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63)
손채림은 아직은 그런 손예은이 불편한지 노형진을 바라보면서 설명을 부탁하는 얼굴이 되었다.
노형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성운동은 한국에서 그다지 강하게 하는 운동이 아니거든.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그런데?”
“문제는 저들의 주장과 다르게 한국의 성 평등은 생각보다 많이 진보되어 있다는 거야.”
노형진이 말하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우리나라 성차별이 얼마나 심한데요!”
노형진은 자신의 말에 끼어드는 여자를 보고 화를 내려고 했지만 그런 노형진을 손예림이 말렸다.
“그만하세요. 싸워 봐야 좋은 사람 아니니까.”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네, 민주여성단의 회장이에요. 남석영란이라고.”
민주여성단. 지금 시위하고 있는 여자들이 속한 단체였다.
‘아니, 왜 시위하는 데 안 끼고 여기 끼어?’
애초에 시위하러 왔으면 하면 그만이다. 제3자의 대화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여자는 그런 기본적인 예의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오로지 노형진만 집요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여성 차별이 심한지 알아요? 우리나라 대학생 비율이, 남성이 여성의 두 배라고요! 그리고 우리나라 여성들이 얼마나 차별받는데요? ‘유리 천장’이라는 말도 몰라요? 승진도 안 된다고요. 거기에다 여자가 남자보다 동일한 시간을 일해도 동일한 임금을 못 받는 건 알아요?”
“네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노형진은 그녀에게서 벗어나려고 슬쩍 넘어가려고 했다.
‘이건 끝이 없다.’
회귀 전에도 몇 번이나 이런 타입의 사람들과 싸워 봤다.
하지만 노형진의 경험상 이런 싸움은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우기기만 하기 때문이다.
논리와 팩트로 자신을 공격하면 이건 반격이라도 해 보지, 그냥 무조건적인 논리로 자기 말에 호응하지 않으면 여성 차별주의자라는 식으로 대꾸하는 사람 상대로는 이기기는커녕 아예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자세가 문제라고요! 알아요? 지금 그런 자세로 여성운동을 대하니까 사회가 이 모양이지!”
“저기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의뢰인을 만나러 온 겁니다만.”
“그딴 범죄자 만나는 게 중요해요? 여성운동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당신 말이야, 여자로 태어나서 양심도 없이 그렇게 남자 흉내를 내는 게 좋아? 여자면 여자답게 피해자를 편들어야지, 가해자를 지켜 줘? 당신 여성 젠더의 양심은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전 변호사입니다.”
“그러니까 남자 흉내를 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저는 변호사로서…….”
이번에는 발끈하려는 손예림을 노형진이 말렸다.
“말 안 통하는 거 알잖습니까?”
“끄응…….”
“이봐,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아닙니다. 저희가 진짜 바빠서 그러는데요, 저희 이만 갑니다.”
휙 하니 도망가는 노형진.
손채림과 손예은은 남석영란과 노형진을 번갈아 보다가 잽싸게 노형진 쪽으로 붙었다.
남석영란은 길길이 화를 내려고 하다가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무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손채림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노형진에게 물어봤다.
“네가 도망가는 건 처음 봐.”
“하하하…… 그냥…… 말을 말자. 저쪽은 말이 아예 안 통해.”
“왜?”
“그냥…… 그래.”
물론 여성 차별이 없다는 소리는 못 한다. 노형진도 그 부분은 알고 있고, 그 때문에 최소한 새론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저런 사람은 차별을 차별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피해망상으로 받아들여.”
“피해망상?”
“그래. 차별이라고 하면 그걸 고쳐야 하는 게 정상이지? 안 그래?”
“그렇지.”
“하지만 저런 타입에게는 고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 싸우는 게 중요한 거지.”
가령 여자가 어떤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걸 고쳐서 공평한 대우를 받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뒤집어서 남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저들은 논리로 말을 해 봐야 말이 안 통해.”
“그런가?”
“그렇습니다. 저로서도 그다지 부딪치고 싶지 않군요.”
심지어 손예은조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노형진도 노형진이지만 도망가지 않는 걸로 유명한 손예은조차도 그런 말을 하자 손채림은 신기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긴. 넌 모를 세계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지만 해서 온실 속에서 조심스럽게 자란 화초였다. 그런 그녀가 세상으로 나온 것은 얼마 안 되니 이러한 황당한 상황은 처음일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줄까?”
“응?”
그저 말로만 하는 건 아무래도 오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노형진은 명확한 설명을 해 주기로 했다.
“방금 저 사람이 한 이야기 중에, 한국은 남자 대학생이 두 배 정도 많다고 했잖아.”
“그렇지.”
“그 수치가 나온 곳이 어디냐면, 해외 여성운동 사이트야.”
“그러면 맞는 말인가?”
“그런데 넌 대학 다니면서 남자가 그렇게 많다고 느껴 본 적 있어?”
손채림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학과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극단적으로 남자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아닌 듯?”
“그게 왜 그러냐면, 그 내부의 통계 수치가 잘못되어 있거든.”
“통계 수치?”
“그래. 남자는 대학을 4년이 아니라 6년을 다니지.”
“아니, 왜 대학을 6년을 다녀?”
“군대가 있잖아.”
“아!”
“그게 통계의 오류죠. 통계는 명확하지만 해석할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지니까요.”
손예은도 그걸 아는 건지 설명해 줬다.
통계의 오류는, 쉽게 말해서 단순 통계다 보니 내면의 자세한 내용을 못 보는 걸 말한다.
남녀 대학생 숫자의 비밀 같은 경우, 남자는 군대를 가서 휴학한다. 그러나 통계를 낼 때에는, 그들의 신분은 대학생이 된다.
그에 반해서 여자는 군대라는 기간이 없이 바로 졸업한다.
4년제 대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여자는 말 그대로 4년이지만, 남자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그들의 통계 수치는 ‘대학생+대학을 다니다가 온 군인들’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대학생의 숫자는 남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저들의 통계는 이런 식으로 내면의 성찰 없이 단순 숫자로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거든. 그걸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헐, 그걸 그냥 둬?”
“한국에서 여성운동은 하나의 권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고요.”
노형진과 손예은의 말에 손채림은 독일에 공부하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혐오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있다고 해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그저 찌질이 취급이었으니까.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왜 갑자기 우리 사건에 저들이 끼어든 거야?”
“간단해. 이슈가 되니까.”
“이슈?”
“네. 결국 돈이 문제죠.”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사회운동을 하는 집단에 예산을 지원해 준다.
문제는 사회운동을 하는 집단이 한두 곳이 아니다 보니 공평하게 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단 자기 입맛에 맞는 곳, 그다음에는 유명한 곳을 지원해 주기 마련이지.”
“아!”
손채림은 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민주여성단이라는 곳이 시위하는 앞에는 기자들이 가득했다. 자신들은 변호인이라 다른 입구를 쓰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는 중이고 말이다.
“생각해 봐. 얼마나 자극적이야?”
수년에 걸친 친부의 강간. 그것도 모자라서 2회에 걸친, 철사 옷걸이를 이용한 낙태.
거기에다 피해자 여성은 수년간 해외에서 공부했을 정도의 인텔리다. 그런데 그런 그녀조차도 그러한 성적 범죄행위의 희생양이 되었다.
“딱 언론과 여성 단체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야.”
“하지만 성범죄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문제야. 결국 그 범죄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건 언론이거든.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주제를 스스로 생각한다고 느끼지만, 현실은 아니거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회적인 주제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에서 말하는 사건의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언플이라는 게 존재하는 거고.”
뭔가를 이용해서 덮어 버리는 것. 그게 언플의 기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언론도 당연히 싫어하고.”
인터넷은 그들이 주는 주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주제를 찾아서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상황은 안 좋아.”
저들이 저렇게 몰려들었다는 건 한 가지를 뜻한다.
얼마 후면 이 사건이 대서특필될 거라는 것.
‘빠르면 오늘 밤…… 늦어도 내일이겠군.’
그러면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엄청나게 언급할 것이고, 자신들은 그럴수록 불리해질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건을 관리를 못해서.”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노형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건 변호사가 감추려고 한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건을 찾아내는 부서가 있거든요.”
“있다고요?”
“네.”
현재 이 나라의 정권은 여러 가지 실수를 하고 있어서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걸 덮기 위해서는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을 던져 줘야 한다.
“이건 우연히 새어 나간 게 아니라 그들이 사건을 찾아낸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건이 한두 건이 있는 게 아닐 텐데요?”
“압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들 만한 사건을 찾는 건 그들의 일이죠.”
그걸 위해서 그들이 뿌려 놓은 선이 언론사부터 각 지자체와 경찰, 소방 쪽까지 다 닿아 있다.
“그들이 이걸로 덮자고 하면 언론에서는 그걸 집중적으로 캐는 겁니다. 그리고 재수 없게 이번 사건이 걸린 거구요.”
노형진으로서는 아차 싶은 실수였다.
자신이 처음부터 담당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바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야. 그런 생각은 말자.’
노형진은 잠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상대방은 자극적인 소재로 사건을 덮기를 바란다. 그러니 저들을 자신이 담당했다고 해도 이런 사건을 놓칠 리 없다.
‘젠장…….’
물론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사건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묘한 존재라, 너무 구역질이 나는 사건은 아예 눈을 돌려 버린다. 그러니까 적당히 자극적이면서도 적당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사건이 필요했는데 그게 이것인 것이다.
“들어가자.”
노형진은 생각을 정리하면서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피의자인 박혁우를 만날 수 있었다.
“마음고생이 심하시겠군요.”
“하아…… 진짜 전 돌아 버리겠습니다.”
박혁우는 억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따님은 뭐라고 하던가요?”
“아예 말 자체를 안 하려고 합니다. 강간범 새끼랑은 이야기 안 한다면서요.”
“아버지인데도요?”
“그러니까요. 그 애는 더 혐오한다고요, 아버지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음…….”
노형진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흔하게 있는 반응이다. 더군다나 아버지에게 예속되어 있는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게 말입니다, 저도 그 사건 일지를 봤는데, 강간은 12세부터 시작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걸 왜 18세가 된 지금 와서 신고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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