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54)
그러나 그녀가 성화의 핏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상황이 애매해졌다. 거절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 그래서 노형진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하필이면 송정한이 미국에서 있던 사건 덕분에 시스템을 정비하느라고 미국에 출장 중이었기 때문이다.
“성화라서 사건을 거부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더군다나 말씀하시기로는 성화와 관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관련이 없다기보다는 관련이 없고 싶은 거죠.”
“네?”
“성화와 척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해 줄 만한 곳은 없더군요.”
“척요?”
노형진은 깜짝 놀랐다.
그 말인즉슨 성화의 핏줄인 김유미가 성화와 선을 긋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녀의 눈빛을 봐서는 그게 농담이 아닌 듯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여기에 사건을 맡긴다고 해서 자신들에게 영향을 주거나 정보를 캐낼 수는 없는 일.
“제가 성화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리고 여러분들은 저를 김두성의 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을 아버지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의 어머니는 김두성과 이혼했지요. 이혼 당시 양육권은 어머니가 가지고 갔습니다. 열여섯 살까지 그랬지요. 그런데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성화 일가에 다시 양육권이 돌아간 것뿐입니다.”
“그런가요…….”
대충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노형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건 그쪽 집안일이니까.
문제는 그녀가 왜 여기까지 와서 사건을 맡기느냐는 것.
“무슨 사건인지 알고 싶습니다만.”
“결혼하기 싫어서요.”
“네?”
노형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결혼하기 싫다고요?”
“네.”
“아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은 자기가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거지요.”
“그게 쉬운 상황이 아니거든요.”
성화는 그다지 사정이 좋지 않다. 노형진이 요 근래 신경을 안 쓰기는 했지만 그건 다 그만큼 대룡이 혼자서 잘할 수 있을 만큼 성화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요 수입처를 다 잃은 성화는 대룡의 공격에 자금력이 달려서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성화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조용히 구경하던 다른 재벌들 역시 무너지는 성화를 뜯어먹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이니까.’
그동안은 누가 이길지 몰라서 조용히 있었지만 사실상 승부가 난 이상 더 이상 눈치를 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결혼을 준비 중입니다.”
“결혼? 설마 대룡에 결혼을 요청하신 겁니까? 그렇게 해서 휴전하시려고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과연 그런다고 대룡이 휴전을 받아 줄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받아 줄 수가 없다. 김유미가 결혼할 만한 나이대의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들을 성화에서 죽여 버렸으니까.
“아닙니다.”
“그럼요?”
“대동요.”
“대동? 재계 서열 12위인 대동?”
“네.”
노형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 한마디로 성화의 목적이 한 번에 드러난 것이다. 성화는 대동이 싸움에 끼어들게 하려는 것이다.
‘이거, 좋지 않아.’
현재 대동은 한국 재계 서열 12위다. 문제는 그 대동이 한국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동은 일본에서 시작해서 한국으로 넘어온 기업이고, 본거지인 일본까지 합하면 그 파워는 어마어마하다.
한국 서열 12위라고 하지만 일본 파워까지 합하면 못해도 3위급 안에는 든다. 한국에서 서열을 따질 때는 한국 내 자산만 따지니까.
“그곳과 결혼시키려고 한다고요?”
“네, 저보고 그곳에 시집가라고 하더군요. 가문을 위해서요. 절 버린 건 가문이었는데 이제 와서 가문을 위해서 가라니, 웃긴 일이지요. 전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죠.”
김유미의 어머니는 이혼하고, 아니 이혼당하고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키웠다.
양육비를 청구하면 편하게 살 수 있겠지만 그 집안의 돈은 한 푼도 받지 않겠다면서 직접 일해서 그녀를 키우다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러고 보니…….’
노형진은 그녀에 대해서 봤던 것이 기억났다.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다 보니 가문 사람들에 대해서 조사한 기록이 있는데 거기에 김유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립심이 강하고 가문 내에서 배척받는 분위기가 있음. 가문을 이어받을 가능성은 낮으며 그로 인해서 가문 내에서도 금전 이외의 다른 지원은 없는 듯함. 영국에서 여성학을 전공함.
“페미니스트이신가 보군요.”
지금의 행동과 그녀의 전공 그리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점을 생각하면 페미니스트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노형진의 말에 그녀는 짜증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기분 나쁘군요.”
“네?”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는 노형진.
아니, 그녀의 행동은 페미니스트가 맞다. 그런데 화를 내다니?
“그런 여자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전 젠더 이퀄리즘을 추구합니다.”
“아아…… 네…….”
노형진은 문득 들었던 말이 생각이 났다.
‘이때쯤부터 생기는 개념인가?’
과거 여성운동은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느 집단이든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론자들이 득세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페미니즘 집단들은 점차 변질되었고 그 결과 어느 순간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로 변질되자 이에 대항하여 생긴 것이 젠더 이퀄리즘, 그러니까 양성평등주의자다.
아직까지 그렇게 널리 퍼진 개념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영국에서는 많이 바뀌었다고 했지, 아마?’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라는 작자들의 행위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생긴 것이 젠더 이퀄리즘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무척이나 싫어한다고 했다.
영국에서 한창 유행하는 개념이니 영국에서 공부한 그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뭐, 저한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서요. 아닌 건 아닌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니까.”
“그게 중요하죠.”
김유미는 당당한 노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찌 되었건 그런 사람에게 가문을 위해서 시집가라는 건 개소리지.’
양성평등주의자라고 해서 가문의 뜻에 순종한다는 뜻은 아니다. 도리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나아가는 타입이다.
“사정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성화에서 그렇게 결혼하려고 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신이 안 하면 그만인데요? 약혼 같은 건 본인의 동의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화 같은 곳에서 보면 집안 어른이 정한 약혼자니 어쩌니 하면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서 알콩달콩 잘 살아가지만, 현행법상으로 보면 집안 어른이 아니라 그 누가 결정한 약혼이라고 해도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알고는 있지요. 저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더군요.”
“주변을?”
“네.”
“끄응…….”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성화가 생각보다 다급한 모양이네.’
안 그런 척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딸을 그렇게 몰아붙이면서 팔아 버리듯 넘기려고 하는 걸 보니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긴 동맹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혈맹이지.’
피로 맺어진 동맹은 어지간하면 깨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가장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돈이 되는 것이 좋다.
물론 대동이 딸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현재 대동이 갑인 상황에서 자신들의 딸을 망해 가는 기업에 보낼 리 없다.
“그런데 하필 대동이라니…….”
“그다지 좋은 대상은 아닌가 보군요?”
“네, 좋은 곳은 아니죠.”
애초에 대동은 해방 직후에 생긴 기업이다.
한국에서 기생하던 친일파들이 해방되고 위험하다고 생각되니까 자신들의 재산을 처분하고 일본으로 넘어가서 만든 것이 바로 대동그룹이었다.
자신들은 부정하지만 역사에 따르면 대동이라는 그룹명도 다시 한 번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자고 붙인 이름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들이 왜 이런 조건을 받아들인 건지 아십니까?”
“모르죠, 저야. 전 애초에 기업 경영에 전혀 끼지 못했으니까요.”
그래 놓고 이제 와서 결혼해서 기업과 가문을 살리라니, 김유미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여기는 법적인 한계를 넘어서 도와준다고 하더군요.”
“그거야 그렇지만.”
사실 이런 사건은 법적으로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법적으로 김유미가 거절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화에서 김유미의 주변 인물을 괴롭히는 것을 법적으로 막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폭들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을 때 가장 많이 쓰는 것이 그가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사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될 뿐만 아니라 죄책감에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다른 곳은 일단 성화라는 이름에 한번 발을 빼고, 그렇지 않은 곳들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또 한 번 발을 빼더군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변호사가 도와 드릴 건 없네요.”
“그래서 여기에 온 겁니다. 새론은 법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방법을 찾아 준다고 하니까.”
“끄응…….”
노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상황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상대방은 성화의 혈통을 가진 사람이다.
대룡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성화와 싸우는 새론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아무래도 그냥은 안 될 것 같군요.”
“하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그게 아니라 문제가 문제인 만큼 대룡의 동의를 얻어야 할 듯합니다. 어찌 되었건 성화와 대룡은 전쟁 중이니까요.”
“그렇지요.”
의외로 김유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여기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노형진은 괜스레 씁쓸해지는 기분이었다.
* * *
“허허, 참…… 성화 가문의 의뢰라……. 내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보는군.”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유민택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보아하니 그다지 우리한테 물어볼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네. 핵심 권력에서는 상당히 먼 여자이고도 하고, 또 가문과 그다지 친한 사람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네들이 그걸 해 준다고 해서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요.”
“그걸 자네가 모를 리는 없을 것 같고, 왜 우리 핑계를 댄 건가?”
유민택이 정곡을 찌르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노형진이 자신들의 핑계를 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성화가 결혼을 추진한다는 말을 전해 드릴 겸해서 말입니다.”
“하긴 그건 나도 모르고 있었던 일일세. 그건 좀 알아봐야겠군.”
유민택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김유미가 대동 쪽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대동이 성화와 대룡의 싸움에서 성화의 편에 참전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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