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8)
그런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다. 오죽하면 인터넷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를 도와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요즘 여자들이 진짜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끄응…….”
얼마 전에는 어떤 여자가 물에 빠지자 구조해 주고 심폐 소생술에 인공호흡까지 해 준 남자가 여자에게 고소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성추행을 했다면서 말이다. 문제는 그런 사건이 의외로 많다는 것. 그 덕분에 여자가 물에 빠지면 구조하기 전에 신체 접촉 허가서라도 받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그래서, 해 보겠다?”
“네.”
“뭐, 우리야 좋지. 안 그래도 투자 조건이 그거니까.”
실전적인 스킬의 전수. 노형진은 조사 지원을 받아서 좋고 그들은 실전적 스킬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그럼 여자로 보내 줄까?”
“아뇨. 남자로.”
“뭐? 하지만 상대방은 여자인데?”
“그래서 남자입니다.”
척 봐도 좋게 말해 봐야 증언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럴 때는 부드럽게 생긴 여자보다는 남자가 좋지요. 가능하면 살벌하게 생긴 애로 부탁해요.”
“살벌? 하하, 딱 한 명 있지. 기다려, 한 명 보내 줄 테니.”
‘이게 변호사야, 산적이야?’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온 남자를 보고 노형진은 입을 쩍 벌렸다.
“안녕하십니까! 무태식이라고 합니다!”
당당하게 자기를 소개하는 건 좋은데 누가 봐도 변호사보다는 범죄자에 가깝게 생겼다.
“반갑습니다. 노형진입니다. 이야기는 들으셨죠?”
“네! 기대 중입니다!”
무태식은 민시아와 동기다. 그런데 어느 순간 파견 근무를 하고 온 민시아의 법적 통찰력이 엄청 늘어나서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배웠다고 하니 자신도 배우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군대에 가서 안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차는 가지고 오셨습니까?”
“네! 기름 만땅입니다.”
“좋습니다. 일단 우리가 하는 건 추적이니까 절대로 걸리면 안 됩니다.”
“네!”
노형진은 바깥으로 났다. 예상대로 차는 흔해 빠져 국민차라 불릴 만한 차량이다. 딱히 기억에 남는 포인트도 없는 그저 그런 차량.
‘좋았어.’
미행은 원래 불법이지만 변호사란 의뢰인의 승리를 위해 싸우는 존재. 사소한 불법까지 다 신경 쓰면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자, 갑시다.”
강건마는 노가다를 하는 인간이다. 하긴, 어떤 회사에서 강간 2범을 사용하겠는가? 그래서 새벽 일찍 나가서 일하고 들어왔다. 그 때문에 노형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더 일찍 집에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노형진을 데리러 와야 하는 무태식은 아예 오밤중에 나와야 했다.
“피곤하네요.”
“그렇습니다.”
“이따가 저 녀석이 노가다 하러 가면 찜질방에 가서 한숨 잡시다.”
“그래도 됩니까?”
“어차피 그동안 저 녀석은 아무것도 못 하니까요.”
노가다 하러 들어가면 중간에 나오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일만 하다가 나온다. 그렇다고 노가다 현장에 자신들이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할 게 없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해서 찾을 수 있을까요?”
“기대해 봐야지요.”
일단 하는 짓거리를 봐서는 분명 어딘가에 그 강간 피해자와의 접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확실하게 준비했을 리가 없다.
“어?”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뽑혀 가는데 그는 아니었던 것이다.
‘드디어인가?’
드디어 그가 나가지 않는 날이 온 것이다.
사흘 동안 지켜본 결과, 그는 힘이 넘치는 20대라서 노가다를 가면 충분히 대접받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그의 동선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드디어 그가 일을 잡지 못한 것이다.
“움직입니다.”
“조용히 따라갑시다.”
완전히 비어 버린 대기소. 그는 그곳에서 한참 있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까요?”
“글쎄요……. 일단 피해자 주변으로 가기를 기도해 봅시다.”
저 녀석은 분명 피해자 주변으로 갈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입을 막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그는 그저 길바닥에서 허송세월하는 게 아닌가?
“뭐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집 안으로 들어간 게 다였다.
“뭐야?”
“끝입니까?”
누구를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낸 것이다.
‘설마…….’
피해자에게 가지 않았던 것일까?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피해자를 겁주러 갈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시간만 죽이다가 일찌감치 집에 들어가 버린 것이다.
“뭐지?”
“다시 나오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노형진은 무태식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침 일찍 나왔으니 피곤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좀 쉬었다가 다시 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그들은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기다려 봅시다. 일단 뭐가 있겠지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행동 패턴은 바뀐 게 없었다. 노가다가 잡히면 노가다를 뛰고 노가다가 잡히지 않으면 집에서 빈둥거린다.
‘뭔가 놓치고 있어……. 분명해.’
피해자에게 겁주지 않고 조용히 산다? 그건 힘들다. 지금 당장 그녀가 나타나면 그는 감옥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걸렸나? 그럴 리가 없어.’
매일같이 차를 바꿔 타고 있고 옷도 바꿔 입고 있다. 전문가라면 모를까, 저런 아무것도 모르는 강간마가 그걸 알아챌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자신들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
‘그 여자도 이제는 알 텐데.’
강간 전에야 강건마만 여자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했다곤 해도 얼굴을 봤으니 접점이 있다면 어디선가 이상행동을 보이는 여자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여자는 없었다.
‘도대체 뭐냐……. 뭘 놓친 거냐?’
분명 사건은 벌어졌다. 절대 자신이 착각하거나 문석규가 거짓말한 게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군단 말인가?
‘뭔가를 놓치고 있어……. 뭔가를.’
노형진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이번에는 작전을 바꿉시다.”
“네? 감시하지 않는 건가요?”
“아닙니다. 감시는 계속합니다. 하지만 전 저 녀석의 동선에 따라서 움직이겠습니다.”
그 말에 무태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날부터 그들의 행동은 바뀌었다. 그가 일을 구해서 나가지 못할 때는 전처럼 따라다녔지만 일을 구해서 나갈 때는 노형진은 그 자리에서 내려서 그의 일정에 맞게 그 길을 따라 움직였다.
‘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없어.’
경찰서에서도 빨리 좀 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증거도, 증인도 없는 상황이니 고소를 처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이 없으면…….’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집으로 걸어간다. 가다가 편의점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고 근처 만화방에 들러 만화책을 빌려서 집으로 간다. 그게 일상이다.
‘편의점? 편의점은 아니야.’
편의점 직원은 여자이기는 하지만 그를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계산만 할 뿐이다. 만화방? 그쪽도 아니다. 그쪽 직원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이전에 여자 직원이 있었는데 최근에 일을 그만뒀나 하는 생각에 물어봤지만 둘 다 여섯 달 이상 근무한 장기 근무자다.
‘그럼 누구란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와 접점이 없었다.
‘설마 아예 관심이 없는 건가?’
하지만 그건 치밀하게 준비하는 저 녀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있어……. 뭔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계속 생각에 잠기는 노형진. 그때였다, 스치고 지나가는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퍼뜩 깨운 건.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
아이들의 목소리. 그쪽으로 무심결에 고개를 돌린 노형진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이쪽에서 다가간 게 아니었어. 저쪽에서 시간에 맞춰서 온 거였어!’
단순히 이쪽에서 접근한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쪽에서 기다리면 그 여자는 그 시간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니,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려 아이들을 태우는 사람들. 그들은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어린이집 선생님.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보통 시간이 오전 8시 반에서 9시 사이. 강건마가 일을 놓치고 나와서 그곳에 도착하면 비슷한 시간이 된다.
‘어쩐지.’
접근하는 여자가 있는 게 아니라 여자가 그 시간에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곳에 잠깐 있었던 것만으로도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빠르십니다.”
무태식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까지 생각할 줄이야.
“우리가 실수한 겁니다. 여자한테 접근할 거라 생각한 거죠. 요즘은 여자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중요한 건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이지, 대화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니까.
“근데 증언하려고 할까요?”
“모르죠.”
가능성은 두 가지다.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의 상황이 궁금하지만 그쪽 역시 사건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모를 수 있는 것. 다른 하나는 아예 관심도 없는 것.
“어느 쪽이든 증언을 시켜야 합니다.”
노형진은 멀어지는 노란색 어린이집 버스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착할 수만은 없다 (1)
어린이집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버스에 어린이집 전화번호와 이름이 붙어 있으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선생님인지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침에 얼굴을 봤으니까. 문제는 그녀가 어떻게 나오느냐는 것.
“그나저나 우리 김 선생이 무슨 잘못이라도?”
원장은 노형진과 무태식의 눈치를 봤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되는 변호사가 선생님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내심 꺼림칙한 모양이다.
“아, 잘못하신 건 아닙니다. 그냥 도움을 청할 게 있어서요.”
“도움?”
“법적인 거라 말씀드리기 좀 그러네요.”
“아, 네…….”
원장은 노형진의 부탁을 잘 들어줬다. 하긴, 그게 변호사의 위력이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 김 선생, 이분들이 뵙자고 하시네.”
“네? 누구신데요?”
“글쎄, 나도 모르겠네. 법적인 문제라는데?”
“법적인 문제?”
뭔가 꺼림칙한 모양이다. 하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적인 문제라고 하면 거북해하니까.
“일단 우리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예민한 부분이 있으니 원장님은 자리를 좀 비워 주셨으면 하는데요.”
“네? 아, 네.”
슬쩍 바깥으로 나가는 원장. 그걸 본 노형진은 그 선생님을 바라봤다.
“성함이?”
“제 이름도 모르고 오신 거예요?”
“이름은 모르지만 어떤 사건인지는 압니다.”
“어떤 사건?”
“아이스크림 남자라고 하면 아실까요?”
그 말에 여자의 눈이 확 커지면서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노형진은 확신했다, 이 여자가 맞다고.
“지난번에 ○○동에 가셨죠?”
“아…… 아뇨…….”
“확실하십니까? 한번 피해자분을 데리고 올까요?”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는 여자.
“솔직히 말씀드리죠. 지난번 사건 때 도와주신 남자분이 폭행으로 잡혀가셨습니다.”
“폭행?”
“강간범이 강간하려는 거 막으려고 그 녀석을 때렸는데 그 녀석이 폭행으로 고소했습니다.”
“…….”
그 말에 입을 다무는 여자. 그녀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조건 뛰기만 했다.
“증언 좀 해 주십시오. 제 의뢰인이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당신을 구해 주셨는데 이런 꼴을 당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저 와서 몇 마디 진술만 하면 된다.
“힘드시면 이 근처 다른 경찰서에서 진술하셔도 됩니다. 제가 도와 드리죠.”
“하지만 직장이…….”
“퇴근 시간 이후에도 가능하십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증언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의뢰인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그다음에 들은 말은 상상 이상으로 어이없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
“전…… 지금도 두렵습니다. 그날 밤만 생각하면 잠도 못 자구요. 그 녀석이 아침마다 그곳에서 날 뚫어져라 보는 걸 아는데 어떻게 증언을 합니까……. 죄송합니다.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우리 의뢰인의 인생은 끝장 납니다. 모르시겠지만 그분은 태권도 국가 대표입니다. 폭행으로 잡혀갈 경우, 국가 대표 자격을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격투기 선수이기 때문에 가중처벌까지 받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가 한 번만, 한 번만 증언해 주면 된다. 수십 번도 아니고 단 한 번만.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전 생각이 없으니 찾아오지 말아 주세요.”
“김화란 씨!”
“절 찾지 마세요! 증언하지 않을 테니까요.”
표독스럽게 외치고 나가는 그녀를 본 노형진은 어이없었다.
“헐?”
“에효…… 거봐요. 우리도 여기까지 왔다가 막혔다니까요.”
비슷한 사건이 들어왔을 때 무태식, 아니 새론에서 어찌어찌 여자를 찾는 데에 성공했다. 다행히 근처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증언을 거부했고 결국 남자는 처벌받았다.
“이래서는 우리도 방법이 없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