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33)
“지금 변호인들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괴롭혀서 그로 인한 정신병 발작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건 내가 봐도 아닙니다. 그건 변명일 뿐이에요.”
노형진은 기록을 넘기면서 피식 웃었다. 변론을 하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것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 중 하나다.
“사람은 괴롭히면 애초에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 한계가 넘어섰을 때 반격을 하기는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그 정도의 폭력이 진행되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노형진의 말에 김소라 역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긍했다.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만일 원한 관계에 의한 보복이었다면 확실하게 끝내는 쪽을 선택할 겁니다. 그런데 이건 장시간 죽지 않을 만큼 괴롭혔고 결국 닷새 만에 쇼크사 했지요. 이건 괴롭힘에 의한 보복이 아닙니다.”
“그럼 왜 그런 건가? 이유가 없지 않나?”
“이런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다는 원한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쉽게 말해서 너만 아니면 내가 1등이라는 심리지요.”
“흠…….”
“그런 상황에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위에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극도의 흥분과 쾌감을 줬을 겁니다.”
“흠…….”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김소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우려 섞인 목소리로 천천히 그녀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거 인격 장애 아닙니까?”
인격 장애는 정신병의 한 종류지만 치료 대상에 들어가는 질병은 아니다. 말 그대로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성격이 이상한 것뿐이다.
“맞습니다. 인격 장애죠.”
정신병이 처벌받지 않는 이유는 그 상황에서 어떤 게 바른 일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격 장애는 성격이 나쁠 뿐, 이성적으로 그게 범죄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는 않겠지요.”
김소라는 서류를 보면서 찹찹한 듯 말했다.
“프로파일러를 참석시키지 않은 이유가 있네요.”
노형진은 유창식의 부탁이 거절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공식적으로 프로파일러는 범죄를 추적할 때 일한다는 게 이유지만 실질적으로 프로파일러들이 범인에 대해서 정신이상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리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찌 되었건 상대방은 작심하고 나올 텐데요?”
무태식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검사에게 대놓고 압력이 들어올 정도면 서류를 조작해서 증거를 내미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
“하긴…… 그렇기는 하겠군요.”
“일단 그걸 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들이 내밀 수 있는 증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노형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뭐라고요?”
노형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쪽에서 국민 참여 재판을 신청했다고 했습니다.”
“국민 참여 재판을요?”
유창식의 목소리에는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팍팍 들고 있었다. 그리고 노형진이 봐도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왜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죠.”
지금 백승모에 대한 국민적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런데 국민 참여 재판을 한다는 건 자기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다는 소리이다.
‘이게 무슨 일이래?’
노형진은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황급하게 유창식에게 백승모의 변호사를 물어봤다.
“아무래도 상대방 변호사가 만만치 않은 사람인 것 같은데 누굽니까?”
“손하균입니다.”
그 말에 노형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좋지 않군요.”
“좋지 않다고요?”
“네.”
노형진은 한숨이 나왔다.
손하균.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2위 로펌인 태양 로펌의 주인이자 최강의 변호사로 유명한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과 가장 비슷한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힘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
‘그리고 손채림의 아버지…….’
지금은 자신의 꿈을 위해서 유학을 간 손채림의 아버지이기도 한 손하균은 절대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혹시 그쪽에서 실수한 게 아닐까요?”
유창식의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는 이런 터무니없는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다. 단순히 서류 접수를 잘못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큰 차이니까.
“큭…… 대충 알겠네요.”
“뭡니까?”
“면죄부입니다.”
“면죄부?”
“네, 지금 백승모는 사실상 국민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만일 일반인이 판단하는 국민 참여 재판에서 그가 정신이상이라는 점이 인정된다면 국민들도 납득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인 재기도 훨씬 쉽지.’
쉽게 잊어버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특성상 그런 분위기만 잘 맞춰 주면 그는 그저 불운한 미친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텐데요?”
그러나 이미 백승모는 국민적 여론으로 찍혀 있는 상황. 그런데 국민 참여 재판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문제는 그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것.
“그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뒤집을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
그 말에 유창식은 침묵을 지켰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 *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서 결국은 재판 날짜가 되었다. 노형진과 새론에서 최대한 증거를 모아서 넘겨줬지만 상대방은 법무 법인 태양. 그것도 최강의 변호사라 불리는 손하균.
‘과연 어떤 카드를 가지고 나올까?’
노형진은 오늘 재판을 보기 위해서 자신의 변론 기일조차도 미루고 재판정을 찾았다. 어떤 증거가 나왔는지 알아야 반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이번 사건에 피해자는 정신적 이상 증세를 가지고 있어 그로 인하여 범죄를 저질렀고.”
재판정에서 변호사 측은 미리 준비된 변론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물론 노형진 측의 증거를 받은 유창식 역시 만만치 않게 반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피고의 정신이상이 갑자기 급격하게 나빠져서 공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더군다나 기존의 정신이상으로 인한 범죄를 보면 가해자는 장기적 고문이 아니라 단기적이고 순간적인 공격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 범죄에서는 가해자는 장시간에 걸쳐서 집요하게 괴롭혀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나름 이론적인 반박이 이어졌고 사람들의 분위기는 확실히 검사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뭐지……? 뭐냐……?’
노형진은 손하균을 보면서 뭐가 목적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노력하려고 했다. 하지만 손하균은 전면에 나서서 말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하긴 그쯤되는 사람이 나서서 변론할 일은 별로 없다. 아랫사람들이 다 변론해 주니까.
‘분위기는 확실히 백승모 쪽에 불리한데.’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하균을 바라보았다. 그다음 순간 노형진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웃어?’
그는 분명히 웃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에서 말이다. 노형진의 시선을 느꼈던 것일까? 손하균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노형진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차례가 오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그는 재판정 앞으로 나가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점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심대한 폭력을 행사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하여 가해자, 아니 가해자로 보이는 백승모 군은 정신병이 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도정만은 그러한 폭력 행위를 멈추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결국 백승모 군은 장시간의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도정만의 공격 행위는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서 이번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도정만과 백승모는 대학을 다니기 전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습니다.”
도정만과 백승모는 같은 지역 출신이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왕따가 이루어 졌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학교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경찰이나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도 않고 수사할 의지도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글쎄요. 말이 안 되는 소리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왕따나 학교 폭력이 있는지 모르지는 않으실 텐데요? 그때마다 검찰과 경찰은 해결한다는 말뿐이지요. 결국 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까지 그저 모른 척할 뿐입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백승모가 아니라 이 나라 경찰과 검찰입니다.”
노형진은 뭔가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노형진이 한번 써먹었던 방식이다.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책임을 다른 곳으로 밀어 내는 방법.
“피고인 측의 주장대로라면 도정만이 백승모를 괴롭혔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아주 장시간에 걸쳐서요. 그런데 그런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유창식은 강력하게 들어오는 손하균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역공을 취했다.
“여기 있습니다. 재판장님, 증거로 가해자 백승모가 피해자 도정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제출하는 바입니다.”
그와 함께 내밀리는 사진들. 그리고 그걸 본 노형진은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당했습니다.”
노형진은 재판을 마치고 나온 유창식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유창식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당했네요.”
사진은 도정만이 무척이나 악질이라는 사실을 보여 줬다. 사람들을 구타하고 돈을 빼앗았다는 진술과 그 장면에 찍혀 있는 백승모.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같은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부딪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젠장…….’
그 증거들로 인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학교 폭력이다. 매년 수많은 청소년들이 학교 폭력으로 자살한다. 그리고 학교 폭력을 옹호하는 사람은 없다.
“배심원들의 분위기가 그렇게 바뀔 줄이야…….”
“그동안 정부에서 학교 폭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반작용입니다.”
시쳇말로 학교 폭력 가해자는 죽어도 싸다는 것이 국민들의 법 감정이다.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괴롭혔고 그 때문에 미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기 충분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사망한 사람은 패션에 상당히 많이 신경을 쓰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현대는 금전 만능주의 세상이다. 쉽게 말해서 꾸미려고 하면 돈이 있어야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젠장…… 내가 직접 뛰었어야 했는데.’
자신의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에 유창식이 준 정보 내에서 움직이면서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았는데 전혀 엉뚱한 바깥에서 증거가 나온 것이다.
‘유 검사는 우리 변호사가 아닌데. 큭…… 실수다.’
그는 분명히 기소에 필요한 증거만을 모았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모아서 분석하는 새론 방식의 변론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도정만이 가해자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감옥에 넣는 것이지, 희생자의 상황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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