쏟아져 나온다.
“그곳의 변호사들은 확실히 갑입니다. 고액 연봉자죠. 그건 우리와 똑같아요. 다른 건 단 하나. 정식으로 변호를 담당하게 되는 순간 그들은 철저하게 일합니다. 변호 계약과 동시에 의뢰인이 갑이 되고 자신은 을이 되는 거죠.”
“갑과…… 을이라…….”
“그렇기 때문에 소송이 많아집니다. 어떤 사건이든 이기려고 노력하니까. 하지만 한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갑이죠. 심지어 자신이 해야 하는 증거를 찾는 절차까지 의뢰인이 하는 경우도 있죠.”
“끄응…….”
그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변호사들.
맞는 말이다. 변호를 위해서는 증거를 찾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 증거가 될 만한 걸 찾기 위해서 뛰는 건 극도로 드물고 그저 말장난만 할 뿐이다. 말장난을 하는 변호사와 증거를 들이미는 변호사. 둘 중 누가 이길지는 뻔한 일.
‘그리고 얼마 후면 로스쿨이 생기니까.’
이들은 모르지만 얼마 후면 로스쿨이 생긴다. 그리고 로스쿨이 생기고 엄청난 수의 변호사들이 나오자, 망하는 변호사가 속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호사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의뢰인이 갑이 되었는데 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고압적인 태도로 의뢰인을 겁박하는데 누가 오겠는가? 그 덕분에 변호사 사무실비는커녕 한 달에 5만 원인 변호사회의 회비도 못 내는 변호사가 수두룩해졌다.
‘그리고 판사 제도도 바뀌지.’
기존의 사법연수원에서는 성적순으로 잘라서 판사와 변호사, 검사를 고용했지만 나중에는 3년 이상 변호사로 일한 사람만 고용하게 된다.
‘우리가 그 시장을 먹는다면.’
친서민 정책으로 이미지를 좋게 해 놓으면 로스쿨 변호사가 탄생하는 동시에 급속도로 사세를 확장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출신 판사와 검사를 가진 거대 변호사 기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게임 끝이지, 뭐.’
물론 이건 아직 비밀이지만.
“흠.”
고민하던 송정한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자네 말대로 우리 규모에서 해 볼 수 있는 실험은 아니군.”
“네, 그러니까 제가 해 볼 생각입니다. 찾아가는 변호사.”
“찾아가는 변호사라…….”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어쩌면…….’
송정한도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곤 있었다. 그렇지만 뭔가 해 보려고 생각하진 못했다.
‘역시 젊다는 건가?’
이제 노형진의 나이 스물한 살. 보통 변호사들이 되는 나이는 서른 살 이상이다. 무려 10년 차.
“좋아, 내가 투자하지.”
“투자라니요?”
“변호사 사무실은 얻어야 하지 않나? 내 좋은 곳은 아니지만 투자하지.”
“아닙니다. 투자라니요. 부담스럽습니다.”
이건 확실히 미래의 큰 거 한 방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 당장 크게 돈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아니야. 확실히 자네 말이 맞아. 어쩌면 미래가 그렇게 바뀔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우리 쪽도 어느 정도는 체질 개선을 해 놔야 해. 그러니 자네를 보고 배워야지.”
‘호오?’
그 말에 노형진은 살짝 놀랐다. 아직 그 일이 벌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남았는데 벌써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슬슬 일각에서 로스쿨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말이다.
“일종의 외주비라고 생각하게. 자네가 적응하고 성공하면 우리는 그대로 따라갈 테니까.”
“하지만…….”
“단! 조건이 있네.”
“조건?”
“가끔 우리 새끼 변호사들을 보낼 테니 좀 가르쳐 줘.”
“제 주제에 뭘…….”
“하하, 자네가 지금 민시아 변호사가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제가 뭘요?”
“검사들이 아주 치를 떤다네. ‘하얀 마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니까.”
“송 변호사님!”
“내가 틀린 말 했나?”
송 변호사가 봤을 때 제대로 싸우는 법을 배운 변호사는 무척이나 드물다. 그런데 민 변호사는 그걸 배워 왔다. 그런 변호사의 가치는 1~2억 정도로 매길 수 없다.
‘어차피 우리가 얻어 준다고 해도 월세 말고는 나가는 게 없으니까.’
보증금이야 자신들의 이름으로 얻어서 사용권만 준다면 돌아올 돈이고, 단돈 100만 원 정도로 새끼 변호사를 쓸 만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싸게 먹히는 것이다.
막말로 새끼 변호사가 제대로 변호사 노릇을 하려면 2년은 굴러야 하는데, 아무리 민시아가 노력했다지만 단 두 개의 사건을 도와주고 법에 대한 통찰력을 얻어 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야.”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 조건이라면 자신에게도 나쁘지 않다.
“그럼 우리는 동업자네.”
“잘 부탁드립니다, 송 변호사님.”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동업자 양반. 하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넙죽 명함을 내미는 남자. 웃음을 보이고 있지만 비굴하지는 않다. 그의 손에 들린 하얀 명함을 형사와 피고 두 사람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변호사라고 하면 보통 고압적으로 막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게 보통이다. 아니면 근엄하게 폼을 잡고 있든가.
“진짜 변호사 맞습니까?”
“네, 여기 자격증도 있습니다.”
“근데 왜…….”
지금까지 경찰서에 와서 영업 뛰는 변호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은 상당히 충격받았다. 변호사란 접대받는 직업이지, 이렇게 와서 발로 뛰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힘이 되고자 직접 뛰고 있습니다.”
그걸 엉겹결에 받아 드는 조사원.
“혹시나 변호사가 필요하면 바로 연락 주십시오.”
“그…… 그럽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이면서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숙이는 변호사.
‘아, 힘들다.’
아마 변호사들이 알면 변호사 망신 다 시킨다고 길길이 날뛸 게 뻔하다. 하지만.
‘변호사는 그냥 서비스직이라는 거?’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갑질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사법연수원? 자기 공부를 하는데 국가에서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장학금도 아니고 월급이라니. 변호사? 그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그만큼 일해야 하는 법이다.
“안녕하세요, 노형진 변호사입니다.”
그렇게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경기도권의 경찰서들을 찾아다니면서 인사하자, 그는 얼마 안 가 경찰서 내부에서도 유명 인사가 되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윽박지르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면서 취조해 왔는데 변호사가 알짱거리니 그럴 수가 없게 된 것.
“그나저나 생각보다 사건이 안 들어오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막 변호사 사무실을 오픈한 사람이고 직원 하나 없는데 누가 믿고 사람을 쓰겠는가?
“직원 하나를 써야 하나?”
최소한 서류 작업을 해 줄 사람 한 명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따르릉.
“응?”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노형진의 눈이 번뜩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울린 건 개인용이 아닌 업무용, 즉 자신이 뿌린 명함에 있는 번호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노형진 변호사 사무실의 노형진 변호사입니다.”
“변호사님? 변호사님예, 진짜로 도와주십니꺼?”
“네?”
“변호사님, 우리 아들내미 좀 도와주이소. 제발예.”
다급한 아줌마의 목소리.
“이 번호는 어찌 아신 건지?”
“바닥에 떨어진 명함을 보고 전화했심더. 여기 보니까 뭐든 도와주신다고 되어 있던데예.”
“그럼요.”
“지발 제 아들내미 좀 도와주시오.”
“알겠습니다. 수임료는…….”
“수……임료…….”
수임료라는 말에 말을 못 하는 상대방. 그럴 것이다. 보통 변호사의 수임료는 300만 원. 아마도 주변에 있는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듣고 왔을 것이다.
“어디시죠?”
“여기예? 서울인데예.”
“그럼 차비 포함 11만 원입니다.”
“11만 원이라꼬예?”
“경찰서에 계신 거 보니 조사 중이신 것 같은데 저희 변호사 사무실에는 응급 법률 지원 서비스를 합니다. 기본적인 비용 10만 원에 차비로 서울권은 1만 원, 경기도권은 2만 원이 더 나갑니다. 장기 계약은 아니고 조사 시 동석 서비스나 현장 변호사 상담 등만 지원합니다. 아, 그리고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시면 거기에 포함시켜 드립니다.”
“그 정도면…… 제발 부탁합니데이.”
“바로 가겠습니다.”
드디어 첫 번째 사건이 들어오자, 노형진은 바로 차도 앞으로 나가 손을 들었다.
“택시! 가까운 전철역으로 갑시다!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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