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0)
“제발…… 제발 그만하세요. 흑흑.”
눈물을 질질 짜는 김화란에게 노형진은 마지막 쐐기를 박아 줄 생각으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드릴게요. 정식으로 증언하시고 강건범…… 아, 이름도 모르시겠구나. 당신을 강간하려고 했던 놈의 이름이 강건범입니다. 하여간 그놈을 신고하실래요, 아니면 이대로 끝까지 재판을 진행할까요?”
하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노형진은 그녀의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차근차근 지금부터 벌어질 일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받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다음 재판에서 당신이 다니는 유치원의 원장 선생님을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아마도 원장 선생님께서 오시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시게 되겠지요.”
그 말에 얼굴이 창백해지는 김화란. 애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보니 도덕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은 해고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집 업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취업조차도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재판에서 우리가 이길 겁니다. 뭐, 진짜로 2억씩이나 나오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얼마가 나오든 당신이 내야 할 돈입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과연 강건마가 단순히 증언을 막기 위해서 당신을 노리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까?”
“서…… 설마?”
“강간범의 재범률은 60% 그리고 강건마는 벌써 강간 전과 2범. 2범 이상 강간범의 재범률은 80% 이상. 그런 강간범이 매일같이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한번 노렸던 먹잇감을 말이지요. 매일 보면 없던 정도 생긴다고 하죠?”
그 말인즉슨 그는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그녀를 강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럴 의사도 있고.
“그런…….”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좍좍 뽑아내기 시작하는 김화란.
“스스로 초래하신 겁니다.”
“…….”
남이 도와줄 때는 보답을 바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의 뒤에서 칼을 꽂아서는 안 된다.
“그냥 증언 한번 하세요. 그게 인생이 편해지는 길입니다.”
“할게요……. 흑흑…….”
그녀에게 선택권이라고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김화란은 자신 때문에 고생이 심했던 문석규에게 고개를 숙여서 사과했다. 얼굴이 해쓱해진 문석규였지만 그래도 애써 웃었다.
“괜찮습니다. 피차 서로 마음 고생한 건 같으니까요.”
“일단 합의서는 쓰셨고 소취하서도 넣었고.”
두 사리의 민사사건은 모두 종결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두 사람이 피해를 입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형사재판이 남아 있었다.
‘그나저나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마음을 고쳐먹으니 복이 왔다고 해야 하나?’
노형진은 어젯밤에 전화를 받고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남자 친구에게 버림받았다고 울고불고 하던 사람인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화란 씨.”
“네?”
“혹시 남자 친구에 대해서 얼마나 아십니까?”
“그게…….”
하긴, 말하기가 거북스럽겠지. 자신이 한 짓 때문에 자신을 차 버린 남자이니.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하세요.”
“전화위복이라니요?”
“남자 친구, 아니 전 남자 친구분은 기혼자입니다.”
순간 멍하니 듣고는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 된 그녀. 하긴, 이게 뭔 소리인가 싶겠지.
“애까지 있습니다.”
“뭐라고요! 하지만 이제 고작 스물네 살인데!”
“결혼이야 만 18세만 넘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분은 이혼소송 중이더군요.”
경찰서에서 온 기록, 아니 그 남자의 읍소는 어이가 없었다. 이혼소송 중이라는데 자신이 감방에 들어가게 되면 재판에 불리하니 제발 소취하를 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 노형진도 애가 있다는 말에 순간 마음이 약해져서 그럼 양육권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애는 애 엄마가 데려가도 상관없는데 위자료가 뛴다는 것이다. 그 말에 노형진은 근엄하게 ‘좆을 까시오.’라고 한마디 해 주고는 아예 그쪽 변호사에게 우리 쪽 증인이 그쪽에게 속았다고 연락까지 해 줬다.
“애초에 소송 자체가 그 사람이 바람피워서 난 소송입니다.”
“하지만 법원에서 연락이 온 적이…….”
말하던 김화란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에게 온 적이 없다면 남은 건 단 하나.
“한 명 더 있더군요.”
물론 공개된 것만 그렇다. 하지만 김화란까지 두 명이 등장했으니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를 일.
“이럴 수가…….”
강간당할 뻔한 데다 전 남자 친구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그녀.
“이런 개 같은…….”
그 소리를 들은 문석규조차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번 일로 전화위복한 겁니다. 아, 그리고 어린이집에는.”
“어린이집…….”
이 사실이 드러나면 어린이집에서 자신을 자를 게 뻔하기 때문에 순간 당황하는 그녀.
“좋게 말해 놨습니다. 폭행에 관련된 사건이라 위협받는데도 용기 있게 증언해 주기로 하셨다고 말입니다.”
“아아아…….”
그렇게 된다면 자신을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서 인사하는 김화란. 그걸 본 무태식은 자신도 모르게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대단하다.’
수많은 변호사들을 보고 재판에도 여러 번 나가 봤지만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누구도 강제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증언을 강제하기 위해 지옥의 아래까지 던졌다가 다시 끌어 올려서 제자리에 되돌려 놨다.
‘이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저 정해진 법률과 정해진 규칙 안에서 보고 판단하고 분석해 왔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모든 법을 감안하고 모든 규칙을 점검한다.
‘시아가 왜 그렇게 된 건지 알 것 같다.’
지원하러 갔다 오고 난 후 그녀의 법적인 통찰력은 무척이나 높아졌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바뀔 수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그 통찰력을 가르쳐 준 사람은 형진이 분명했다.
“이제는 마무리를 지어야지요.”
“그럼 이제 경찰서에 가서 증언하고 끝나는 건가요?”
“이제는 안 됩니다. 법원에 가서 증언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는 화란.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일단은 그 녀석을 강간 미수로 처넣어야지요.”
“하지만 증거가…….”
문제는 그거였다. 그녀가 증언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것.
“시간이 지난 데다가 법원에까지 갔습니다. 아마도 저쪽은 우리 쪽에서 고용한 여자라 주장하겠지요. 화란 씨가 거기에 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죄송해요…….”
“아니, 죄송할 것 없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화란을 다독거리는 문석규. 그걸 보고 노형진은 헛기침했다.
“크흠, 초반이라면 강력한 증언이 되었겠지만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증언의 신뢰도가 약해졌습니다. 더군다나 카메라 같은 것도 없으니까요.”
“…….”
하긴, 그걸 알기에 그런 곳을 강간 장소로 골랐을 것이다.
“그럼?”
“아무래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 문석규 씨가 혐의를 벗으시려면 김화란 씨가 명백하게 그놈을 강간 미수로 처벌해야 합니다. 즉, 형사재판에서 정식으로 그놈을 기소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능한가요, 그게?”
증언도 없고 증거도 없다. 증언이라고는 그녀가 했던 말뿐이다. 그마저도 오래전에 있던 일.
“찾아봐야지요.”
노형진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도대체가, 쉬운 일이 없어요.’
노형진은 입맛을 다시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아무것도 없어.’
시간이 지나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나마 있었던 작은 기억조차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흐릿해지고 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저 녀석이 화란을 끌고 갔다는 걸 증명한다.’
일단 그녀가 강제로 끌려갔다는 걸 증명하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방법이 생길 것이다. 문제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
“일단……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화란의 말로는 철저하게 준비된 짓이었다고 한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고.
‘납치 장소에도 카메라는 없었어.’
그 후에 이동시킨 차가 있지만 차의 내부는 찍을 수가 없다. 물론 그 트렁크 같은 곳에 증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났으니 무리겠지?’
안 그래도 그의 차량에 슬쩍 접근해서 기억을 읽었다. 그런데 그 기억들 중 최근의 기억에는 전문 세차장에서 완벽하게 세차하는 행동이 있었다. 그것도 연달아 세 번이나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망할.’
증언이 있으니 감형은 받을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니 아예 무죄가 나오는 것은 힘들다. 강건마는 합의하고 싶으면 3천만 원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이보슈, 뭐 하슈?”
그가 그렇게 그 주변을 돌아다니자 한 사람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다가왔다. 보아하니 동네 주민이다.
“아, 변호사입니다. 혹시 이 지역 주민 되십니까?”
“그렇소만?”
“혹시 ○○월 ○○일에 여기서 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기억날 리가 있나. 그게 벌써 몇 달 전인데.”
“그렇군요.”
“이 동네가 재개발 예정 구역이라 대부분 나가고 휑하지. 카메라도 철수했고.”
“네.”
아마도 강건마는 그걸 알고 이 장소를 강간 장소를 선택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비명을 질러도 누구도 듣지 못할 게 뻔하니 말이다.
‘어찌 보면 천운이기는 한데.’
텅 비어 버린 공간이라 누구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태릉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가 철거 대상이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문석규는 단순히 이곳에 운동할 만한 넒은 공간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온 것이다. 만일 철거한 걸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간 사건이 아니지. 강간·살인 사건이 될 수도 있지.’
성범죄의 문제는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관음이지만, 다음 단계는 추행이며, 그 뒤에는 강간을 저지르다가 결국 강간이나 살인까지 저지른다. 강간범들의 재범률이 높은 건 그 때문이다. 계속해서 자극적이고 위험한 것을 찾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록이 있을 리 없지.”
“끄응…….”
무심결에 가던 노형진은 길가에 있는 차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웬 차가?”
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차가 많다. 누가 곧 허물어질 장소에 주차하겠는가? 그런데 그런 곳에 차라니?
“아, 이 차? 저 아래쪽 중고차 상인들이 가지고 온 거야.”
“네? 왜요?”
“왜기는, 공간이 부족하니까. 주차료도 안 내고 단속도 안 하거든.”
“그럼 여기는 누가 지켜요?”
“글쎄?”
그냥 둘 리가 없다. 그렇다고 여기를 사람이 지킨다? 아니다. 그동안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뭔가 있다는 뜻.
“감사합니다.”
후다닥 중고차 단지로 간 노형진은 그곳의 상인들 중에 이곳에 차를 댄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몇 명을 찾았다.
“그럼 누가 지킵니까?”
“아, 그거요? 카메라요.”
“카메라?”
“네.”
“하지만 거기에는 CCTV가 없던데요?”
“그야 그렇지요.”
“그럼…….”
사방을 뒤지고 다녔으니 못 봤을 리가 없다.
“에이, 그게 얼만데 그걸 설치합니까?”
“그럼요?”
“보실래요?”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고 그 존재를 확인했을 때 입가에 진한 미소를 떠올렸다.
‘잡았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이번 사건은 김화란 양의 증언처럼 피고는 강간을 막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원고에 대한 공격 행위를 한 것입니다. 이는 명백하게 법률에서 인정하는 긴급 구난 행위에 인정되어 그로 인한 위법성을 조각합니다. 이에 피고에 대한 처벌은 말도 안 되는 행위라 주장하는 바입니다.”
위법성 조각이란 어떤 행위가 불법행위는 맞지만 그 행위에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불법성이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경우는 강간을 위한 폭력이 원인이기 때문이 그것이 허가된다. 물론 강간 시도가 인정되는 경우에만 말이다.
“재판장님, 그러니 피고는 그 당시 증인의 얼굴뿐만 아니라 신상 명세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를 찾았다고 들이민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그를 찾는 데에 사용한 방법이 정확한 인지 방법이나 DNA 테스트도 아닌, 고소인의 동선을 추적하여 피해자로 보이는 여성을 특정한다는 것은 그 정확성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 증인이 피고의 사주를 받고 위증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증이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못한다. 검사도 그녀가 거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언에 의심을 품는 정도로는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
‘그럴 줄 알았지.’
자신이라도 그런 방어 전략을 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인정합니다. 피고는 증인이 그 당시 강간을 당할 뻔한 여성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습니까?”
물론 없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강건마는 뒤쪽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피식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물론 노형진은 그 미소를 오래 볼 생각이 없었다.
“고소인 강건마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바입니다.”
“인정합니다.”
지금 없는 것도 아니고 이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강건마는 증인석에 앉았다. 노형진은 그런 강건마를 향해 다가갔다.
“피고 강건마는 ○○월 ○○일 해당 놀이터에 있던 사실을 인정합니까?”
“인정합니다.”
“그곳에서 뭐 하고 있었습니까?”
“그냥 별을 보면서 제 미래에 대해서 사색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그곳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한 거라 거기에 있지 않았다고 부정할 이유도 없었기에 그는 당당하게 자신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증인은 증인이자 증인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저 여자가 그 장소에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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