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43)
>4장. 토사구팽>
“이혼요?”
노형진은 자신에게 배당된 사건을 듣고는 당황했다.
일반적으로 노형진에게 배당되는 사건은 어렵거나 규격화되어야 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번에 배당된 사건은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벌어지는 사건인 이혼 사건이었다.
“이혼은 가장 먼저 규격화된 사건 아닙니까?”
노형진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한 해 이혼하는 숫자는 수십만이다. 심한 경우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이혼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체계화가 된 부분도 있고 실제로 변호사 중에 이혼 사건 한번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혼이라니?
“이번에는 사건이 좀 복잡해서 말이지.”
송정한은 노형진에게 말하면서도 미안한 얼굴이었다.
하긴 이혼이라는 게 너무 흔한 사건이니까.
“그렇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유가 있으니까 저한테 배당해 주신 것이겠지요.”
가끔 송정한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부탁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려운 사건을 기준으로 부탁하는 것이다.
이혼이라고 하지만 문제가 있으니 자신에게 배당된 것이리라.
“미국에서 소송을 걸었네.”
“미국요?”
“네.”
“아니, 웬 미국? 당사자가 미국인입니까?”
“그건 아닐세. 한국인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왜요?”
“미국에 있어. 기러기 부부거든.”
“기러기 부부? 그러면 남편이 한국에 있는 모양이군요?”
“그러네.”
기러기 부부란 어떠한 사유로 부부가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남편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유학을 가 있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것이 흔한데, 그런 사람을 가리켜 기러기 아빠라고 많이 표현한다.
그리고 노형진은 그제야 그가 왜 송정한이 이야기를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하긴 요즘 말이 많기는 하지요.”
“자네도 아나?”
“알죠.”
지난 몇 년간 경기는 좋았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기러기 부부가 되어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서 공부를 시켰다.
한국은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돈만큼은 아끼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문제는 아이들만 보낼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대부분의 부부는 남편은 한국에서 돈을 벌고 아내가 미국으로 가서 아이들을 보살피는 형태가 되었다.
‘그런데 슬슬 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단 말이지.’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점점 한국은 장기 침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 돈을 버는 남편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당장 돈을 버는 것도 힘든데 한국의 경기 침체가 심해지면 당연히 환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즉, 한국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령 1,700달러를 보내려고 할 때 환율이 높으면 200만 원 정도만 보내도 되는데, 환율이 바뀌면 동일한 돈을 보내기 위해서는 250만 원이 들게 된다.
들어가는 돈은 크게 차이가 없어야 하니 결국 한국에 남은 사람이 죽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때쯤이었지.’
이때쯤을 기준으로 이러한 기러기 부부의 이혼소송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에서 돈을 벌다가 못 버틴 가장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라는 말에 상대방이 거부하기 시작하자 의심이 싹터 수많은 소송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사건이 커질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이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러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이혼소송을 하고 있는 곳이야 흔하지만 이러한 국제적 소송을 하는 곳은 흔하지 않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 있는 기러기 부부가 어디 한두 명인가?”
“못해도 몇십만은 될 겁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들 중 최소 10%는 이혼할 거라는 게 내 판단일세.”
‘너무 정확해서 탈이군.’
노형진은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송정한의 말대로 실제로 수많은 부부들이 이혼하게 된다.
설사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수년간 떨어져 산 가족들에게 부부간의 정은 없었고 또 해외의 삶에 적응한 쪽이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도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해외로 나가는 경우도 많지.’
한국의 학교는 경쟁 체계이며 밟지 않으면 밟히는 약육강식의 방식이다. 그에 반해서 미국이나 교육 선진국은 평등과 기회의 공평성을 추구한다.
성적이 낮으면 왕따를 당하든 뭐를 하든 신경도 안 쓰는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
‘그 때문에 아이들이 들어와도 적응하지 못하지.’
문화도 다르고 지금까지 배운 분위기도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진도다.
한국에서 배우는 교과목 중 상당수가 미국이라면 대학에 들어가서 배울 정도로 고차원적이다. 창의력 위주의 교육이다 보니 암기 쪽은 그다지 진행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미국에서 1, 2등을 다투던 아이들도 한국에 오면 순식간에 아래로 깔리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그걸 버티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가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데 단순히 사건이 많다고 해서 저한테 배당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게 말이야, 상대방이 미국에서 재판을 걸었네.”
“미국에서요?”
“그래. 그래서 졌어.”
“끄응…… 이거 곤란하군요.”
둘 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미국에서 재판을 걸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재판을 걸 수 있는 곳은 당사자가 있는 곳이니까.
“머리를 잘 썼네요.”
“그러게 말이야. 그 때문에 다른 곳에서 좀 꺼리는 모양이더군.”
“흠…….”
미국에서 재판을 걸었을 때 제대로 어떻게 대항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라는 거다. 한번 가는데 왕복 몇백만 원이 깨지는 그런 나라.
그러니 제대로 된 저항은 꿈도 꾸지 못한다.
“미국에서 한 재판을 한국에서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는 법원에서 인정받아야 하지만…….”
“미국에서 재판을 걸 정도면 미리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겠군요.”
“그러네.”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재판을 걸었다고 한국에서도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그게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국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어떤 요건만 갖춘다면 효과가 발휘된다는 뜻이다.
“배상액이 살벌하겠네요.”
“그러네. 그게 문제야.”
미국 재판이 효과를 발휘하는 건 단순히 이혼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여성 위주의 이혼 재판으로 악명이 높다. 가령 여자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을 해도 남자는 그 여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심지어 재산의 절반을 줘야 한다.
“미국에서 유명한 말이 있지요.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이혼 세 번 하고 나면 알거지라고.”
“그렇다고 하더군.”
그래서 실제로 재산을 주지 않기 위한 암살이나 살인이 적지 않게 벌어지는 곳이 미국이다.
“이쪽에서 소송을 알았답니까?”
“알기야 알았지. 하지만 대응할 방법이 없지 않나?”
“그렇지요.”
일단 한번 갔다 오려면 돈 천은 깨지는 것이 미국이다. 버는 족족 돈을 보냈으니 거기 갈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있다 해도, 이혼소송을 이유로 한국의 변호사가 재산을 모조리 묶어 놨을 테니 갈 수가 없다.
“미국 변호사는 비싸서 선임도 못 할 테구요.”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잘 아나?”
“그냥요. 뻔하게 보이네요.”
노형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 짓거리를 한두 번 본 게 아닌데.
‘도대체 누가 이런 방법을 만든 건지.’
미국에서 소송을 거는 것과 동시에 한국의 재산을 동결시켜서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
그 때문에 수많은 남자들이 졸지에 전 재산을 털리고 길바닥으로 쫓겨났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군요.”
“그렇지?”
일단 가장 큰 문제는 공간적인 문제다.
한국에서 미국에 가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그냥 멍하니 당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런데 자네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더군.”
“제가 무슨 수로요? 전 미국 변호사 자격이 없습니다. 설사 있다고 해도 사건 때마다 미국을 갈 수는 없고요.”
“자네가 투자한 회사가 있지 않은가?”
“드림 로펌 말씀이시군요.”
“그래, 자네가 투자한 곳. 그곳이랑 전략적으로 제휴를 할까 생각 중일세.”
“결국 사건을 싹쓸이하시겠다?”
송정한은 히죽 웃었다.
“설마 이 정도 난이도 가지고 자네에게 부탁하겠나?”
“하긴…….”
한국의 변호사 기업 중에서 해외 로펌들과 연결된 곳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거대 사건을 기준으로 연결되어 있지 체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새론은 이미 노형진과 함께 세계 각국에 지점을 개설하고 있는 상황.
필리핀이나 베트남처럼 한국인이 많은 곳은 이미 지점이 들어가 있고, 미국은 지점은 없지만 노형진이 투자한 드림 로펌이라는 기업이 있다.
“그곳에서 적당한 실력의 변호사를 고용해 달라고 하면 어려운 건 아닐 걸세.”
“양측에서 효율적으로 저항할 수 있겠군요.”
“그러네.”
이번 사건은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제휴를 위한 송정한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나쁜 건 아니네.’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은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그 공통점은 걸린 돈이 크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은 한국보다 생활비가 훨씬 많이 드는데 그곳으로 유학을 보냈다는 것 자체가 그 집안이 적지 않게 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자네가 좀 나서 주게나. 우리도 이참에 규모를 키워 봐야지.”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노형진입니다.”
“서규태입니다.”
서규태는 침울한 얼굴로 노형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대룡에서 부장급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꼴을 당할 거라 예상이나 했겠는가?
“아내 이름이 안숙희 씨라고요. 그런데 서규태 씨는 소장은 언제 받으셨습니까?”
“다섯 달 전에 받았습니다. 판결문은 한 달 전에 받았고요.”
“미국으로 가 보셨겠지요?”
“네, 갔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날부터 한국에서 선임된 변호사라는 인간이 이혼소송을 이유로 그의 재산을 모조리 동결시켜 버렸다.
“사방에서 돈을 구해서 애 엄마를 만나려고 미국에 갔지요.”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대화가 아니라 미국의 경찰이었다.
그가 집에 가자 경찰이 들이닥쳐 그를 끌어냈다. 그리고 바로 추방되었다.
“알고 보니 저를 가정 폭력으로 신고했더군요.”
“허…….”
한국은 가정 폭력이 신고되면 알아서 하라고 하지만 미국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그 두 사람을 떼어 두는 것.
“전 그 바람에 미국에 입국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를 가정 폭력으로 신고했고 접근 금지 명령까지 받아 냈다. 그 덕분에 이야기는커녕 미국에서 범죄자로 의심받아서 입국 금지까지 당했다.
“사건이 진행된 건 아닙니까?”
“그래도 가족이라고 바로 취하하더군요.”
노형진은 눈이 꿈틀했다.
그가 가족이라고 취하했다는 말이 애석하게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속으신 겁니다.”
“속은 거라고요?”
“네, 만일 진짜로 폭행에 대해서 수사가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허위 신고인 게 드러났을 겁니다. 하지만 취하되었으니 신고 기록만 남게 되죠. 서규태 씨가 말씀하신 대로 가족이라서 취하하는 경우는 많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