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682)
>8장. 당황스러운 손님?>
“이예!”
“헐?”
노형진은 어지간하면 당황하지 않는다. 회귀 전 경험과 수많은 난관이 그를 강하게 단련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는 당황 그 자체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너, 너, 너…….”
“야. 오랜만에 보면 반갑다고 인사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밥도 좀 사 주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너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야?”
외근을 마치고 왔더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손채림을 보면서 노형진은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다.
“넌 지금 독일에서 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
분명히 몇 년 전 음악을 하겠다고 홀연히 떠난 손채림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으니 어찌 놀랄 수가 있겠는가?
“그랬지. 그런데 다시 들어왔어.”
“아니, 왜?”
그녀의 재능은 자신이 기억하는 한 엄청나다. 그런데 그 재능을 포기하고 들어오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 재능이면 학교에서 모를 리 없는데.’
분명히 학교에서 잡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들어오다니?
“아, 왜냐면.”
그녀는 갑자기 손을 들어서 손가락 끝을 살살 비볐다.
“그건 뭐야?”
“쩐이 떨어졌다.”
“헐?”
“그러니까 나 꼬기 사 줘. 꼬기, 꼬기.”
“꼬기?”
“그래. 꼬기 먹은 지 오래돼서 말이지. 맨날 빵만 먹고 버텼다고.”
보아하니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들어온 모양이다.
“내가 맛집 찾아놨어. 가자, 가자, 가자.”
“맛집?”
노형진은 손채림의 말에 두 번째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 * *
“너 길치인 주제에 어떻게 여기를 알았냐?”
고기는 맛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고기의 맛이 아니라 그녀의 능력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기억하기로는 엄청난 길치다. 그런데 그런 길치가 자신의 회사까지 찾아오고 심지어 처음 오는 곳에 있는 맛집까지 자신을 데려왔다. 그게 노형진을 당황하게 만들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거? 알고 보니까 후천적 길치더라고.”
“후천적 길치?”
“웅, 독일 가니까 고쳐지데?”
“아니, 후천적 면역 결핍도 아니고 후천적 길치는 뭐야?”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맨날 자가용만 타고 다녔잖아.”
“그게 뭐? 아!”
노형진은 그제야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갔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한국에 있을 때 자가용만 타고 다녔다. 그것도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 말이다. 가끔 그렇지 못한 경우에만 택시를 타고 다녔던 것이다.
“독일 가서 생각해 보니까 내가 살면서 스스로 걸어서 어디에 도착한 적이 없더라고.”
“헐.”
노형진은 그녀가 왜 후천적 길치라고 한 건지 알 수가 있었다. 길을 찾고 어디론가 가는 과정은 학습이다. 어디서 뭘 타고 뭐로 갈아타면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아는 일종의 학습.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유명한 변호사이고 엄청난 부자이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아진 거라고?”
“독일에 가니 방법이 없잖아.”
“뭐? 독일에서 기사 안 구해 줬냐?”
“응. 도망친 거나 마찬가지거든.”
“헐? 왜?”
“시집가기 싫어서.”
“컥.”
노형진은 손채림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그건 또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네가 나 음악 쪽 재능이 있다고 했잖아. 그리고 솔직히 나도 해 보고 싶고. 그래서 음악을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이상한 소리?”
“재벌가에 맞선 주선해 놨으니 나가래.”
“헐. 그래서 튄 거야?”
“당연하지, 내가 미쳤다고 스물네 살이나 많은 인간을 만나냐?”
“스물네 살?”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그 정도면 거의 딸이라고 해도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스물네 살이나 차이 나는 맞선이라니.
“재벌가 차남이고 자시고 내가 미쳤냐. 그래서 그냥 말 안 하고 냅다 튄 겨.”
“헐…… 어쩐지.”
어느 순간 갑자기 안 보이더니 ‘나 독일로 공부하러 왔다.’라는 말이 전부인 메일 한 통만 보냈다. 그런데 그런 비밀이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그 후에 아버지 노발대발하고 어머니는 내놓은 자식이라고 문자 딸랑 하나 오고.”
“끝?”
“끝. 그 후에 내 돈으로 공부 더 하기는 했는데. 아낀다고 아꼈는데 떨어지더라고.”
손채림은 어깨를 으쓱했다. 노형진은 왠지 짠해졌다. 그녀가 부잣집이라고 하지만 자기가 돈이 많은 게 아니다. 각오하고 튄 것이겠지만 낯선 독일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도 회귀 전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얼마나 개같이 고생을 하면서 성공했던가?
“그래서 돈 떨어져서 온 거야?”
“웅, 학비도 없고.”
“알바는?”
“독일이잖아. 나 학생 비자로 간 거라 알바하면 잘려.”
더군다나 학비를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그만둘 거야?”
“웅? 그건 아니고 일단은 돈을 좀 벌어 볼 거야. 그 후에 음악을 계속할 거야.”
“계속?”
이미 그녀의 나이가 적지 않다. 물론 아주 많은 건 아니다. 하지만 보통 음악 하는 사람들이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 과외까지 받아서 대학에 가는 걸 생각하면 아무리 손채림의 능력이 뛰어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계속할지, 아니면 다른 걸 할지는 몰라. 하지만 음악은 안 놓을 거야. 네 말대로 난 음악에 재능이 있나 봐. 음악을 하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안정된다니까.”
“쩝…….”
결국 원래 그녀의 인생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실패한 듯 했다.
“그래서 알바 자리는 구했어?”
“아니, 아직. 일단 방부터 구해야지. 지금은 친구 집에서 신세 지는 중.”
“어디서 살려고?”
“글쎄, 고시원이나 좀 알아볼까 생각중이야. 돈이 있어야 말이지.”
“차라리 집에 들어가지.”
“너 그거 살인 방조다. 우리 아빠가 날 죽이려고 할걸? 안 그래도 너 싫어하는데.”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사건 때문에 한번 부딪쳤다.
“헐.”
그때 손채림의 아버지인 손하균은 노형진을 마치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원래 자신을 싫어했던 사람들인 만큼 그러려니 했는데 아무래도 손채림 사건의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안 모양이었다.
“하아, 내가 그냥 집 하나 구해 줄게.”
“헐? 현지처? 난 싫은데?”
“현지처는 무슨 현지처야. 그건 내가 다른 데 갈 때 할 말이고.”
“그래도 현지처 안 만든다는 소리는 안 하네.”
“아오, 말을 말아야지.”
노형진을 보면서 키득거리는 손채림.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나 돈 많아.”
“그런 문제가 아님. 부모님에게서 자립했는데 내 스스로 뭐 좀 해 봐야지.”
“헐.”
확실히 독일에서 살다 온 것이 성격에 많은 영향을 준 모양이기는 하다. 평생을 부모님이라는 그림자 안에서 살던 그녀가 자립을 이야기하다니.
“알았다, 알았어. 네 맘대로 하세요.”
“나 도와주고 싶으면 내 친구를 도와줘.”
“친구?”
“응, 나 친구 집에 있다고 했잖아. 혼자 살고 있어서 신세 지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돈을 주기에는 내가 거지라 불가능하고.”
“끄응…….”
노형진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당연히 법적인 문제일 것이다. 자신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니 남은 것은 한 가지뿐이다.
“무슨 일인데? 못 받은 돈이라도 있냐?”
“그건 아니고.”
“그럼?”
“블랙리스트에 올라갔어.”
“블랙리스트? 그건 또 뭔 소리야? 무슨 짓을 한 거야?”
“움…… 했다면 한 거고 안 했다면 안 한 거고?”
“응?”
“그 애, 어린이집 선생님이거든.”
“그런데?”
“바른말 했다가 날아간 거지, 뭐.”
노형진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바른말 했다가 날아간다는 건 내부 고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말해 봐.”
“뭐, 나도 그냥 들은 이야기라…….”
손채림은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뭐, 어린이집의 비리에 대해서 인터넷에 까발렸더니 잘렸다던데? 그 후에 아무 곳에도 취직하지 못하고 있대.”
“그래?”
“끄응.”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던 노형진은 어렴풋이 떠오르는 게 있었다. 소위 어린이집이라고 하는 곳은 엄청난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망하지 않는 사업이라고 불리는 게 바로 어린이집 사업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어린이집의 경우 정부에서 선생님의 월급을 지원해 준다. 그리고 일부 자금도 지원해 준다. 한번 돈 들여서 만들어 두면 그 이후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 놓고 돈은 오질 나게 받아 처먹지.’
단순히 회비뿐만이 아니라 간식비나 행사비 같은 곳에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요구한다. 입으로는 죽겠네, 얼마 안 남네 징징거리지만 원장들은 벤츠를 끌고 다니면서 호의호식하고 인원이 부족한 선생님들은 힘들어서 죽어 나갈 지경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도 좋지는 않았는데.’
다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친목질이다. 원장이라는 작자들은 자기들 구역을 만들어서 친목질을 하는데 그 안에서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손채림의 친구처럼 양심선언을 하는 선생님을 퇴출시키는 것이다. 유아교육과를 나오는 사람들은 많고 자리는 없다. 그러니 그들은 일종의 카르텔을 만들어서 엄청난 돈을 쓸어 모으는 것이다. 취업하지 못하게 될 게 뻔하니 선생님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뭘 올린 건데?”
“나야 모르지. 어찌 되었건 너라면 자리 구할 수 있지 않아?”
“자리 구할 수는 있지.”
당장 지금도 새론에는 기혼자를 위한 어린이집이 있다. 그곳에 부탁해서 자리를 만들어 보는 것도 가능하고 대룡 역시 자체적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요즘은 맞벌이 안 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러면 그거나 도와줘. 내가 돈도 못 주는데 맨날 얻어먹기도 그렇고.”
“친구 나가면 혼자서 편하게 살려고 한 건 아니고?”
“걸렸나? 헤헤헤.”
“쯧쯧, 걸리기는 무슨.”
조만간 취업하면 친구 얼굴은 보지도 못할 게 뻔한데 말이다.
“알았다. 나도 좀 알아보마.”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기 때문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노형진입니다.”
“송수아라고 해요.”
얼마 뒤 연락해서 만난 그녀는 단아하게 생긴 미녀였다. 그녀는 약간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새론으로 찾아왔다.
“그나저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직장을 구하고 계신다면서요.”
“네.”
“운이 좋으셨네요.”
노형진이 새론에 있는 어린이집에 왔을 때 다행히 새론 어린이집은 기존에 있던 선생님 중 한 사람이 출산휴가를 가는 바람에 보충인원을 구하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한 백스무 명쯤 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헉!”
“아아 물론 혼자 하라는 건 아닙니다. 선생님도 열다섯 분 계십니다.”
“네에? 그렇게 많다고요?”
“네, 너무 숫자가 적으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해 주지 못하니까요.”
물론 새론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어린이집에 다닐 정도의 애들이 백스무 명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이 숫자는 새론이 어린이집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주변에 있는 다른 곳들에 의견을 물어보면서 나온 결과였다. 이곳에도 수많은 맞벌이 부부가 있고 그들의 가장 골치 아픈 일은 아이에 관한 문제였다. 운이 좋아서 집 근처 어린이집에 자리 잡으면 좋지만 대부분은 먼 곳까지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회사 근처에 어린이집이 생긴다고 하다 너도 나도 지원한 것이다.
“새론 어린이집은 무조건 아이들 열 명에 선생님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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