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
“뭐지?”
평소처럼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노형진은 순간적으로 어질해지는 느낌 때문에 탁자를 잡고 일어났다.
“아무것도 없는데?”
머릿속을 훅 치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 그건 뭔지 모를 우울하고 절망적인 느낌이었다.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지 집중이 안 될 정도였다.
“학생, 어디 가?”
“잠깐 쉬었다가 하려구요.”
독서실을 나와 옥상으로 올라간 그는 자판기에서 콜라를 하나 꺼내 쭉 들이켰다.
“후우, 무슨 느낌이었을까?”
아무리 노형진이라고 해도 한 번에 붙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많이 집중해서 하고 있었다.
“몸이 허한가?”
그럴지도 모른다. 요즘 무리한 경향이 있으니까.
“그래, 조금만 참자. 그러면 나아지겠지.”
멍하니 있던 그는 마지막 남은 콜라를 마셔 버리고는 쓰레기통을 향해서 공을 던지듯 캔으로 슛을 날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캔은 쓰레기통이 아닌 옆으로 떨어졌고 그걸 본 노형진은 다시 집어서 쓰레기통에 넣기 위해서 다가갔다.
“잘 좀 버리지.”
그는 그 옆에서 다른 캔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누가 자신과 비슷한 짓을 했다가 안 들어가자 그냥 가 버린 모양이었다.
“이것도 같이 넣어야겠다.”
무심결에 그 캔을 집어 드는 순간 노형진은 다시 어찔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 느낌은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소름 끼치는 듯한 느낌 자체는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뭔가가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억!”
너무나 갑작스러운 느낌에 그걸 떨어트리는 노형진.
“뭐지? 뭐야? 방금 뭐가 보인 거야?”
순간적으로 눈, 아니 머릿속으로 스치고 지나간 영상. 그 안에 보이는 낮선 사람들.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뭔가 있어 보이는 영상이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노형진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시 캔 쪽으로 다가갔다.
“잠깐…… 진정하고……. 그래, 헛것이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뭔 일이 벌어지든 다시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하던 그는 그 캔 콜라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치고 들어오는, 낯설지만 익숙한 장면.
“아, 짜증. 담탱이 때문에 이게 뭐야.”
“어쩌겠어. 공부해야지.”
“야, 토낄까?”
“담탱이가 전화해서 위치 확인한다잖아.”
“아, 미치겠네.”
한 손에 담배, 한 손에는 캔 콜라를 든 두 남학생의 대화.
“들어가자.”
“제길, 한 대만 더 빨고 싶은데.”
“나, 그게 마지막 한 개비였다.”
“썅.”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캔을 쓰레기통으로 휙 던졌다. 그게 날아가서 모서리를 맞고 튕기더니 바닥을 나뒹굴었다.
“으헉!”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방금 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그 영상이 뭔지 이해하지 못한 노형진은 캔을 잡은 채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해 못 하겠어……. 왜…….”
자신은 알지 못하는 모습이 보인단 말인가?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쓰레기통에 다시 캔 콜라를 넣고는 아래로 내려왔다.
“헛거일 거야.”
애써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노형진.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했다.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법.
자신의 자리에 놓여 있는 한 장의 표어. 그리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공부하는 한 남자. 그 남자는 심각한 얼굴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절망감과 다급함, 걱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우억!”
“뭐야?”
비명이 컸던 것일까? 그의 목소리에 모두가 그를 바라봤고 노형진은 뻘쭘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사과하고는 자신의 자리를 바라봤다. 분명 영상 속에 있던 그 자리였다.
‘내 자리…… 아니, 내 자리가 맞나?’
누군가가 썼던 자리다. 사실 이곳의 모든 자리는 누군가가 썼던 자리일 거다.
‘아까 그 남자는 누구지?’
그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심정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그만하자.’
왠지 느낌이 아니라고 할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후우.”
가방을 챙기고 바깥으로 나갈 때였다. 독서실을 관리하는 사람이 두 학생에게 뭐라고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몇 번을 말해. 거기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지?”
“니예.”
“내가 장난하는 것처럼 보여? 어른도 아니고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담배질이야!”
마구 훈계하는 사감을 얼핏 보던 노형진은 순간 움찔했다. 훈계받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 자신이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아까 그 사람들?’
옥상에서 콜라를 집었을 때 영상 속에서 봤던 그들이 분명하다. 심지어 그들의 교복에 붙어 있는 이름표까지 똑같았다.
‘도대체 왜…….’
문제는 자신이 그들을 처음 본다는 것이다. 학교도 다르고 학년도 다른 사람들이다. 자신과 부딪칠 이유가 없다.
“저기…….”
“아, 학생, 뭔가?”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어서 지나가려던 노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리인에게 물어봤다.
“제 자리요. 제가 쓰기 전에 누가 썼나요?”
“삼수생이 썼지.”
“삼수생?”
“연합대 의대에 간 사람이야. 진짜 독하게 공부하더니만 그렇게 가더라고. 혹시나 좋은 기운이 있지 않을까? 하하하.”
연합대 의대라면 한국의 톱클래스 의대다. 그 정도 가려면 진짜로 독하게 공부했다는 건데,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기, 혹시 그 사람이 반은 까까머리에, 뿔테안경을 쓰고 덩치는 좀 크지 않았나요?”
“아, 아는 사람인가? 맞아.”
그 말에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사이코메트리라니.”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찾아보던 노형진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이코메트리.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사물의 기억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사물에 남아 있는 과거의 기억이나 그 소지자가 가지고 있던 강력한 기억을 읽어 내는 능력. 물론 모든 초능력이 그렇듯이 상상 속의 기술일 뿐이지만.
‘이건 상상이 아니잖아.’
분명 보였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보였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자신이 다시 살아난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초능력이라니.
‘전생에 있었던 능력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있었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가면서 모를 리가 없다. 분명 이번 삶에서 새로이 생긴 것이다.
‘뭔가 잘못된 건가? 아니, 잘되었다고 해야 하나?’
생각지도 못한 초능력이라니, 그저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재수 없으면 끌려가서 고문당하거나 실험당할지도 모른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혹시 우연일까?”
우연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있던 예쁘게 생긴 지갑을 바라봤다. 누나가 두고 나간 지갑.
“설마…….”
‘설마’ 하는 생각으로 지갑을 집어 든 노형진. 그는 정신을 집중했지만 이상하게 보이는 게 없었다.
“착각인가?”
처음에는 착각인가 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그 안에 보이는 것은 일종의 숫자들뿐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흐릿하게 보이던 숫자들은 정신을 집중할수록 선명하게 보였다.
‘숫자?’
아까 영상과 다르게 숫자가 보이자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그 숫자 중 하나를 잡아챈다는 느낌으로 집중했다. 그러자 그 순간 사방이 바뀌면서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으억.”
근데 그 장면이라는 게 당황할 만했다. 누나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충동 그리고 부끄러움. 그와 동시에 강하게 전달되는 듯한 입술의 느낌. 그 당시 지갑을 쥐고 있었던 건지 그 느낌은 무척이나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대로 노형진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 영상이 뜻하는 게 뭔지 알아챈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버지를 닮아서 한번 빠지면 푹 빠지는 누나라지만 만난 지 두 달 만에 뽀뽀라니.
“하아, 그나마 그 병신 같은 쓰레기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래가 보장된 박광석과 잘되고 있다는 건데.
“근데 그럼 그 숫자는 뭐지?”
자신이 잡아챘던 숫자는 뭔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이리저리 끄적거리던 그는 문득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였나?”
그 안에 가득한 숫자들을 조합하니 패턴이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패턴이 뭔지는 자신의 물건을 가지고 몇 번이나 실험을 한 끝에야 알 수 있었다. 남이 가진 물건은 언제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니.”
마치 타이머처럼 연도와 날짜 그리고 시간으로 이루어진 조합. 그걸 선택하면 그 당시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보통은 완전히 랜덤이라는데.”
상상 속에 있던 능력이다 보니 랜덤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지, 자기처럼 시간을 골라 가면서 볼 수 있는 능력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의 종류가 많지 않다는 건데.”
몇 번의 실험을 거치고 나서야 노형진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첫째, 물건과 직접 접촉한 상태나 아주 가까운 상태에서만 기억을 읽을 수 있다.
둘째, 강력한 기억이 있으면 그게 우선이며 무의미한 기억은 사라지거나 흐릿해진다.
셋째, 시간을 골라서 보는 것은 그 장소에 있는 강력한 기억, 또는 사념이 여러 개일 경우에 가능하다. 무의미한 기억이나 일상적인 사념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넷째, 무의미한 기억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몇 가지 사실을 정리하고 나자 노형진은 자신에게 생긴 능력이 절대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래니?”
그는 멍하니 규칙이 적혀 있는 수첩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누나.”
“응?”
“뽀뽀하니까 좋아?”
“뽀뽀라니! 뽀뽀라니!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설마 광석이가 한 거야?”
“아니, 난 그냥 찔러본 건데?”
그 말에 당황하는 누나의 얼굴.
“했구나.”
“시끄러워, 애송아.”
“네네, 엄마한테 이를게.”
“너 죽는다!”
“엄마!”
“만 원 줄게!”
“입 다물어 줄게.”
“으윽, 내 피 같은 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찔러봤는데 아무리 봐도 뽀뽀한 게 사실인 모양이다.
‘이거 참, 무슨 일인 건지.’
자신에게 생긴 능력이 왜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노형진은 당분간은 공부를 접고 이 능력에 대해서 연구하기로 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집중하면 자신도 모르게 별의별 기억과 생각이 다 들어오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진도가 늦어질지도?”
그는 왠지 모를 걱정이 들어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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