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19)
“그건 아니고 아무래도 새로 들어온 변호사들이 기획 소송에 대해서 감을 잡지 못하고 있어서 말이야.”
“아아.”
노형진은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새론은 다른 변호사들과는 다른 시스템이 있다. 바로 기획 소송이다. 누군가는 그걸 나쁘게 말한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걸 좋게 생각한다.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거라면 문제가 되지만 자기 권리를 여러 가지 이유로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바로 기획 소송이니까.
“이해 못합니까?”
“그래, 다들 그 이야기야.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배웠다고.”
“반만 알고 반은 모르는군요.”
“그렇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그건 아주 유명한 말이며 또한 대한민국 법률계를 대표하는 말 중 하나다. 쉽게 말해서 권리는 행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진 자들은 권리를 알기를 원하지 않지.”
“그렇지요.”
국민들이 권리를 알수록 자신들은 국민들을 지배하기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노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역설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투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투표하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일은 꼭꼭 감춘다.
“결국 누군가는 그걸 알려 줘야 하는데 말이지.”
“그러기 위한 기획 소송 아닙니까?”
“그래, 그런데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르더군.”
“흠…….”
노형진은 그 말에 자신의 턱을 스윽 문질렀다. 그건 심각한 문제다. 기본 적으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변론한단 말인가?
“그래서 한 번은 제대로 기획 소송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현재로써는 기획 소송이 아니라 부여되는 소송만 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건 그렇지요.”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한번 기획 소송을 하고 나면 인간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정신이 넓어진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새론에서 버티지 못한다. 변호사라고 대접받으면서 돈을 받으려고 하면 더더욱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기획 소송을 한번 해 보고 싶으신 거군요.”
“그래, 하지만 제대로 된 건수가 있어야 말이지.”
“송 대표님의 말이 맞네요.”
기획 소송은 그냥 가서 ‘사건을 주십시오. 우리가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가 스스로 발로 뛰면서 정보를 모으고 문제를 체감하고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브로커를 끼고 사건을 받아 오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획 소송을 하기 위해는 적당히 몸을 굴려야 한다는 건데.”
“곡소리 날 텐데요?”
“평생 공부만 했으니 그 정도는 좀 해야 하지 않나 싶네만. 하하하.”
노형진은 그 말에 씩 웃었다. 뭐, 웃자고 한 말이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혼모 쪽은 이미 라인이 잡혀 있는데 그렇다고 다른 마땅한 기획 소송은 생각나지 않아서 말이야. 자네가 뭐 적당히 할 만한 거 있나?”
“글쎄요……. 생각을 해 봐야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이 아닌 건 아시죠?”
“피바람이 불겠지.”
미혼모 사건부터 염전 노예 사건까지 기본적으로 기획 소송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당연히 불편하고 거북스러우며 위험한 면도 있다. 심지어 가진 자들과 전면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한 번은 걸러 내야 하니까.”
“걸러 낸다라…….”
노형진은 송정한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당장 새론에 들어온 변호사들은 많다.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하지만 그중에는 단순히 새론이라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 들어온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새론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요.”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법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새론의 가치이며 목적이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네.”
“주요 사건을 안 준다 이겁니까?”
“그래.”
“인맥을 노리고 온 사람들이군요.”
“그렇겠지.”
새론은 거대한 곳이다. 그리고 대룡을 비롯한 대기업들과 거래할 뿐만 아니라 몇 번의 도움을 줘서 인해서 여러 부자들과 선이 닿아 있다.
“사회적 책임보다는 그냥 인맥을 만들려고 온 사람들이 적지 않네. 그걸 들어오는 시점에서는 걸러 낼 수가 없지.”
“그리고 그들이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들은 끊임없이 불만만 이야기한다. 그 정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자신들에게 소개시켜 주지 않는 것을 불평한다. 그리고 그 불평은 멀쩡한 변호사들과 사원들에게 퍼져 나간다.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노형진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생각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좀 확실한 것 좀 있으면 하네.”
“생각을 좀 해 보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획 소송을 할 만한 거라…….”
노형진은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노 변호사님, 뭘 그렇게 생각해유?”
“아, 그냥…… 기획 소송을 할 만한 걸 찾고 있습니다.”
강성태는 고개를 갸웃했고 노형진은 대충 개념을 설명해 줬다.
“그런 사건은 엄청 많을 것 같은데유?”
“그래서 문제지요.”
“아!”
강성태는 처음에는 너무 없어서 문제인 줄 알았더니 반대로 너무 많아서 문제였던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가 다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거참 복잡한 일이네유. 전 법을 안 배우길 잘했네유.”
강성태는 머리가 복잡한 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법적인 문제는 그가 생각하기에는 참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잡할 거 없습니다. 그냥 피해자들을 찾으면 됩니다.”
“피해자들이유?”
“네, 다만 그 피해자들이 저항할 방법이 없으면 소송이 진행될 수 있는 거지요.”
“어…….”
그 말에 강성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꼬깃꼬깃 꾸겨진 종이 한 장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이런 것도 될까유?”
“뭡니까 이거?”
“전에 있던 빵 동료가 준 건디 기회가 되면 좀 도와 달라고 했어유.”
“빵 동료?”
“야.”
빵 동료라는 것은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을 때 일일 것이다. 그러면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다.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빵 동료가 모두 의리가 있는 건 아니거든유. 그리고 그 녀석이 질이 좋은 녀석이 못되서리.”
“흠.”
결국 그다지 좋은 놈이 못되어서 그냥 신경 끄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가지고 온 겁니까?”
“생각해 보니께 빵에 있는 그 시키는 나쁜 놈일지 몰라도 그 누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다급하면 도와 달라고 편지를 보내겠슈. 그것도 빵으로.”
빵. 그러니까 감옥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적이다. 감옥으로 편지가 왔다는 것은 그가 감옥에 있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도움을 청했다는 건 엄청나게 다급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 죄수의 죄목이 뭔데요?”
“강도 강간유.”
“질 좋은 놈은 못되는군요. 그럼 그 사람한테 도움을 청한 사람은?”
“누나라던데유?”
“누나?”
“야.”
노형진은 강성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편지를 달라는 뜻이었다. 강성태는 노형진에게 편지를 노형진에게 건넸고 노형진은 그걸 보다가 어이가 없어서 입맛을 쩝쩝거렸다.
“이 내용 봤습니까?”
“봐쥬. 그래서 그냥 쌩깐 거여유.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런 느낌?”
‘뭐, 틀린 말은 아닌데.’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어떤 섬에 강제로 잡혀가서 티켓다방에 일하고 있으니 구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좋게 말해서 티켓다방이라고 하지, 사실상 성매매다. 그것도 강제적인 성매매.
‘동생은 강도 강간인데 누나는 강간당하는 셈이군…….’
참 웃긴 우연의 일치이기는 하다. 강성태가 슬쩍 모른 척하고 싶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피해자인 만큼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
“이걸로 하죠.”
“야? 하지만 고작 한 명인데유? 무슨 소송인가 하려면 피해자가 많아야 한다고 하지 않으셨슈?”
그 말에 노형진은 씁쓸한 얼굴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는…… 섬이 제법 많지요.”
“아…….”
“이걸로 하죠.”
노형진은 결심을 굳혔다.
* * *
“이번 사건은 티켓다방에 대한 대대적인 구출 작전입니다.”
“티켓다방?”
“네.”
“아니, 그게 아직도 있어?”
고개를 갸웃하는 송정한.
티켓다방은 변종 성매매의 일종이다. 티켓다방은 기본 적으로 한 잔씩 파는 게 아니라 두 잔씩 판다. 배달하는 종업원 것까지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커피를 배달하는 사람이 그냥 배달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직도 있습니다.”
“흠…….”
송정한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 되었다. 물론 성매매는 불법이다. 하지만 근절할 수 없는 불법이기도 하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가 성매매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걸 구출한다고? 요즘은 세상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그렇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지요.”
“그런가?”
“네.”
노형진이 말하는 것을 알아들은 김성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그렇지.”
과거 성매매는 납치와 협박, 폭행 등으로 점철된 말 그대로 최악의 인권 범죄였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고 급속도로 자본화됨과 동시에 성에 대해서 관대한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어떤 이유에서건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
“그런데 구출이라니. 그건 그들이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닌가?”
“도심지야 그렇지요. 하지만 섬이나 고립 지역에서는 그렇게 굴러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고?”
“네, 도시에 있는 해당 직종 여성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을 하기도 하고 쉬기도 합니다. 도시라는 특성상 이동이 자유롭고 쉽게 탈출할 수 있는 데다가 그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부족하니까요.”
“그런데?”
“하지만 섬은 아닙니다. 섬은 도시와 다르게 밀폐된 공간이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장소는 아니지요.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강제로 끌려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신매매죠.”
그 말에 손예은은 구역질 난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긴 여자 입장에서는 성매매라는 것 자체가 구역질 나는 사건일 수밖에 없다.
“기분이 좋은 사건은 아니죠.”
노형진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단 존재하는 사건입니다.”
“그건 맞습니다.”
김성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검찰에 있을 때 섬에서 오는 구조 요청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송정한은 김성식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구조 요청은 섬이 아니라 육지에서 발생합니다.”
“육지에서?”
그들이 잡혀 있는 장소는 섬이다. 그런데 육지에서 발생하다니? 그러나 다음 말에 송정한은 입안이 왠지 씁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