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783)
>1장. 시체가 없으면 살인도 없다>
“노 변호사.”
“네, 김 변호사님?”
김성식이 찾아오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시간 있나?”
“들어오세요. 김 변호사님이라면 없는 시간도 내 드려야지요.”
“고맙네.”
노형진이 일어나면서 들어오라고 하자 김성식은 안으로 들어와서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아무래도 자네의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야.”
“도움요?”
“그래. 아는 사람에게서 의뢰가 들어왔는데…….”
“아는 사람?”
“그래. 아니, 의뢰라기보다는 부탁에 가깝네.”
“부탁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변호사에게 부탁을 하는 건 흔하게 있는 일이다. 자신 역시 부탁받아서 사건을 진행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 역시 담당하는 순간부터는 의뢰일 뿐이다. 개인적인 것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개인적인 사건을 김성식이 노형진에게 말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음…… 애매한데…….”
김성식은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의 아들이 사라졌다네.”
“네?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야지요.”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알지 않나?”
“하긴…….”
경찰은 남자의 실종은 무조건 가출로 처리한다.
일을 하기 싫은 것도 있고, 남자의 실종은 이슈가 안 되어서 실적이 안 된다는 이유도 있다.
과거에 이로 인해서 한번 큰일이 터졌는데 그걸 또 노형진에게 걸려서 엄청난 손해배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인원 부족을 핑계로 여전히 그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신고해 봤자 조사도 안 하겠지요.”
“그렇겠지.”
가출로 처리하고 난 후 그냥 잊히는 것이다.
“그건 소송을 해서 제대로 수사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경찰이 남자는 무조건 가출로 처리하는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에 대해서 모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때다.
제대로 소송에 들어가면 그들은 바로 실종으로 넘긴 후에 수사를 시작한다.
공직에서 업무상 배임으로 고소당한다는 것은 인사고과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인데, 그들 역시 그걸 알기 때문에 지난번 사건 이후에 노형진은 자신들에게 접수되는 사건에 관해서 담당 수사관이 제대로 일하지 않는 경우 업무상 배임으로 고소하고 있었다.
“그다지 어려운 사건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걸 모를 김성식이 아니다.
더군다나 김성식이 누군가? 한때 대한민국 중앙수사부 부장을 했던 사람이다.
전화 한 통이면 바로 가출에서 실종으로 넘어가 수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게 말이야, 나도 자네 생각은 알겠네. 하지만 상황이 좀 달라.”
“상황이 좀 다르다고요?”
“그래. 아마도 그 아들은 죽었을 거야.”
“네?”
노형진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죽었다는 말은 섣불리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경찰이 접수조차도 해 주지 않는 사건에서 죽었다는 말이 나올 곳은 한 곳뿐이다.
“의뢰인분들의 의견입니까?”
“처음에는 내 의견이었지. 하지만 다들 내 말에 수긍하더군.”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거 심각하군요.”
“그래. 일단 신고는 했지만 가출로 되어 있네.”
당연히 수사는 안 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 살인범은 바깥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질 가능성 역시 아주 높다는 것.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내 친구의 아들이네만, 좋은 녀석은 아니었거든.”
김성식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김성식의 고등학교 선배인 선우중은 학교 다닐 때부터 모범생은 아니었다. 다혈질이고 즉흥적인 편이었다.
아들은 그런 그를 많이 닮았는데, 문제는 안 좋은 쪽으로 닮았다는 것이다.
선우중이 아무리 그래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은 반면, 그의 아들인 선우혁은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타입이라는 것.
학교 다닐 때부터 아이들을 괴롭혀서 수십 번을 학교로 불려 갔는데, 중·고등학교 때에만 폭행으로 인해 전학을 여섯 번이나 해야 했다.
1년에 한 번씩 전학한 셈이다.
더군다나 치료비와 배상금으로 준 것만 해도 1억은 될 것이다.
“결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폭력 조직에 몸을 담갔네.”
“싹수가 노란 놈이었군요.”
“그래.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자기 자식이지만 선배에게도 내놓은 녀석이었어. 그에 반하면 둘째와 셋째는 멀쩡했거든.”
“공부 못한다고 편애해서 그런 거 아닌가요? 가끔 그런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녀석이라면 어떻게 설득이라도 해 보지. 이놈은 그런 놈이 아니라 그냥 미친놈이었어. 자네도 알지 않나?”
“하긴 그런 놈이 있지요.”
인권론자들은 사람들이 악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그래서 상황만 된다면 사람은 다시 선해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노형진이 오랜 시간 법률 쪽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절대적 악을 가진 녀석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주변 사람이 아무리 기회를 주고 선을 행한다고 해도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뼛속까지 악인 것이다.
그런 놈들을 보통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뭐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겁니까?”
“뭐, 뻔하지 않나?”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폭력 집단으로 스카우트되어 간 그는 가끔 연락을 주기는 했지만 사실상 집안과는 연이 끊어졌다. 아버지인 선우중 역시 사실상 그를 포기했고 말이다.
“그런데요?”
“그래도 아버지인지라 가끔 그 녀석이 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더군. 내가 나오기 전에 알아봤을 때, 인천 쪽에 있는 폭력 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네.”
“조폭인가요?”
“그런 녀석들이 가는 방향은 비슷하니까.”
“그건 그렇지요.”
개인적으로 활동하다 보면 결국 보복당한다. 그러니 그들은 집단으로 활동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더군다나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녀석은 선배라는 작자들이 눈여겨보고 있다가 자기네 조직으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죽었다니요? 연락이 끊어지기라도 했답니까?”
“아니. 연락이 자주 온다고 하더군.”
“연락이 자주 온다고요?”
“그래. 집에서도 내놓은 자식이고 거의 말도 안 했던 사이일세.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온다고 하더군.”
“뭐, 심경의 변화라도 일으킨 거 아닙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변하는 경우는 없다네. 오죽하면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소리까지 하겠는가?”
“그런 말이 있기는 합니다만. 도대체 어떻게 변했는데요?”
“보겠나?”
노형진에게 제법 두툼한 종이를 꺼내 보이는 김성식.
노형진은 그걸 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멀쩡한데요?”
거기에는 부모의 안부에 대한, 그리고 형제에 대한 걱정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일으킨 일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잠시 도망 중이라는 사정 설명까지 말이다.
“그렇다네. 그래서 경찰에서 접수를 거부하고 있어. 멀쩡하게 살아서 도망치고 있는데 뭐가 실종이냐는 거지.”
“그런데요?”
“이 녀석이 이런 문자를 보낼 녀석이면 애초에 내놓은 자식이 아닐 걸세.”
“네?”
“서로 문자를 주고받을 사이도 아니거니와, 주고받는다고 해도 무척이나 단답형이었네. 이건 몇 년 전에 주고받은 문자야. 다행히 지우지 않고 있더군.”
다른 한 장의 종이를 주는 김성식.
노형진은 그걸 읽어 보고 입맛을 쩝쩝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기에 있는 말은 반이 욕설이었기 때문이다.
“말하는 투가 완전히 바뀌었군요.”
“그래. 경찰에서는 사람이 바뀌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면서 별거 아니니 집에서 기다리래.”
“미친놈들.”
애초에 사고를 쳐서 도망 다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뭔가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는 소리이다. 그러면 그걸 수사해야지, 집에 가서 기다리라니.
“이건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군요.”
“자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네.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도 버릇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욕설이야 진짜 사람이 바뀌었다면 더는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버릇은 어쩔 수 없다.
“보세요. 과거의 문자들은 맞춤법도 엉망이고 띄어쓰기도 엉망입니다. 하지만 최근 것은 그렇지 않네요. 맞춤법도 상당히 잘 맞고 띄어쓰기까지 제대로 하다니.”
맞춤범은 급하게 쓰다가 틀릴 수도 있지만 그 글자 자체를 잘못 알거나 아니면 핸드폰에서 자동 완성이 그렇게 될 정도로 오래 써서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바뀐다?
“도망 다니는 사람이 국어 공부를 다시 했을 리는 없고.”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래.”
다른 사람에게 핸드폰을 맡겨서 문자를 보낼 이유는 없다. 만일 경찰의 추적을 피하고자 한다면 다른 핸드폰으로 보냈어야 정상이다.
“직감적으로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했다고 하더군.”
“그리고 김 변호사님은 기록을 보고 죽었다고 생각하시구요?”
“내 생각에는 누군가 그의 핸드폰을 이용해서 문자를 보내면서 그의 죽음을 감추려고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런 사건은 가끔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경찰은 가족들의 신고를 무시한다.
“시체가 없으면 살인도 없다, 이게 문제군요.”
수사의 기본 규칙.
맞는 규칙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틀린 규칙이기도 하다.
사건마다 시체도 없는데 살인으로 보고 수사할 수는 없으니까 일견 맞지만, 문제는 상대방이 전문가인 경우는 시체까지 처리할 능력이 된다는 거다.
“더군다나 이런 식으로 문자를 보내면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도망 다닌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물론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은 그가 아니라는 주장을 할 테지만, 증거만 보고 움직이는 경찰의 입장에서는 계속 날아오는 문자는 살아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흠…….”
노형진은 사건의 문제점을 생각하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결국 경찰이 도움 없이 우리가 수사해야 한다는 소리군요.”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는 걸세. 변호사들은 그런 것에 약하니까.”
변호사들은 수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주어진 정보를 따라다니면서 확인할 수는 있지만, 정보를 만들어 내야 하는 수사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일부 검사 출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수사 방식을 잘 모른다.
“검사라고 해서 꼭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지요.”
검사의 임무는 공소 제기를 하는 것이지 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수사하는 것을 모르는 검사도 많다.
검사가 수사를 하려면 적극적으로 가담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검사들은 경찰이 수사한 것을 종합한 서류를 기준으로 공소 제기만 하기 때문이다.
“자네가 좀 도와줬으면 하네.”
“이 결과가 좋지는 않을 겁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는 조폭일세. 언젠가 이런 식으로 끝날 거라는 걸 가족들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조폭이기 때문에 더 걱정되는 거야. 누가 그를 건드리겠나?”
“음…….”
“더군다나 이 방식이 뭘 뜻하는지 알지?”
“알지요.”
상대방의 핸드폰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락하면서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민다?
그건 두 가지를 뜻한다.
첫째,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여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
둘째, 사전에 그에 대해서 알고 있던 사람, 즉 주변 인물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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