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29)
노형진은 무심하게 손채림의 말을 귀로 흘리면서 늘어지게 의자에 누웠다가 켕기는 것이 느껴져 벌떡 일어났다.
“지금 뭐라고 했어?”
“뭐? 억울하다고 한 거?”
“그래, 그거.”
“훔쳐서 먹이기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러고 보니…….”
노형진은 황급하게 CCTV를 플레이시켰다.
그 당시 마트에 있던 CCTV로 범죄 영상이 찍혀 있어서, 가장 확실한 증거이자 뒤집을 수 없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걸 또 봐서 뭐하게?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잖아?”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
노형진은 손채림의 말을 무시하고는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찾았다.”
“뭘?”
“길을 찾았어.”
노형진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 * *
“개자식. 오늘로 끝이다.”
이성갑은 노형진을 보면서 이를 박박 갈았다.
천민 주제에 자신에게 그렇게 창피를 준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걸 확, 그냥.’
노형진은 마음속으로 밟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갑의 기준대로 돈이 계급이라면 자신은 그와는 비교도 못 할 만큼 신분 차이가 난다. 그가 귀족이라면 자신은 황족쯤 될 것이다.
‘아니야,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고. 변호사면 변호사답게 법으로 밟아 버려야지.’
노형진은 길을 찾은 이후에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물론 약간 법적인 논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확실히 방법이 될 수 있기는 했다.
“그건 나중에 봅시다.”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재판정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 재판이 정식으로 진행되었다.
“재판장님, 상황은 지난번과 같습니다. 피고인 측은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않았고 또한 기존의 증거를 반박할 수 있는 사항도 없습니다. 그러니 구형된 6년 형을 전부 인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그건 배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들의 눈빛을 당당하게 받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이 찾은 길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재판장님, 저는 피고인 서진수 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상습절도에 관하여 무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무죄?”
“무죄라고?”
사람들은 웅성거리면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증거상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피고인 측, 지금 무죄라고 했습니까?”
이성갑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게 어떻게 무죄가 된단 말인가?
“이게 무죄가 된다고요?”
판사조차도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지만, 노형진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무죄가 됩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일단 이 부분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영상은 검찰 측이 증거로 제출한, 사건 당시 해당 점포의 CCTV 영상입니다.”
“그거야 수십 번을 봤지요.”
“다시 한 번 봐 주십시오.”
동영상이 플레이되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서진수가 도둑질을 하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들어온 그는 주변을 보다가 슬며시 분유가 있는 코너로 향했다.
잔뜩 긴장해서인지 그는 CCTV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두리번거리다가 분유 하나를 집어서 자신이 가지고 온 가방에 잽싸게 넣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넣은 분유는 결국 가지고 가지 못했다. 그가 들어오면서부터 두리번거리자 의심하고 있던 그곳의 여주인이 그 순간을 정확하게 잡아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기 때문이다.
서진수는 절망한 듯 고개를 숙였고, 그 후에 경찰이 올 때까지 그 상황은 계속되었다.
“아무리 봐도 절도 증거가 맞습니다. 무죄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피식하고 노형진을 비웃는 이성갑.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니고 현장에서 잡혔으며 또한 스스로 훔치려고 한 것도 인정했다. 그러니 이건 절도다.
“절도의 증거가 아니죠. 엄밀하게 말하면 절도 미수입니다.”
“그래서요?”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5조의 41항입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지요. 상습으로 형법 제329조 내지 제331조의 죄 또는 그 미수죄를 범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래서요?”
“이 경우 피고인은 형법상 329조의 절도죄에 대하여 342조에 따른 미수범입니다. 피고는 절도를 시도하였으나 그 절도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가방에 넣었습니다.”
이성갑은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소유권이나 점유권의 이전이 끝난 건 아니지요. 이 현장의 CCTV 영상에 따르면 그 안에 넣는 것은 성공했지만 가방을 덮기는커녕 몸도 돌리기 전에 주인아주머니에게 발각되어 저지당했습니다. 절도라는 것이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것을 그 사람의 의견에 반하여 그 점유를 배제하고 옮겼을 때 성공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해당 영상을 보시면 타인의 의견에 반하기도 전에 발각되었고, 결과적으로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것의 소유권을 이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절도죄가 아니라 절도의 미수가 됩니다.”
“그래서요?”
“그런데 상습으로 형법 제329조 내지 제331조의 죄 또는 그 미수죄를 범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절도의 미수는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까? 분명히 미수범은 처벌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건 331조, 그러니까 특수 절도에 관한 규정이죠. 329조를 대상으로는, 절도는 특가법상의 대상이 되지만 이건 엄밀하게 미수범이니까 특가법상 해당이 안 됩니다.”
“하지만 형법에서는 미수범은 처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건 형법 규정에 따라서 처벌하는 거죠. 특가법상에는 절도의 미수범의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듣고 있던 사람들 중 법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노형진의 반격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그렇지, 모든 법은 빠져나갈 구멍이 있지. 흐리멍덩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거든.’
노형진이 찾은 길. 그건 다름 아닌 미수범 조항이었다.
형법상에는 절차상 미수범 처벌 조항이 있지만 특가법상에는 그 처벌 조항이 무척이나 애매하다.
“재판장님, 이건 궤변입니다. 분명히 미수범 처벌 조항이 있습니다!”
“그건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특수 절도에 대한 미수범 조항이지, 이런 단순 절도에 대한 게 아닙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면 저기 있는 배심원들에게 물어보죠.”
노형진은 배심원들에게 양해를 구하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배심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노형진은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해당 조항은 ‘상습으로 형법 제329조 내지 제331조의 죄 또는 그 미수죄를 범한 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또는’이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또는’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의미가 됩니다.”
“아!”
빵 또는 떡, 기차 또는 비행기, 국내 또는 국외처럼 ‘또는’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두 개를 완벽하게 구분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할 때 쓰인다.
“즉, 이 법에 따르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본문을 직접적으로 해석하자면 331조의 특수 절도 또는 그 특수 절도의 미수를 처벌한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어?”
그렇게 되면 엄밀하게 말하면 절도의 미수는 대상이 되지 않는다.
노형진이 뭘 노리는지 알게 된 이성갑은 다급하게 방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지’라는 단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 말은 329조인 절도의 미수범도 포함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아니죠. 그렇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329조와 331조의 미수범은 처벌한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거죠.”
“하지만 분명히 ‘내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내지’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서 아시는 분?”
다들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내지’는 흔하게 쓰이지 않는 말이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 그 의미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지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잘 안 쓰는, 전형적인 법률 용어이다.
“국어학회에서는 내지라는 한자 대신에 ‘또는’이라는 말을 쓰라고 추천하지요.”
“뭐야? 그러면 내용이 이상해지잖아?”
배심원 중 한 명이 곤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또는’이라는 말이 의미에 따라 판단한다면 329조 또는 331조 또는 미수범이라는 괴상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또는’이라는 단어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 법조문이 329조를 포함한 것인지 아니면 331조의 미수범만 포함시킨 것인지 무척이나 헷갈리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어…… 또는? 내지? 어, 어떤 게 맞는 거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노형진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멍청한 국회의원들을 찬양하자, 으하하하.’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법을 만들 때 쉽고 알아들을 수 있게 만들기보다는 좀 어렵고 복잡하고 있어 보이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그럴듯한 단어들이 나열되다 보니까 그 문장을 해석할 때 애매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는 것이다.
노형진이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란 말이지, 흐흐흐.’
형사소송법상의 대원칙. 부정확한 것이 있는 경우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도록 한 규정.
이 경우 ‘내지’와 ‘또는’이라는 두 부사는 무척이나 법을 애매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미묘한 허점을 이용해서 의뢰인을 풀어 주는 것이 바로 변호사들의 능력이다.
“‘또는’이라는 게…… 그거 아니면 이거라는 건데…….”
“그러면 세 개 중 하나라는 거잖아?”
“그런데 이게 특수 절도에 대한 미수범이라는 건지…… 아니면 둘 다라는 건지…….”
헷갈려 하는 배심원들과 다르게 판사는 뭔지 알 듯한 미소로 노형진은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판사는 알고 있네.’
심지어 검사인 이성갑조차도 당황한 듯하지만 판사는 ‘내지’라는 부사의 다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지’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즉, 그걸 적용하면 329조부터 331조까지의 미수범은 처벌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국어학회에서는 ‘또는’이라는 단어를 쓰라고 추천하고 있을 정도로, 선택적인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흐리멍덩한 단어의 대표적인 사례지.’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법의 해석이다. 그리고 그 해석은 전적으로 판사의 권한이다.
그가 ‘또는’이라고 해석하든지 아니면 포함된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해석하든지 말이다.
‘그리고 판사는 분명히 이쪽 편이다.’
그렇다면 노형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단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해서 판사의 해석 여지를 최대한 늘려 주는 것.
자비를 구걸하는 꼴이 되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이기면 장땡이지.
“양측 다 변론 없습니까?”
이성갑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미 할 말은 다 했다. 다만 단어적인 선택이 무척이나 헷갈려 불안해하기는 했다.
물론 그건 배심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배심원분들은 평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들어간 평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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