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4)
‘개 밥그릇에서 기억을 읽어 냈다고 말할 수는 없지.’
하지만 노형진은 확실하게 보았다, 아무도 없는 집으로 들어와서 개 밥그릇에 독이 섞인 사료를 두는 누군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가 서무학인 건 뻔했다.
‘이거는 참 좋네.’
과거의 기억을 읽을 수 있으니 진실을 찾는 건 쉬웠다. 물론 그걸 입증하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기억을 읽는 것과 그걸 법에 맞게 입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럼 절도죄로 고발하실 겁니까? 근데 이미 죽은 뒤라 증거도 없고…….”
가장 가까운 게 바로 절도죄다. 가족이니 어쩌니 해도 개 자체는 물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가 죽었다는 것. 즉, 객체의 가치가 소멸했기 때문에 그게 절도가 성립하느냐는 확실하지 않은 문제였다.
“그냥 절도로 넣을 생각은 없습니다.”
“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피해야지요.”
“설마…… 그놈이 죽인 것까지 고발하시려구요?”
“네.”
“무리 아닙니까?”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란 같은 범죄로 두 번 처벌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 절도로 넣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렇게 되면 나중에 더 큰 범죄가 드러났을 때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돈을 받았으니 확실하게 해야지요.”
“끄응…….”
무태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에게는 답이 보이지 않는 사건인데 거기서 길을 찾겠다니.
“그럼 어쩌실 생각입니까?”
“일단 그놈을 만나 봐야지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를 만나 보는 게 중요하다.
“거참, 사람이 야박해도 그렇지, 고작 개 새끼 한 마리 죽은 걸 가지고.”
반짝이는 대머리에 욕심으로 가득한 눈에 신경질적이고 빼빼 마른 얼굴까지. 아니나 다를까, 서무학은 기억 속에서 본 그 사람이 맞았다.
“그러니까 사과하고 합의하시는 게…….”
“웃기지 말라고 그래. 개 새끼 한 마리 죽은 걸 가지고 변호사를 사? 참 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세상이 그렇게 삭막하게 변했나그래?”
도리어 자기가 억울하다면서 화를 버럭버럭 내는 그. 하지만 노형진은 그가 화를 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그가 맞는지 확인만 하러 온 것이니까.
“그래서 합의 의사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합의 의사? 웃기고 있네. 고작 죽은 개 새끼 한 마리 가지고 합의는 무슨 합의야! 법대로 해! 법대로!”
“법대로 하시면 곤란하실 텐데요?”
“어디서 협박질이야! 안 꺼져? 누구는 아는 변호사 없는 줄 알아? 법대로 하라고!”
온갖 욕을 다 먹고 문전박대 당하고 그의 가게에서 쫓겨난 노형진.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하긴, 죽은 개 한 마리 가지고 변호사를 산다는 건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어쩌죠?”
“어쩌긴요. 제대로 해 봐야지. 일단 저 인간이 범인은 맞으니까.”
“하지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일단 형사처벌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형사처벌이 쉬운 건 맞습니다만 이런 경우는 민사가 먼저입니다.”
사람들은 형사에서 민사로 넘어가는 것만 생각해서 형사를 해야 민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민사가 먼저여도 상관없다. 다만 증거를 모으는 게 쉬운 게 아니라서 형사부터 할 뿐이다.
‘이걸 경찰에 신고한다고? 그런다고 경찰이 수사해 줄 리가 없잖아?’
경찰이 동일한 조건으로 똑같이 해 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러니 직접 뛰는 수밖에.
‘에효, 내 팔자야. 괜히 한다고 했나?’
사람 사건도 벅차 죽겠는데 개 사건까지 담당하다니.
‘역시 사람을 더 뽑아야겠어.’
서류 작업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더 급한 건 정보원이다. 정보원이 있다면 직접 뛰지 않고도 정보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다. 그러면 사건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으리라.
“그럼 어쩌죠? 이대로 돌아가나요?”
무태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봤을 때는 이번에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워낙 시골이다 보니 CCTV도 없지 않은가?
“CCTV가 만병통치약인 건 아닙니다. 옛날에는 그런 거 없이도 잘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발로 뛰어야지요.”
언제부터인가 그게 중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긴, 동선을 추정하는 데에 CCTV만큼 좋은 게 있을까? 하지만 보조는 될지언정 전부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요즘 변호사들은 그것의 편리함 때문에 그걸 사용하는 데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세 치 혀는 바깥에서 갈고닦는 겁니다.”
카메라가 없다고 해도 여전히 증거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독이라…….”
“네.”
“그건 뭐 하시려고?”
“그냥 쓸데가 있어서요.”
“쓸데라니?”
“주변에 들개가 좀 많아서요.”
덥수룩한 머리, 지저분한 옷, 허름한 남방에 늘어진 속옷까지. 그걸 본 주인은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거라면 씨알렌이지.”
“씨알렌요?”
“그래, 효과가 빨라서 먹는 순간 훅 가지. 냄새도, 맛도 없는 놈이야.”
구석에 가서 안쪽을 뒤적거리던 남자는 불투명한 하얀색의 작은 통에 담겨 있는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원래 제초제이기는 한데 들개한테는 이놈이 딱이라니까.”
“그래요?”
“그럼.”
노형진은 주변에서 자신 또래의 남자에게 옷을 빌려서 수더분한 시골 청년으로 변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태식 역시 그런 모습으로 변장하고 곁에 있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상황에 속으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먹으면 바르르 떨면서 경기를 일으키다가 한 번에 훅 간다니까.”
“다행이네요. 요즘 들개 때문에 죽을 맛이라니까요.”
“아휴, 내가 알지, 알아. 어디 들개뿐인가? 멧돼지까지 난리니.”
“맞습니다. 작년에도 고구마를 심어 놨더니만 밭에 들어와서 작살내 놔서 말이죠.”
“자네도 그랬나? 나도 그랬는데. 뭐, 그건 제작년 일이지만.”
“어떻게 하셨는데요?”
“어떻게 하긴, 멧돼지가 좋아하는 음식에 이걸 타서 놔뒀더니, 먹고 바르르 떨더니만 벌러덩 자빠졌지. 내가 안 써 보고 이걸 추천해 주겠나?”
“우와!”
그걸 보면서 무태식은 깜짝 놀랐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노형진은 마치 아는 사람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접근해서는 순식간에 단골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캬! 그 정도란 말이죠? 아깝네요. 그렇게 잡을 수 있으면 멧돼지도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
“팔면 되는 거지, 뭘. 나도 그놈을 팔아서 돈푼깨나 만졌지.”
“네? 하지만 독극물 아닙니까? 팔릴 것 같지 않은데요?”
“아, 이건 살까지 흡수되지도 못해. 먹는 순간 오장육부가 뒤집히거든. 그래서 내장만 처리하면 고기는 깨끗해.”
“그래요?”
“그럼. 저기 아래 개장수 서 씨 알지? 그 사람도 쓰는걸?”
“서 씨 아저씨도요?”
예상치 못한 정보에 노형진은 눈을 번뜩거렸다. 그러나 티를 내지 않고 은근히 물었다.
“그럼 아무리 개장수라지만 짐승 죽이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 개밥에 이걸 섞어 먹이면 그냥 훅 가지.”
“작년에도 그 아저씨네 개고기 먹었는데.”
“탈 안 났지?”
“네, 멀쩡하던데요?”
“이놈이 원래 그래. 내장만 상하지, 살은 멀쩡하거든.”
“감사합니다. 근데 그럼 좀 더 주시겠어요? 그렇게 좋은 거라면 멧돼지 잡는 데에도 써야겠네요.”
“하나 더 줄게. 합쳐서 5만 원.”
“감사합니다.”
그걸 받아서 실실 웃으면서 나오는 노형진. 무태식은 그게 마법이라도 부린 것같이 보였다.
“어떻게 한 겁니까?”
“뭐가 말입니까?”
“아니, 방금 벌어진 일 말입니다.”
들어간 지 10분도 안 되었는데 주요 증거와 증언을 받아 내고 나왔다. 보통 이야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하면 입을 꾹 다무는 게 사람들이다. 그런데 술술 다 말하다니.
“친해지는 기술이죠.”
“친해지는 기술?”
“네, 원래 웃으면서 다가가서 알랑방귀 좀 뀌면 다 친해지기 마련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처음에 옷을 빌리고 아이스크림을 사기에 뭘 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뜬금없이 농약상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뭔가 말하는가 싶더니 떡하니 증거를 받아 냈다.
“원래 이런 곳에서 독극물을 구하는 루트는 뻔합니다.”
“그거야 알겠습니다만…… 지금 그건…….”
“직접 해 보셔야 합니다. 이건 배운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하하하.”
“끄응…….”
친해지는 방법은 동질감을 이용하는 것이다. 동질감을 가지도록 대화를 유도하면서 정보를 캐내는 방법은 다른 변호사들이 모르는 그만의 스킬이었다. 가르쳐 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나저나 서무학이 사건을 저지른 건 확실해진 것 같군요.”
죽을 때의 증상도 그렇고 기존에 노리던 행동도 그렇고 사건 이후의 행적도 그렇고, 서무학이 저지른 사건이 맞긴 하다.
“하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지 않습니까?”
“증거는 찾으면 나오는 겁니다. 제가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살인 사건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는 뭡니까?”
“그거야…… 유전자나 지문이겠지요. 족적이라든가.”
“그런데 그게 왜 이번 사건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야…….”
말을 하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살인 현장에서 유전자가 증거라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그걸 안 찾고 있을까?
“사건에는 크고 작은 게 없다는 걸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노형진이 사건에 경중이 없다고 했고 그걸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실제로 적용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개 밥그릇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살인 현장과 똑같아요. 다른 건 그걸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증거는 변하지 않는데 사람의 태도가 변하기 때문에 사건에서 지는 겁니다.”
“…….”
부정할 수가 없었다. 현장 어딘가에 증거는 남았고 그걸 볼 수 있을 텐데 자신은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만일 살인 사건이었다면?
‘기를 쓰고 증거를 찾았겠지.’
살인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저 대충했던 것이다.
‘사건에는 경중이 없다라.’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 닿는 듯한 느낌.
“그럼 이제 본선으로 올라가 볼까요?”
“본선요?”
“네, 우리의 주요 링은 이곳이 아니라 법원 아니겠습니까?”
노형진은 웃으면서 독극물이 들어 있는 봉투를 흔들었다.
인생은 실전이다 (1)
“상대방도 변호사를 샀답니다.”
서무학은 결국 변호사를 샀다. 하긴, 고소당했으니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게 기본이기는 하다.
“그런데요?”
노형진은 무심하게 물어봤다. 상대방이 변호사를 사든 말든 자신은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누구든 변호사는 변호사와 싸워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무태식은 왠지 흥분한 듯한 얼굴이었다.
“상대방이 이은영입니다.”
“이은영?”
“이번 수석 졸업자 말입니다.”
“네?”
“그래서인지 은근히 이번 사건에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노형진은 과거의 수석 졸업자면서도 변호사의 길을 가기 위해서 나온 사람이다. 판사나 검사가 될 기회가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있다고?’
들어 보니 여자인 것 같았다. 여자라면 자신의 또래일 것이다.
“이번에 졸업하기는 했지만 나이는 노 변호사님보다 많습니다.”
“그렇겠지요.”
자신은 빨리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썼다.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를 패스하는 것은 물론, 대학교조차도 독학사로 패스해 버렸다. 그에 반해 상대방은 그 과정을 그대로 다 밟아 왔을 테니 아무리 봐준다고 해도 스물네 살이나 되었을 것이다.
“스물다섯 살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 겁니까?”
“신구의 대결이죠.”
“신구의 대결?”
“역대 최연소 변호사와 이번 수석 졸업자의 대결.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지 않습니까?”
“그다지.”
‘별게 다 관심이다.’
어차피 상대방이 누구든 노형진은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회귀 전 그는 수많은 변호사들과 만났다. 특히나 좀 실력이 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만나 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은영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거지.’
국·영·수를 외우듯 공부하는 것과 사건을 통찰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회귀 전에 그가 몰랐다는 것은 공부는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건에 대한 통찰력은 부족한, 실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뜻. 대법관 출신의 전관 변호사까지 쓰러트리면서 전승의 신화를 이끌어 가던 노형진이었기에 그런 애송이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각 로펌에서도 그녀를 빼 가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아직 결정된 건 아니라고 합니다. 일단은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모양입니다만.”
“그래요?”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솔직히 워낙 기대주라는 말이 많아서 그런지 무태식은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뭐, 공부하는 머리와 사건을 해결하는 머리는 전혀 다릅니다.”
“네?”
“보시면 알 겁니다.”
솔직히 노형진은 살짝 기대하기는 했다. 물론 그건 그녀가 얼마나 자신에게 잘 방어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버티느냐라는 것이지만.
“한번 기대는 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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