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32)
‘그런데 그런 것에 신경 쓰면 정치인이 아니지.’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누구한테 피해를 준 적도 없는데.”
소방관은 누군가를 구해 주는 직업이지, 피해를 주는 직업이 아니다.
그렇지만 노형진은 이런 짓을 저지를 만한 사람을 딱 한 사람 알고 있었다.
“딱 한 명 있죠. 이런 짓을 할 사람. 아마 이창직 소방관님도 아실 겁니다.”
“망할 놈…….”
이를 빠드득 가는 이창직.
이 사건의 주범이 누군지 금방 예상되었던 것이다.
다름 아닌 도지사 정광팔.
지난번 사건 때 자신의 사무실을 압류당한 녀석.
“그런 녀석들은 자기 명예는 소중해도 남의 목숨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복을 위해서, 그 과정에 사람 서너 명 죽는 건 신경도 안 쓸 위인이지요.”
“어떻게…….”
“애초에 정광팔은 공감 능력이 부족할 테니까요.”
돈이 많을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 나온 사항이다.
문제는 정광팔은 할아버지 때부터 소문난 친일파로 엄청난 거부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치적으로 로비 같은 거에는 능하고 가면은 잘 쓰지만 가끔 저지르는 행동을 보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미 그 녀석은 두 번째 도지사를 하고 있지요. 그 전에는 국회의원도 했고요. 또 엄청난 갑부라, 지역에서 그에게 머리 숙이는 사람은 많았을 겁니다. 아마 정치적으로 그 녀석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사무실에 딱지가 붙는 사태가 벌어졌죠. 그러니 앙심을 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정광팔 개인이 아니라 공직자인 도지사에게 한 거 아닙니까?”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자신에게 대항했다는 것 자체를 그는 용납할 수 없는 거죠.”
“큭.”
“그리고 그 정도 되는 사람이 아니면 이런 일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저지르지는 못합니다.”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개판인 거야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지만 이창직의 말에 따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무척이나 체계적이고 또한 공격적이다.
과거에 뭉기적거리던 것과는 다르게 아예 체계적인 고사 작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 여러분이 다 그만두거나 사고로 죽을 때까지 계속되겠지요.”
“그렇지만…… 그러면 불은 누가 끄고요? 사람은 누가 구합니까?”
“그게 문제죠.”
저들에게 사람이란 그냥 언제든 자를 수 있는 기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고 보니 하는 짓거리가 일제시대랑 똑같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사람을 3전짜리 엽서 하나면 불러올 수 있는 소모품 취급을 했다. 그리고 정광팔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뻔했다.
“위에 놈이 멍청하면 아랫사람이 고달픈 거죠.”
하지만 소방 업무는 엄청난 경험과 용기가 필요한 힘든 일이다. 그걸 그냥 알바 뽑듯이 뽑아서 배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매년 수많은 소방관들을 뽑지만 언제나 인력은 부족한 이유가 그거다. 공무원이라고 그냥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가 질려서 도망가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까.
“저한테 찾아오셨으니 아실 겁니다. 아마 소송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겁니다.”
“하아!”
애초에 노형진을 찾아올 때, 이창직도 소송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형진의 사무실까지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예상하는 것과 확정되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문제는…… 소송으로도 방법이 없다는 거죠.”
“네?”
소송으로 해결될 거라 예상하고 있던 이창직은 깜짝 놀랐다.
“현행법상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처벌할 규정은 없습니다.”
복지부동이란 말 그대로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공무원들이 책임을 두려워해서 일하지 않으면서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것을 뜻한다.
“그게 말이 됩니까? 업무상 배임이나…….”
“업무상 배임은 업무와 관련해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에 대한 처벌입니다. 이건 그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뿐이지요.”
“큭.”
“더군다나 이건 개인이 한 게 아니라 위에서 시킨 거라 추정됩니다. 그런데 무슨 처벌이 있겠습니까?”
“…….”
“일단은…… 제가 좀 알아보지요.”
“하지만…… 의뢰비가…….”
노형진은 빙긋 웃었다.
“영웅에게는 무료입니다.”
* * *
“좀 알아보셨습니까?”
노형진은 일단 고문학에게 사태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예상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 나쁜 기분은 틀리는 법이 없는 것처럼, 노형진의 예상은 그다지 어긋나지 않았다.
“위에서 떨어진 명령이 맞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고문학의 말에 따르면 상부에서 최대한 늦추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설사 내년에 예산을 반납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래서는 저항도 못 하고요?”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죠.”
“하긴.”
상대방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지사다. 그에 대항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증거는?”
“그것 역시…….”
“치밀하군요.”
이런 건 공문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연히 흔적이 남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결국은 이거죠.”
손가락을 문지르는 고문학.
그 일을 하는 것도 결국은 하급 공무원이다. 적당히 찔러주면 위에서 어떤 압력이 내려오는지 정도는 이야기해 준다.
물론 철저하게 비밀로 하기 때문에 흔적을 안 남기는 조건이지만.
“상급자로부터 내려온 명령은 소방 관련 예산, 특히 장비와 안전에 대한 예산은 무조건 집행정지 상태로 대기하라는 거였답니다.”
“흠, 그러면…… 말이 맞는군요.”
이창직이 말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상황.
“그리고 그 명령은 부장급에서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부장이 소방관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나요?”
“그럴 리가요. 그들도 내근직이기는 하지만 소방관인데.”
“그런데 예산을 집행하지 말라고 했다?”
“네.”
부장급쯤 되면 아무래도 현장보다는 승진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 계급이다. 그리고 이런 명령은 잘못하면 승진은커녕 퇴출될 수도 있는 명령이다.
더군다나 엄밀하게 말하면 소방청 소속인 그가 그런 명령을 내릴 이유는 없다.
“그 이상은 접근할 수 없었지만, 노 변호사님 말씀대로 정광팔이 의심스럽습니다.”
“네?”
“내년 소방관 선발 시험 합격 인원을 늘리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지난 몇 년간 계속 예산을 핑계로 줄여만 왔는데 내년만 유일하게 늘어났습니다.”
“둘 중 하나군요. 인원이 부족한 사실을 깨닫고 추가 증원을 하려는 거든가, 아니면 인원이 부족하게 될 것을 알고 있든가.”
“후자겠지요.”
전자라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의 성격을 봐서는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을 듯했다.
“아무래도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노형진은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뿐 아니라 새론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그런 일이 있었나?”
“네.”
“거참…….”
“소송에서 진 사람이 보복하는 거야 흔하게 벌어지는 일 아닙니까?”
무태식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물론 아예 안 볼 사람이고 또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보복이 의미가 없지만 지금은 아니다.
“원한을 가진 사람이 상관이라…….”
송정한은 사태를 노형진에게 듣고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치적인 문제에는 최대한 엮이고 싶지 않은 게 자신이고 또 새론의 방식이지만, 이런 건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 변호사는 어떤가? 내가 봐서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대책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요. 이런 건 소송해 봐야 그 관리 책임은 위에 있다는 판결이 나올 테니까.”
“대기업에서 부서 이동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대기업이 정규직을 자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그래서 대기업이 쓰는 방식이, 자신들의 권한을 100% 이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부서 발령.
평생을 콜 센터에서 상담하던 사람을 갑자기 서비스 센터로 발령하는 것이다.
서비스 센터는 수리하는 곳이고, 콜 센터에서 일하던 사람이 애초에 기계적인 지식이 있을 리 없다. 그곳에서 배우고 싶다고 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당연히 실적은 처참해지고, 그때는 자연스럽게 실적을 이유로 잘라 버린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기존에 있던 소방관들은 떠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이야 버티겠지만 장비는 점점 노후화될 테고 소방관들의 안전은 위험해지니까요.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별수 없이 떠나야지요.”
듣고 있던 손채림이 안타깝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가 도와주면 안 돼? 솔직히 소방 장비 정도는 지원해 줄 수 있잖아?”
“그건 한쪽 면만 보는 거야.”
“한쪽 면만?”
“조금 더 시간은 줄 수 있지만, 그만큼 그들에게 들어가는 압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노형진은 차마 미래에 있었던 일을 말할 수가 없었다.
미래에 소방관의 이런 처우가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모금을 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장비를 지원해 줬다.
거기까지는 좋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장비를 지원받았으니 장비를 추가할 필요가 없다며 해당 장비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버린 것이다. 바꾼 장비보다 안 바꾼 장비가 더 많았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지원해 준다고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소방 장갑 정도야. 방화복이나 방열복 같은 고가는 꿈도 못 꾼다고. 그리고 소방용 차량 같은 건 어쩔 건데? 그것도 대부분 수명이 다해 가고 있어.”
“그래?”
“소방관용 방수 장갑은 한 켤레에 70만 원이야.”
“뭐라고!”
손채림은 깜짝 놀랐다. 그 정도로 비쌀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싸구려도 있기는 하지. 그런데 그런 건 대부분 국가에서 지원하는 물건이야. 하청을 받아서 그냥 최저 기준만 맞춘 거지. 우리가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일반인이 사 줄 수 있는 것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쓰는 소방 장갑이다. 그런 장갑은 튼튼하고 가벼우며 또한 안전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나간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쥐고 흔들어서 돈을 토해 내게 만드는 거야.”
“하지만 토해 내지를 않고 있지.”
송정한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작심하고 안 주는 상황이다. 이건 소송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소송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항소하게 되면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겠죠.”
1심이야 어떻게 빨리 간다고 해도 2심과 3심까지 가게 되면 못해도 2년은 걸릴 것이다. 분명히 정광팔은 그 방법을 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만두지 않는다고 해도 사고로 누구 하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천만한 방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 그러니 직접적이고 확실한 방식으로 압력을 줘야 한다.
“자네가 압력을 줄 수 있겠나?”
결국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송정한은 조용히 듣고 있던 김성식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김성식은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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