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04)
“재판장님, 고의가 아닙니다. 피고는 업무상 주자창이 없어서…….”
노형진의 말에 잽싸게 말을 끊는 서병식. 하지만 노형진은 비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재판장님, 여기 피고의 재산 내역을 증거로 제출합니다.”
“재산 내역은 이번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관련이 없다니요. 이 재산 내역에 따르면 피고의 재산은 대략 400억 원입니다. 재산이 400억이나 있는 사람이 돈이 없어서 유료 주차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더군다나 피고의 사업 내역을 조회해 본 결과, 근처에 자신이 소유한 주차장이 세 군데나 됐습니다.”
서병식은 아차 싶었다. 설마 주차장 내역까지 알아낼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바보냐?’
상대방 재산 조회를 조금만 해 보면 모든 것이 다 나온다. 그런데 주차할 곳이 없어서 주차를 거기에 했다니.
“주차한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전소의 피해가 났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서병식은 어떻게 해서든 민사적 책임을 벗어나려고 했다.
“과연 그럴까요?”
“물론 불법 주정차에 대한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법 주정차에 대한 과태료 정도면 되는 거지,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모든 피해에 대해서 배상할 책임은 없습니다. 출동한 소방차가 불법 주정차 때문에 불을 못 껐다고 그 사람에게 피해 배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일반적인 불법 주정차는 자신의 주택 근처에 대는 것입니다. 하지만 피고는 자신의 차량을 소방서 앞에 고의적으로 주차시켰습니다. 아닌가요?”
“불법 주정차는 장소와 관련이 없지요.”
“하지만 그게 고의성이 있다면 관련이 있지요.”
“고의성은 없었습니다.”
고의성이 없다고 우기는 서병식.
“그래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서 두 명의 사망자가 났습니다만?”
“그렇게 사망자가 날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일반적으로 해당 지역에서 그다지 사망자가 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재판장님, 여기 기록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주차된 일주일간 사망자가 두 명이라고 되어 있는데 다른 시기를 보면 사망자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그저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지 그 사망의 책임에 피고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병식은 운이 안 좋았다는 식으로 몰아가기로 한 듯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서 노환이나 기타 질병으로 인한 사망을 제외하고 매주 네 건 정도의 사망 사건이 벌어집니다. 즉, 확률로 보면 도리어 이번 주 두 명의 사망은 확률적으로 무척이나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피고의 불법 주차가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반증입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코웃음이 났다.
‘지랄을 한다.’
지난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당연히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사망하는 사고가 많았다. 더군다나 관광철인 만큼 휴양객도 많았고 그러나 이제 가을, 관광객도 없고 덥지도 않아서 사망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망자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망자가 사망에 이르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 환자는 불법 주차로 인해서 출동하지 못하는 사이 결국 심장마비의 골든타임이 지나갔고 두 번째 사망자는 교통사고 후 과다 출혈로 사망했습니다. 만일 제 시간에 도착했다면 충분히 지혈할 수 있었다는 소견소도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노형진은 서병식을 대차게 공격했다.
“이는 명백하게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 말에 서병식은 펄쩍 뛰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럴 리 없지요. 살인의 고의라니요.”
“그래요?”
“말도 안 됩니다. 불법 주차를 했다고 살인의 고의가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연히 사고가 난 것과 작심하고 죽이려고 덤빈 것은 전혀 다르다. 당연히 그 배상금도 달라진다.
‘그리고 살인의 고의를 인정할 수가 없겠지.’
현재 이철수는 피해자들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고발당한 상태이다. 아무리 형사와 민사가 따로 진행된다고 해도 민사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배상금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형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겠지.’
“피고는 절대로 누군가가 죽어도 된다는 생각에 사건을 진행한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요.”
“증거 있습니까?”
“아니, 증거는 주장하는 쪽에서 내야지요!”
발끈하는 서병식. 노형진은 그 말을 기다렸다.
“우리는 증거 있는데요?”
“뭐…… 뭐라고요?”
“재판장님, 갑자 7호 녹음 내역을 제출하는 바입니다.”
노형진은 이미 서류화가 끝난 녹음 내역을 제출했고 서병식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해당 통화 내역은 그 당시 소방관과의 통화 내역입니다.”
노형진은 녹음기를 재생시켰고 그걸 들인 서병식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아저씨! 당장 차 빼요! 구급차 나가야 한단 말입니다!
-내가? 왜? 나 바쁜 사람이야. 너 같은 거지 새끼랑 놀 시간 없어.
-뭐라고 하던 일단 차부터 빼라고요!
-나 지금 구룡포 가는 중이니까 알아서 빼. 난 몰라.
-진짜 이럴 겁니까? 지금 긴급 출동해야 한단 말입니다! 사람 목숨이 달렸어요!
-내 알 바 아니지. 내 목숨인가? 내 목숨 아니야. 난 상관없어.
-이거 벌금 나오는 거 모릅니까!
-그까짓 벌금 내지 뭐? 몇 푼이나 한다고.
웃긴 일이다. 수영장을 채우는 데 들어가는 돈이 아까워서 소방차를 부르려고 했던 인간이 돈 얼마 안 한다고 못 치우겠다니.
-야, 이 새끼야! 미쳤어! 사람이 죽어 간다니까!
결국 폭발하는 소방관. 하지만 이철수는 만만하지 않았다.
-나이도 어린 것이다 대고 소리야! 응? 공무원이면 공무원 답게 내 말을 들어야지! 뭐? 새끼야? 너희 청장이 이러는 거 알아!
-사람이 죽는다고!
-내 알 바 아니라니까! 어른한테 새끼? 새끼? 너 잘 걸렸다. 너 민원 넣어서 죽여 버릴 거야! 알아!
노형진은 거기까지 재생하고는 녹음기를 껐다.
“보다시피 소방관은 사망 가능성에 대해서 수차례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피고 이철수는 끝까지 차를 빼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해당 출동은 31분이 늦어 졌으며 현장에 도착했을 때 피해자는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어…… 어떻게…….”
서병식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분명히 이런 내용은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녹음됐단 말인가?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나온 겁니까! 이건 조작입니다!”
말도 안 된다며, 조작이라면서 발끈하는 서병식. 하지만 노형진은 이미 할 말이 있었다.
“소방차에 달려 있는 블랙박스는 내부에 있는 소리도 녹음이 되는 모델입니다. 당연히 차량에 탑승한 채로 통화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피고 목소리가 들어간 겁니까! 이건 말도 안 됩니다!”
“피고 측 변호인, 소방복 안 입어 보셨지요? 그거 무겁고 둔탁합니다. 당연히 그걸 입고 귀에 전화기를 대고 통화하기는 힘들지요. 그러니까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게 보통입니다.”
차를 빼기 위해서 통화했는데 그게 다 녹음된 것이다.
“그나저나 피고 목소리가 맞는 건 인정하신 거네요.”
그 말에 서병식은 아차 싶었다. 자신이 목소리가 아니라고 우겼어야 했다. 그런데 실수로 자신도 모르게 그 목소리가 맞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건……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원하시면 음성 대조를 하도록 하지요.”
“…….”
할 말이 없었다. 비슷하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똑같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당시 기록에 따르면 결국 차를 빼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죽어 간다는 사실을 고지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알 바가 아니라는 식으로 대답했지요.”
“그렇지만 거기서도 말했다시피 구룡포라고 하지 않습니까! 구룡포에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래도 목소리 가지고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건지 서병식은 언성을 높였다.
“구룡포가 멀기는 하죠.”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구룡포에서 차를 빼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긍해?’
서병식은 수긍하는 노형진을 보면서 갑자기 더욱 불안해졌다. 재판에서 수긍한다는 것은 한 가지 패를 놓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변호사들은 대부분 쉽게 수긍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수긍하다니?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통화 내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노형진 역시 그렇게 쉽게 수긍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통화 내역을 보면 구룡포 관련 언급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구룡포에 가고 있다고.”
“그러니까요! 그곳에서 뺄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렇지요. 구룡포에서 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구룡포에 가고 있다는 말은 구룡포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구룡포에 가고 있다는 말이지요. 재판장님, 여기에 그날 보안 카메라 영상을 제출합니다.”
노형진은 새로운 영상을 제출했다.
“그날 통화한 시간은 저녁 9시 23분. 그리고 해당 영상은 저녁 9시 30분에 촬영되었습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해당 지역의 지도였다. 그 후에 그 지도에다가 동그라미를 그려 넣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다시피 해당 카메라는 여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방서는 여기에 위치하고 있지요. 그리고 피고 이철수의 집은 여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그라미와 삼각형으로 표시하며 설명하는 노형진.
“촬영된 곳에서 에서 이철수의 집까지 거리는 차량으로 10분 거리. 그런데 7분 정도에 통화했다는 것은 피고 이철수가 운전 중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해당 지역의 지리로 판단한다면 피고 이철수는 해당 시간에 대량 이쯤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상 위치를 동그라미로 그리는 노형진.
“그리고 해당 위치는 소방서로부터 대략 1.2킬로미터 만일 차량을 운전 중이라고 한다면 3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건 추정일 뿐이잖습니까! 그리고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데 어떻게 움직입니까!”
물론 차량은 소방서 앞에 주차되어 있다. 하지만 그건 한 대뿐이다.
“재판장님, 여기 피고의 차량 소유 목록입니다. 피고는 총 세 대의 차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카메라에 찍혀 있는 차량은 독일 M사의 차량입니다. 주차되어 있던 차량은 독일산 B사의 차량이고 말입니다.”
재산이 400억이나 되는 사람이 차가 한 대가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더군다나 집에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그것도 두 개나 그런데 고작 차 한 대를 끌고 다닐까?
“그런 관계로 재판장님, 피고 차량에 대해서 GPS 검사를 하기 위해서 차량에 대한 조사를 허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GPS?”
“내비게이션은 차량의 움직임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해당 차량의 내비게이션을 조사한다면 해당 차량의 움직임을 알 수 있지요. 구룡포를 가고 있다고 했지, 구룡포라고 안 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기록에 따르면 피고는 구룡포에 가기 위해서 출발한 것은 사실이나 소방서와 아주 근접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억!”
서병식은 눈이 커졌다. 설마 내비게이션에 그런 기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단 말이지.’
애초에 조금만 생각해도 내비게이션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자주 가는 곳을 기억하겠는가? 하지만 워낙 자연스럽게 쓰다 보니 가끔은 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대로라면 피고는 아주 근접한 상황에서 그것도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차량으로 이동 중이면서도 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노형진의 말에 서병식은 머리를 열나게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래, 머리 한번 써 봐라. 후후후.’
노형진은 서병식을 보면서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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