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6)
판사들은 두 사진을 비교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나이 차와 체격 차가 있어서 좀 달라 보일지도 모르지만 갈비뼈 부위에 난 파손의 흔적은 완벽할 정도로 똑같았다.
‘타액이 있으면 좋겠지만.’
인공호흡을 했으니 그 안에 타액이 있으면 좋겠지만 벌써 장례식까지 치른 마당에 그 흔적이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노형진이 갈비뼈를 안 부러뜨리고 심장마사지를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하지만 이 부분을 아셔야 합니다. 피고인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사고를 치고 난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계획을 변경하여 구조 행위를 진행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범죄 사실 불성립의 조건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갑제 12호증에서 보다시피 피고인이 평소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인 혼다 슈퍼커브의 경우, 차대 번호 조회 결과 도난품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즉, 피고인은 원래부터 범죄자로서 경력이 있다는 뜻이고…….”
그 말에 노형진은 유철진을 바라보았다.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철진 역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니에요!”
“아니라고?”
“네! 진짜예요! 선배들이 싸게 사라고 해서 산 거지, 진짜로 도둑질해서 가지고 온 거 아니에요!”
“끙…….”
변호사는 이럴 때가 곤혹스럽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뭔가가 나오는 상황.
“그 부분은 나중에 해결하자.”
보아하니 광문식은 그에게 범죄자의 이미지를 뒤집어씌우려는 모양이다. 물론 이는 당연한 전략이다.
“즉, 피고인이 이전에도 범죄 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상입니다.”
광문식은 집요하게 유철진이 범죄자라는 것을 공략했고 판사들 역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원래 범죄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점점 커져 가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의 주장에 따르면 해당 오토바이는 피고인이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선배 중 한 명이 판매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걸 이유로 범죄자라는 선입견을 가지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검찰 측은 피고인이 범죄자 집단에 연루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이번 사건이 그 증거입니다.”
“이번 사건은 피고인 유철진 군이 퍽치기의 가해자냐, 아니면 선한 사마리안으로서 그를 구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냐를 다루는 것이지, 유철진 군이 범죄 집단에 속해 있었느냐 아니냐를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에게 범죄자의 이미지를 뒤집어씌우기에 성공한 것이다.
‘젠장.’
그래도 민사는 범죄자라는 이미지에 관련된 문제가 덜하지만 형사는 다르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별수 없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 방법은 써 봐야 좋은 꼴 못 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사건은 퍽치기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퍽치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금전입니다. 검찰 측 기록에 따르면 피고인은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혔습니다. 그럼 그 돈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거야 주머니에서 나왔지요.”
광문식은 느긋하게 말했다.
당시 유철진의 주머니에서 무려 22만 원이라는 큰돈이 나왔기 때문이다. 만일 퍽치기가 아니라면 그런 큰돈을 가지고 다니는 고등학생이 어디 있겠는가?
“증거에 따르면 피고인은 검거 당시 22만 원하고도 1,800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일반적인 19세 학생이 가지고 있는 것치고는 적지 않은 돈입니다.”
광문식은 드디어 노형진이 잘못을 인정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협상하자고 할 때 할 것이지.’
협상이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는 편해서 좋고 범죄자는 형량이 줄어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유철진은 끝까지 협상을 거부했다. 그 덕분에 13년 형이라는 긴 형량이 나온 것이다.
“그럼 나머지는 어디 있습니까?”
“나머지?”
순간 어리둥절한 얼굴이 된 광문식.
나머지라니? 들어 보지 못한 말이다.
“피해자는 가게를 경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곳에 있었던 것 또한 매일 같은 시간에 수금하러 다니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는 매일같이 상당한 액수를 들고 그 길목을 오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피고인은 그곳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합니다. 원래 사는 곳과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근무처도 아니며 학교 근처도 아닙니다. 일반적인 행동을 보았을 때 그가 거기에 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연히 피해자를 발견하고 공격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 나머지 돈은 어디 갔을까요? 상가에 확인한 결과 그날 수입금은 무려 120만 원. 그중 90만 원을 피해자가 들고 나갔습니다.”
그 말에 광문식의 얼굴이 미묘하게 떨렸다. 몰랐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지.’
한국은 형사사건이 진행되면 피해자 측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그러니 주요한 정보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설사 참고인을 조사한다 할지라도 주변 사람들을 다 부르는 게 아니다. 더구나 가족들도 피해자가 수금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피해자가 혼자 살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자세한 정보는 몰랐다.
“피고인이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잡혔다면 그 돈을 감추거나 처분할 시간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피고인에게서는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돈이 나왔을 뿐입니다. 그럼 다른 돈은 어디로 간 걸까요?”
“그거야 공범이 있겠지요.”
무심결에 방어를 위해서 말을 꺼낸 광문식은 아차 싶었다.
“그럼 그 공범은 어디 있나요? 검찰은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사건을 진행시키지 않고 피고인만 처벌하고 끝내려고 할까요?”
“그…….”
물론 그건 아니다.
수금한다는 것도, 그날 수금액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공소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공범 이야기를 한 것인데, 노형진의 말장난 때문에 졸지에 검찰이 뇌물을 받고 사건을 무마시키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무능한 집단이 되고 만 것이다.
‘욱!’
순간 화난 표정이 된 광문식. 그걸 보면서 노형진은 입맛을 다셨다.
‘이래서 이 방법은 안 좋은데.’
검찰이나 경찰은 자존심이 세다. 세다 못해 아예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엉뚱한 사람을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잡아넣고는 나중에 진범이 자수하자 자기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자수를 없던 일로 하고 훈방시킨 사건도 있다.
즉, 자신들의 무능이나 부도덕이 드러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형진이 슬쩍 그쪽을 건드린 것이다.
“그럼 그 공범은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왕 척을 지기로 한 거, 노형진은 대놓고 물어봤다. 물론 광문식은 할 말이 없었다. 설마 공범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재판장님, 검찰은 공범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듯합니다. 공범이 있는 것이 의심되는 상황이니 재판을 연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재판장들이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공범이 있다면 때린 게 다른 사람이고 구하려고 한 게 유철진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사건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된다.
“인정합니다. 공범에 대한 기록이 나올 때까지 사건을 연기하겠습니다. 검찰 측은 공범에 대한 수사 기록을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광문식은 노형진을 바라보면서 이를 빠드득 갈았다.
세상은 넓고 증거는 많다?(1)
“이게 뭡니까?”
노형진이 식당 앞에 떡하니 붙여 놓은 플래카드를 보고 무태식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긴요, 사람을 찾는다는 소리지.”
“이게요? 어딜 봐서요?”
피해자의 식당 바로 앞에 붙어 있는 플래카드에는 생각도 하지 못한 글이 써 있었다.
이곳에서 수표를 쓰신 분을 찾습니다. 확인 가능하면 50만 원 드립니다.
받은 변호사 비용이 고작 300만 원이다. 승소 비용까지 한다고 해도 400만 원. 그런데 50만 원을 준다니?
“아,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에서 실비 개념으로 추가로 주기로 했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다.
“이런다고 나올까요?”
“나올 겁니다.”
피해자가 하던 식당이 유명한 식당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름 손님이 많았단다. 그러니까 전국적으로 유명한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는 유명한 집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게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죠?”
“그날 직원이 그러더군요, 확실히 수표 하나가 들어왔다고.”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 수표는 당일 피해자가 수금해 갔다고 했습니다.”
“피해자가 가지고 갔다? 아!”
무태식은 노형진이 원하는 것이 뭔지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 번호를 추적하시려는 거군요!”
“네.”
모든 수표에는 각자의 번호가 있다. 그리고 그 번호는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에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들 중 머리가 좀 있는 놈들은 보석이나 금은 훔칠지언정 수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퍽치기 하는 놈들이 그걸 알고 안 쓰면 어쩌죠?”
‘모를걸요?’
범인이 누군지는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놈들의 행동을 봤을 때 그들이 그런 사실까지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뭐, 시도는 해 봐야지요.”
“끄응…… 그러면 차라리 가게 내부에 들어가서 확인하거나 가게에 직접 붙여 놓는 게 좋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고 싶었지만…… 그게 안 되더군요. 그쪽에서 거절했습니다.”
“왜요?”
“그쪽에서는 아예 유철진 군이 가해자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도울 리가 없죠.”
“끄응…….”
‘하긴 당연하겠지.’
아예 검찰에서 그를 가해자라고 못을 박고 수사를 시작했으니 그들도 그렇게 믿을 것이다.
더군다나 노형진이 봤던 범인은 그 집안의 아들인 승덕이라는 인간이다. 즉, 그 녀석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유철진에게 뒤집어씌울 거라는 뜻이다.
“확실히…… 흐름을 잡을 수 있다면…….”
그럼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공범의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공범은 이번 강도 살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광문식은 검사 결과를 들고 확언하듯 말했다.
“더군다나 피고인이 주장하는 가해자 중에는 절대로 가해자일 수 없는 사람이 두 사람이나 들어가 있습니다.”
“두 사람?”
생각지도 못한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곳에 세 사람이 있는 것은 노형진이 그곳의 기억을 읽으면서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 명은 피해자의 손자인 강승덕입니다. 손자인 그가 이런 잔혹한 범죄에 연루될 리가 없습니다.”
‘멍청한 놈.’
검사는 모든 것을 선입견 없이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 광문식은 설마 손자가 살인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을 거라는 가정을 철석같이 믿고 수사하는 듯했다.
‘뻔하지, 뭐.’
설혹 불렀어도 뻔한 질문 몇 개 하고 끝냈을 것이다.
“다른 한 명은 조팔성으로, 그 당시 모 클럽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그와 관련되어 현장의 카메라가 그 장면을 찍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증거로 제출합니다.”
증거를 넘겨받은 노형진은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어떤 클럽에 들어가는 사진이었다. 시간으로 봐서 살인 사건 당시보다 좀 더 일렀으나 문제는 거리였다. 장소가 표시된 곳에서 살인 현장까지는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못해도 한 시간은 걸리는데, 시간 차는 고작 20분이었던 것이다.
“보다시피 피고인이 주장하는 범인 중 두 명에게는 살인에 참가하거나 실행할 시간도, 이유도 없습니다. 나머지 한 명은 그 시간에 집에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두 명의 알리바이가 확실한 바, 나머지 한 명에 대한 유철진의 지목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입니다.”
“음…….”
노형진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사실 강승덕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조팔성이다. 그가 존재하는 한 사건 전체에서 유철진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거지?’
분명 자신은 기억을 읽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분명 조팔성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는 같은 시간, 다른 도시에 있는 클럽에 있었다.
“벼…… 변호사님.”
유철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지…… 진짜예요…… 전 진짜로…….”
“믿습니다.”
이미 주변에서 유철진을 보는 시선이 따갑게 변해 있었다. 살인자에, 거짓말쟁이로 보는 듯한 시선.
노형진은 유철진을 진정시켰다.
“난 당신의 변호사이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믿을 겁니다. 저쪽에서 어떤 식으로 사진을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트릭이 있기는 할 겁니다.”
“변호사님…….”
“일단은 저쪽의 공격을 막아 내고 생각해 봅시다.”
저쪽에서 무슨 수로 이걸 알아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조작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피고인 측이 수차례의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난 점, 그 현장에서 다른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피고인의 범죄 행위는 명확하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범죄 사실을 은폐할 목적으로 선량한 제3자에게 누명을 씌우는 점 등을 보았을 때,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므로 최고형을 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검사 측의 발언이 끝나자 모두의 시선이 노형진에게 쏠렸다.
‘치명적이다.’
다른 것도 아닌 사진 증거다. 아무리 자신이 잘났다고 해도 사진 증거를 뒤집을 수는 없다. 물론 조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작뿐만 아니라 그날 클럽의 바텐더와 같이 조팔성을 본 사람들의 증언까지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
“피고인 측 변호인, 할 말 없습니까?”
“일단…… 이걸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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