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8)
“더 이상 질문 없습니까?”
세 번째 재판은 검사의 일방적인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노형진이 증거를 내세울 게 없는 데에 반해서 그쪽은 당시 클럽에서 봤다는 사람을 불러오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고는 조팔성을 봤다는 노형진 측 술집 종업원을 불러 놓고 몰아붙였다.
‘내 저럴 줄 알았지.’
사람은 어지간한 확신이 없는 이상, 자신의 기억에 대해 누군가가 몰아붙이면 ‘글쎄요.’하고 말하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말하기 마련이다. 광문식은 그것과 자신이 가진 검사로서의 권위를 알기 때문에 노형진 측 증인을 몰아붙였고, 결국 종업원이 자신의 기억은 확실치 않다는 대답을 함으로써 증언을 뒤집어 버렸다.
“변호사님…….”
유철진의 얼굴은 아예 시퍼렇게 질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모든 증언이 뒤집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군.”
“네?”
“내가 뭐라고 했지요?”
“믿으라고……. 집에 보내 준다고.”
“그럼 믿으세요, 내가 집으로 보내 줄 테니.”
유철진을 진정시킨 노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으로 나갔다.
“재판장님, 신청했던 대로 조팔성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인정합니다. 증인 나오세요.”
사전에 증인으로 신청해 놨던 조팔성은 탐탁찮은 표정을 하고 앞으로 나왔다.
“증인은 당일 클럽에서 놀았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럼 그곳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그는 클럽에서 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뭘 마셨고 그리고 누구를 꼬셨으며 번호까지 땄다고.
“그리고 검사님이 확인하셨다시피 그 여자랑도 통화된 걸로 아는데요.”
맞다. 광문식은 그 여자와 확인해서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고 확인해 주기까지 했다.
“그렇군요. 그곳에 갔다는 거군요.”
“네.”
“그런데 증인,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생일이 언제죠?”
“네?”
“생일 말입니다. 생일.”
“4월 14일입니다.”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무심결에 대답했다. 노형진은 그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 끝내자.’
드디어 함정에 발을 집어넣은 것이다.
“그럼 다른 형제의 생일은 언제입니까?”
“헉!”
평이한 질문이었지만 조팔성의 얼굴은 순간 창백하게 변했다.
‘역시.’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다른 형제의 생일은 언제입니까?”
“어…… 그러니까…….”
“재판장님! 증인 가족의 생일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눈치챈 광문식이 재빨리 차단하려고 했지만 노형진이 그렇게 쉽게 물러날 리가 없었다.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지요.”
“흠…… 증인, 대답하세요.”
그 말에 얼굴을 찡그리는 광문식. 그리고 점점 사색이 되는 조팔성.
“생일이…… 그게…… 기억이 잘…….”
“기억이 안 난다니 이상하네요. 제 생각으로는 똑같이 4월 14일일 텐데, 안 그렇습니까?”
“무슨 소리야?”
“생일이 같다니?”
물론 같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니?
“증인, 증인의 형제와 같은 생일을 공유하지 않습니까?”
“그…… 그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증인, 증인은 쌍둥이 아닙니까?”
“……!”
그 순간 좌중에서 놀라움에 찬 탄성이 터져 나왔다. 쌍둥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똑같은 두 명.
“증인이 다니던 학교에 문의해 봤더니 쌍둥이가 맞더군요. 그것도 일란성 쌍둥이, 즉 똑같은 외모를 가진 두 사람.”
“…….”
“우리는 지금까지 증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진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봤죠. 카메라에 찍힌 것도 그 얼굴이고 그 여자가 기억하는 것도 그 얼굴입니다.”
“…….”
“쌍둥이였단 말이야?”
쌍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명이 이곳에 있었다면 다른 한 명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클럽에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결과적으로 말해서 둘 중 하나는 범죄 현장에 있었다는 뜻인데. 증인! 범죄 현장에 있었던 것은 본인입니까? 아니면 형제인 조팔만입니까?”
노형진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그들의 부모는 완전히 사색이 되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지.’
그날 여자들의 얼굴을 보고 노형진은 살짝 웃었다. 화장을 때문인지 비슷한 얼굴이라는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쌍둥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실이 보였다.
‘기록을 줄 이유가 없지.’
가족들은 사건 당사자가 아니니 개인 정보가 자신에게 올 리가 없다. 하지만 검사는 알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알면서도 주지 않은 것이다. 설마 검사가 정보를 감추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쌍둥이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감을 잡은 노형진은 그가 다녔던 학교로 찾아가서 확인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팔성은 쌍둥이였다.
“증인! 누가 범죄 현장에 있었지요?”
조팔성의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하면 자식은 감옥을 안 가도 된다. 그래서 쌍둥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조팔성이 거기에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동생입니다. 범죄 현장에 있던 것은…….”
“팔성아!”
아버지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면서 일어났다. 설마 자신을 감싸 주던 형제에게 뒤집어씌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조팔성은 감옥에 가기 싫었다.
“동생이 범죄 현장에 있었다?”
“네, 그래서 그날 클럽에 간 제가 대신…….”
“과연 그럴까요? 재판장님, 동생인 조팔만의 신용카드 사용 기록을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용카드 사용 기록?”
“네,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은 카드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검찰 측은 그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기록을 제출하고자 합니다.”
그 말에 광문식의 얼굴이 굳었다. 사진을 받아 들고 끝났다고만 생각했지, 카드 기록까지 확인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카드 기록상의 주인은 조팔성이 아닌 조팔만으로 되어 있습니다. 증인, 할 말 있습니까?”
“…….”
말하지 못한 채로 질려서 바들바들 떠는 조팔성. 심지어 부모조차 그에게서 눈을 돌렸다. 설마 자신이 가기 싫다고 형제를 감옥에 보내려고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입니다.”
“검찰 측, 질문 있습니까?”
“그게…….”
광문식은 말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지금 판사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버러지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던 것이다.
‘망했다. 승진은 물 건너갔구나. 내 커리어도 끝났어…….’
법률적으로 변호사는 피의자인 의뢰인에게 불리한 증거는 감춰도 된다.
하지만 검사는 상대방, 즉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감춰서는 안 된다.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해진 규칙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 중요한 증거 중 하나인 형제 관계를 감춘 것이다. 쌍둥이라는 존재가 한 사람이 동시에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도리어 그걸 감추고 증거를 곡해하려고 했다.
‘멍청한 놈.’
자신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 법이기에 노형진은 딱히 그가 불쌍하지 않았다.
“없습니다.”
너무나 명확한 증거에 할 말이 없는 광문식.
“그럼 다음 증인으로 강승덕을 신청합니다.”
“강승덕 군, 나오세요.”
“…….”
강승덕은 새파랗게 질려서 터벅터벅 앞으로 나왔다. 증인 출석 명령서가 왔을 때만 해도 ‘별일이야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법원까지 왔는데 조팔성이 빼도 박도 못하게 걸려 버린 것이다.
“강승덕 씨.”
“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아닙니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참으로…… 슬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범죄자가 꼭 잡혀서 엄준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준한 법의 처벌이라?”
노형진은 왠지 비웃음이 나왔다. 저렇게 뻔뻔할 수가.
‘하긴 인간이 그렇지, 뭐.’
지금이야 이해가 안 가지만 미래의 연구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인간은 뭔가를 많이 가질수록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부자가 되면 선인보다 악인이 되기 쉬운 게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 순 매출이 100만 원을 넘는 가게를 소유한 할아버지가 있는 만큼 그의 가족은 부자라 할 수 있었다.
“그럼 강승덕 씨는 이 사건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다음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 알았습니다.”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피고는 사전에 그곳에서 강승덕 씨를 봤다는데요? 그리고 할아버지라 생각하지 못했다는데요?”
“거짓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장사를 잘해서 수금하러 다닌다고 몇 번 이야기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유철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자 단단히 작정한 것 같았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가족에 관한 그런 이야기를 함부로 한단 말인가? 설령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 그 전에는 사건을 알지 못했다는 건데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한 가지 확인하려고 하는데요.”
“확인이요?”
하지만 노형진은 대답하는 대신에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녹음기?”
“그렇습니다. 사전에 재판장님으로부터 녹음 허락을 받았습니다.”
보통 재판에서는 녹음이나 녹화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데 녹음이라니?
노형진은 그 녹음기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 증인석에서 한 말이 그대로 다 녹음되어 있었다.
“이게 본인 목소리 맞습니까?”
“네?”
“좀 다르게 들리죠?”
보통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상당히 다르게 들린다.
“하지만 본인이 방금 재판정에서 한 말은 맞지요?”
“네.”
“그럼 이건 어떤가요?”
이번에는 녹음기가 아닌 카세트를 꺼내 드는 노형진. 그는 그걸 꾹 눌러서 작동시켰다.
-네, 119입니다.
-여기 ○○동 ○○빌라 뒷골목인데요. 어떤 남자가 할아버지를 두들겨 패고 있어요.
-네? 두들겨 패고 있다니요?
-남색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어떤 할아버지를 두들겨 패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죽을 것 같아요.
-잠시만요! 바로 경찰을 출동시키겠습니다. 그곳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라고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러나 수화기에서는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어떻습니까? 목소리가 같다고 느껴지는데요?”
“헉!”
신고한 목소리는 아무리 봐도 강승덕의 목소리였다.
“본인 아닙니까?”
“우…… 우연입니다! 우연!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이 어디 한두 명입니까!”
강승덕은 애써 부정했다. 설마 119에 의해 녹음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모든 내용은 녹음되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렇습니까?”
“네.”
“그건 파형을 검사하면 알겠지요. 듣기에는 비슷한 것도 파형은 전혀 다르니까요.”
“으헉.”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 버리는 강승덕. 하지만 노형진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전화에서 말입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상한 부분?”
“네, 신고자는 남색의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노인을 구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재판장님, 이걸 봐 주시죠.”
노형진은 노트북을 켜고 그 안에 있는 동영상을 재생했다.
“이 장소는 살인이 벌어졌던 그 현장입니다. 보다시피 같은 시간에 촬영되었습니다.”
카메라 너머에 보이는 현장에는 보라색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이분은 저와 같은 법무법인에 있는 무태식 변호사라고 합니다. 잠깐 실험을 도와주셨지요.”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보시면 압니다.”
멀리서 보이는 남자에게 카메라를 고정하고 다가가자 점점 옷의 색깔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어?”
어느 순간 옷의 색깔이 보라색이 아닌 남색으로 변해 버렸다. 그 거리는 대략 5미터 내외.
“저 옷은 그날 피고인 유철진이 입었던 옷과 동일한 것입니다. 즉, 증인의 주장대로 남색 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5미터 내외에서 직접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할로겐 조명의 영향을 받아서 멀리서 보면 보라색으로 보이니까요.”
“……!”
“그런데 5미터면 바로 코앞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통로 자체도 일방통행이고 주변에 숨어서 볼 수 있는 곳도 아니구요. 자, 그럼 증인? 증인은 신고할 때 코앞에서 자신의 친할아버지가 맞아 죽는 걸 보고도 그걸 막을 생각은 안 하고 도망쳐서 공중전화를 찾아서 신고했다는 건데, 할 말 있습니까?”
강승덕은 완전히 질려 버린 얼굴이 되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증거다. 기습해서 자신의 유전자 및 흔적이 현장에 남은 건 없지만, 119에 녹음된 목소리를 조사하면 본인의 것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남색 옷이라고 말한 이상, 바로 코앞에서 그를 봤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증인.”
노형진은 차갑고도 조용한 눈빛으로 강승덕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패닉에 빠진 얼굴에서 그가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사건이 있던 그날 밤, 증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크흐흑…… 크어어엉!”
결국 울음을 터트리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강승덕.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서 판사를 바라보았다.
“이상입니다.”
“위하여!”
워낙 어려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뒤풀이는 필수나 마찬가지였다.
“옷 색깔이라니, 생각도 못 했다.”
“저도 생각하지 못했죠. 그냥 우연히 알았습니다.”
유철진을 만난 건 감옥 안에서였을 뿐이다. 그가 그 옷을 본 건 사진에서 본 것이 다였다.
‘그걸 알아본 게 다행이지.’
이때쯤 모 브랜드에서 나온 변색 섬유. 거리와 빛에 따라서 옷의 색이 바뀌는 상품이었다.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면 명확한 증거로 삼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안 겁니까?”
“뭐, 그냥 정보의 위력이라고 할까요.”
“정보?”
“사건은 복합적입니다. 유전자니 어쩌니 하지만 결국 그것도 하나의 증거일 뿐이죠. 더 많고 더 큰 정보를 담는 것도 있습니다. 단지, 그걸 찾는 것이 어렵고 귀찮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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