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33)
“대표님이 부탁하셔도 그건 무리일 것 같네요. 제가 아무리 중수부장 출신이라고 하지만 도지사급은 상대하기 힘듭니다. 사실 도지사급은 제가 현직이 있다고 해도 쉬운 상대는 아니죠. 하물며 정광팔은 더합니다. 그는 살아 있는 권력이니까요.”
“더하다고?”
“네.”
김성식은 그가 중수부에 있을 때 정광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중수부는 그런 고위 공직자를 상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니까.
“그런데 정광팔의 경우 건수는 많은데 확정된 게 없던 놈입니다. 그 녀석은 꼬리 감추는 데에는 도가 텄어요. 이거 소송해 봐야 꼬리도 안 나올 겁니다.”
“건수는 많은데 확정된 것은 없다라…….”
“네. 언제나 의심이 되는 정황은 보이는데 그걸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없었습니다. 마치 지금처럼요.”
정광팔이 방해하고 있다고 의심은 가지만 증거는 없다.
부장급이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리도 없고 말이다.
“그러면 신고나 고소를 해도 소용은 없겠네요.”
“그렇겠지.”
손채림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도지사라면 그 정도 사건은 무마할 수 있는 자리니까.”
설사 어찌어찌해서 증거를 찾는다고 해도 제대로 된 처벌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예산의 집행은 도지사의 권한이라는 소리죠.”
노형진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더군다나 노 변호사 말처럼 일을 안 하는 공무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 그러니 공무원들은 일하지 말라는 그의 명령을 거절하기보다는 그냥 일을 안 하는 쪽을 선택하죠. 전자는 확실하게 보복당하지만 후자는 딱히 이득도, 손해도 없으니까요.”
“마치 전쟁 이후의 전범 재판 같은 상황이네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
손채림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다음 순간, 그들은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시킨 사람은 없지만 저지른 사람은 위에서 시켰다고 하죠.”
“…….”
정확하게 맞는 말이다.
이걸 소송을 걸 수는 있겠지만, 정작 시킨 사람은 없고 다들 위에서 시켰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끝이겠지.’
정상적인 과정이라면 당연히 그 명령이 어디서 나왔는지 수사하겠지만 정광팔은 아직 살아 있는 권력이니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노 변호사, 그럼 좋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나?”
“일단은 만나서 협상해 볼 생각입니다.”
“협상?”
“네.”
만일 협상이 돼서 제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솔직히 노형진은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다.
* * *
“아이고, 이게 누구야? 노형진 변호사 아닌가? 오랜만이네.”
자신을 아주 반갑게 맞이하는 정광팔을 보면서 노형진은 왠지 속이 쓰렸다.
‘자신이 있다 이거군.’
자신은 정광팔에게 수치를 준 장본인이다. 그런 그를 이렇게 반갑게 맞이한다는 건 한 가지뿐이다.
노형진이라고 할지라도 방법이 없을 거라는 뜻이다.
“반갑습니다, 도지사님. 잘 지내시죠?”
“나야 잘 지내지. 언제나 바쁘고 말이야. 하하하, 앉도록 하게.”
노형진은 그가 권해 준 자리에 앉아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러나?”
“그냥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궁금해서 말입니다.”
“나야 바쁘지. 요즘 아무것도 모르면서 공권력에 반기를 드는 무식한 놈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지.”
“그런가요?”
“그래. 그런 녀석들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해 줘야 나중에 반성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보니 바쁘지.”
물론 여기서 반기를 드는 무식한 놈들이란 소방관을 말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일세.”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죠.”
“실수를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도 안 지면서 일만 한다고 하면 그게 어찌 인간이라 하겠는가?”
‘이런 망할 새끼.’
그런 식으로 보면 대한민국 정치인의 90%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도지사님, 그만하시죠.”
노형진은 더 이상 말을 돌려서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딱 봐도 그가 시킨 게 뻔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가 올 걸 예상했겠지.’
자신을 감시한 건 아니겠지만 자신이 소방관들과 친밀한 관계인 것은 알 것이다.
더군다나 노형진이라는 이름은 법률계에서 상당한 실력과 힘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니 소방관들이 노형진에게 맡기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뭘 말인가?”
하지만 도지사는 마치 모르는 척하면서 되물었다.
“지금 하시는 거 말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생명과 관련된 일입니다.”
“사람이 참, 말을 그렇게 하나. 이 세상 모든 일은 생명과 관계가 되어 있다네. 청소부가 하루 놀면 세상은 더러워지고, 그러면 세균이 많아지고, 누군가는 병들어서 죽겠지. 청소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지. 안 그런가?”
말은 번지르르한 그의 행동에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얼마 전에 청소부들에 대해서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가 문제가 된 것이 바로 그였다. 그런데 청소부들을 방패로 삼을 줄이야.
‘그리고 그런 식으로 논리를 펴면, 애초에 인간이 태어나면 안 되지. 아니, 인간이 존재하면 안 되지.’
인간이 존재하면 공해가 생기고 공해 때문에 인간은 죽는다. 그러니 공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인 셈이다.
“왜? 내가 하는 일이 불만인가?”
“솔직히 좋은 방법은 아니자 않습니까?”
“노 변호사,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나. 나는 법대로 일할 뿐이라네. 내가 언제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 난 국민과 이 나라를 위해서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도지사로서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단 말일세.”
물론 합법적으로 하고 있기는 하다. 그가 지금까지 한 행동 중에 불법적인 것은 없다.
그는 예산집행의 전권을 가진 도지사이고, 당연히 특정 예산집행을 막을 수 있는 권한 역시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합법은 합법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피해는 국민들이 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알 바 아니지. 난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으니까.”
히죽 웃는 정광팔.
‘이 녀석은 협상할 생각 자체가 없구만.’
물론 합법은 아니다. 하지만 합법을 가장하고 있으며, 파고들어 봐야 아무것도 잡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정광팔은 그걸 알고 있으니까 저러는 것이다.
“난 그냥 내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그 말에,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벌써 가려고?”
“더 이상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겠네요.”
“난 바빠서 멀리 안 나가네. 나중에 다시 만나세. 만날 수 있으면 말이야.”
히죽 웃는 전광팔을 뒤돌아서 바라본 노형진은 조용히 그곳을 나와 버렸다.
* * *
“녀석은 보복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노형진이 확실하게 말하자 다들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보복 대상에는 우리도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송정한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들에게 보복하다니? 자신들은 변호사다. 의뢰를 받아들여서 일한 것뿐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알 수 있었다, 그 녀석이 자신들을 그냥 두고 넘어가지 않을 생각임을.
그건 기억을 읽을 필요조차 없이 확실했다. 소방관에 대한 보복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불법일세.”
“그 녀석이 불법을 신경 쓸 놈은 아니니까요.”
“끄응…… 그런데 왜 우리한테는 손을 안 쓰는 건가?”
“우리는 힘이 있는 상태니까요.”
“힘?”
“네.”
아무리 도지사라고 해도 공기업도 아닌 사기업, 그것도 법률 회사에 관해서는 손대기 힘들다.
더군다나 새론은 대룡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정치인보다 위험한 것이 돈이고, 돈을 다루는 대기업은 섣불리 건들기 힘들다.
“하지만 지금 자리보다 더 높이 올라가면 분명히 보복할 겁니다.”
“더 높은 자리?”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자리가 있지요.”
다들 얼굴에 썩소가 떠올랐다.
만인지상의 자리라 불리는 대통령. 그 자리에 있으면 대기업조차도 두렵지 않다.
그리고 도지사급의 자리에 올라가면 대부분 한 번은 대권 도전이라는 큰 꿈을 꾸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면…….’
정광팔은 숱하게 대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본선인 대통령 선거에 나온 적은 없다. 당 내부에서 그를 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원하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당과 척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게 두려워서 매번 포기했다.
‘그런 걸 지금은 모르지만.’
그 녀석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무리 역사가 바뀌어도 큰 틀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고, 설사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도 도지사급이 자신들을 별로 안 좋아하면 여러모로 곤란한 것도 사실이다.
“이건 단순히 소방관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녀석이라면 그러고도 남지요.”
김성식조차도 그의 그동안의 행동을 생각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여기서 느낀 게 뭐냐면, 그 녀석은 일종의 소시오패스 성향이 강하다는 겁니다.”
“소시오패스?”
“네. 소시오패스의 복수심은 장난이 아니지요.”
소시오패스들은 단순 원한도 수십 년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단돈 몇십 달러로 싸운 일 가지고 수년이 지난 후에 상대방을 쏴 죽인 사건도 있다. 심지어 100달러를 빌렸는데 갚지 않는다고 어려서부터 친구인 사람을 생매장한 녀석도 있다.
“정상인인 척 사람들과 섞이면서도 말로 사람을 통제하려고 하고 권력을 추구하며 보복을 서슴지 않는다. 소시오패스라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면 알수록 그 녀석과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설마…….”
송정한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이 되었다.
소시오패스는 위험한 정신병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니.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을 겁니다.”
“뭐라고?”
“소시오패스인 녀석들은 상대방에 대한 보복을 서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덤벼들거나 저항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밟아 버리죠. 그러니 더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일정 직급 이상의 성공을 한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소시오패스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살인마 아냐?”
“살인마가 될 가능성이 높은 거지, 소시오패스가 곧 살인마인 건 아니야.”
그들은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득을 극단적으로 추구한다.
“아예 감정 자체가 없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르지.”
“더군다나 소시오패스는 후천적인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흠…….”
“그리고 정광팔은 후천적인 소시오패스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상황에서 자라났구요.”
엄청난 부잣집에서 자랐으며 누구나 그를 우러러봤다. 그러니 남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등을 배울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러면 우리를 그냥 두지 않겠군.”
“네.”
노형진은 확신했다.
“이건 소방관만을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반갑지 않은 정치인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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