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75)
유지훈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그리고 필요악이라는 것도요.”
“필요악?”
“네, 기업이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악이 필요합니다.”
노형진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시선을 느낀 건지 유지훈은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기업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성과주의가 들어갑니다.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성화라는 강대한 적들과 싸우는 단계이지요. 그런 상황에서는 성과주의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아랫사람을 다그칠 수밖에 없고요.”
“그렇기는 하겠지.”
“물론 이게 좋은 방식은 아닌 건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필요악이라는 말이 있지요. 만일 무차별적으로 자유를 주게 된다면 그 자유를 역이용하는 인간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만일 일하는 사람들의 3분의 1이 놀러 다닌다면 과연 일은 누가 합니까?”
“흠…….”
“노 변호사님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분간 최소한 성화가 무너질 때까지는 이런 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건가?”
“네,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으니까요.”
유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민택.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 변호사님?”
“계속 말씀하세요.”
노형진에게 슬쩍 방향을 돌리는 유지훈. 하지만 노형진은 반박하지 않고 계속 말하라고 시켰다.
“물론 자신의 실적으로 빼앗긴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은 부품이라는 겁니다. 한 기업은 거대한 기계이구요. 그들이 불만을 가지고 저항한다고 하면 기업 자체가 부서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둘 수는 없겠지요. 그들을 잘 보듬어서 가족 같은 회사를 만들면 됩니다. 가족끼리는 서로 공을 나누고 그러는 게 아니니 그들도 충분히 이해할 겁니다.”
“그렇겠군.”
유민택도 그에게 넘어갈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물론 듣기에는 참으로 달콤한 말들이다. 하지만 노형진의 얼굴에는 절로 불쾌함이 떠올랐다.
“유지훈 씨라고 했습니까?”
“네.”
“유지훈 씨, 제가 최근에 들어 봤던 소리 중에서 가장 개소리였습니다.”
“뭐라고요!”
발끈해서 벌떡 일어나는 유지훈. 유민택도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노형진이 이렇게 면전에서 대놓고 말하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제가 몇 가지만 물어보죠. 가족 같은 회사? 그러면 유지훈 상무님은 직원들에게 종신 근무나 하다못해 정년 보장 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게 말이나 됩니까! 기업은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그러면 가족 같은 회사라는 게 말이 안 되죠? 요즘 가족은 자신이 조금만 불리하면 다른 가족을 갖다 버리나 봅니다?”
유지훈은 아차 했다.
“제 경험상 가족 같은 회사의 뜻은 이겁니다. 가족이니까 아주 마음 놓고 부려 먹으면서 월급은 안 주겠다. 가족이니까. 이게 가족 같은 회사입니까? 가축 같은 회사지. 직원들이 가축이에요?”
“그건 어디까지나 가족 같이 우애를 다지자는 의미에서…….”
“그래서 가족 같이 우애를 다지자는 의미에서 새벽 3시, 4시까지 술집에 끌고 다니고 다음 날 출근시킵니까?”
“그거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보고서 못 보셨나요? 그 친목질의 가장 큰 스트레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유지훈 씨, 혹시 성추행이나 성범죄 전력 있으십니까?”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겁니까! 성범죄라니요!”
“하는 말이 그들과 너무 똑같아서요. 성범죄자들이 그런다죠? 가족 같아서 딸이나 손녀 같아서 했다고 말입니다. 유지훈 씨는 가족 같은 딸이나 손녀 팬티 안에 손 넣고 주물럭거립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합니까!”
“그만큼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직원들이 원하는 건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니라 자신을 프로로서 인정해 주는 회사입니다. 너는 내 노예가 아니라 너와 나는 동반자라는 걸 각인해 주는 회사죠. 가족 같다는 건 결국 그냥 현대의 노예 같다는 말과 같은 겁니다.”
“큭.”
예리하게 찌르는 노형진의 말에 유지훈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임신공격입니다, 회장님! 노 변호사는 지금 논리로 못 이길 것 같으니까 마구 임신공격을 하는 겁니다.”
노형진은 그저 비웃음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임신공격이 아니라 인신공격이다.’
하지만 그런 걸 알려 줘 봐야 뭐 그가 고칠 것 같지는 안았다. 그렇다면 다른 걸로 밟으면 된다.
“그러면 다른 걸 물어보겠습니다. 유지훈 상무님, 스토리텔링이 뭔지 아십니까?”
“스…… 스 뭐요?”
“스토리텔링요?”
“그게 뭡니까?”
“그러면 빅 데이터는 아십니까?”
“그건 또 뭡니까?”
“그러면 SNS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나 파급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하지만 유지훈은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눈만 데굴데굴 굴릴 뿐이었다.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은 어떤 사물이나 정책에 이야기를 입히는 걸 뜻합니다. 사람의 뇌는 단어나 복잡한 걸 기억하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이야기를 저장하는 데 훨씬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물건 하나보다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저장시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스토리텔링의 기본은 감정의 교유에 있습니다. 감정적 교류를 해서 얼마나 동질감이나 우호감을 일으키느냐가 관건이지요. 빅 데이터는 말 그대로 거대 정보 덩어리를 뜻합니다. 온갖 정보가 다 있지만 그걸 분석하면 새로운 사실이 도출됩니다. 가령 한 지역의 모든 판매 물품의 빅 데이터를 분석하면 해당 지역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평균적으로 얼마를 쓰는지 그리고 선호 상품이 뭔지 드러납니다. 그걸 가지고 전략을 짜는 거죠.”
“…….”
“이건 현대에 와서 생긴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없는 개념이죠. 당연히 현대에 있어서 가장 많이 쓰이고 사용되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유지훈 상무님은 모르시는군요.”
“그게 뭐요? 그거 알아서 뭐하게?”
“그럼 유지훈 상무님이 회장님에게 올린 보고서를 한번 분석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 안에 스토리텔링이니 빅 데이터니 SNS니 하는 것에 대해서 몇 번이나 나오는지.”
“흠…… 그거 적지 않게 나온 것 같은데?”
의심쩍은 얼굴이 되는 유민택. 이미 그의 보고서를 몇 번이나 받아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단어들을 많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걸 확인하고 올려야 하는 유지훈이 그 단어를 모르다니 이상한 일이다. 그러자 아차 싶은 유지훈.
“정작 자신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보고서를 만들어 올렸다고요?”
“그건 아래서 만들어 올린 거니까…….”
전형적인 책임 돌리기다, 잘못되면 모든 것은 다 아랫사람 잘못이라는.
“그런데 그걸 판단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상무님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런 정보도 없는 사람이 그걸 어떻게 판단합니까? 법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판사가 판결하는 거랑 똑같은 소리인데?”
“…….”
“그리고 아래서 만들어 올렸다는 거 아셨습니까? 회장님?”
“음…… 그가 추진한 프로젝트라는 건 알고 있네만.”
“그러면 거기에 참가한 직원들의 명단은 보셨습니까?”
유민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그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그 공적은 유지훈 상무님이 다 먹겠군요. 그 후에 정작 그 프로젝트를 진행한 사람은 뭐 상무님이 던져 주는 콩고물이나 좀 주워 먹고요. 안 그런가요?”
“콩고물이라니!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릴 겁니다!”
“무엇입니까, 그 기준이?”
“큭.”
기준이 있을 리 없다. 당연히 죽어라 노력한 직원보다는 자신에게 아부 잘하고 꼬리치는 사람에게 먼저 챙겨 줄 게 뻔하다.
“하아, 회장님. 범죄자를 데려다 놓고 그 범죄의 정당성에 대해서 말하면 무슨 말이 나올 것 같습니까?”
“큭! 범죄자라니요! 말조심하세요!”
유지훈은 발끈했지만 이미 논리에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래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니까…….”
유민택도 슬쩍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 봤지만 도리어 그게 문제였다.
“썩어 빠진 체계에서 위에 올라왔다는 건 썩어 빠진 인간이라는 것밖에 더됩니까?”
“아…….”
“그리고 성씨가 유 씨잖습니까? 회장님도 유 씨고. 거기에다 아무리 아래에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저 나이에 상무라니 말도 안 되죠. 뻔하군요. 친인척.”
대룡은 유씨 집안의 회사이다. 당연히 친인척이 중요한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대놓고 회장님 친척이고 유씨 집안의 사람인데 누가 저 사람에게 저항합니까? 회장님, 드라마 좀 보세요. 회장님 아들내미가 평사원으로 시작하면 뭐합니까? 3년 안에 본부장 될 텐데.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진실을 말하고 그의 횡포에 저항할 수 있을까요?”
결국 그가 아래에서 올라왔다고 하지만 집안의 비호를 받은 썩어 빠진 녀석이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실수군.”
유민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은 친척이라 그리고 가장 아래서부터 시작한 사람이라 정확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생각해 보면 그가 가장 많이 부하 직원을 뜯어먹을 인간이었다.
“회…… 회장님.”
유지훈은 사색이 되었다. 유민택의 성격상 실수인 걸 인정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그걸 제대로 고치기 위해서 노력한다.
“나가 보게.”
유지훈의 손이 와들와들 떨렸다.
“나가 보래도.”
“회…… 회장님.”
“내가 비서를 불러야 할까?”
유지훈은 고개를 툭 떨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느낀 것이다. 나가는 순간 자신이 한 모든 프로젝트에 대한 점검이 시작될 테고 자신이 그걸 할 역량이 되는지 확인할 것이다.
“흠…….”
“이제 아시겠습니까?”
유민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유지훈 사태를 보면서 왠지 느끼는 게 있었다.
“능력 있는 사람은 정작 아래서 일하는 구조라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물론 그들을 무조건 위에 올리라는 건 아닙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까요.”
진짜 아래에서 프로젝트를 짜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게 맞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사람을 만나면서 영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위에서 리더가 되어서 팀을 이끌어 가는 것을 더 좋아하고 그쪽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구조는 그런 재능을 알아보는 구조가 아닙니다. 아래서 일하면 위에서는 그 과실을 빼먹죠. 정작 그 일을 한 사람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요.”
“한국 기업 문화가 너무 경색되어 있단 말인가?”
“네.”
기업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기업 분석이라는 것을 하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나오는 것이 기업 문화가 경색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그때마다 나름 소통의 라인이나 선을 만들려고 노력했는데.”
“그걸 관리하는 사람들은요? 결국 기존에 있던 사람들 아닙니까?”
“부정은 못하겠군.”
“그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소통을 한다고 인터넷을 만들어 봐야 거기서 뭘 읽을지 결정해서 출력해 오는 사람은 그들이다. 유민택이 거기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글을 한꺼번에 다 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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