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2)
이해할 수가 없다. 단순한 질투라고 보기에는 너무 극단적이다. 그녀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건 어려서부터 드러났으니까.
“다시 음악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하고야 싶지. 하지만 결국 돈이 문제잖아?”
어깨를 으쓱하는 그녀. 하긴, 결국 변호사는 못 되고 사범대에 들어간 그녀에게 가족들은 크게 실망한 모양이다. 그 덕분에 사이도 많이 안 좋아진 모양이고.
“그냥 공무원 해서 얼른 시집이나 가야지.”
“시집? 결혼식장에 가다가 길이나 안 잃어버리면 다행이겠다.”
“그 정도는 아니거든?”
“과연 그럴까?”
피식거리면서 웃는 그녀.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왠지 심장이 뛰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의 첫사랑, 아니 풋사랑이라고 할 만한 게 그녀였다. 첫사랑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감정이라는 걸 알고 하는 거라면 풋사랑은 그저 마냥 좋아하는 것이다.
‘왜 잊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런 그녀에 대해서 노형진이 잊고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긴 하다.
“뭘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한참을 생각하던 노형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상하게 날 싫어했지.’
초등학교 때는 가까운 곳에 사는 데다가 같은 학교에 같은 반이었다. 게다가 어머니들까지 서로 아는 사이니 친하게 지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손채림의 어머니는 묘하게 자신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랬던 건가?’
아이들은 자기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걸 느꼈다면 아마도 영문 모를 호감보다는 부모에 대한 공포가 더 컸으리라.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정리했던 것이리라.
“아아…… 회가 점점 줄어든다…….”
“부족하면 더 시켜.”
“그래도 돼?”
“나 변호사다.”
“오오, 역시 엄친아.”
“그놈의 엄친아는.”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부모님에게 무시당하면서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나저나 졸업하면 어쩔 거야?”
“어쩌긴, 시험 보고 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지.”
“고등학교?”
“아니, 그냥 중학교에 가려고.”
“왜?”
“선배님들이 예쁜 여자 선생님이 고등학교에 가면 고생길이 열린대.”
“뭐, 부정은 못 하겠네.”
이제 막 여자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는 애들이니 과도하게 예쁜 사람이 오면 애들이 공부는커녕 이상한 생각만 할 것이리라.
“애들은 싫다며?”
“그래도 어쩌겠어. 먹고살긴 해야지. 안 그래? 그리고 고등학생 놈들은 하는 짓이 징그러.”
“하하하.”
“말도 마. 그래서 고등학교 다닐 때는 여자 선생님들이 죄다 바지만 입는다더라.”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나같이 예쁜 사람이 바지를 입는 건 세상에 대한 죄를 짓는 거라고.”
“그런 죄목은 없는데?”
“거참, 변호사 아니랄까 봐.”
킬킬거리면서 웃는 두 사람.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 순간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왜?”
“배가 아파.”
“화장실 다녀와.”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거리낌 없이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는 그녀. 그 순간 노형진은 걱정되기 시작했다.
“설마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지?”
“에이, 설마. 아줌마, 여기 화장실 어디예요?”
“저 위로 100미터 정도만 올라가면 공동 화장실 있어요.”
“네.”
아무래도 시장 건물이다 보니 공동 화장실을 쓰기 마련이다.
그녀가 화장실에 가고 난 후 노형진은 조용히 회를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도중에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선으로 100미터 정도이니 길이고 뭐고 그냥 거꾸로 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안 와?”
3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손채림 때문에 노형진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 화장실 주위에 다른 곳으로 빠지는 길이 있나요?”
“아니, 직선인데요?”
근데 오질 않는다니? 노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디야?”
“여기? 어…… 모르겠는데?”
노형진은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고작 100미터 떨어진 화장실이다. 그런데 길을 잃어버렸다고?
“화장실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려오면 되잖아?”
“들어갈 때를 기준으로 오른쪽?”
“당연히 나올 때를 기준으로 오른쪽이지.”
“그래? 그럼 반대로 온 건가?”
“반대? 잠깐…… 그럼 반대로 갔단 말이야? 그런데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건데?”
30분이면 사방을 다 헤집고 다니고도 남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지 않았다고?
“글쎄…… 걷다 보니 여기네.”
“게다가 도대체 어딘데?”
“그러니까…… 사람이 많아. 그리고 하얀 트럭이 지나가고 있고…… 아, 파란 오토바이도 한 대 지나간다.”
‘데자뷰인가.’
며칠 전 야밤에 겪은 일과 너무나도 똑같은 느낌에 노형진은 멍해졌다.
“미안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좀 바꿔 줄래?”
“응, 잠시만.”
“여보세요.”
“네, 혹시 거기가 어딘가요?”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장소를 말했다.
“여기 사육신 공원인데요.”
“네?”
“말이 되느냐고요.”
노형진은 서류를 정리하면서 툴툴거렸다.
“수산 시장 근처도 아니고 사육신 공원이라니. 거긴 수산 시장을 훨씬 벗어나지 않습니까? 아니, 애초에 물고기가 주변에서 사라지는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다니요?”
툴툴거리는 노형진을 보면서 무태식은 피식 웃었다.
“길치란 원래 그런 겁니다.”
“네?”
“제 친구 중에도 그런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과 10년이 넘게 만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죠. 저 녀석한테 길을 설명하느니 그냥 데리고 오는 게 빠르다.”
“…….”
“길치란 원래 그런 겁니다.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길을 보니까요. 심지어 그 녀석은 갔던 길도 거꾸로 가라고 하면 잃어버립니다. 물론 그분 같은 경우는 좀 심하기는 하네요.”
“헐.”
“아니, 거꾸로 가라고 할 필요도 없이 밤낮이 바뀌면 못 찾아요.”
“그래요?”
“네, 길치라는 존재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흠.”
확실히 그런 것 같긴 하다. 몇 번이나 만났지만 여전히 손채림은 길을 잃어버리고 있고 노형진은 그때마다 찾아다니고 있다.
“그냥 여자 친구분을 데리러 간다고 생각하시는 게 편합니다.”
“여자 친구 아닌데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여자 친구 같습니다만.”
“네?”
“주말마다 만나시고 매일 한 번 이상은 그분 이야기를 하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말을 하려던 노형진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행적을 더듬어 보니 확실히 그랬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예 주말 하루는 빼놓고 그녀를 만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친분이 아니라면 노 변호사님이 관심이 있는 거죠.”
“그…… 그렇습니까?”
“네.”
과거의 풋사랑의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죄책감 때문일까? 확실히 그녀를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벌써 한 달째 매주 보고 있는 것이다.
‘문자도 자주 하고…….’
바쁘지 않으면 가능하면 대꾸해 주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은근히 문자도 많이 하는 편.
“원래 당사자만 모르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게 연애라고 하지 않습니까?”
“끄응…….”
“이참에 제대로 한번 만나 보시죠. 어차피 노 변호사님은 아직은 자유롭지 않습니까?”
“아직이라니요?”
“슬슬…… 마담들이 올 텐데요?”
“아아아.”
마담뚜. 변호사나 검사, 판사 같은 ‘사’ 자 돌림인 직업 종사자들을 부잣집 딸들과 연결해 주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아직은 안 왔네.’
사실 보통 사법연수원을 졸업하자마자 온다. 하지만 노형진은 어린 데다가 군대 문제도 있어서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군대 문제도 해결되었고 이제는 성인이라고 할 만한 나이가 되었다. 스물한 살이면 결혼하기에는 이른 나이일지도 모르지만 연애를 시작하기에는 적당한 나이다.
“무 변호사님도?”
“말도 마십시오. 매일같이 전화가 옵니다.”
‘하긴.’
노형진 자신도 회귀 전 아내와 그렇게 만났다. 문제는 그녀가 심각한 낭비벽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자신의 자식들조차 남의 자식이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볼일 없는 사이라는 거네?’
만일 진심으로 자신의 자식이었다면 회귀했다 하더라도 가끔은 그리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낳은 아들과 딸은 남의 자식이었고 아내는 그저 돈을 쓰기 위해서 자신을 이용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혼소송 후 노형진이 미국으로 가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어차피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다. 아니, 만날 수밖에 없다. 회귀 전의 아내는 아름답긴 하지만 좋은 사람도 아닐 뿐더러 자식도 남의 자식이니 키우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손채림이라…….’
확실히 자신에게 엄친딸이라 불리던 사람이니만큼 부족함은 없는 사람이다. 아니, 사실 조건 자체만 보면 무척이나 좋다. 절대음감에, 공부도 잘한다. 그녀의 이번 인생이 꼬인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부모님과의 불화 때문이다.
‘근데 왜…… 날 싫어하는 걸까?’
손채림의 감정은 알 수 없다. 자주 연락하고 지내기는 하지만 여전히 감정을 읽기 힘든 게 여자다. 몇 달 동안 분위기가 좋다가도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차 버리는 것도 여자이니 좋아한다는 확신도 할 수 없다.
‘문제는 채림이네 엄마라는 건데.’
설사 그녀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들 채림의 어머니는 이상하게 자신을 어려서부터 싫어했다. 이제는 자신이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긴 했지만, 그런다고 좋아할 것 같지도 않았다.
‘나중에 어머니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네.’
왜 그렇게 자신을 싫어하는지 노형진은 때를 봐서 물어보기로 했다.
“뭐, 그건 나중에 생각합시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아직은 초창기인데 뭘 고민합니까?”
“하하하, 젊다는 건 좋군요.”
“무 변호사님은 무슨 환갑쯤 되신 것같이 말씀하십니다.”
그 말에 무 변호사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전 결혼이 코앞에 닥친 나이죠.”
“뭐, 그렇기는 한데……. 일단 일에 집중합시다.”
“네.”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 노형진은 이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작은 사건이란 없다 (1)
“안 갑니까?”
“사건 하나만 더 보고 가면 안 될까요?”
“송 변호사님이 오라고 안 해요?”
“보고 오랍니다.”
“쩝.”
김화란의 사건은 워낙 증거가 넘쳐서 힘들지 않았다. 혼인 빙자 간음으로 처벌받고 난 후에는 민사소송을 넣어서 이혼 후 얼마 남지 않은 재산을 몽땅 털어 왔다. 뭐, 그 덕분에 그 전 남자 친구라는 놈은 아랫도리를 잘못 놀린 죄로 길바닥으로 쫓겨났지만.
‘뭐, 내 알 바 아니지.’
자신은 자신의 의뢰인의 승리만 생각하면 된다.
“그나저나 노 변호사님.”
“네?”
“우리, 재판한 거 맞죠?”
“네.”
“맞선 본 거 아니죠?”
“아니죠.”
“근데 왜?”
“나야 모르죠.”
이상하다 싶었다. 사건이 끝나고 난 후 김화란 사건을 할 때도 문석규가 계속 재판정에 나왔던 것이다. 사실 관련이 없어서 그가 나올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흐르는 분위기하며.
‘청첩장만 보내지 마라.’
뭐,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렇게 정분이 났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나저나 노 변호사님도 사람 한 명 뽑아야 하지 않습니까? 면허도 따야 하고요.”
“그게 문제네요.”
일단 무태식이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그는 새론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서류 작업이나 기타 작업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을 뽑긴 해야 하는데.”
“제가 나가면 변호사도 부족할 것 같은데요?”
“끄응.”
노형진의 전략은 정확하게 먹혀들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나는 변호사입네.’ 하고 모가지에 힘주고 사건이 오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변호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자 그들이 그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엄청난 수의 사건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더 보내 달라고 할까요?”
“에이, 미안해서 어떻게 그럽니까?”
“하나도 안 미안해하셔도 됩니다. 지금 새끼 변호사들의 꿈이 여기에 오는 겁니다. 민 변호사가 승승장구하는 거 보고는 여기서 일을 배우는 게 꿈이 되었다니까요.”
“새끼라고 할 정도는 아니잖습니까?”
벌써 거기서 몇 년을 일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새끼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무태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사건이 들어와야지요.”
“대룡에서 안 줍니까?”
“그런 걸 우리한테 줄 리가 있나요?”
그들에게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야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대룡의 사건들은 허투루 할 수가 없다. 당연히 더 전문적이고 높은 변호사들에게 배당된다. 자신들이 맡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걸 하자니 새론 자체가 대룡에 기대는 부분이 많아져서 일반적인 사건이 부족해졌다.
“그래서 아직 후임도 한 명도 못 받았습니다.”
“아직도요?”
민시아 변호사를 만난 게 중학교 때다. 그때부터 벌써 6년가량이 흘렀으니 새로운 변호사가 들어왔어야 맞다.
‘어쩐지.’
새끼 변호사를 보내 준다고 했는데 6년 차를 보내 줘서 깜짝 놀라기는 했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솔직히 송 변호사님은 이번에 부서를 두 개로 나눌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대룡에 너무 기대고 있다고 생각하시거든요.”
“왜요?”
“아시잖습니까, 대룡이 전쟁 중인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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