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35)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이들의 대표인 이창직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이건 명백하게 위법이다. 아니, 위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물러날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 소방 조직이 축소된다면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국민일 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힘든 건 없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결정하자 노형진은 씩 웃었다.
“그냥 시간을 좀 내주시면 됩니다.”
“시간을?”
“네.”
노형진은 정광팔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 * *
“반갑니다.”
“반갑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노형진은 눈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쪽이랑 그다지 엮이지 않고 싶지만.’
눈앞에 있는 이는 정신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벌써 4선째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다지 좋은 인간은 못 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한 나라의 사업을 말아먹는 것쯤은 쉽게 생각하는 녀석들 중 하나니까.
‘나중에 벌어질 일이기는 하지만.’
이자가 속한 무리는 국민의 인터넷이나 SNS가 마약과 같다면서 인터넷을 통제하려고 법안을 만들었던 자들이다. 물론 미래의 일이다.
그들이 그런 법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인터넷 업체에 뇌물을 요구했는데 거절당해서였다.
‘그래도 일단은…….’
그건 나쁜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그의 자리다. 그러니 노형진은 그를 충분히 도와줄 생각이 있었다.
“요즘 선거 준비는 잘되어 가십니까?”
“허허허, 선거 준비라니요?”
“한국정신건강학회 회장 선거에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이구, 그 이야기가 거기까지 갔습니까?”
다 알면서 히죽거리는 이상철.
그는 한국정신건강학회의 선거에 도전 중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암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럼요. 솔직히 지금 학회가 방향을 엉뚱하게 잡고 있지 않습니까? 의원님 같은 분이 방향을 바로잡으셔야지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런 분을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하하하.”
노형진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애써 미소 지었다.
사실 현재 정신건강학회는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이상철이 회장이 되면서 변질되어 극단적 이익 단체가 되어 버린다. 이익을 나눠 준다는 말에 다들 그를 밀어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업체들이 해외로 나가서 세금이 거덜 나게 하는 주범이 되었다.
‘뭐, 그건 억울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니.’
노형진이 지원하든 안 하든 그는 회장이 된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큰데 이익을 나눠 주겠다는 현 국회의원, 그것도 4선 의원의 말에 안 넘어갈 사람은 없으니까.
‘그간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 중요한 것은 소방관이다.
정확하게는 소방관의 치료비가 필요한 상황.
“그래, 저를 만나려고 한 이유가 뭡니까?”
“사실은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도움?”
“네.”
“제가 무슨 도움을 드릴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일개 국회의원일 뿐인데요.”
그는 일단 슬쩍 발을 뺐다.
물론 진짜 도움을 줄 상황이 안 되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요구할 것이 있기 때문에 슬쩍 발을 뺀 것이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의사에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의원님.”
“의사에게?”
“네.”
노형진의 대답은 교묘했다. 의사에게 부탁한다고 말하면서도 호칭은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어떤 부탁입니까?”
“개인적으로 전 소방관의 처우에 관해서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소방관들에게 부여되는 정신적 치료비는 고작 1년에 5천 원 정도라는 거?”
“그래서요?”
이상철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돈도 안 되는 소방관 따위,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소방관은 절대적으로 정신적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직업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지요. 그러니 그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민간 보험으로 처리하라고 하면 되죠.”
“소방관은 위험 직업군인지라 민간 보험에서 가입을 받아 주지 않습니다.”
“그래요?”
“네.”
소방관이 억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직업적으로 위험한 곳에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쉽게 다칠 수밖에 없다. 소방관 업무를 하면서 다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그렇다 보니 보험 가입도 안 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는 정신과적 질환의 보험은 없다.
“그러니까 그분들에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거야 각 지자체에서 해결할 일 아닙니까? 소방관은 지자체 소관일 텐데요. 그건 제가 아니라 도지사에게 가 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만?”
돈이 안 되는 걸 알자 확실하게 거절의 뜻을 내보이는 이상철.
‘내 이럴 줄 알았다.’
애초에 이상철이 쉽게 도움을 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돈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지자체는 그걸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하지만 소방관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정신적 치료비입니다. 그걸 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국회의원이 나서야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소방관은 지방직입니다. 우리 같은 의원들과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정신과 의사분들이 도와주실 수 있지요.”
“글쎄요. 다들 바쁘신 분들이라 가능할지…….”
도와줄 생각이 없음을 은연중에 돌려서 말하는 이상철.
하지만 노형진은 그냥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돈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걸?’
저들이 노리는 것은 단 하나, 바로 돈이니까.
“그러니까 국가에서 이 돈을 정신학회에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래 이런 건 법적으로는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그걸 정부에서 내놔야지요. 그래서 소송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거랑 우리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아무래도 공무원의 비용 처리를 직접적으로 공무원에게 해 줄 수는 없지요. 그건 여러모로 불리하니까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학회 쪽으로 내는 쪽으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노형진은 돌려서 말했지만 의사를 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이상철은 바로 알아들었다.
“진료비를 학회에 바로 낸다?”
“아무래도 병원비는 경비 처리하기가 훨씬 힘드니까요. 차라리 학회 차원에서 지원하는 걸로 하면…….”
노형진의 말에 이상철의 눈에 불이 켜졌다.
노형진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환호를 했다.
‘걸렸구나.’
애초에 이들이 인터넷이 마약이라고 거품을 물면서 싸움을 건 이유는 그 진료비를 인터넷 업체들로부터 뜯어내서 자신들에게 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법에 따르면, 인터넷 업체는 수익의 일부를 정신학회에 주도록 되어 있다. 이상철이 회원들에게 약속한 이득을 나누기 위해서 만든 법인 것이다.
노형진은 그 논리를 살짝 빌려 온 것이었다.
‘아마 다급하겠지.’
역사적으로 이상철이 회장이 되기는 하지만 그건 노형진만 알고 있는 일이다.
이상철은 현재 살짝 불리한 상황이다. 마땅하게 회원들에게 보여 줄 비전도 없고 선거 자금도 부족하다.
‘하지만 돈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전국에 얼마나 많은 소방관들이 있습니까? 그들은 PTSD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겠지요.”
“흠…….”
돈이라는 말에 슬쩍 관심을 보이는 이상철.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이쪽으로 반쯤은 넘어온 상태였다.
“그렇기는 하겠군요.”
“그러니 그들이 치료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이들에게는 완치라는 게 없다.
치료받는 비용도 비싼데 정신과 치료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사실 이들이 소방관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계속 치료받을 수밖에 없다. 수십 년간 말이다.
‘그러니 돈독이 오를 만하지, 후후후.’
한국은 정신과 진료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렇다 보니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드문 편이고, 지난번에 겪었던 부자 납치 사건처럼 강제 입원실을 운영하지 않는 이상 정신과 의사의 경우 돈이 그다지 많이 벌리는 직업은 아닌 게 현실이다.
“그러니 그들에 대한 정신과 진료를 지원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은 일을 하시는 거겠습니까?”
만일 노형진의 추측이 맞는다면 정부에서는 협회에 치료비를 줄 테고 협회는 그 돈을 받아서 배에 기름을 채울 것이다.
인터넷 통제야 결국은 국민들에게 엄청나게 욕먹고 실패했지만 이건 욕먹을 일도 없다.
더군다나 일단 누군가 끌고 오기를 기다리는 인터넷과 다르게, 소방관이라면 당연히 치료받아야 하니 잠재 수요는 훨씬 많다.
“장기적으로 보면 소방관뿐만 아니라 경찰도 포함될 수 있겠지요.”
“경찰?”
“네. 미국 같은 경우는 경찰이나 소방관에 대한 정신적 치료나 상담이 의무화되어 있을 정도로 정신학회가 존중받고 있습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살살 그를 흥분시켰다.
그들의 목적은 돈이다. 그걸 긁으면 충분히 움직인다.
“음…….”
이상철은 침묵을 지켰다.
자신도 미국을 갔다 와서 안다.
미국에서는 무슨 일만 생기면 무조건 정신과 상담을 시킨다. 심지어 승진 같은 걸 할 때도 상담은 필수다.
그래서 사회 전반과 공직에서 정신과 학회가 가지고 있는 위력은 적지 않다.
“우리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 억울하게 하는 행동을 해서도 안 되지만 불이익을 받아도 안 되겠지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소방관들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국민들을 구하는 살아 있는 영웅들인데 그들의 치료 정도는 당연히 국가에서 해 줘야지요.”
일단 돈이 연관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이상철은 바로 돌변했다. 아까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들과 관련이 있다고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정신건강학회가 그런 분들의 안전을 챙겨야지, 누가 챙기나요?”
“그렇지요? 이번에 추경예산 심사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때 적극적으로 어필하면 여러 소방관들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그럼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 중 하나가 소방관이 업무 중 사고로 죽는 비율보다 자살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걸 더 반긴다.
업무 중 사고는 보상도 해야 하고 연금도 줘야 하지만 자살은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의 입장에서 소방관은 뽑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지만 이권이 걸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한국정신건강학회는 은근히 파워가 있는 단체다. 공식적으로 소속된 국회의원은 이상철 한 명뿐이지만 그를 중심으로 사방에 로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인터넷 통제 당시에도 국민들이 그렇게 욕하는데도 강행할 만큼 로비 능력이 뛰어났으니, 국민들이 욕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훨씬 간단해질 것이다.
“이건 제가 인사 차원에서 가지고 온 겁니다.”
노형진은 그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시중에서 흔하게 보이는 그런 음료수 박스였다.
무심결에 받아 든 이상철은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그걸 슬쩍 아래쪽으로 감췄다.
“역시 대한민국은 살 만합니다. 노 변호사님 같은 분이 소방관 같은 영웅을 챙겨 주니까요.”
“별말씀을요. 하하하하.”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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