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52)
멀쩡하게 일하던 공무원이 퇴직 후 여기까지 내려와서 시골에서 결혼해서 안착한다? 그건 말도 안 된다. 물론 그때에는 지금처럼 공무원의 자리가 최고의 신붓감 자리는 아니겠지만 ‘철밥 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업무상 횡령입니다.”
“업무상 횡령?”
“2억 정도 되는 돈을 횡령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2억이라……. 저 집 재산이 2억이 안 될 것 같은데요?”
노형진의 입에서는 비웃음이 슬슬 피어올랐다. 그 당시 2억이면 못해도 지금 5억 가치는 되는 돈이다. 그런데 그 돈을 횡령했다는 사람이 아무것도 없이 이런 시골에서 살고 있다니.
“환수했습니까?”
“아니요. 환수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유는 돈이 없어서구요?”
“네.”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노형진은 직감적으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한선미가 쉽게 말해서 독박을 쓴 것이다.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쫓겨난 것이다. 그 대신에 그들은 그녀에게 적당한 돈과 더불어 추가적 환수는 하지 않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하도 흔했으니.’
옛날에는 툭 하면 벌어지는 일이었고 횡령을 안 하면 병신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행법상 공무원이 횡령했을 때 5년이 지나면 그 돈에 대해서는 환수를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적지 않은 공무원들이 수억 원을 돈을 빼돌리고 내빼는 것이다. 그리고 5년만 지나면 그 돈은 자신의 돈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에 근무하던 곳요?”
“기밀이네요.”
고문학의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기밀이라고 하면 뻔하지 않은가?
“거기서 만났군요.”
“네.”
“그곳에서 근무하던 당시에 만났을 가능성이 높군요.”
고문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략 20년 전이니 그때는 안기부 시절이다. 정권과 유착이 극에 달했으며 온갖 비리가 판치던 시절이니 만큼 거기서 일부 돈을 빼돌리는 직원은 쌓이고 쌓인 시절이었고 또 여성 공무원의 미래란 뻔한 시절이기도 했다.
“그럼 애 아버지는?”
“모르지요.”
누군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 회계 업무라고 하지만 안기부 사람과 접촉했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로써는 상당한 권력가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
“하여간 그 후에 내려와서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에 이철식이 태어났지요.”
“그동안 계속 교류가 있었겠군요.”
“만일 우리 가설이 맞다면 그럴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함께 돈을 빼돌리다 보면 일종의 묘한 스릴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속칭 눈이 맞는다는 일도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설일 뿐입니다. 확실한 건 하나도 없지요.”
‘그게 문제야.’
물론 확실하게 하는 방법은 있다. 다름 아닌 이철식과 이규철의 유전자 검사다. 과거에는 방법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야 그게 어려운 게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라고 한다고 하겠습니까?”
“할 리 없지요.”
‘멀쩡한 집에 가서 당신 자식이 아닌 것 같으니 유전자 검사를 한번 해 보십시오.’라고 말하면 진짜 하겠는가? 미친놈이라고 쫓겨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고 그냥 가설로만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는 없고.”
“압니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요?”
노형진은 이규철이 가는 방향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없지는 않습니다만…… 쩝.”
이 작전을 실행하면 저들의 집안은 박살이 날 것이다.
‘약간은 미안하기는 하지만.’
하지만 유전자 결과가 틀리다면 남자에 대한 배신이 된다.
“이 유전자 검사를 하라고 할 만한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있지요.”
그리고 노형진은 그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 * *
“뭐라고?”
노형진은 제법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들 앞에서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노인네는 무척이나 불만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방금 한 말이 무슨 소리야?”
노인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별거 아닙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노인네가 짜증을 부리자 노형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어르신 집안의 기록을 보니까 정신병적 유전 요인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데 손자분이 혼자 갑자기 정신병이 생겼다는 게 이상해서 한 말입니다.”
노형진은 이규철의 아버지, 그러니까 이철식의 할아버지가 있는 동네로 사람들을 끌고 영업을 갔다. 공식적으로는 변호사로서 유언장을 의뢰받기 위한 홍보였지만 노형진은 이규철의 아버지 앞에서 이야기를 듣다가 슬쩍 ‘이상한데? 왜 정신병이 생기지?’하고 말한 것이다.
“정신병이라는 게 뭐 자체적으로 생기는 것도 있지만 유전적인 부분도 무시 못하거든요. 그런데 딱히 정신병이 생길만한 이유도 없는데 갑자기 이유도 없이 멀쩡하다가 정신병이 생겨서 5개월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면서요? 그런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죠.”
노형진은 이철식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정신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슬쩍 돌려서 말한 것이다.
‘역시나.’
이철식이 살인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갔다는 걸 부모에게 말할 리는 없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게 무슨 말인가?”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했으니 동네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건 당연한 일.
“말 그대로입니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의 자식이 아닌 이상에야 갑자기 이렇게 순식간에 미쳐서 정신병원에 가는 건…….”
“뭔 개소리야!”
이철식의 할아버지는 발끈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손자다. 그것도 무척이나 금이야 옥이야 키운 손자다. 그런데 변호사라는 인간이 하는 말이 남의 자식일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전 그냥 일반적인 경우를 말한 것뿐입니다.”
노형진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피어오른 의심의 씨앗이 그의 눈빛 속에서 자라는 걸 보면서 씩 웃었다.
* * *
“젠장.”
이철식의 할아버지는 지난번에 들은 말이 영 찝찝했다. 물론 정신병은 단순히 유전적 문제로 생기지 않는다. 사회적인 문제나 가정적인 문제 역시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집안에 정신병적인 유전자가 있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실제로도 자기 집안에 그런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자꾸 걸리는 수밖에.
“그러고 보면…….”
며느리는 자신의 집안을 무척이나 무시했다. 어찌어찌해서 결혼하기는 했지만 서울에서 대학교까지 나온 며느리는 집안뿐만 아니라 남편도 툭 하면 무시했고 명절마다 일이 바쁘다는 식으로 오지 않는 경우도 흔했다. 그녀가 자신의 집안과 결혼한 것은 단 하나, 자신이 부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직까지 아들에게 재산을 주지 않았다. 돈만 보고 온 그 여자에게 재산 관리 권한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데 노형진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자신의 모든 재산이 자기 집안도 아닌 다른 놈팡이의 핏줄에게 간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하지만 찍소리 못하면서 잡혀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그게 기우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끄응…….”
그는 결국 한참 고민하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며칠 전 받아 둔 명함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노형진입니다.”
그는 그 목소리에 입을 꾹 다물었다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 지난번에…….”
* * *
“빙고.”
노형진은 웃으면서 봉투를 흔들었다. 거기에는 몇 개의 머리카락과 면봉이 들어 있었다.
“손에 넣으셨군요.”
“그럼요. 조금만 쥐고 흔들면 되는걸요.”
노형진이 살짝 쥐고 흔들자 노인네는 마지못해서 유전자 검사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그리고 노형진의 말대로 머리카락과 면봉으로 입안을 유전자를 긁어서 보내 준 것이다.
“이철식의 유전자는 얻었습니까?”
“네.”
유전자를 얻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어딜 가나 약간의 흔적이 남기 마련이고 그 흔적에는 당연히 일부 세포가 포함된다. 새론의 정보 팀은 이철식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버린 쓰레기들로부터 적지 않은 유전적 흔적을 모아 둔 상태였다.
“이제 이걸 검사해 보면 모든 게 드러나겠지요. 후후후.”
그리고 그때 자신들의 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 * *
“너희, 유전자 검사해 봐라.”
“네?”
이규철과 한선미는 아버지의 명령에 집에 왔다가 당황스러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유전자 검사해 보라고. 철식이 네 자식 맞나.”
“당연히 제 자식이죠.”
“그래서 검사하라는 거 아냐?”
“아니, 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그럼 철식이 아비 말고 다른 사람이랑 바람이라도 피웠다는 거예요, 뭐예요?”
한선미는 시아버지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기분 나쁜 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서도 할 말이 있었다.
촤악.
시아버지가 던지자 바닥에 쫘악 미끄러져서 날아가서 그들 앞에 멈추는 봉투. 그 봉투를 본 두 사람은 움찔했다. 거기에는 유전자 검사 센터라는 말이 쓰여 있었던 것이다.
“좀 이상해서 알아봤다.”
“알아보다니요, 아버님?”
그걸 보고 불안함을 느낀 이규철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는 사람을 통해서 검사했는데 검사 결과가 웃기게 나왔더구나.”
이규철은 후다닥 봉투를 잡아서 열었다. 그러고는 그 봉투 내용물을 확인했다. 거기에 쓰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조손 관계일 가능성이 0.03%?”
쉽게 말해서 아예 남남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그는 이를 악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건 둘 중 하나겠지. 죽은 네 어미가 바람을 피웠든가 며느리가 바람을 피웠든가.”
어느 쪽이든 그 입장에서는 반가운 게 아니다.
“…….”
그걸 본 이규철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데 반해 한선미는 격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우리 몰래 철식이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어요? 네? 철식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 애를 이렇게 괴롭혀요! 그 애는 아무 잘못 없다고요!”
“그래, 그 애는 잘못을 안 했을 수도 있지. 그 어린 것이 무슨 일을 했겠느냐. 그냥 태어난 것뿐인데. 잘못했다면 그건 너 아니면 죽은 네 시어미 둘 중 하나겠지.”
“…….”
“그냥은 못 넘어간다. 너랑 철식이 검사도 하고 나랑 규철이 너도 검사하자.”
“…….”
이규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그 서류만 바라볼 뿐이었다. 머리가 멍해지고 세상이 빙 도는 느낌.
“난 이런 취급 받으면서 못 살아!”
벌떡 일어난 한선미. 그녀는 뒤도 안돌아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여…… 여 보!”
이규철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지만 등 뒤에서 들리는 말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거기서 그년을 따라가면 부자지간이 끊어진 걸로 알겠다.”
“아…… 아버님.”
“어느 쪽이든 철식이는 내 손주가 아니다. 그러면 네가 내 자식인지부터 의심해야지.”
불타는 아버지의 눈빛을 보면서 이규철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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