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0)
‘이런 경우는 참 드물다, 진짜.’
원래 재판이란 죄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노형진이었다. 의뢰인은 사건에 대해 거짓말하고 상대방은 사건을 부정하며 상대방 변호사는 아는 척만 하고 판사는 대가리에 돌만 찬 유치원생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 줘야 한다는 것이 노형진이 가진 재판에 대한 자세다.
물론 진짜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논리로 상대방을 꺾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사건 자체가 무척이나 그에게 우호적인 상황이었다.
“개정합니다.”
사건이 시작되자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이번 사건은 그동안의 납치와 감금, 갈취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입니다. 피고 측은 20년 전 원고 김성민이 납치되자 이를 고용이라는 명목으로 구입하여 지난 20년간 노예로 이용하였습니다. 피고는 원고의 인간으로서의 인격적 부분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파괴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도 갖춰 주지 않았습니다. 21세기에 들어온 지금, 이러한 야만적인 행동은 나라 전체를 수치스럽게 만들 뿐만 아니라 국가의 이름을 훼손하는 행동입니다. 원고는 피고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극도의 고통을 받았으니 피고는 응당 그 행위에 대한 배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형진이 개전하자 상대방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피고는 납치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으며 장애를 가진 원고가 불쌍하여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돌봐 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임금 문제 역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피고의 정신적 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헛되이 사용하거나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보관한 것뿐입니다. 이는 피고가 임금 자체를 공탁한 점에서 드러납니다. 피고는 이번 사건이 무척이나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먹여 주고 재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처럼 취급했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어이구, 그러셔?’
그 말을 들은 노형진은 어이가 없었다. 물론 변호사로서 범죄자를 보호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자신도 그런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범죄자를 보호하는 것과 그 범죄를 합리화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피고는 원고의 임금을 정상적으로 적립하고 있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통장 사본을 을제 1호증으로 제출했습니다. 증거를 보시면 보시다시피 피고는 꼬박꼬박 해당 월의 임금을 매달 15일경 입금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피고는 그를 노예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노예로 생각했다면 이런 식으로 누가 임금을 꼬박꼬박 적립했겠습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 일견 맞는 말처럼 보인다. 꼬박꼬박 임금이 지급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게 뭔 뜻인지 알고 있었다.
‘걸릴 때를 대비한다는 거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일종의 방어막인 셈이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확실하게 걸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피고 김용문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인정합니다. 피고, 증인석으로 나오세요.”
그 말에 물끄러미 변호사를 바라보던 김용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증인석으로 나왔다.
“피고는 을제 1호증에 따르면 원고의 임금을 입금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그런데 왜 원고 명의의, 아니 원고에게 부여된 가짜 명의의 통장에 입금했습니까? 원고의 이름은 김성민이지, 조만팔이 아닙니다만?”
“따로 입금했다는 게 중요하지,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요, 중요합니다. 원고의 명의는 조만팔이 아니라 김성민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 이름으로 입금했습니까?”
“그거야…… 이름을 모르니까…….”
“그럼 조만팔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고용할 때 소개시켜 주신 분들이 알려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피고는 무려 5년간이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고용했다는 거네요?”
“그…… 그게…….”
증인으로 나온 피고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세상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
“그 전에는 제가 고용한 게 아닙니다.”
“아, 그 전에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렇습니다.”
“즉, 증인은 처음 보자마자 그를 장애인인 그를 고용하고 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근데 왜 첫 입금액이 이렇게 많습니까?”
“네?”
“첫 입금액이 말입니다. 첫 월급이니 그다지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입니다. 첫 월급액이 1천만 원을 넘습니다.”
“그…… 그게 가불입니다.”
“가불?”
“그렇습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가불이라니, 다급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가불이 뭡니까?”
“네?”
“가불의 뜻이 뭐냐고요?”
“그게…….”
“급전이 필요해서 노동력을 담보로 월급의 일부를 미리 받는 게 가불이죠?”
“네!”
“근데 그다음 달에도, 다다음 달에도, 그 다다음 달에도 정상적으로 입금하셨네요? 그리고 가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원고의 상태가 가불이라는 단어를 인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안다고 치더라도 기록에 따르면 그 가불한 금액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왜 가불합니까?”
“…….”
“더군다나 그 가불액이라는 게 참 특이한 게, 그 당시 최저임금을 여덟 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하여 주 6일 근무로 계산하면 딱 맞아떨어집니다.”
“…….”
피고는 당황해서 변호사를 바라봤지만 증인석에 있는 이상에는 변호사도 그에게 어떠한 어드바이스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왜 준 겁니까?”
“그냥 불쌍해서…….”
시선을 돌리면서 중얼거리는 피고.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불쌍하다라…….”
“네, 불쌍해서 준 겁니다.”
‘이게 무슨 실미도냐?’
그 말에 노형진은 한마디로 딱 선을 그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네?”
“일반적으로 염전 근로자의 월급은 대략 150만 원 선. 고된 노동 강도와 구하기 힘든 여건, 상대적으로 많은 수익 덕분에 그런 고임금이 가능하죠.”
“그거야…….”
“재판장님, 여기 해당 직종의 평균임금 표를 증거로 제출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피고가 원고의 월급이라고 입금한 돈은 정확하게 56만 7천 원. 하루 평균 여덟 시간으로 계산한 최저임금입니다. 불쌍하다? 그러면서 월급을 절반도 아니고 3분의 1을 지급한 겁니까?”
“먹여 주고 재워 주니까…….”
“그러니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피고의 책임이다?”
“그렇습니다.”
노형진은 미소를 떠올렸다. 변명을 하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함정에 빠진 것이다.
“피고는 숙식 제공이 피고의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즉, 노동계약에 있어서 단순히 월급뿐만 아니라 체류비와 식비를 피고 측이 부담하는 근로계약이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 그렇습니다!”
“갑제 3호증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에게 제공되었다고 하는 숙식의 현장입니다. 소금 창고 한 귀퉁이에 설치된 공간으로 대략 2.5평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도 시설도 없으며 화장실도 창문도 없습니다.”
“헉!”
설마 그 사진을 찍어 올 거라 생각하지 못한 피고는 당황한 얼굴이 되었지만 노형진은 그걸 무시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
이때쯤 사건은 이렇게 치밀하게 하지 않는다. 그냥 대충 서류로 해서 넘기고 만다. 사진을 찍어서 현상한 다음, 그걸 다시 첨부해야 해서 귀찮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도 따로 지급해야 하니 경찰은 대부분 서류 작업만 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보이는 만큼 증거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비를 들여서 사진을 찍어 온 것이다.
“원고는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의 어느 부분이 숙식이 해결되는 장소로 보입니까? 그리고 갑제 4호증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피고가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식사의 정체입니다.”
오래되어 찌그러진 양은 냄비, 그 안에 담겨 있는 음식들. 그건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남은 음식 쓰레기였다.
“원고는 이런 음식들을 제공받았다는데 그럼 피고는 계약서에 따른 숙식 제공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거네요?”
“그게…….”
“재판장님, 청구액을 변경토록 하겠습니다. 피고는 원고의 임금뿐만 아니라 피고 스스로 책임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숙식에 필요한 금액도 착복하였기에 해당 금액을 추가로 청구하고자 합니다.”
“인정합니다. 다음 재판 전까지 청구액을 변경하십시오.”
그 말에 원고 측 변호사는 입을 떡 벌렸다.
‘훗, 이건 몰랐을 거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재판을 할 때 월급에만 신경 쓰지, 숙식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따로 계산하기로 한 경우, 명백하게 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돈인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면 그만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그저 월급만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증인, 전 지금 증인한테 질문하지 않았습니다만. 뭐,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이 시대에 방값과 세 끼 식비를 포함하면 한 달에 못해도 30만 원은 나올 것이다. 한 달에 50만 원 정도의 돈만 줬는데 순식간에 1.8배로 비용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증인은 고용 관계가 있다고 했죠?”
“그…… 그렇습니다.”
납치, 감금보다는 돈을 얼마 주고 끝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피고.
“그럼 의료보험료를 비롯한 세금 같은 것은 잘 납부하셨습니까?”
“네?”
“아니, 당연한 거 아닙니까? 고용 관계가 있어 원천징수로 제외하고 지급하려 했다면 당연히 피고가 그걸 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그게…….”
피고는 사색이 되었다.
“안 내셨어요? 이런, 20년 치 세금을 안 내셨다? 재판장님, 피고를 탈세 혐의로 고발하고자 합니다.”
그 말에 피식 웃는 재판장.
“그건 국세청에 신고하세요.”
“압니다. 다만, 피고의 범죄행위를 판단할 때 감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 말에 피고는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주 영혼까지 털어 버리셨더만.”
“하하하.”
송정한은 재판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자신도 그냥 월급과 손해배상을 받고 끝내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월급뿐만 아니라 숙식비와 야간근로 수당 및 보너스와 명절 전후에 지급되는 선물 그리고 세금과 심지어 근로 작업복 지급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었다. 그 결과…….
“순식간에 배상액이 세 배가 넘네.”
새론의 변호사들은 단순히 월급만으로 계산해서 청구했는데, 노형진이 끼는 순간 법적으로 인정된 청구 금액이 세 배를 넘어가 버렸다.
“확실하게 털어 달라면서요?”
“그럼. 확실하게 털어야지.”
안 그래도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사건이다. 현직 정권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사람의 동생이 노예로 잡혀 있었다는 건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다.
“뭐, 워낙 확실하게 해 놔서 인정받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테고.”
피고 측 변호사조차도 저게 무슨 질문인지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있다가 눈앞에 닥치면 함정이라는 걸 알고 발을 동동 구르곤 했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임금이야 둘째 치고 손해배상이 문제야.”
“그렇지요.”
오늘은 그저 전초전에 불과하다. 오늘 이야기한 것은 일반적인 고용에 관련된 배상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정식으로 고용되었다면 지급되어야 하는 금액에 대한 문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주요 쟁점은 납치와 감금이다.
“납치와 감금을 증명해야 하는데 말이야.”
납치와 감금이 인정되면 배상액이 몇 배로 뛴다. 그리고 현재 검찰 쪽에서도 납치와 감금 건으로 수사하고 있는데 이쪽에서 인정되지 않으면 그쪽의 수사도 타격을 받게 된다.
“자신 있지?”
“최선을 다해야지요.”
노형진은 탁자를 톡톡 두들기면서 말했다.
“어차피 이 싸움은 이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문제는 얼마나 거창하게 이기느냐겠죠. 아니, ‘얼마나 화려하게’라고 해야 할까요.”
언론에서도, 정부에서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재판을 한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대중이 요구하는 것은 화려하고 극단적이며 자극적인 재판일 테니.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도 중요하단 말이지.’
이번 사건으로 새론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릴 테고 한 차원 더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곳에 소속되기로 한 자신도 더욱 발전된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
노형진이 추구하는 것은 돈 때문에 차별받는 게 아닌 공평한 재판.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번 재판에서 화려한 쇼를 보여 드리지요.”
“개정합니다.”
두 번째 재판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지난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예 방송국에서 중계차까지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지난번은 단순히 임금 지급의 문제에 대해 다뤘다면 오늘은 납치와 감금 등 중요 범죄에 관련된 배상의 문제에 대해 다룰 예정이기 때문이다.
“피고는 원고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불쌍하게 여겨서 고용해 준 것일 뿐, 납치 및 감금 그리고 인신매매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이 방어를 시작하자 노형진은 조용히 그걸 듣기만 했다. 기자들 또한 그가 얼마나 화려하게 그리고 극적으로 이길 것인지가 관건이었기 때문에 그걸 다 듣고 있었다.
‘쯧쯧…… 나쁜 변호사는 아닌데.’
보아하니 피고 측 변호사의 실력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질 게 뻔한 사건을 담당하고도 최선을 다하는 걸 보니 변호사로서의 소임에 대해서도 잘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숙해.’
문제는 언론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이번 쇼에서 악역을 하게 되었다면 적당하게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송 변호사님한테 한번 접촉하라고 해 볼까?’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니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이번 일을 기회로 대대적으로 로펌을 확장시킬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젠장……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만 피고 측 변호사는 조용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노형진을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지난번에도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패를 당했다. 여기서 질 거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모든 사람은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맡았다. 하지만 졸지에 배상액이 세 배로 뛰어 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분쇄기라니…… 농담이 아니잖아.’
요즘 노형진에게 붙은 별명이 분쇄기였는데, 재판정에 들어서는 순간 상대방을 갈가리 찢어 버리는 뜻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저 웃고 말았는데, 맞닥뜨리고 보니 이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원고 측, 하실 말씀 있습니까?”
드디어 차례가 노형진에게 넘어오자 노형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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