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7)
‘하나씩 하자. 하나씩.’
당장 매달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일단 닥친 문제들을 하나씩 처리하면 된다고 노형진은 생각했다.
“이건 뭡니까?”
“지난 며칠간 피해자의 가게 주변에서 저희가 확인한 내역입니다. 당일 시장 상인회에서 점심을 먹으며 수표로 계산한 내역이 발견되었습니다.”
“수표!”
광문식 역시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당황했다. 설마 수표를 진짜로 찾아서 들고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희는 그 수표 발급자인 상인회장의 동의를 얻어 해당 수표를 추적하였습니다.”
노형진은 잘 정리된 차트를 앞으로 내밀었다.
“해당 수표는 피해자의 가게에서 처리되었으며 그 후 피해자의 사망 직전까지 그곳에 있었습니다. 당시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피해자는 수표를 비롯한 금액을 수금하여 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사망 사건 이후의 수표 내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의 행적에 따르면 오성주류라는 주류 납품 업체에서 최종적으로 입금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주류 납품 업체?”
순간 전혀 엉뚱한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그건 다른 제3자가 썼다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명백하게 그 수표를 다른 제3자가 썼다는 겁니다. 오성주류는 주로 유흥가 쪽에 술을 납품하는 업체로 확인 결과, 크레파스라는 술집에서 사용되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즉, 누군가 크레파스에서 해당 수표를 사용하였으며, 술집의 주인은 그 수표를 주류 대금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걸 결제한 건지 알 수 있습니까? 현금으로 결제했다면 추적하지 못할 텐데요?”
“일반적으로는 그렇지요. 하지만 직원은 그 거래 대상이 어려 보인다는 점 때문에 신분증을 확인하였고 그중에서 강승덕 군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당황하는 강승덕. 그는 참관인 석에서 사건 전반을 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는 지금 강승덕 군을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흠…….”
판사들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정합니다. 강승덕 군, 앞으로 나오세요.”
“네?”
“나와서 선서하십시오.”
강승덕은 허둥대다가 앞으로 나왔다. 여기서 도망치면 자신이 범인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강승덕 군,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 돈, 어디서 났습니까?”
“할아버지가 줬습니다.”
“그 많은 돈을 할아버지가 줬다고요?”
“많은 건 아니죠. 고작 10만 원짜리 하나인데요, 뭘.”
‘역시 그렇게 나오는군.’
분명 저 녀석이 그날 대금으로 계산한 술값은 무려 16만 원이다. 문제는 그걸로 그 돈이 모두 피해자의 돈이라는 걸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 부족한 돈 6만 원은 본인의 돈이다?”
“저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돈입니다. 함께 냈으니까요.”
“그 당시 누구랑 있었습니까?”
“그때 있었던 게…… 중민이랑…….”
말을 하던 그가 순간 입을 멈췄다.
“누구랑 있었습니까?”
안 봐도 뻔하다. 중민이라는 인간이 그 세 명 중 집에 있었다는 놈일 것이다. 그게 바로 그가 말을 못 하는 이유일 것이다.
“중민이랑 있었습니다.”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세 명이라고 했습니다. 남은 한 명은 누구인가요?”
“그 당시 술에 취해서 기억이 잘…….”
“잘 나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종업원은 이 사람을 지목했습니다.”
사진을 꺼내서 흔드는 노형진. 거기에는 조팔성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아닙니까?”
“마…… 맞습니다.”
“그럼 아까 전에 조팔성이 클럽에 있었다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데요?”
웅성거리는 방청객과 당황한 검사.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판사들.
“팔성이는 나중에 왔습니다.”
“나중에 왔다?”
“그렇습니다.”
“직원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던데요? 세 사람이 잔뜩 취해서 함께 들어왔다고.”
노형진이 추가적으로 반박하려는 찰나, 광문식이 벌떡 일어났다.
“술집 종업원의 진술은 기억을 기반으로 한 진술일 뿐입니다. 하지만 조팔성의 사진이 클럽의 화면에 찍힌 이상 종업원의 진술이 확실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흠…….”
‘젠장.’
이게 문제였다. 저쪽은 명확한 증거인 사진이 있는 데에 반해서 자신들은 기억에 기대어 나오는 진술이라는 것. 그렇다면 누가 유리할지는 뻔한 일이다.
“이상입니다.”
노형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광문식이 나와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몇 가지 정보들. 가령 어디서 언제 할아버지가 그 돈을 줬느냐,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느냐와 같이 대충 둘러대도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당연히 유철진에게는 극도로 불리한 증언들이었다.
‘문제는 조팔성이야…….’
조팔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아무리 해도 유철진이 거짓말을 했다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치명적 문제를 야기한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야…….’
노형진이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공격하기는 했지만 언제나 조팔성 문제로 인해서 번번이 막히기만 할 뿐이었다. 뭘 하든 세 명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그럴 때마다 클럽에서 정면으로 찍은 사진이 걸렸기 때문이다.
“훗.”
재판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서 광문식은 노형진을 보고 비웃음을 흘렸다.
“네가 발악해 봐야 사진은 못 뒤집어.”
“끄응.”
“변호사 주제에 어딜 덤벼?”
“주제에?”
노형진은 기가 막혔다. 물론 사법연수원에서 나와 바로 변호사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이 떨어져서 그러는 경우가 많다. 검사나 판사로 갈 성적이 안 되니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 수석입니다만.”
“뭐?”
수석이라는 말에 광문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뭐, 누구처럼 실력이 쥐뿔도 없다 보니 전쟁터 같은 변호사의 세계에 들어올 자신이 없어서 공무원으로 도망간 게 아니란 말입니다.”
되로 받으면 말로 돌려줘야 하는 법. 누구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구를 비꼬는 건지 광문식이 모를 리가 없었다. 사실 진짜 성적이 좋았다면 검사가 아니라 판사 쪽으로 빠졌어야 한다. 즉, 비꼬는 광문식도 아주 상위권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이 새끼가……!”
“어허, 법을 집행하는 사람끼리 새끼가 뭡니까? 새끼가?”
“너…… 너…….”
“말조심하시죠. 검사가 모욕죄로 잡혀 들어가면 좋은 꼴 못 보지 않습니까?”
“이이익!”
광문식은 속에서 천불이 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런 광문식을 보면서 피식거릴 뿐이었다.
‘애송이 주제에.’
척 봐도 이제 갓 검사가 되어서 기고만장하게 고개를 들고 다니는 애송이 같은 녀석이다. 사실 실력은 둘째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니면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이 녀석도 오래는 못 가겠네.’
진짜 무서운 검사들은 안쪽에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씩 들어앉은 놈들이다. 그놈들은 웃으면서 칼을 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렇지 못한 녀석이다. 공부는 잘하는 것 같은데 경험도 없고 감정을 마구 드러낸다.
‘하긴…… 내 기억에도 없는 녀석이니.’
어지간한 주요 검사는 다 기억하고 있는데 없다는 건 부 부장검사나 하다가 나가서 변호사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특출 나게 잘났던 놈은 아니라는 거고.
“그렇게 감정에 휘둘려 봐야 법정에서는 좋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슬쩍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 미소를 지으면서 조언을 건네는 노형진.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 이 개새끼야!”
다짜고짜 욕부터 하면서 길길이 날뛰는 광문식. 노형진은 슬쩍 뒤로 물러났다.
“경비, 검사님이 흥분한 것 같으니 진정 좀 시키시지요.”
“검사님, 진정하시고.”
“진정하게 되었어? 저 개새끼가! 저 개새끼가!”
길길이 날뛰는 광문식. 노형진은 힐끗 고개를 돌렸다.
‘이쯤이면…….’
아니나 다를까, 코너에서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하는 짓인가!”
안에서 나오는 세 명의 사람들. 판사들이었다.
“광 검사!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이들은 광문식처럼 하찮은 신입 판사도 아니다. 2심 사건을 담당하는 만큼 상당한 직급과 나이를 가지고 있다.
“그…… 그게…….”
“별거 아닙니다. 그저 조언 한마디 했다고 갑자기 저럽니다.”
“조언?”
“너무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으니 그걸 좀 참아 보시라고.”
“이이익!”
광문식을 이를 빠드득 갈았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거다. 그리고 광문식의 행동을 지금까지 봐 온 판사들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도 아니었다.
“고작 그걸 들었다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변호사를 욕하며 폭행하려고 해? 자네 미쳤나?”
“파…… 판사님.”
“부장검사가 도대체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변호사가 만만해?”
“그……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냐?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노 변호사는 자네 선배 아냐?”
“선배?”
“그래! 자네 전 기수일세.”
“끄응…….”
노형진의 다음 기수가 바로 광문식이다. 사법체계는 은근 위계가 강하다. 법률적인 업무라면 모르지만 사석에서는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실망이군.”
광문식을 노려보고 나가는 판사들. 그리고 노형진은 광문식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웁스.”
“이런 개새끼…….”
노형진이 이 자리에서 그를 기다린 것도, 그리고 지금까지 가지 않고 있었던 것도 다 이걸 노린 것이었다. 재판이 끝나고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슬쩍 도발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저 녀석은 자신이 도발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렇게 뻔한 도발로 넘어가겠냐?’
이로써 판사는 광문식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게 재판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면 작용했지,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보자고요, 광 검사님.”
“이이이익.”
노형진은 가면서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 그런데 그 광이 지랄 발광할 때 그 ‘광’은 아니죠?”
“야, 이 씨발 놈아!”
‘큭큭큭, 애송이 같으니라고. 아이고, 속 시원하다.’
“확실합니까?”
“네.”
조팔성이 갔다는 클럽에 간 노형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증거로 받은 사진을 들고 가서 확인했다. 혹시 조작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건 없었다.
“이 사람은 왔습니다. 카메라에도 찍혔구요.”
“확실합니까?”
“확실하다니까요.”
심지어 원본 카메라 영상을 보여 주는 그들.
“끄응…….”
노형진은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사진 속에 나오는 모습은 조팔성이 맞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분명 자신은 기억 속에서 조팔성을 봤다. 그런데 어떻게 조팔성이 동일한 시간에 여기에 있단 말인가?
‘이건 불가능해.’
혹시 유철진이 뭔가를 착각한 것일까? 그래서 그게 기억에 영향을 준 것일까?
‘그건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기억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중에 실험해 봐야겠군.’
문제는 지금 이 대비책이 없다는 것.
“죄송합니다. 도와 드릴 게 없네요.”
“후우, 아닙니다.”
노형진은 인사를 건네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문제였다.
‘모든 건 논리적으로 맞는데.’
논리적인 부분에서 유리한 건 자신이다. 그런데 딱 하나, 조팔성에 대한 건 아니다. 조팔성이 거기에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 역시 없었다는 뜻처럼 되니 사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뭔 수를 쓴 거야?’
조작? 그건 아니다. 카메라 영상도 있고 증언도 있다. 그리고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도 아니니 이런 사건을 조작할 이유가 없다.
“뭔가…… 있어……. 뭔가…… 뭔가…….”
노형진은 자신의 기억을 하나씩 더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논리적으로 맞는 상황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걸까?”
누군가 사전에 범죄 약속을 하고 그처럼 꾸미고 간 걸까? 하지만 그럴 거면 나머지 세 명도 꾸몄어야 정상이다.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철진을 불러서 뒤집어씌우지 않았을 것이다.
“대충 보면…… 사건 자체는 계획적인데 그 뒷일에 대한 대응은 급하게 한 느낌이 난단 말이지.”
즉, 강도질 자체는 계획적이었는데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리라. 그 상황에서 죽어 버리니 급하게 방법을 찾았는데, 그게 철진이었던 것이다.
“철진을 불렀다는 것 자체가 그의 평소 성격을 안다는 뜻인데.”
보자마자 그를 살리기 위해서 달려들 걸 알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어떻게…… 다른 곳에 한 사람이 동시에 존재했느냐는 건데.”
그 순간 노형진을 스치고 지나가는 여자들.
노형진 역시 남자였기에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들을 보고 순간 눈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가능성. 자신은 알 수 없는 가능성. 하지만 검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녀석이 진짜…….’
만약 맞는다면 검사가 자신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면 되겠지.”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중에 싸움을 끝내는 마무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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