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81)
“후우.”
그 말에 태진만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놈의 인권 타령. 아주 지겹습니다.”
노형진은 그 말에 왠지 입안이 씁쓸해졌다.
‘최악이로군.’
이런 식으로 하면 사람들은 점점 인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점점 사회는 배려나 양보보다는 투쟁과 욕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해결하려고 온 거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저들을 퇴거시키려고 해도 갈 생각을 안 하는데.”
오지 말라고 말도 해 보고 읍소도 해 보고 화도 내 봤다. 심지어 병원에 이야기도 해 봤다. 하지만 먹히는 게 없었다. 그들은 가해자의 인권을 찾겠다며 끊임없이 찾아왔고 병원에서 그들에게 오지 말라고 하자 인권 탄압하는 병원이라고 언론에 제보하겠다면서 거품을 물었다. 아무리 병원이라고 해도 그런 걸로 언론에 나가는 건 좋을 게 없기 때문에 결국 방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있지요.”
“방법은 있다고요?”
“네, 일단은 병원을 옮기는 겁니다.”
“병원을 옮겨요?”
“네.”
“하지만 알아서 찾아오던데.”
“그건 경찰이 문제입니다.”
경찰은 이런 사건이 생기면 기본적으로 가해자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면서 피해자의 주소나 전화번호, 입원한 병원 등을 가해자에게 알려 준다.
“하지만 병원을 옮기고 난 후에 알려 주지 않으면 저들로서는 찾을 방법이 없지요. 일단 급한 상황은 넘었으니 병원을 옮기는 것은 문제가 없지요?”
“그거야 그렇지만…….”
태진만은 불만으로 가득한 얼굴로 시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꼭 우리가 잘못해서 도망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는 말도 있지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네, 저희도 이번 일을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권은 모두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저쪽은 그걸 이상하게 받아들여서 도리어 인권 운동가들을 욕먹게 하고 있으니까요.”
“끄응…….”
“그래서 저희들도 나름 작전을 짜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단 피해자분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저희가 정식으로 수임한 것도 아닌데…….”
“일단 이 사건은 정식으로 수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가 싸우는 건 가해자가 아니라 저쪽 정아진 씨를 비롯한 잘못된 인권 운동가들이니까요.”
정식으로 수임한다면 좋지만 솔직히 이건 저들만 잘라 내면 그다지 문제가 될 만한 건 없는 사건이다. 워낙 확실한 증거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후우,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옮기란 말입니까? 저렇게 병원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요.”
“저들은 대부분 자기만족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죠?”
“자기만족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특정한 경우에 보통 발을 빼죠.”
“어떤 경우에요?”
“자기한테 도움이 안 되는 경우요. 그러니까 금방 끝날 겁니다.”
* * *
“갔습니다.”
텅 비어 버린 병원의 정원을 보면서 태진만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갔네요.”
“그들은 사명감이 아니라 자기만족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요.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밤샘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지요. 설사 사명감이 있다고 해도 이런 밤까지 버티는 경우는 드물고요.”
노형진은 태진만에게 밤까지만 기다리자고 했고 실제로 해가 떨어지고 9시쯤 되자 그렇게 북적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집으로 갔다.
“하지만 그 정아진인가 뭔가 하는 여자는요?”
태진만이 봤을 때 그 여자는 사명감 정도가 아니라 거의 집착 수준이었는데 순순히 갔다는 게 신기했다.
“그 여자는 보니까 사흘에 한 번씩 집에 가더군요. 그리고 오늘이 사흘째입니다.”
“네? 사흘이라고요? 그걸 어떻게 압니까?”
자신이 아무리 동생을 스물네 시간 병간호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냥 사진을 봤습니다.”
“사진?”
“네, 사흘에 한 번씩 옷이 바뀌더군요.”
“헐…….”
“어찌 되었건 그들은 지금 자리에 없으니 지금 바로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노형진은 바로 전화기를 들었고 바로 129를 불렀다. 129는 사설 구급차로 돈을 받고 환자를 옮기는 역할을 한다. 노형진은 이미 그쪽에 미리 이야기해 놨기 때문에 그들은 늦은 시간까지 주변에서 몰래 대기하고 있었고 전화가 오자마자 바로 나타났다.
“일단은 예정된 병원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태진만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동생 내외와 조카들을 데리러 올라갔고 노형진은 그가 올라간 방향을 보다가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일단 대피는 시켰는데 어쩔 생각인가? 그 여자를 설득하는 건 어려운 일일세.”
“설득요? 왜 설득합니까?”
“뭐라고?”
처음에 이쪽으로 올 때는 정아진에게 설득 작업을 하러 온줄 알았다. 그런데 설득을 안 한다니?
“전에 회의에도 나온 결론 아닙니까? 설득할 여자가 아니라고.”
“그럼 어쩌려고?”
“보아하니 인생에 대해서 책에서만 공부한 것 같으니 제대로 알려 줘야지요.”
“뭘?”
“의리는 없다는 거요.”
“엥?”
뜬금없는 노형진의 의리 타령에 서승진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7장. 의리는 없다>
“반갑습니다. 노형진입니다. 피해자 측 변호사이지요.”
노형진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노형진을 보면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자고 해서 온 건데 이게 뭡니까?”
어찌어찌 연락이 와서 나온 사람들은 노형진을 보고 화를 냈다. 한두 명도 아닌 수십 명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한두 명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이 나온다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들 툴툴거렸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들의 불만을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싫으면 가시면 됩니다.”
“…….”
그 말과 동시에 조용해진 사람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형진이 이들을 부른 것은 이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서로를 모르시겠지요?”
“그거야…… 모르죠.”
“알면 우리가 싫어하겠습니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알지 못하니 당연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성별도, 나이도 다 틀린 사람들.
“전혀 다르지만 여러분들은 한 사람을 아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
“네.”
“어떤 공통점요?”
“정아진이라는 이름을 아신다는 거죠.”
그 말에 흠칫하는 사람들. 그 말뜻은 그들 모두가 전과자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크흠…… 듣기 좋은 이름은 아니네요.”
“네?”
노형진이 정아진의 이름을 말하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얼굴이 좋지 않았다.
“보아하니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전과자인 모양인데. 솔직히 반가운 사람은 아닙니다.”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정아진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에는 고마움이나 반가움보다는 짜증이 서려 있었다.
‘이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인데?’
정아진이 인권 운동을 하면서 도와준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생각은 했지, 그들이 정아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들의 얼굴은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 여자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심지어 여자 죄수조차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왜 그렇십니까?”
“뭐, 우리가 죄수이고 범죄자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벌을 받은 것도 맞죠. 그런데 그 여자 때문에 괜히 욕만 먹었어요.”
“욕만 먹었다?”
“네, 교도소도 위계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그런 걸 전혀 인정하지 않았거든요.”
정아진은 인권 운동을 한답시고 접근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교도소 생활이 좀 편해질 거라 생각해서 좋아했다. 사건을 진행하는데 그녀는 집요하게 피해자를 괴롭혀서 합의서도 받아 왔기 때문에 자신들도 처음에는 좋아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였다.
“도와주는 건 좋은데 우리를 너무 무시한단 말입니다.”
“무시오?”
“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정아진은 마치 자신이 상위 인간으로서 너희들에게 은총을 내린다는 식으로 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공평하게 하면 좋은데 특정 몇몇에게만 해 준다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골 때리는데요.”
듣고 있던 여자 한 명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 여자는 교도소에 들어가 본 적도 없을 거예요.”
“맞아, 맞아.”
그 여자의 말에 이를 박박 가는 사람들. 노형진은 그들의 행동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네.’
그들은 고마움 같은 것이 아닌 마치 동일한 피해자들이 보이는 동질감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게 문제가 된 건가요?”
“된 거죠……. 하아.”
가장 먼저 말을 꺼낸 남자는 힘겹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애초에 말입니다, 교도소 내부에서 나름의 규칙이 있어요.”
교도소란 공간에는 단순히 간수와 죄수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죄수들 사이에서도 서열이 있고 또 복잡한 권력 관계도 있다. 현대에 와서는 간수는 사실상 거의 인권 침해를 하지 못한다. 그런데 죄수는 아니다.
“문제는 그년이 그걸 자꾸 건드린다는 거예요.”
“건드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요. 똑같이 감방에 있고 똑같이 생활하는데 누구는 인권 운동가라는 년이 붙어서 지켜 주고 누구는 그런 거 없이 바닥에서 박박 기어야 한다면 다른 죄수들의 배알이 안 꼬이겠습니까?”
그게 문제다. 일반적으로 그런 곳에 있는 서열은 얼마나 강력한 범죄를 저지르고 왔느냐로 정해진다. 제일 강한 놈은 살인이고 그다음 놈은 폭행 같은 것이다. 즉, 주먹을 얼마나 잘 쓰냐가 서열을 정한다는 것이다.
“그런 새끼들이 뭐 이야기를 들어 줄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정아진이 특정 몇 명을 위해서만 일을 하니 서열이 높은 장기수들은 배알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무슨 애도 아니고.”
인권 운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함께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아진의 행동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상대방을 자신이 갱생시켜서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괴상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자신이 무슨 구원자인 것처럼 상대방을 깔보는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합의서를 가지고 온 건 좋았지요. 그런데 공짜도 아니면 그렇게 온갖 티를 다 다니.”
“잠깐, 잠깐! 공짜가 아니라고요?”
노형진은 그 말에 갸웃했다. 물론 어느 정도 합의금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건 당연히 줘야 하는 돈이다. 이 경우에는 그 합의금이 터무니없이 적으니까 문제지만.
“합의금 말씀하시는 건가요?”
“합의금이면 우리가 억울하지도 않지요.”
“네? 합의금 말고 다른 돈을 요구한단 말입니까?”
“자기네 인권 운동 후원금을 달라고 하더군요.”
‘잡았다.’
노형진은 그 순간 눈을 번쩍 떴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정보가 나온 것이다.
“그 말씀을 좀 해 주시겠어요?”
“해 주고 자시고를 떠나서 뭐 뻔한 거 아닙니까?”
정아진은 도와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명목으로는 인권 발전을 위한 후원금.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엄청나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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