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32)
‘뭐, 진단서 같은 건 돈만 주면 가라로 가지고 올 수 있니까.’
그런 상황에서 판사까지 저쪽에 넘어가 있다면 100% 그는 정신병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용해지면 풀려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형진은 송정한을 바라보았다.
“좀 곤란한 사건이군.”
송정한조차도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딱 잘라서 거절하자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야 알지?”
“압니다. 언제는 안 그랬습니까?”
범인인 백승모의 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상업회의소 회장이다. 경제 시장에서 가지는 위력은 어마어마할 테니 그대로 정치권에 들어갈 것이다.
‘애초에 상업회의소의 건립 목적이 대정부 압력이니.’
그들이 민간단체이면서도 사실상 정부에 강력한 입김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득을 위해서 정부와 결탁하거나 다른 세력과 결탁하는 데 능하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모른 척할 수도 있다. 형사사건은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가 해야 하는 일인 만큼 노형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비싼 것은 양심이라고 했다. 한번 양심을 팔아먹으면 계속 팔게 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왜 우리한테 온 겁니까? 다른 선배도 많은데?”
그 말에 유창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다들 발을 빼더군요.”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사실 새론은 크고 힘이 있기는 하지만 법조계에서 그다지 우호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다른 변호사들과 다르게 몸을 낮추고 가격을 낮췄다. 더군다나 그동안 일부 부자들에게만 비밀리에 진행해 주던 서비스를 모든 국민에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변호사들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상황.
‘그런데 여기까지 밀려왔다. 이거지.’
“나중에는 경찰을 통해서 프로파일러를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프로파일러들이 출장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물론 프로파일러들이 바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수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기록을 보고 판단하는 것은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렇다는 것은 경찰에서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거절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군요.”
법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찾는 데다가 자체적으로 프로파일러가 있는 새론으로 온 것이다.
“뒤가 안 좋을 겁니다.”
노형진은 담담하게 유창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일단 수사 중인 사실을 외부에 알렸다는 현행법 위반인 것은 둘째치고 위에서 풀어 주라는 것을 대놓고 무시했으니 당연히 상당한 압력을 들어올 것이다. 버티면 지방으로 갈 테고 나가도 전관은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
“뭐,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우리들은 그런 데 신경 안 씁니다.”
“우리들?”
“개인적인 모임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씩 웃는 유창식. 하지만 그 짧은 말로도 노형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위험한 게임을 하는군.’
정부는 자기 조직 내에서 사조직을 만드는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대다. 과거 하나회라는 사조직이 쿠데타의 핵심에 섰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검찰도 마찬가지이지다.
“스릴을 즐기시나 봅니다.”
“저쪽도 미친놈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쪽도 미친놈들 많거든요. 미친놈 불변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상은 어딜 가나 미친놈이 있기 마련이다. 만일 다들 정상이라면 내가 미친놈이다.”
“하하하.”
유창식이 말하는 내용은 간단했다. 내부에 법적인 정의를 위해서 뭉친 검사들끼리의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 봤자이기는 하지만.’
노형진은 그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들은 존재하지만 힘을 쓰지는 못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사법 정의를 실현시키지 못한다. 압력을 행사하기에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사조직 자체가 불법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일단 승진 시즌이 오면 모래성처럼 부서지는 게 사람이지.’
유창식은 평검사다. 아직 정의에 불타고 있고 사건에 관련해서 그다지 유혹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승진하고 그에 따라서 엄청난 뇌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초심을 지키는 검사가 줄어든다.
‘그래서 결국 개혁은 물 건너갔지만.’
노형진이 회귀하기 전 대한민국이 지옥 그 자체라 불리던 그 시점까지 결국 검찰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있다는 사실에 노형진은 손을 좀 써 볼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그거, 제가 하지요.”
노형진은 유창식의 두 손을 꼭 잡았다.
* * *
“위험한 행동일세.”
송정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노형진이 지금까지 위험한 행동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을 만드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상이 너무 다르다.
“압니다.”
노형진은 이참에 유창식의 그 집단에 힘을 좀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당연히 자신이 사건을 풀어서 정보를 주는 방식도 해당된다.
“하지만 그게 잘되면 우리가 가질 파워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거야 그렇지만…… 사조직이라니.”
“어차피 있는 사조직입니다. 안 그런가요?”
“하아.”
웃긴 일이지만 이미 사조직은 충분히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들은 그냥 취미 활동이나 봉사활동을 가장한다. 애초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있는데 자기 이득을 위한 조직이 안 생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이득을 위해서 일하는 사조직은 묵인되는데 정당하게 정의를 세우려고 하는 사조직은 묵인되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건 그러네만…….”
송정한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자신이 판사로 있었던 시점에도 사실 사조직은 있었다. 다만 그 조직원들 역시 나이 먹고 타락하면서 이탈했다.
‘결국은 그 덕분에 내가 쫓겨났지만…….’
노형진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 공식적으로 자신이 그만둔 것이지만 비공식적으로 자신을 쫓아낸 것이다. 원래 조직에서 변절한 사람이 더 과거에 예민한 법이다. 송정한과 함께 사법 정의를 부르짖던 동료들은 타락하고 뇌물에 넘어가면서 동료들을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신념을 안 버리는 송정한이 불편했다. 그들은 합심해서 자신을 공격했고 그 덕분에 자신은 그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집요하네. 우리 회사 자체에 문제가 될지도 몰라.”
“그러니까 안 걸리게 할 방법을 찾아야지요.”
“끄응…….”
“원래 법이라는 게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그들은 집요하다. 노형진을 만나기 전까지 새론이 망해 간 이유가 바로 그러한 집요함 때문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새론은 망한다. 그러나 노형진이 나서면서 새론은 새롭게 태어났다. 그것도 신념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웃긴 일이야…….’
송정한은 과거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도리어 변호사들 중에서 자신처럼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변호사들은 조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거대 로펌에 속했다는 것 자체가 전관을 받으면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신념을 지키기가 더욱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하지 말까요?”
노형진은 빙긋 웃으면서 송정한을 바라보았다. 그는 송정한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지만 그냥 물어본 것뿐이었다.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에효…… 그냥 걸리지나 말게.”
“알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송정한은 결국 노형진에게 수긍하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 역시 신념을 꺾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일단은 가장 먼저 뭘 할 생각인가?”
“일단은…… 사건 기록을 분석해 봐야지요.”
노형진은 제법 두툼한 서류를 보면서 고개를 중얼거렸다.
* * *
김소라는 사건 파일을 열면서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 사건 파일 내부에 현장 사진을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가해자는 기괴할 정도로 통제욕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소라는 이번 사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프로파일러 팀은 사건이 넘어갈 때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 사전에 선입견을 가질 만한 자료는 모두 가리고 받는다. 이름이나 생년월일 등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 기록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학성애자는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가학성애자는 아니라니?”
사건 기록에 따르면 그는 가학성을 가진 정신 질환자로 되어 있다. 그런데 가학성애자가 아니라니?
“가학성애자와 통제 욕구를 가진 자는 전혀 다릅니다. 가학성애자는 상대방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즐깁니다. 그래서 좀 더 가학적인 고문법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손발톱을 뽑거나 칼로 상대방을 찌르는 식입니다. 하지만 통제 욕구를 가진 사람은 상대방에 대해서 통제하고 자신의 발아래 두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고통에 못 이겨서 자신에게 비는 것을 즐기죠. 그래서 덜 치명적이지만 고통을 줄 수 있는 행위를 즐깁니다. 피해자의 시신을 보면 직접적인 피해의 대다수가 외부에 고문에 의해서 발생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가학적 도구보다는 뜨거운 물이나 다리미 등 고통은 주지만 치명적이지 않은 것을 이용했다는 뜻이지요. 그건 상대방이 죽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했다는 뜻입니다.”
“세심하게 배려했다?”
“쉽게 말해서 피해자가 죽는 순간까지 괴롭힐 목적으로 최대한 죽음을 늦추려고 한 겁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 대해서 무척이나 지배 욕구가 강합니다. 즉, 그의 죽음마저 통제하려고 한 겁니다.”
그 말에 무태식은 얼굴을 찌푸렸다. 세심하게 배려한다는 그 표현이 왠지 전혀 안 어울리게 들렸던 것이다.
“차라리 이럴 때는 한 번에 죽여 버리는 게 배려 아닙니까?”
“자기를 위한 배려죠.”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배려.
“희생자는 아마도 운동을 하던 선수, 특히 인기가 많았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진에 따르면 희생자는 상당히 근육이 발달한 상태입니다. 보디빌딩이나 강제적 운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실전적 운동을 통해서 만들어진 근육입니다. 그런 걸 봤을 때 운동선수일 가능성이 높지요. 그리고 희생자의 마지막 유류품을 보면 패션에 예민한 편입니다. 그렇다는 건 자신을 상당히 꾸미는 편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기가 많지요.”
김소라의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피해자는 해당 학교 농구부의 주장으로 여성 학우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졸업하고 난 후 프로 전향이 확실시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해자와 그다지 일면식이 있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네?”
“뭐라고요?”
그 말에 무태식을 비롯한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피고가, 아니 변호사가 주장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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