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16)
“그런데 이런다고 불이 붙을까요? 정제된 기름도 아니고?”
송정한은 그게 의심스러웠다. 만일 기름 때문에 불이 붙는다면 삼겹살은 익는 게 아니라 타야 정상 아닌가?
“이런 동물성 기름은 확실히 불이 잘 안 붙기는 하지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흡입할 때는 먼지가 같이 들어가거든요.”
먼지는 대부분 아주 미세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름에 비해서 불이 잘 붙는다.
“그게 촉매 역할을 합니다. 한번 보세요.”
그는 벌어진 연통을 안전한 자리에 두고 그 안에다가 토치로 살짝 불을 붙였다.
“어?”
처음에 붙은 불은 위태롭게 흔들리더니 꺼져 버렸다.
“어?”
송정한은 당황했다. 내부에 불이 확 붙을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꺼져 버린 것이다.
“왜 이럽니까? 분명히 연통에서 화재가 났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실험이니까 보여 드리는 겁니다. 이게 일반적인 상황이지요. 이 상태는 쉽게 불이 안 붙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열기가 충분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심학규는 미리 준비한 열풍기로 그 안에 충분히 열기를 가했다. 고약한 냄새가 더 심해지면서 끈적하던 기름이 녹기 시작했다.
“이게 영업 중인 상태의 연통입니다.”
그는 다시 그곳에다가 불을 붙였다. 그러자 아까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 불은 꺼지지 않고 점점 연통을 타고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헐.”
연통의 양쪽 끝으로는 꾸역꾸역 검은 연기와 불꽃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연통내부는 말 그대로 불이 가득 차서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보다시피 이렇게 불이 안 꺼집니다. 이 열풍기가 연기를 흡수하는 연통 노릇을 하는 셈이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산소를 불어 넣습니다. 동시에 불길을 반대쪽으로 밀어 내지요. 그리고 아실지 모르지만 터널 공동화 현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말 그대로 터널에서는 공기의 흐름이 빨라지는 걸 뜻하죠. 수십 개의 흡입기에서 나온 바람은 더 빨라질 테고 더욱 강력하게 불길을 밀어 냅니다.”
그러면서 심학규는 열풍기를 강하게 틀었다. 그 순간.
“푸확!”
“으악!”
송정한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물러났고 노형진 역시 깜짝 놀라서 주춤거렸다.
“보다시피 반대쪽 입구는 거의 화염방사기 수준입니다.”
짧은 터널인데도 불구하고 한쪽으로 불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연통.
“만일 이 건너편에 벽이 있었다면 당연히 그곳은 기름 범벅일 겁니다. 아무리 상대적으로 굳어 있다고 해도 이 정도 불길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불이 붙지요.”
“이 정도면 기름이 없어도 붙겠습니다.”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보면서 노형진은 혀를 내둘렀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불길이 더 강했다.
‘짧은 연통에서도 이 정도인데 긴 거라면…….’
드디어 재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생각에 노형진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 * *
“재판장님, 이번 사건은 피고 측의 주택에서 시작된 화재로 인해서 발생한 피해가 막심합니다. 피고는 해당 주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때문에 호텔 측에 무려 20억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습니다. 피고가 아무리 학생이고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이는 명백하게 큰 문제인 만큼 그 배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성태는 화려한 변호인단을 데리고 소송의 전면에 나섰다. 어떻게 해서든 그 집을 빼앗아야 하는 상황인 만큼 쉽게 물러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피고 측, 할 말 있습니까?”
판사는 불쌍한 시선으로 강석현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자신이 봤을 때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애초에 화재의 원인이 그 집인 이상 그 배상책임은 강석현에게 있는 것이다.
“재판장님.”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재판장을 바라보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단 피고 측이 주장한 합선에 의한 화재는 허구입니다.”
“허구?”
“네, 해당 주택의 설계에 따르면 해당 주택의 그 위치에는 지나가는 배선이 없습니다.”
“그거야 흔한 일 아닙니까? 배선을 바꾸는 경우는 흔한 겁니다.”
상대방 변호사는 아주 작심한 듯 노형진을 공격했다.
‘그래, 적지 않게 받았을 테니까.’
노형진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져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당 화재의 패턴은 합선에 의한 화재 패턴이 아닙니다.”
“뭐라고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전문가분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그 말에 판사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잠시 후 심학규가 증인석에 올라왔다. 그는 단정한 복장으로 판사에게 인사하고는 증인석에 앉았다.
“증인, 증인은 소방관으로서 얼마나 근무했습니까?”
“35년 근무했습니다.”
“그러면 화재 조사관로 근무한 기간은 그중 얼마나 됩니까?”
“20년입니다.”
“그러면 화재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네요?”
“네.”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한 장의 사진을 건넸다.
“이 사진은 무슨 화재에 의한 사고입니까?”
그 말에 심학규가 그걸 흘낏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합선에 의한 화재입니다.”
“거봐요!”
득의양양하게 소리를 지르는 강성태 측 변호사. 노형진은 그른 그를 보면서 비웃음을 날렸다.
“제가 보여 드린 것은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진이 아닙니다.”
“어…….”
그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리는 그들. 노형진은 이번에는 다른 사진을 보여 줬다.
“그럼 이건요?”
“유류에 의한 화재입니다.”
“그 둘의 차이가 뭐죠?”
“불이 나면 최초 발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화재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최초 발화 지점은 최초 원인에 따라서 그 그을음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합선의 경우 일반적으로 탈 것이 적기 때문에 불꽃이 날카로운 형태를 많이 취합니다. 그 상태로 여기저기 번지는 것이지요. 그에 반해서 유류 화재의 경우, 불이 태울 것이 무척이나 크기 때문에 불꽃의 형태가 커지면서 마치 구름 같은 형태가 나옵니다.”
“그러면 이 사진에서 보이는 건 어떻게 보이십니까?”
노형진은 그에게 현장의 사진을 보여 줬다.
“유류에 의한 화재로 보입니다.”
“재판장님! 피고 측은 증인과 짜고 원하는 답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심학규의 말에 발끈하는 강성태 측 조사관.
‘그래, 내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애초에 조작된 걸 가지고 소송을 걸었으니 그들로서는 심학규의 반응이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요?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노형진은 한 권의 책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한국 소방 교육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교재는 한국에서 화재 조사관을 교육할 때 쓰는 책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각 화재별로 패턴이 사전에 찍혀 있습니다. 이번 사건 이전부터 사용된 책인 만큼 조작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요.”
노형진은 그중에서 미리 표시한 페이지를 펼쳐서 판사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줬다.
“보다시피 이 챕터는 유류 화재에 의한 패턴을 보여 주는 페이지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패턴이 아닌가요?”
그 말에 판사는 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확실히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다.
“그에 반해서 이 페이지는 합선에 의한 화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노형진은 다른 책을 꺼내서 그들에게 보여 줬다. 이번에 보여 준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을음.
“이건 저희랑 짠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 책이 발매된 날자는 2년 전입니다. 짤 수가 없지요.”
“크윽…….”
강성태 측 변호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사람이라면 2년 사이에 바뀌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불이 나는 패턴이 매년 바뀔 리 없기 때문이다.
“즉, 피고 측에서 주장하는 합선으로 인한 화재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전기도 없는 자리인 데다가 화재 패턴이 전혀 다르니까요.”
노형진의 논리에 밀려 버린 그들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그래도 일단 불은 저쪽에서 난 거니까.’
중요한 것은 화재가 저쪽에서 났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들은 배상받을 수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군요. 그걸 확인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화재 조사관이었습니다.”
애써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둘러대는 변호사들. 하지만 그들은 그게 실수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면 그 화재 조사관이 과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도 모르셨습니까?”
“뇌물? 징계?”
“네, 그는 2년 전에 한 번, 1년 전에도 한 번 뇌물을 받고 징계받았습니다. 그걸 모르셨다는 건 의외인데요?”
“크윽.”
알 리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화재 조사관이라는 타이틀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판사의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판사의 입장에서는 뇌물을 받고 조작한 경험이 있다면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더군다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최초 화재 현장이 그 집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를 제외한 사람들도 동의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도 동의했던 사항입니다.”
“일단은 그렇게 보이지요.”
“그렇게 보인다?”
노형진은 마지막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재판장님, 아까 보신 사진들 다시 한 번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음?”
화재가 난 사진을 자꾸 보라는 노형진의 말에 재판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그걸 본다고 뭘 알 리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저희가 보여 드린 다른 사진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노형진은 몇 개의 사진을 판사에게 건넸다. 그리고 일부는 상대방 변호사에게도 건넸다.
“이중에서 가장 비슷한 형태를 가진 그을음을 골라 주십시오.”
“실험입니까? 여기는 재판정이지, 실험실이 아닙니다.”
“실험이 아니라 공정성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
그 말에 판사는 꼼꼼히 사진을 살피고 그중에서 형태가 가장 비슷한 사진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 강성태 측 변호사 역시 그중에서 가장 비슷한 사진을 골랐다.
“보다시피 두 분 다 동일한 사진을 골랐습니다.”
노형진은 세 장의 사진을 나란히 두고 사람들에게 납득시켰다.
“이 세 장의 사진은 아까 말씀드린 유류에 의한 화재 패턴과 비슷한 모양을 보입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뭔가가 있지요. 재판장님, 이 사진에서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제가 봐서는 그 몽글몽글한 형태가 사방으로 퍼져 있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진들은 그 구름 형태의 그을음이 위쪽에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들만 아래쪽으로 그을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첫 번째 사진은 화재 현장의 사진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책에서 발췌한 사진이고 세 번째 사진은 저희가 실험한 사진입니다.”
“무슨 실험입니까?”
“방화 실험입니다.”
“방화?”
“방화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다들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방화라는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말에 판사도 진지한 얼굴이 되었는데 반대로 강성태의 변호사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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