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594)
>3장. 양보도 때로는 승리다>
“아니, 시골 인심이 왜 이렇게 각박해”
“거참, 몇 푼이나 한다고.”
사건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충격적 사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닌 사건인 것이다. 가령 학교에서 가해자들에게 왕따는 놀이지만 당하는 사람은 자살에까지 몰린다. 그런 걸 장난삼아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고 하는데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돈 주면 될 거 아냐 주면!”
“별 그지 같은 게.”
가득한 사람들을 보면서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이 안 통하는군요.”
손예은도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통할 리가 있겠습니까?”
강남 짠돌이 산악회 사람들은 반성이라는 걸 하지 않았다.
“거참 포도 몇 송이 따 갔다고 지랄하기는. 얼마면 돼? 1만 원? 2만 원?”
“이봐요, 포도 몇 송이가 아니잖습니까? 지금 당신들이 들어가서 포도나무 다 망친 거 모릅니까?”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건 저들이 단순히 포도 몇 송이 따간 게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저들이 그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포도만 딴 게 아니라 포도나무를 다 뜯어냈다는 것이다. 포도나무는 절대 튼튼한 나무가 아니다. 포도나무는 덩굴과의 식물이다. 그래서 나무 자체는 약하지만 질기다. 그래서 포도를 딸 때는 절대로 당기는 게 아니라 전지가위 같은 것으로 끊어 내야 한다. 하지만 저들이 전지가위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 힘으로 잡아당겼고 덩굴나무들은 무척이나 질길 편이라 가지들이 거기에 휘말려서 후두둑 떨어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랄 거 아냐!”
“시간이 지나면 자라겠죠? 그런데 그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압니까?”
일반적으로 포도나무의 수명은 15년을 잡는다. 물론 나무 자체는 더 오래 살 수 있다. 하지만 과일은 상품이고 최상의 품질의 포도를 수확할 수 있는 것은 5년에서 10년이다.
“그건 7년이나 키운 나무라고요!”
그걸 다시 동일하게 키우려면 못해도 3년은 더 걸린다. 그동안 그 나무에서 따는 포도는 극도로 적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게 벌써 수십 그루다.
“거참,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돈 주면 될 거 아냐? 한 10만 원이면 돼?”
“아휴, 회장님. 무슨 말도 안 되는 포도 몇 송이 가지고. 저런 비렁뱅이 새끼들이 돈독이 올라서 그럽니다.”
옆에 있던 사람은 회장인 구만식의 편을 들어 주면서 딸랑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농부들은 발끈했다.
“뭐? 비렁뱅이!”
“그럼 비렁뱅이가 아니고 뭐야? 포도 몇 송이 딴 거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 돈 뜯어내려고 하는 거 아냐!”
산악회 사람들은 완전히 적반하장식으로 나왔다. 노형진이 발끈하려는 찰나, 한 남자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 분 다 그만하세요. 일단은 우리가 잘못한 건 맞지 않습니까?”
그들 팀에서 가장 끝에 있는 남자였다.
‘그나마 상식적인 사람인 건가?’
노형진은 무심결에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한 건 이쪽이 아니라 그쪽이었다.
“이봐, 차규헌이. 네가 뭘 안다고 지랄이야?”
“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냐고. 네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저기,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죠.”
“거참, 세상 진짜 모르네. 딱 보면 몰라? 저 비렁뱅이 새끼들이 우리가 실수한 거 가지고 돈독이 올라서 돈 뜯어내려고 하는 거 아냐?”
말을 꺼낸 남자를 마구 공격하는 회장, 구식만. 노형진은 그걸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보통 사람은 외부의 적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말을 험하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차규헌이라 불리는 저 남자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뭘까?
“넌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면 입 닥치고 있어.”
구식만은 차규헌을 마구 공격했고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뭔가 있어.’
노형진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차규헌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만 현장에 없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날도…….’
그날 사람들의 중언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산악회 사람들은 대략 백 명 선. 그중에서 회장을 비롯한 이십여 명 정도가 그물망으로 된 벽을 부수고 들어갔다고 했다.
‘충성파라는 건가?’
아무리 산악회라고 해도 벽을 함께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함께 벽을 넘었다는 것은 회장을 믿고 따르는 소위 말하는 충성파일 가능성이 높다.
‘흠…….’
노형진이 조용히 바라보는 사이, 조정관은 그들을 말리면서 적당하게 합의시키려고 했다. 물론 노형진의 입장에서는 어림없는 소리지만.
“자자, 진정하시고. 그냥 한 40만 원 선에서 합의하세요.”
“조정관님? 지금 저희가 입은 손해는 심각합니다.”
“어차피 가격은 그거 정도밖에 안 되잖습니까?”
포도는 그다지 비싼 과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쉽게 터지는 성질 때문에 저들이 많이 따 간 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심각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40만 원 정도에서 합의하라는 거 아닙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다 보이는데요?”
“못합니다. 못해도 500만 원은 주셔야 합니다.”
“아니, 장난해?”
“와, 이 거지 새끼들.”
결국 노형진에게 맡겨 두고 있던 농부 한 명은 발끈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지? 지금 거지라고 했어?”
“너희들이 농사에 대해서 뭘 알아!”
“죽어라 농사한 게 너희들이 훔치라고 한 건 줄 알아?”
“진정하세요. 진정.”
노형진은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이미 늦었다.
“합의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법대로 해, 이 새끼들아!”
결국 농부들은 참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가 버렸고 노형진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 * *
“도대체 왜 그런 겁니까?”
“이보게, 노 변호사. 우리를 그렇게 무시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으란 말인가?”
“법대로 하라고 해!”
“법대로 하면 불리합니다.”
“불리? 그게 말이나 돼! 우리가 피해자라고!”
발끈하는 농부들. 그들은 현실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 리 없었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 말인가?”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가해자 위주의 국가입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가해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처럼 징벌적 배상도 없고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그렇게 했다고 배상금이 늘어나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판사가 마음대로 결정하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판사들은 가진 사람들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들의 이름이 뭡니까?”
“뭐?”
노형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 노형진이 그들의 이름을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노형진은 그들이 대답하지 않자 다시 한 번 물어봤다.
“저들의 이름이 뭡니까?”
“강남 짠돌이 산악회.”
“그렇지요. 그럼 그 강남이 제비가 날아간다는 그 강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 말에 농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리 없다. 저들은 제비가 아니니까.
“그럼 판사가 누구의 편을 들어 줄 것 같습니까?”
“끄응…….”
이미 결정은 나 있다.
“설사 판사가 공정하게 판결한다고 해도 여러분들의 피해를 복구할 정도의 판결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포도나무가 망가질 걸 복구할 수가 없으니 어느 정도 배상은 받겠지요. 하지만 그게 여러분의 성에 찰까요? 아니, 애초에 판사는 농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합니다. 나무의 생장이나 상품성에 대해서 전혀 모른단 말입니다.”
“그럼?”
“솔직히 200만 원만 나와도 많이 나오는 겁니다.”
“하아.”
물론 당장 200만 원은 손해는 아니다. 하지만 나무가 망가지면서 내년과 내후년 그리고 3년 후까지 나무가 자라는 동안에 얻지 못할 것에 대한 보상으로 좀 작기는 하다.
“그래서 제가 합의로 끝내려고 한 겁니다.”
“하지만…….”
“네, 뭐 이해는 갑니다.”
저쪽에서 저런 식으로 나오는데 아무리 사람이 배알이 좋아도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리고 애초에 저 녀석들은 합의를 안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안 한다고?”
“네, 저런 타입들은 절대 안 합니다. 돈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돈이 없는 게 아니다?”
“네.”
노형진이 봤을 때 저런 사람들은 애초에 합의 의사가 없다. 저런 타입은 합의를 해서 상대방에게 배상을 해 주느니 차라리 끝까지 가서 변호사를 사고 싸워서 최대한 배상을 안 해 주려고 할 것이다.
‘저런 타입은 돈보다는 자존심이 더 중요하지.’
배상을 100만 원을 해 주느니 변호사 비용으로 수백만 원을 내고 그 대신 배상금을 50만 원을 깎는 게 저런 타입이다.
“그럼 이제 어쩌나? 그냥 판사들이 주는 대로 받아야 하나?”
“글쎄요…….”
물론 그래도 된다. 이건 딱히 돈이 되는 사건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슬쩍 손예은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죠?”
“아닙니다.”
노형진이 그녀를 본 건 그녀가 예뻐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여기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는 여기에 이번에 배운 것을 다른 농촌에 적용하려고 온 것이다.
‘그러니 그냥 물러날 수도 없고…….’
물론 자신이 생각해 낸 싸구려 임시 담장이면 많은 사람들이 접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심리적인 벽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안하무인인 놈들이 없는 건 아니지.’
특히 산악회니 부녀회니 이런 곳은 집단 심리 때문인지 이런 문제를 자주 일으킨다.
‘그렇다고 카메라를 다 달 수는 없고.’
CCTV는 비싸다 길과 접한 모든 곳을 감시할 수는 없다. 결국 사건 하나를 확실하게 해결해서 일종의 교훈으로 삼는 것이 최선.
“일단은 민사 쪽은 기다리죠.”
“기다리자고요?”
“네, 어차피 이건 민사로 가 봐야 얼마 안 나옵니다.”
“그럼 형사로 하시게요? 하지만 형사로 한다고 뭐가 바뀔까요?”
민사 판사조차 눈치를 본다. 아무리 불법침입으로 고발했다고 하지만 100% 집행유예가 나올 것이다.
“압력을 행사하시려고요? 그럼 벌금은 나올 텐데?”
“에이, 그럴 리가요. 그러면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죠.”
사건이 특수하고 다른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면 압력을 행사해서 이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다른 농촌에서도 써야 하는 방식이고 그건 자신의 압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소리이다.
“그러면 어쩌려고?”
“흠…….”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법원에서 떠나가는 회장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빙긋 웃었다.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생각?”
“네, 후후후.”
그렇게 멀어지는 산악회를 보면서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 * *
차규헌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보고 귀를 의심했다.
“어떻게 생각 없습니까?”
“그거야…….”
“없지는 않으시죠?”
“…….”
차규헌은 그들은 바라보았다. 듣기는 했다. 회장과 몇몇이 시골로 갔는데 거기서 문제를 일으켰다고.
“저런 성격의 사람이 여기를 그다지 잘 운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후우.”
차규헌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구식만이 그렇게 운영 잘하는 편은 아니죠.
“그러니까 이번에 손을 좀 쓰자는 거죠.”
“손을 좀 쓴다?”
“네.”
“그래서 좋은 게 뭔데요?”
“일단은 내쳐지지 않을 수 있지요.”
그 말에 차규헌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 침묵에는 수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모를 노형진이 아니다.
“아마도 그쪽에서는 차규헌 씨를 내치려고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
“그 나이에 백수 되고 싶지는 않으실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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