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30)
노형진은 서진수를 데리고 대기실로 가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평결이 끝나고 난 후 바로 결심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 것 같나?”
“잘되기를 빌어야지요.”
“배심원들이 넘어올까?”
“그럴 겁니다.”
“하지만 내지라는 말에 다른 뜻이 있으니…….”
김성식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그걸 알 수는 없을 겁니다. 누가 미리 알면 모를까.”
“응?”
“배심 중에는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뉴스를 보고 선입견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요.”
“아!”
그렇다는 건 배심원들이 내지라는 단어의 다른 뜻을 알아내기는 힘들다는 소리다.
“그런데 다른 뜻을 안 알려 줬다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
“하라고 하세요. 그건 불법 아닙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서 불리한 것은 감출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내지’라는 단어의 다른 뜻이 중요한 증거가 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불리한 것은 사실이고, 그걸 감추는 게 범죄행위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걸 ‘또는’이라는 단어만으로 생각할 테니 점점 더 이해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아, 제발, 제발…….”
서진수는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고 있었다.
풀려만 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바르게 살겠노라고 하늘에 몇 번이나 맹세했다.
“잘될 겁니다.”
노형진은 그런 서진수를 다독거리며 심호흡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대기실의 문이 열리면서 법원 경비가 그들을 불렀다.
“갑시다.”
노형진과 김성식은 서진수를 데리고 재판정으로 향했다.
그들이 들어갔을 때 이성갑 검사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바로 결심하겠습니다.”
판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배심원들을 바라보았다. 배심원들의 말을 우선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 그리고 긴장감.
노형진이라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긴장감을 어쩔 수가 없었다.
“배심원의 결정은…….”
배심원들의 결정이 적혀 있는 쪽지가 판사에게 넘어가고, 판사는 그걸 확인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으로 향했다.
“무죄.”
“하아!”
숨을 꾹 참고 있던 서진수는 무너지듯 흔들거렸다.
무죄라는 말에 기운이 쏙 빠진 것이다.
“아직은 끝난 거 아닙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판사를 바라보았다.
미국과 다르게 한국은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을 뒤집을 수 있다. 아무리 배심원이 무죄를 말해도 판사가 유죄라고 하면 의미가 없다.
‘이건 도박인데…….’
말장난으로 판사가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늘려 놨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장난이다. 그러니 판사가 무슨 선택을 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판사는…….”
노형진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바라보았고, 판사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무죄를 선고합니다.”
“나이스!”
“만세!”
등 뒤에 있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자 노형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축 늘어졌다.
* * *
“역시나.”
노형진은 판사가 보내 준 판결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번 사건에서 피고는 미수인 것이 명확하니……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상습절도 규정의 미수범 규정은 그 의미를 명확하게 해석하기 곤란하며…… 이 때문에 형사소송법상 불명확한 것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미수범의 규정은 331조 특수 절도에 한하여 적용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절도 미수에 대하여는 특가법상의 무죄를 선고한다.
“자네 예상대로군.”
“다행입니다.”
판사는 노형진이 생각한 대로 확실하지 않은 규정에 대한 원칙을 적용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성갑이 상고한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성갑은 그 자리에서 길길이 날뛰면서 바로 상고했다. 하지만 그건 소용이 없는 짓이었다.
“그 녀석이 완전 똘추라 내 인맥이 안 먹혔을지 몰라도 상고는 먹히더군.”
“하하하.”
그가 상고한 건 바로 기각되었던 것이다.
상고를 받아들이는 건 그의 권한이 아니라 재판부의 권한이니까.
“대법원에 해당 문장에 대한 해석을 요청할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 봤자 소용없을 걸세.”
이미 그는 패배했고 상고는 기각되었다. 그리고 검찰은 그 사건을 다른 검사에게 배당했고, 그 검사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형법상 절도 미수로 고발했다.
그건 재판을 하기도 전에 집유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피해도 없고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손채림은 그 후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마도 집행유예가 나오겠지. 그건 초고속으로 진행될 거야. 이성갑이 대법원에 해석을 요청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때쯤이면 서진수는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상황이 될 테지.”
“그러면?”
“그렇게 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서 그는 서진수를 처벌할 수 없게 돼. 이번 사건에 대해서 집행유예 처벌을 이미 받은 거니까.”
“거참, 복잡하네.”
“그래도 이번 사건, 제법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어?”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이해가 간다는 듯 씩 웃었다.
“이건 다 진 줄 알았다니까.”
“나도 지는 줄 알았다.”
“하여간 대단하다. 넌 잔머리 대마왕이야.”
“하하하.”
노형진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힘들었다. 만일 판사나 배심원들이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번 사건은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서진수 씨는 일 잘하고 있어?”
“다행히도. 아내분도 건강하고.”
서진수는 무죄가 나온 후에 유병수의 가게에서 배달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유병수가 그를 불쌍하게 여겨서 받아 준 것이다.
다행히 서진수가 딴 운전면허가 1종 보통이었기 때문에 때마침 마트에 있는 수동 배달 차량을 몰 수 있어서 가능했다.
“아내분도 퇴원하는 대로 캐셔로 일한다고 하더라.”
“임신했는데?”
“원래 임신은 초기가 힘든 거지, 어느 정도 안정되면 괜찮아. 지금이야 초기니까 조심해야 하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힘든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이 법은 진짜 언제 없어질까?”
“조만간 없어질 겁니다.”
“그런가?”
“네.”
노형진은 비슷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 헌법 소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기록을 알고 있으니 이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고, 아마도 특가법상의 상습절도 조항은 원래 역사보다 빠르게 사라질 가능성이 높았다.
“장발장이 이제는 좀 없어졌으면 좋겠군.”
“그랬으면 좋겠지만…….”
노형진은 안다, 그건 인간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일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 봐야지요.”
결국은 그게 최선이었다.
* * *
얼마 후 노형진이 막 퇴근할 때였다.
“내 얼굴에 똥칠을 하다니…… 간땡이가 부었군.”
건물 바깥으로 나오는데 누군가 노형진을 불렀다.
이성갑이 분노에 찬 눈으로 노형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언젠가 네놈을 짓밟아 버릴 거다.”
“그래요?”
피식거리면서 웃는 노형진의 모습에 이성갑은 더 분노에 찬 얼굴이 되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군.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자신이 한번 지고 나자 아버지라는 카드를 들고 나오는 이성갑.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혀를 끌끌거렸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아빠 타령이야? 애냐?’
스스로의 능력도 아니고 아버지의 능력으로 복수하려고 한다는 말에 노형진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 모습에 이성갑은 노형진이 사과하려고 한다고 생각한 건지 기고만장해졌다.
“이제 와서 반성은 늦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지, 너 자신을 알라고. 넌 너 자신을 알지 못했으니 그 책임을 져야지. 안 그래?”
이죽거리면서 노형진을 놀리는 이성갑.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피식 비웃었다.
“일단 몇 가지 잘못 알고 있는데.”
“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의 아폴로 신전 현관 기둥에 적혀 있던 말이지요. 명언을 인용하려면 정확하게 알고 인용하세요.”
얼굴이 확 붉어지는 이성갑.
지난번에도 그걸로 인해서 그 개쪽을 당했는데 또다시 똑같은 꼴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말입니다, 당신 아버지가 누군지는 잘 압니다. 그런데 정작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군요.”
“뭐라고?”
“한번 물어보세요, 당신 아버지에게 내가 누군지. 만일 그걸 듣고도 나와 싸울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은 지셔야겠지만요.”
“너 이 자식!”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성갑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정도 되는 사람이 일개 변호사를 알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그 귀족적인 자존심을 세우려면 일단 노블레스 오블리주부터 뭔지 아시길 바랍니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귀족 흉내 내지 마시고.”
“귀족 흉내?”
얼굴이 붉어지면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이성갑.
노형진은 그를 바라보면서 대놓고 비웃었다.
“과연 당신의 자존심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기대하지요.”
노형진은 그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만일 그에게 자존심이 있다면 다시 덤벼들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노형진은 다시는 그를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새론 사건이라고 하면 무조건 도망을 다녔던 것이다.
그 모습에,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신분제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렇게 이성갑의 귀족적인 자존심은 용기와 함께 시궁창에 버려졌다.
>8장. 영웅들에게는 고통이 따른다>
“이창직 소방관님, 오랜만입니다.”
노형진은 자신을 찾아온 이창직을 반갑게 맞이했다.
회식하러 간 식당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노형진을 구해 준 그는 그 후에 노형진 덕분에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었고, 가끔 연락하고 지냈다.
“노 변호사님은 여전하십니다.”
“저야 뭐 바뀔 게 뭐가 있습니까, 하하하.”
노형진은 웃으면서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을 꺼내 줬다.
“아직은 덥죠?”
“그렇게요. 가을에 들어왔는데도 아직도 덥습니다.”
이제는 가을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뜨거운 태양.
“날씨가 이제 열대지방처럼 되어 가나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둘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삶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직접 여기까지 찾아오신 걸 보면 부탁하실 게 있나 봅니다?”
노형진은 이창직을 보면서 물었다.
그는 지난번 사건 이후에 개인적으로 바깥에서 만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사무실까지 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게…….”
“말씀하세요.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전 생명의 은인에게 그렇게 박하지 않다고. 하하하.”
수억 정도는 쉽게 내줄 수 있는 게 노형진이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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