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1)
“그럼 그 장소에 여자는 없었습니까?”
“그런 곳에 여자가 있겠습니까? 요즘같이 험악한 세상에 말입니다.”
마치 자신을 깔보듯 ‘험악한’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말장난을 하는 강건마. 노형진은 그를 보다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즉, 증인은 그 자리에 저 여자분은커녕 아예 여자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떤?”
노형진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그걸 노트북에 연결해서 작동시켰다. 그건 하나의 동영상이었다. 흔들림 없는 화면. 깨끗하지만 약간은 낮은 해상도.
“CCTV!”
그걸 본 강건마는 순간 당황했다. 분명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곳에는 CCTV가 없었다.
“저게 어떻게……?”
“뭐가 말입니까?”
“아…… 아닙니다.”
강건마는 애써 말을 돌렸지만 눈은 마구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CCTV치고는 그 높이가 낮았던 것이다.
“그건 CCTV 영상이 아니잖아?”
“맞습니다. CCTV 영상이 아닙니다. 이건 블랙박스 영상입니다.”
“블랙박스?”
“그렇습니다. 해당 지역은 아래에 있는 중고차 거래소의 차량 대기소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절도 및 파손을 감시하기 위해 해당 업체는 차량용 블랙박스를 일부 개조하여 배터리와 연결 카메라 대용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강건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렇다면 그게 자신의 눈에 보일 리가 없다. 가뜩이나 안 보이는데 그걸 아예 대용품으로 썼다면 보이는 곳에 뒀을 리가 없다.
“해당 녹화 내역은 그다지 용량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보관하고 있었지요.”
블랙박스는 생각보다 전력을 많이 먹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런 임시용으로는 무척이나 쓸 만했다. 더군다나 화질 자체도 아주 나쁜 건 아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아직은 자동차용 블랙박스가 널리 퍼진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임시로 자동차를 주차해 놓은 업체는 그걸 보호하기 위해 이걸 설치한 것이다. 원래 자동차용 블랙박스는 그다지 용량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나 그들은 배터리와 외장 하드를 연결해서 일종의 카메라처럼 운영했고 그 덕분에 그 당시 기록도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분명 증인은 그곳에 여자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우물쭈물하는 강건마. 노형진은 노트북에서 영상을 작동시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대의 차량이 고개 위를 올라가고 있었다.
‘살았다.’
그런데 블랙박스에는 그 차가 올라가는 것만 보였을 뿐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트렁크 안에 가둬 뒀기 때문이다.
“봐요 없잖아요.”
“네, 없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재생 속도를 빠르게 하고 얼마쯤 지나자 고개 너머에서 여자가 나타났다. 반쯤 찢어진 옷. 당황한 얼굴. 블랙박스 정면에 찍힌 그녀는 간간이 뒤를 돌아보면서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노형진은 그녀의 얼굴이 잘 나온 장면에서 화면을 정지했다.
“어…….”
“여자가 없다고 증언했습니다만 여자가 내려왔습니다. 기록에서도 보다시피 해당 지역은 철거 예정지로, 주민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김화란 증인의 말에 따르면 올라갈 때는 트렁크 안에 갇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정지된 화면을 판사와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노형진.
“제 눈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만 이분은 아무리 봐도 김화란 씨로 보이는데요.”
“어어어…….”
확실히 없던 여자가 갑자기 나타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데 분명히 그 여자는 그곳에서 두들겨 맞은 모습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여기저기 든 멍. 그리고 당황한 얼굴. 모든 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었다.
“증인, 이에 대해 할 말 있습니까?”
“이…… 이건 조작입니다! 조작이에요, 조작!”
“조작 여부를 가리기 위해 해당 원본을 법원에 제출하겠습니다.”
“인정합니다.”
갑작스러운 증거에 검사는 패닉에 빠졌다.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헹,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줄 아냐?’
검사가 실적을 위해 증거를 무시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고발인이 강간범이든 뭐든 상관없다. 실적만 된다면 말이다.
“증거를 분석하기 위해서 다음 기일을 잡겠습니다.”
빼도 박도 못한 증거가 나오자 말을 못 하는 강건마와 당황하는 검사.
“끝내겠습니다.”
판사가 말했다. 그때 그 말과 동시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 두 명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이 끝났으니 영장을 집행하겠습니다.”
“집행?”
“강건마, 당신을 강간 미수 혐의로 구속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강건마가 증인석에서 내려오자마자 수갑을 채우는 경찰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거짓말이야!”
강건마는 발악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왜 경찰을 기다리게 만든 겁니까?”
무태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강건마의 구속영장은 재판 전에 나왔다. 그런데 노형진은 형사에게 부탁해서 당일에 현장에서 체포해 달라고 부탁했다.
“심리 전술입니다. 일종의 이미지를 씌우는 거죠. 판사가 아무리 중립적인 척해도 그 역시 인간입니다. 그의 앞에서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갔으니 그게 판결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뻔하지 않습니까?”
“아!”
작고 사소한 일일지언정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 당장 눈앞에서 조사 결과가 어떻든 강건마가 수갑을 차고 끌고 가는 걸 봤으니 그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긴 힘들 것이다.
“아마도 특이한 일이 없다면 무죄가 나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문석규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서 감사했다. 사실 노형진 말고도 주변의 변호사들에게 방법을 물어봤지만 하나같이 방법이 없다고 했다. 증거도, 증인도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노형진은 그걸 알아내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한 것이다.
“별말씀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형진은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첫 번째 사건에서부터 패배하면 그게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대단하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어떤 변호사도 이런 사건은 거의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해결하다니.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형진에게 물어보는 문석규.
“일단은 김화란 씨는 혼인 빙자 간음으로 고소부터 넣으셔야 할 겁니다.”
“네?”
분명 문석규의 사건이 끝났다. 그런데 김화란이라니?
“전 남친이 유부남인 건 이제 아셨잖습니까? 이혼소송 중인 것도요.”
“네.”
“아마 그 여자분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겁니다. 화란 씨 말고도 다른 사람한테 가정 파탄의 책임을 물어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재수 없으면 그걸 배상해 줘야 합니다.”
그 말에 입을 쩍 벌리는 김화란.
“그러니 혼인 빙자 간음으로 고소를 넣으세요. 그렇게 되면 일단 파탄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그런가요?”
물론 일반적으로 이렇게 사후 서비스까지 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노형진은 해 주는 이유가 있었다.
“그럼 노 변호사님이 해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후후후.”
바로 두 번째 사건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1타 2피.’
풋사랑의 흔적? (1)
“밥 사 줘.”
“…….”
“밥 사 준다며?”
“그건 기억하냐?”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건 손채림의 목소리였다.
“나 오늘 과외 그만뒀어, 돌에 새기는 거 그만두고 싶어서. 그러니까 비싼 거 사 줘.”
“그거랑 뭔 관계가 있는데?”
“내 인생을 이상하게 꼬여 버리게 만든 게 누구더라?”
“끄응…….”
농담인 걸 알지만 그녀의 원래 인생을 기억하고 있는 노형진은 그 말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래…… 뭐 먹고 싶냐?”
“회! 회! 회! 회!”
“알았다, 알았어.”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는 사 줄 수 있으니까.
“그래, 어디서 만날까?”
“노량진.”
하긴, 서울에서는 노량진에서 파는 회가 가장 싸고 맛있다. 게다가 이것저것 맛있는 해물 요리도 많다.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노량진으로 와라.”
“그래.”
노형진은 그렇게 무심하게 넘어갔다. 물론 그녀가 길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했다.
“너, 못 오는 건 아니지?”
“날 뭐로 보고.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때는 오밤중에 술에 취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낮에, 그것도 전철 타면 바로 도착하는 노량진에서 만나는 것이다.
‘하긴, 그렇겠네.’
설마 전철을 타고 내리면 바로 있는 노량진에 그녀가 오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길치라는 단어가 왜 생긴 것이며 왜 문제가 되는지를.
화창한 주말. 주변에서 펄떡거리는 신선한 횟감들. 그걸 보는 노형진은 영혼이 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마…….’
약속 시간은 12시 30분. 그런데 현재 시간 1시 30분.
‘바람맞은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회 노래를 부르던 걸로 봐서는 말이다.
‘전화도 안 받고 뭐 하는 거야?’
노형진이 한숨을 쉬던 그때였다.
따르릉.
노형진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벨 소리. 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었다.
“야! 너 어디야?”
“여기? 수원.”
“…….”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노형진.
‘수원? 수원이라고?’
수원이면 그녀의 집에서 반대 방향이다. 그런데 왜 수원에 있단 말인가?
‘설마 오전에 약속이 있어서 늦은 걸까?’
그렇다면 이해가 가긴 한다. 일이 있어서 전화를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애써 이해하려고 했다.
“일이 늦게 끝났냐?”
“아니. 전철을 잘못 탔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냐!’
그녀의 집에서 노량진으로 오는 전철은 하나뿐이다. 그마저도 환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타고 와서 내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잘못 타다니?
“나 간다.”
“에이, 남자가 좀스럽게. 조금만 기다려. 내가 얼른 갈게.”
“거기서 오려면 못해도 한 시간 십 분은 걸리거든?”
“기차표 끊었어.”
“기차표?”
“그래, 용산.”
“끄응.”
용산은 바로 옆에 있는 역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내려서 바로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만 오면 되니 한 30분 정도면 올 것 같았다.
“지금 기차 타러 가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까 금방 갈 거야.”
“그래, 알았다.”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대체 길치라는 사람들은…….”
어떻게 뻔히 보이는 길을 못 찾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 30분만 더 기다리자.”
아무리 그래도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노형진은 애써 마음을 침착하게 먹으면서 기다리려고 했다. 그러나.
따르릉.
“여보세요?”
“야, 엄친아!”
“노형진이라고. 그리고 왜 오진 않고 전화를 해?”
“기차 잘못 탔다. 이거 광주행이라는데?”
그 말에 노형진은 입을 쩍 벌렸다.
“어떤 면에서는 존경스럽다.”
결국 점심 약속은 ‘점저 약속’이 되어 버렸다.
“으헤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냐?”
“언젠가는 도착하겠지. 안 그래?”
“끄응.”
“괜찮아. 먹어, 먹어.”
“내가 사는 거거든?”
노형진은 신나게 먹는 손채림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다. 길도 모르고 뻔한 길조차도 찾지 못한다. 그런데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뭐, 나쁘지 않은 자신감이기는 한데.’
확실히 그녀는 쾌활하고 성격이 좋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엇나갈 정도로 부모가 괴롭혔다니.
‘쩝.’
노형진은 부모님에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서 물은 결과, 학창 시절부터 필요 이상으로 경쟁심이 심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녀를 그렇게 매몰차게 몰아붙였으리라.
“뭘 봐?”
“응? 아니야.”
“그렇게 안 봐도 내가 예쁜 건 알아.”
“하하하.”
웃으면서 노형진은 회를 집어삼켰다. 확실히 예쁘기는 하다. 전에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원래 역사에서 전 세계를 감동시킬 정도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는 그녀의 외모도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교생 실습은 언제 하는 거야?”
“4학년 때 나가야지.”
“그래? 그나저나 의외다.”
“뭐가?”
“너 노래 잘했잖아? 절대음감? 하여간 그래서 음악 쪽으로 갈 줄 알았거든.”
그 말에 순간 얼어 버리는 그녀는 잠시 입맛을 다시다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회를 입으로 넣었다.
“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안 된다?”
“그래, 부모님이 무조건 변호사 하래.”
그 말에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성격이 아닌데?’
변호사를 하려면 독하고 약간 염세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녀는 쾌활하고 밝으며 독하지 못하다. 결정적으로 이런 심각한 길치는 전국을 다니면서 재판을 해야 하는 변호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그게 다 너 때문이다.”
“나?”
“그래, 널 이겨야 한단다.”
“끄응…….”
원래 역사에서는 노형진이 그녀를 이긴 적이 없다. 그러니 그녀의 재능을 살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로지 노형진을 이겨야 한다면 몰아붙인 것이다.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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