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05)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기자들 사이에 숨어서 애써 웃음을 감추고 있는 손채림을 스윽 바라보았다.
‘하여간 눈치는 빨라 가지고.’
노형진도 그가 철회할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허세를 떠느라고 공개하라고 했지만 기자들이 가면 그사이에 철회할 거라 예상했다.
손채림 역시 그걸 예상한 건지 잽싸게 전화해서 공개해 버리라고 한 것이다.
“당장 내려요!”
사색이 되어서 외치는 남자.
노형진은 그를 위해서 천천히 조언을 해 줬다.
“내리는 거야 어렵지 않은데요.”
“않은데?”
“10분 사이에 퍼 간 횟수가 백 번이라는데요?”
그 말에 패닉이 왔는지 와들와들 떠는 남자.
기자 중 하나가 그런 그를 보고 기회가 왔다는 듯 잔인하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녹취록이 더 있고 그걸 공개하신다는데,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기자들에게 그에 대한 동정 따위는 없었다. 오로지 건수 하나 물었다는 탐욕뿐.
그 노골적인 눈빛에, 회장이라고 불리던 남자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아아!”
* * *
“순식간에 와해되어 버리네.”
“그렇지?”
다음 날부터 그 남자는 잠수를 탔다. 연락도 안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면 그 대책협의회인가 뭔가에서는 다른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진행이 안 되고 있었다.
“왜 대표를 안 뽑을까?”
“안 뽑는 게 아니라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기본적으로 이쪽의 논리는 간단하다.
녹취록을 까고, 이게 모욕과 성희롱인지 따지자는 것이다.
“즉, 대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녹취록이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뜻이지.”
“그렇겠지.”
“그러니까 누가 하려고 하겠어? 알량한 비대위 대표 잠깐 하는 대신에 자기 인생은 박살이 날 텐데.”
“하긴 그렇기는 하네. 누가 자기 인생 걸고 미친 짓을 하겠어?”
물론 가끔 그런 녀석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확신범의 경우에나 그런다. 즉, 그가 미친 짓을 하기는 하지만 그 원인이 잘못된 신념인 경우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확신범이 아니야.”
그냥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콜 센터 직원을 괴롭힌 것뿐이다.
“당연히 신념도 없으니 이익에 예민하지.”
돈을 주기 싫어서 협의회니 뭐니 만들었지만 대표를 하면 자신의 인생은 독박을 쓰고 망한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은 누구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말만 앞세우면서 싸우다가 끝나겠지.”
“그럼 이번 사건은 끝난 거야?”
“그렇지.”
사실상 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뭉치자는 결의는 이미 무너졌고, 이쪽에는 증거가 넘친다.
“그리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지. 난…… 다른 사람들이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고.”
일이 이렇게 커지자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전 국에 있는 콜 센터나 상담소는 한두 곳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새론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 나 사흘간 집에 못 갔다고.”
“너랑 나랑 같은 팀이거든!”
손채림은 툴툴거렸다. 그만큼 사건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처럼 한꺼번에 모두가 고소한 건 아니지만, 욕먹으면서 일하느니 차라리 고소해서 합의금 받아 내고 그만두고 만다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진 것이다.
“지옥문 열렸네.”
전국에서 진상 노릇 하던 손놈들에게는 지옥문이 열린 셈이다.
물론 그 일을 해결해야 하는 새론은 업무 과중으로 죽을 맛이고.
“일단은 근처 모텔을 통째로 빌려서 임시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 일이 아무리 많아도 잠은 자야 할 거 아냐.”
어차피 일이 이쯤 되면 더 이상 자신이 할 것은 없다.
이미 시스템은 만들어졌고 정해진 과정에 따라서 소송이 진행될 테니 말이다. 만일 일이 많으면 외부에 외주 형태로 주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흐아, 힘들다.”
“오늘은 집에 가서 기절할 듯?”
손채림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퇴근하고자 하는 그들의 그런 열망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노 변호사님 계십니까?”
“무 변호사님, 아직 퇴근 안 하셨습니까?”
“일을 해야지요.”
“벌써 닷새나 안 가셨잖아요? 혹시 싸우신 겁니까?”
그 말에 스윽 고개를 돌리는 무태식.
노형진은 그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쫓겨났구만.’
무태식은 함께 일하던 변호사와 결혼해서 지점으로 내려갔었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하면서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싸운 건 아닙니다만.”
“그럼요?”
“어차피 집에 가도 애가 하도 울어서 못 자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그래도 같이 있어 줘야지요. 이때가 여자가 제일 예민한 때입니다. 이때 소홀하게 하면 평생을 잡혀 살아요.”
“아니, 결혼도 안 해 본 노 변호사님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핫핫.”
노형진은 그저 웃고 말았다. 자신이 회귀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전 사흘간 집에 못 갔으니 사건이 있으면 받아 드려야지요. 어서 주고 가세요. 안 가면 진짜 큰일 납니다.”
“글쎄요. 드리고 갈 만한 게 아니라서요.”
“네?”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어떤 거요?”
노형진은 그가 건네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지역별로 수치가 적혀 있는 종이였다.
“이건 뭡니까?”
“지역별로 진상들을 구분한 겁니다.”
“별 의미는 없을 것 같은데요?”
이미 소송이 들어갔고, 지금까지 진상 노릇을 하던 녀석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기자들의 취재에 따르면 각 기업으로 오던 블랙리스트 전화가 대부분 끊어졌다고 했다. 그만큼 이번 사건이 사회에 주는 영향이 컸다.
‘그리고 이제는 선례가 생겼으니…….’
만일 직원이 그만두고 나서 회사에 자료를 요청하고 그 자료로 모욕 및 성희롱으로 고소를 하게 되면, 기업은 현행법상 막을 방법이 없다. 자료의 요구는 법원의 명령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라 안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둔 직원은 적지 않은 돈을 두둑하게 챙기게 될 테고 말이다.
그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한국에서 사실상 진상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걸 왜 이렇게 지역별로 나누셨습니까?”
“자료를 보는데 이상한 점이 있어서요.”
“이상한 점?”
“네. 각 지역별로 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뭔데요?”
“강원도 쪽에서 말입니다, 전화가 많이 왔습니다.”
“그거야 뭐…….”
그럴 수도 있다.
거기에다가 강원도가 산악이 험한 만큼 옮기다가 불량이 날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진상이 서울만큼 많다는 건 말이 안 되어요.”
“서울만큼 많다고요?”
“네.”
그 말에 노형진은 다시 한 번 서류를 확인했다.
그러고 보니 강원도에서 유독 진상들 전화가 많이 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럴 수도 있죠.”
“네. 그런데 기록이 이상하더군요.”
“네?”
“물건을 구입한 사람들이 쓴 주소가 상당수 가짜입니다.”
“가짜?”
“가짜라고요?”
“네.”
물건을 기본적으로 배달을 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큰 물건을 기준으로 한다.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것 말이다.
규모가 작은 것은 일반적으로 사서 직접 들고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사서 들고 간 사람들의 주소가 이상한 게 많더군요.”
고소장이 접수되고 사건이 이첩되자 당연히 경찰들은 해당 주소지로 향했다.
그런데 해당 주소지는 전혀 엉뚱한 곳이든가 아니면 허허벌판이든가 등록된 사람이 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요. 유독 강원도만 말이죠.”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짜 주소를 넣고 움직이다니?
“그리고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통점?”
“네.”
그렇게 사 간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전화를 했고, 그들은 한번 전화하면 최소 두 시간 이상 통화를 했다.
대부분 불만을 말하면서 항의를 하고 욕설도 하는 등 극단적인 방식으로 반응했는데, 정작 그들 명의로 수리 접수가 이루어지거나 반품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장이 났다고 전화해서 난리 법석은 피우는데 정작 그걸 고치러 온 적은 없다?”
“네.”
“이상한 일이군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도대체 누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단 말인가?
“더 웃긴 건 핸드폰입니다.”
“핸드폰요?”
“네.”
기록상의 등록된 주소지가 가짜이니 당연히 경찰은 그들이 전화할 때 쓴 핸드폰을 추적했는데…….
“대포폰?”
“네.”
“지금 대포폰이라고 했습니까?”
“네.”
“말도 안 되죠. 아니, 무슨 항의 전화를 대포폰으로 합니까?”
“그러니까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음…….”
노형진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혹시 그들의 전화 시간도 알고 있나요?”
“대충요.”
기록을 정리해 온 덕분에 노형진은 그들이 전화한 시간을 대충 통계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패턴으로 전화를 한다?’
콜 센터라고 해서 스물네 시간 내내 바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바쁜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런데 정확하게 그때 전화를 했고, 두 시간 이상 통화를 했다.
대부분의 근무자들이 이 전화를 받았으며 전화를 끊지도 못한 채로 두 시간씩 통화를 해야 했다.
‘업무 시간의 거의 15% 이상이 이들에게 들어간다.’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누군가가 뒤에서 조종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아니,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나올 리 없다.
“마치 누군가 콜 센터를 괴롭히려고 한 것같이 행동했습니다. 콜 센터 사장에게 원한이 있는 것일까요?”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군요.”
노형진은 기록을 보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모든 기록이 다 있는 건 아니지만 이 행동이 시작된 시점이 대충 어느 시점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콜 센터 사장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기업의 이미지는 상당히 큰 타격을 입지요.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국산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품질보다는 A/S에 대한 기대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대기 시간이 길면 사실상 A/S를 받기 힘들어진다.
“그들의 전화는 대부분 수리 쪽에 몰려 있군요.”
“네.”
전화는 대부분 가전 수리에 몰려 있었다.
“가전 수리만 놓고 근무시간을 따지면…….”
대충 계산을 해 보니 업무 시간의 30~40%가 그들에게 투자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건 터무니없는 수치다.
“아무래도…… 누군가 이런 짓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고의적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누가요?”
무태식은 당장 생각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고, 노형진은 그 말에 신음 소리를 내면서 대답했다.
“콜 센터가 표적이 아니었습니다. 대룡이 표적이었지요. 그리고 대룡이 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짓을 할 만한 곳은 한 곳뿐이지요.”
그 말에 손채림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퇴근을 위해서 챙기고 있던 것을 책상에 다시 내려놓았다.
“끄응…… 오늘은 퇴근은 글렀네.”
작은 사건은 그렇게 큰 사건을 그들 앞으로 당겨 주는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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