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67)
결국 안국림은 뒤로 물러났다.
노형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제가 볼 거예요.”
안국림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는지 못을 박았고,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사건을 진행할 때 중요한 건 피해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는 겁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카트를 옆으로 치웠고 잠시 후 들어온 진짜 카트도 역시 옆으로 치워 놨다.
“다시 인사드리죠. 노형진입니다. 박혁우 씨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네…….”
박세양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머니인 안국림을 바라보았고, 안국림은 그런 딸의 손을 꼭 잡으면서 안심시켜 주었다.
“일단……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만일 거북스럽거나 답변하기 싫다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게요.”
“첫 번째 질문은, 피의자인 박혁우 씨가 진짜로 강간했느냐라는 것입니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요! 거봐요! 말로는 안 그런다면서 2차 피해를 주고 있잖아요!”
노형진의 질문에 갑자기 화를 내는 안국림.
노형진은 멍해져서 말이 안 나왔다. 무슨 자극적인 질문도 아니고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확인이다. 그런데 2차 피해라니?
“아니, 무슨 피해를 줬다는 겁니까?”
“기억하기 싫은 일에 대해서 자꾸 캐묻는 게 2차 피해지 뭐예요!”
노형진은 안국림의 행동에서 그렇게 말한 사람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 여자는 자리에 없어도 문제구만.’
도대체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겁을 줘 놨기에 이 꼴인지, 노형진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물론 2차 피해를 주는 미친놈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절대적이고 무의미한 공포감 조성은 결국 다시 사회로 나가야 하는 이들 모녀에게 방해가 된다.
‘2차 피해를 막는다면서 정작 2차 피해는 자신이 다 주고 있네.’
노형진은 이가 박박 갈리는 느낌이었다.
그런 노형진의 기분을 안 건지 손예은은 두 사람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두 분 다 진장하세요. 2차 피해 같은 게 아니니까요.”
“자꾸 과거의 일을 캐묻는데 왜 그게 2차 피해가 아니에요!”
“그러면 과거의 일을 회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진실을 말하죠? 애초에 정신과 치료도 일단 과거의 상처를 돌이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과거의 상처에 대한 회상 없이 뭔가를 치료하죠?”
“…….”
“말하는 게 순간적으로는 고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처를 치료하는 건 공감입니다. 공감을 시키지 못한 채 혼자서 끙끙대며 말하지 않으면 상처는 내부에서 곪아 갈 뿐입니다.”
실제로 그 부분은 많은 연구가 있었다.
과거 2차대전 당시와 지금의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를 비교하면 지금 환자가 더 많아졌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람들이 그때보다 정신력이 떨어져서 그럴까?
아니다. 그걸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과거 2차대전이 끝나고 난 후 연합국의 병력은 귀국하면서 배 안에서 같이 고생하고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동질감을 느낀 덕분에 상당히 많이 치유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돌아갈 때가 되면 그냥 비행기 타고 반나절 비행하면 끝이다.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동질감을 느끼지도, 위로를 받지도 못하고 그냥 다짜고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는 게 두려운 것도 아니고 그걸 회상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면 어떻게 사건을 진행합니까?”
“하지만…….”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희, 여러분들의 도움을 안 받아도 이 사건 이깁니다.”
“뭐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지요. 서면 답변서 보내셨지요? 직접 그 내용을 보내셨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게 2차 피해를 주기 위해서 쓴 질문이던가요? 아닙니다. 사실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걸 아니까 쓰신 거고, 그걸 검토해서 사실이니까 수사한 거죠.”
안국림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건 확실히 기억을 더듬어서 최대한 소상하게 썼다. 그런데 그건 2차 피해가 온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노형진이 질문하는 것도 결국은 그 내부의 질문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다만 다른 것은, 그건 서면이고 노형진은 직접 한다는 정도뿐이다.
“물론 여성 단체에서 도와 드리는 건 압니다. 그러니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요. 그러나 그런 게 영구적일까요? 그들이 도와주는 시기는 결국 국민들의 관심이 이 사건에 쏠려 있을 때까지뿐입니다. 그런데 3심에 갈 때까지 관심이 유지될까요? 남석영란이 3심까지 가는 최소 2년은 걸리는 시간 동안, 여러분을 도와줄까요?”
노형진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러분들이 저희를 싫어하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여러분들에게 피해를 주려는 건 아닙니다. 저희가 궁금한 것은 오로지 단 하나, 진실입니다.”
“하아.”
결국 박세양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엄마, 할게.”
“세양아.”
“어차피 한 번은 해야 하는 일이야. 맨날 시선을 돌릴 수는 없잖아.”
박세양이 마음을 독하게 먹은 듯하자 안국림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고, 노형진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천천히 질문했다.
“그러면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박세양 양, 아버지인 박혁우가 강간하고 그로 인해서 낙태한 사건이 있었습니까?”
“네.”
그 말을 들으면서 노형진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지고 말았다.
* * *
“아니, 노 변호사님? 왜 그때 질문을 멈춘 거예요?”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요.”
다음 날 사무실에서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그는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다음 질문은 여성인 손예은 변호사님이 하는 게 좀 더 나을 것 같아서요.”
“그건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첫 번째 질문을 마친 노형진은 뒤로 물러났고 당황한 손예은이 나머지 질문을 마쳤다. 하지만 노형진에게는 그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되잖아?’
노형진은 질문하면서 기억을 읽었다.
자신이 박혁우의 기억을 읽었을 때 진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녀의 기억에서는 그녀가 왜 이런 거짓 고소를 해야 했는지 알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노형진의 생각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둘 다 진짜라고? 이게 가능해?’
그녀의 마음은 진짜였다. 그녀는 진짜로 자신이 아버지인 박혁우에게 강간당해서 낙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이런 사건은 중간이라는 게 없다. 그런데 양쪽 다 진실이라니.
‘다만 특이한 건…… 둘 다 영상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건데.’
기억을 읽다 보면 과거의 일인 경우 영상의 형태로 기억을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박혁우도 박세양도, 기억에는 영상이 없다.
박혁우야 그의 말대로 아무런 일도 없었다면 당연하게 영상이 없겠지만 진실이라고 말하는 박세양의 경우 역시 영상이 없었다.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냐.’
결국 진실을 알 수가 없게 된 노형진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힘든가 보군요.”
“솔직히 힘듭니다.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지요.”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지금까지 노형진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도리어 독이었다.
아예 몰랐다면 그냥 의뢰인을 편들어 줄 수 있는데 양쪽 다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상황에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후우, 아무래도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라니요?”
“우리한테 온 사건이 아니라, 처음 우리가 발굴해 낸 사건으로 취급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애초에 지금까지의 모든 자료는 없는 셈 쳐야겠군요.”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노형진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 * *
“확인해 보니까 일단 사건 전에는 집안의 분위기는 좋았어.”
“좋았다고?”
“그래.”
노형진의 결정이 떨어지자 손채림은 바로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얻어 가지고 왔다.
특유의 쾌활한 성격에 바탕해 쉽게 친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성향을 이용해서 동네 사람들에게 박혁우 가족의 과거를 조사해 온 것이다.
“딱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아. 성추행이나 강간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고.”
“그렇겠지. 논리적으로 봐도 그건 아니니까.”
강간이 벌어졌다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부녀간의 강간 사건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두 번이나 낙태했는데 그걸 잊고 있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일단 박세양이 대학을 갈 때까지 별문제는 없었어. 너무 문제가 없어서 이런 집이 있을까 할 정도라고.”
“흠, 학교에서는?”
“학교생활도 나쁘지 않았대. 과에서 성적은 중간쯤 가는 편이었고, 교우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남자 친구는?”
“어…… 두 명 정도?”
“두 명이라……. 관계는 했겠지?”
“그랬겠지? 아무래도 자취하는데 요즘 애들이 발랑 까져서.”
“그러는 너도 발랑 까진 요즘 애들이거든!”
“헤헤헤.”
손채림의 특유의 웃음을 들으면서 노형진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사건 자체가 이상하다 보니 처음부터 확인해도 이상한 점이 너무 많이 보였다.
“여러모로 말이 안 돼.”
“뭐가?”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강간은 계속 진행되고 그 와중에 낙태까지 했는데 그걸 잊어버린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서 그랬다잖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라고. 충격적인 것은 잊어버릴 수 있어. 하지만 두 번을 연속해서라는 건 말도 안 되지.”
애초에 중간에 단 한 번이라도 강간 신고를 했다면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갑자기 모든 게 짠 하고 생각나서 어머니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신고한다?
이건 노형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면 그쪽이 거짓말한다는 소리인데?”
“그게 문제야. 내가 봐서는 그쪽에서 거짓말할 이유도, 그런 낌새도 없단 말이야.”
당장 언론에 이슈화되면서 그들은 언론사들의 집요한 추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론을 타는 것 같은 게 목적이었다면 지금쯤 기자회견이라도 하면서 전면으로 나섰겠지만 그녀들은 그런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버지가 재산이 많은 상태에서 사실상 의절당한 관계라면 그럴 수도 있다. 재산을 빼돌리거나 빼앗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것도 없다.
애초에 박혁우는 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7년 된 중고차 한 대와, 아내와 공동 명의로 되어 있는 빌라 한 채뿐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소시민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 뿐.
“친구들에게도 이런 일에 대해서 말한 기록은 없었어.”
“친구에게 이런 일을 말할 사람은 없지. 그건 이해해.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그 상황에서도 남자 친구가 두 명이나 있었다는 거야.”
“그게 왜?”
“강간으로 인한 심리적인 상처를 가진 사람은 누군가를 만나는 것을 무척이나 꺼리는 편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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