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03)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거기서 일한 여직원들은 이백마흔 명. 그들은 최소한 쉰 번 이상 성희롱을 당하거나 모욕을 당했다.
물론 중복된 사람도 있겠지만 전국에 진상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당 최소 열 명이라고 해도 무려 이천사백 명이다.
집단으로 넣은 게 아니라 개개인으로 넣었기 때문에 사건도 터무니없이 많아진 것이다.
“그냥 통째로 넣어요.”
“그게 될 리 없지 않습니까? 경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모욕죄는 친고죄입니다.”
“으음…….”
모욕과 성희롱은 친고죄다. 기업이 대신해서 넣어 줄 수 있는 성향의 사건이 아니다.
“당연히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넣는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그런 걸 어쩌라고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슥하면서 말했다.
“으으으…….”
그 모습에 얼굴이 창백해지는 경찰들.
이 정도 되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냥 주소지만 알아내서 그쪽으로 보내세요.”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일반적으로 경찰에 사건을 접수하면 그 사건은 그 경찰서에서 해결하는 게 아니다. 해당 관할서, 일반적으로 가해자의 주소지로 보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주소지가 어디인지 어떻게 알아요?”
“아마 대룡은 알고 있지 싶은데요?”
“대룡?”
“네.”
노형진은 슬쩍 대룡을 찔러 넣었다.
공식적으로 가해자들의 주소를 아는 것은 대룡이다. 전산상에 고객 기록이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주소를 알아야 사건을 보낼 수 있다.
“그러니까 대룡에 물어보세요.”
* * *
“안 됩니다.”
무태식은 경찰의 말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다른 분 말로는…….”
“그분은 그분이고 저는 접니다.”
‘어쩌라고!’
대룡에 물어보라고 한 건 새론의 변호사다. 그런데 대룡의 대표로 나온 새론의 변호사는 자료를 못 준단다.
“협조 차원에서 주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한두 명도 아니고, 족히 1만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의 자료를 달라고요? 이거 공권력의 횡포입니다.”
“그냥 협조 차원에서…….”
“증거를 가지고 오세요.”
“증거요?”
“네. 증거를 가지고 오셔야 저희가 드리지, 다짜고짜 쳐들어와서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달라고 하시면, 이건 사찰입니다.”
사찰이라는 말에 다들 얼굴이 해쓱해졌다.
안 그래도 요즘 현 정부에서 민간인 사찰을 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예민한 말이 바로 사찰이다.
“안 그렇습니까? 세상에 어떤 기업이 1만 명의 개인 정보를 다짜고짜 달란다고 줍니까? 영장 받아 오세요, 영장!”
무태식의 말에 경찰은 머리가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 * *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고 하더군요.”
노형진은 사건의 추이를 계속 살펴보고 있었다.
워낙 사건이 큰 덕분에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검사에게 보고를 해서 영장을 청구했다.
“금방 나오겠군.”
“그렇겠지요.”
검사도 사태의 심각성을 안 건지 빠르게 영장을 청구했고, 못해도 이틀 후쯤이면 영장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자료는 경찰로 넘어갈 테고,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그냥 기다렸다가 주면 안 되나?”
어차피 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전산 팀은 해당 대상자들의 자료를 뽑아내고 있다. 그러니 기다렸다가 줘도 된다.
하지만 노형진은 생각이 달랐다.
“물론 그냥 기다렸다가 줘도 됩니다. 하지만 슬슬 기자들이 냄새를 맡았을 겁니다.”
“냄새를 맡았을 거라고?”
“네. 콜 센터 직원들이 고객을 고소한 초유의 사태입니다. 더군다나 한두 명도 아니고, 이백마흔 명의 직원이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고소한 사건입니다. 기자가 모르면 그게 이상한 거죠.”
“그렇겠지.”
“이 상황에서 우리가 기다렸다가 자료를 주면 욕을 먹을 겁니다.”
대룡이 가해자인 진상들을 보호한다는 욕을 먹을 가능성은 다른 직원도 지적했을 만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일은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안 나올 거라고?”
“네. 이미 기자들과 이야기해서 손을 써 놨습니다.”
노형진은 기자들에게 투자한 돈이 있을 만큼 그들과 각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차피 언론에 나가야 할 사건이라면 그들이 먼저 터트림으로써 그들의 프레임을 고정시킬 수 있다.
“내일 조간신문에는 진상에게 시달리다가 저항하기 위해서 고소를 진행한 콜 센터 직원들의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그건 알지.”
그렇게 되면 언론에서는 공식적으로 그 프레임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진상들을 편들어 줄 수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우리나라 언론들의 배끼기를 생각하면, 석간쯤 되면 전 국민이 다 알 테지요.”
“그렇겠지.”
“그러니 우리는 그때를 노려야 합니다.”
영장이 나올 거라 생각되는 시간은 이틀 후다.
그러나 대룡은 내일 저녁 해당 자료를 경찰에 넘길 것이다. 공식적으로 경찰의 요구를 받아서 말이다.
그러나 그 소식은 법원에 늦게 전달될 테고, 영장은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벗어나기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난다는 거죠, 후후후.”
* * *
이성은은 화면에 뜨는 블랙리스트라는 경고를 보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자마자, 그 너머에서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야! 이 개새끼야!
“고객님, 여기는 대룡 콜 센터입니다.”
-이 망할 년아! 세상에 어떤 썅년이 고소를 해! 가서 내가 아가리 찢어 버린다!
전화를 해서 욕을 하는 사람.
그는 이성은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걸어 얼마나 진상질을 했는지, 사람들이 치를 떠는 인간이었다.
‘걸렸나 보네.’
대룡에서는 그에 관련된 정보를 경찰로 넘겼고, 당연히 경찰에서는 그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안 그는 불만을 터트리려고 전화를 한 것이다.
“고객님, 해당 사건은 저희 대룡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설마 지금 통화하고 있는 당사자가 자신을 고소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왜 관련이 없어! 세상에 어떤 기업이 고객을 고소하냐고!
“고객님, 해당 고소를 진행한 것은 대룡이 아니라 일부 직원분입니다. 그들의 고소는 저희 대룡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개 같은 년들을 잘라야 할 거 아냐! 그리고 개인 정보 준 거 대룡이잖아!
“대룡에서는 영장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제출한 것뿐입니다.”
노형진이 영장이 나오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먼저 제공을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너무 이르게 주면 고객을 버렸다는 말이 나올 수 있고, 그렇다고 끝까지 안 주면 진상 때문에 직원을 버렸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먼저 줬지만 영장이 나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저들에게는 당당하게 영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직원들에 대한 징계는 현재 상부에서 고민 중입니다.”
-뭐라고? 그러면 그 썅년들이 아직도 일한다는 거야? 당장 그년들 바꿔!
“알겠습니다, 고객님.”
이성은은 씩 웃으면서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불렀다. 그리고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전화 연결되었습니다, 고객님.”
-뭐야? 아까 그년이잖아! 고소한 년들 바꾸라니까!
그 말에 이성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전에는 그냥 어쩔 수 없이 당하던 일들. 통화를 마치고 난 후에 화장실에 가서 숨죽이면서 울던 일들. 그 모든 것이 마치 추억처럼 흘러갔다.
주변의 동료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진상이 욕을 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저도 고소한 년입니다, 고객님.”
-…….
순간 당황한 진상은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제 주변으로 그 고소에 동참한 여성분들이 대략 십여 명쯤 있습니다, 고객님. 누구를 바꿔 드릴까요?”
-…….
“제가 기억하기로는 고객님을 고소한 직원이 백 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원하시면 호출해 드리겠습니다, 고객님.”
-어…… 그러니까…….
이건 생각도 못 한 상황이었는지 진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애써 입을 열었다.
아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욕하고 따지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제가 그러니까 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그냥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비굴한 모습.
그 말에 이성은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서렸다. 그동안 쌓여 있던 고통이 한 방에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사건은 진행 중이라 저희가 어떻게 도와 드릴 방법이 없네요.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다는 것이 저희 직원들의 의견이어서요. 그리고 방금 전 통화 내역도 증거로 제출될 예정이오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잠시만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고의로 그런 게 아니라…….
“자세한 이야기는 경찰서에서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고객님. 그리고 업무와 관련되지 않거나 모욕적인 언사에 대해서는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서 저희 쪽에서 먼저 끊어 버릴 수 있게 규정이 변경되어서, 죄송합니다만 업무 관련 말씀이 없으시면 이만 끊도록 하겠습니다, 고객님.”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됩니다, 고객님. 아,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만, 전화하셔서 말씀하시는 모든 통화 기록은 증거로 제출될 수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씩 웃으면서 말한 그녀는 버튼을 눌러서 전화를 끊었다.
전에는 절대로 전화를 먼저 끊지 못하게 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이런 진상은 언제든 끊을 수 있게 바뀌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끊어 버린 것이다.
“후우!”
그녀는 전화를 끊고는 한숨을 쉰 다음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치킨 먹으러 가자! 치킨 파티다! 내가 쏜다!”
“우와!”
그렇게 고통에 힘들어하던 그녀들의 일상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 * *
“우리는 억울합니다!”
집단에 대응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집단이다.
진상들은 자신들이 한꺼번에 고소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끼리끼리 뭉쳤다. 그리고 집단을 만들어서 조직적인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절대로 누군가를 모욕하거나 욕한 적이 없습니다.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대룡에 대하여 분노를 터트린 적은 있습니다만, 결코 누군가를 모욕한 적은 없습니다.”
모여서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들.
방송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던 노형진은 피식하고 비웃음을 흘렸다.
“저거 놔둬도 되는 거야?”
“그럼 놔두지 뭐해?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누군가 조직을 만드는 것까지 막지는 못해.”
“그래도 개소리잖아?”
“그건 그렇지.”
저들의 숫자는 대략 천 명 정도 된다. 1만 명의 진상 중에서 10%만 모인 것이다.
“그러니까 놔두는 거야.”
“응?”
“저 녀석들은 진짜로 억울한 게 아니라 압박하기 위해서 뭉친 거거든.”
“압박?”
“그래.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있는데, 잘못한 사람들은 절대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거야.”
“반성하지 않는다니?”
“저기 있는 사람들은 진상 중에서 진성 진상이라는 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