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1)
“누나, 잘 부탁해요.”
“걱정 마. 안 그래도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거든.”
노형진은 강소영에게 박하나와 친하게 지내 달라고 부탁했다. 사정을 들은 강소영은 흔쾌하게 허락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가끔 연락하면서 친하게 지내 달라는 것 아닌가?
그리고 강소영 본인도 아무리 좋게 끝났다고 하지만 남자에게 데였던 경험이 있으니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다고 막을 수 있을까?”
“그럼요.”
“왜?”
“아무리 거대 신문사라 해도 조심하는 건 조심하니까요.”
박하나는 연예인이다. 그리고 기자가 따라다닌다. 따라서 그녀가 강소영과 친하다는 건 그 망할 놈의 사장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사장이 여자에 환장한다고 해도 대룡에 척지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물론 싸우려면 싸울 수도 있다, 메이저급 신문이니. 그러나 그 후에 남는 건 없다. 어찌어찌 이긴다 해도 그에게 남는 건 성 상납을 받는다는 꼬리표와 대룡과의 악감정뿐이다.
따라서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박하나를 만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원래 그런 인간들은 그런 거 하나하나 알아보고 건드려요.”
만일 박하나가 거대 회사 소속이었다면 절대 요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나름의 인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았어. 그럼 넌 어쩔 거야? 바로 갈 거야?”
한참 수다를 떨다가 나온 탓에 안에서 기다리는 박하나를 힐끗 바라보는 강소영.
“저요? 전 이제 일하러 가야죠, 홍콩에.”
“홍콩? 거기는 왜?”
“약속한 게 있으니 빨리빨리 하고 제 일에 집중해야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잖아요.”
돈을 벌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누나, 그럼 잘 부탁해요.”
강소영에게 박하나를 소개시켜 주고 나온 노형진은 바로 전화를 들었다. 한국에는 파라마운틴의 지사가 없다. 하지만 홍콩에는 지사가 있다. 그리고 그곳의 지사장을 노형진은 잘 알고 있었다.
‘미래 인맥도 인맥이지, 뭐. 흐흐흐.’
“반갑습니다.”
홍콩 지사의 밥 존슨 지사장은 자신을 만나기로 한 동양인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셨습니까, 밥?”
‘밥?’
순간 당황하는 존슨. 밥이라고 부를 정도면 엄청 친하다는 뜻인데.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잘 크고요?”
“네…… 잘 큽니다.”
“하하하, 조카만 보지 마시고 이제 밥도 결혼하셔야지요.”
“해야 하는데, 하하하.”
밥은 웃으면서도 속으로 진땀이 바짝바짝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자베스는 그의 조카딸이기 때문이다. 조카까지 아는 걸로 봐서는 자신에 대해서 잘 안다는 건데…….
‘뒷조사를 했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 자신은 파라마운틴의 동양 지사장이라 동양에서 미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만나러 오니까.
“그러니까 수잔을 확 잡으라니까요.”
“수잔?”
“전에 말씀하신 붉은 머리 아가씨 말입니다.”
‘으헉!’
그 말에 존슨은 깜짝 놀랐다. 수잔은 우연히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반한, 그와 나이 차가 좀 나는 아가씨이기 때문이다.
‘뒷조사가 아니야?’
뒷조사라면 수잔에 대해서는 몰라야 한다. 그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주 친한 몇 명만 알고 있는 탓이다.
“밥, 맨날 자기는 황금 이빨이니 뭐니 그러면서 정작 그렇게 말을 못 하면 어쩝니까?”
“하하하.”
밥은 죽을 지경이었다. 저쪽은 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데 정작 자신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는 걸 봐서는 뒷조사를 한 것도 아니니 그렇다면 자신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데.
“저기, 형진 노?”
“형진이라고 부르라니까요.”
“죄송합니다, 형진. 사실은…… 제가…… 기억이 잘…….”
그 말에 노형진은 약간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끄응……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뭐……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제가 형진과 친했나요?”
“무척 친했지요.”
“미안합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노형진인 그를 노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얼마 전의 사고로 기억 혼란을 약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미래의 인연이지만.’
사실 존슨과 형진이 만나는 건 형진이 미국으로 간 후 파라마운틴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만난 것이다. 서로 의기투합해서 자주 술을 마시러 다녔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했다. 당시 아내였던 수잔에 대한 이야기는 기본이었고 말이다.
물론 자세하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 부분은 기억을 읽어 내면서 대충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제 사이코메트리를 쓰는 데에도 능숙해져서 전처럼 집중하지 않아도 읽어 낼 수 있었다.
“한잔하시겠습니까?”
“네.”
형진은 일어나 미리 준비된 곳에서 능숙하게 마티니 하나를 만들었다. 아시아 지부장쯤 되니 사무실 안에 작은 바가 있었다.
“젓지 않고 흔들어서 올리브는 두 개. 맞죠?”
“하아, 미안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취향까지 다 알 정도면 엄청 친했다는 건데 기억을 못 한다는 사실에 그는 죄책감을 느꼈다.
“아닙니다, 밥. 그럴 수도 있죠. 그보다 범인은 잡았습니까?”
“아직…….”
“그러니까 제가 홍콩의 밤거리는 치안이 좋지 않으니 함부로 다니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그랬나요?”
“네.”
물론 그런 적 없다. 하지만 알 게 뭔가? 무슨 말을 해도 모를 텐데.
“형진의 말을 들을 걸 그랬습니다.”
밤중에 강도를 만나 머리를 다쳐서 약간의 기억상실이 온 것이다. 다행히 업무 관련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뭐, 어쩌겠습니까? 그나저나 아직도 결정 못 하셨습니까?”
“어떤…….”
“거기 있는 점 말입니다.”
“웁스…….”
그 말이 쐐기였다. 사실 밥은 말하기 묘한 위치에 점이 있는데 그 점을 볼 때마다 여자들이 깔깔거려서 뺄까 고민 중이었다. 문제는 그 부분이 너무 예민하게 통증을 느끼는 부위라 부담된다는 것.
‘그걸 알다니……. 이거 이거, 엄청난 실수로군.’
서양에서는 남자들이 같이 목욕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도 그걸 알 정도면 엄청 친했다는 거다. 그건 절대로 뒷조사로는 알 수 없는 정보다. 직접 보면 모를까.
“냅둬요. 어차피 결혼하면 한 사람만 볼 텐데 뭘 뺍니까?”
“하하하.”
미래에도 안 빼기는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형진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형진.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밥이 쓸 만한 영화가 있다면 소개 좀 시켜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나 들고 왔지요.”
“그렇군요.”
아무리 존슨이라 해도 모든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네, 뭐 나쁜 영화는 아닌 것 같아서 같이 볼까 하고 왔습니다.”
“흠…….”
처음부터 업무적으로 다가오는 것과 개인적으로 다가와서 권하는 것은 그 거부감의 정도가 다르다. 더군다나 한창 기억하지 못하는 일 때문에 잔뜩 미안해하고 있는 데다가 자신의 부탁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노리는 일이었지.’
“같이 영화나 보고 칭타오나 먹으러 갈까요? 이 근처에 삼겹살 집이 있습니다.”
“오!”
밥이 가장 좋아하는 맥주는 중국의 칭타오이고 가장 좋아하는 안주는 한국의 삼겹살이다. 물론 이렇게 파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집에서 바비큐 그릴로 만들어 먹는다.
“그렇게 파는 곳이 있나요?”
“한 곳이 있더군요. 한국 식당입니다.”
“좋습니다.”
그는 젊어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삼겹살을 무척이나 즐기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저도 온 김에 보긴 하는데 자막이 없어서요.”
“저도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하니까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보죠.”
“그럴까요?”
어차피 영화를 보는 것은 그의 업무다. 그러니 기꺼이 볼만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 친우의 방문이 아닌가?
그렇게 보기 시작한 영화가 끝나자 존슨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한국에서 만든 영화라고요?”
“괜찮지요?”
“대단합니다.”
그도 기자 노릇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영화를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는 대부분 수준이 낮아서 아예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본 영화는 미국의 대작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흐르는 형제의 우애와 비극적인 삶이 그의 가슴을 관통하는 것 같았다. 그 역시도 형제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이 갔다.
“언제 이런 영화가…….”
“이번에 새로 나온 겁니다. 저도 선물받았지요.”
“선물?”
“네, 아는 사람이 투자자용으로 나온 걸 보내 주더군요.”
그 말에 순간 존슨의 얼굴이 빛났다.
“그럼 정식 개봉한 건 아니라는 뜻인가요?”
“네.”
그렇다면 아직 미국 판권이 팔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스토리라면 직접 배급은 하지 않더라도 리메이크할 가치가 있다. 일단 그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주는 감동과 충격에 비해서 저예산 영화이니 투자 가치도 있고 말이다.
“제작자를 한번 보고 싶군요. 바로 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후회할 텐데요?”
“무슨 말이죠, 형진?”
“지금 한국에 가면 칭타오와 삼겹살을 함께 파는 가게를 못 보게 되지 않습니까? 내가 없어도 가서 한 잔씩 해야지요.”
“오우! 그 생각을 못 했군요. 하하하.”
“오늘 저녁은 그걸로 하고 내일 저녁은 한국에 가서 홍어삼합으로 합시다.”
“으윽.”
“하하하, 농담입니다. 밥이 제일 싫어하는 거 모를까 봐서요. 밥이 잘 가던 ‘전원일기’라는 감자전 집, 아직 있습니다. 아주머니도 보면 반가워할걸요?”
“오! 아직도 있습니까? 기대되는군요. 아주머니가 맨날 코쟁이라고 하면서 놀렸는데.”
“그래서 코쟁이는 많이 먹는다면서 감자전이 더 두툼했잖습니까?”
“맞습니다. 하하하.”
존슨은 과거 이야기가 나오자 절대 의심하지 않았고, 노형진은 작전 성공에 미소를 지으면서 만세를 불렀다.
‘이제 성공이야.’
영화에 대한 투자를 한국에만 하라는 법은 없다. 이렇게 하나의 라인을 만들었으니 앞으로도 그를 통해 해외 영화에 투자하면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당당하게 설 수 있을 변호사가 되는 건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인연이란 모르는 것(1)
“으아아! 송 대표님! 누굴 죽일 생각이에요!”
“아니, 왜 그래?”
“‘왜 그래?’라니요? 대체 60건이 뭡니까!”
무태식은 울부짖으면서 외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에게 배당된 사건이 무려 60건이었기 때문이다.
“어허! 수제자가 그러면 쓰나. 스승은 80건을 하고 있거든?”
“괴물 같은 노 변호사님이랑 우리 같은 인간이랑 똑같아요?”
“그래도…….”
수제자란 노 변호사에게 직접적으로 스킬을 배운 사람들을 뜻하는 농담 반 진담 반인 말로, 현재는 새론의 주요 멤버로 급부상 중이었다.
그리고 수제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았다.
문제는…….
“나도 인간입니다. 살려 주시죠.”
노형진 역시 두 손 두 발을 다 들 정도였다는 것이다.
“좀 많은가?”
“송 변호사님, 우리가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자고 했지, 과로 지원 모임을 만들자고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끄응, 하긴…….”
현재 엄청나게 밀려든 사건으로 인해서 새론에 속한 변호사 한 명당 50건이 넘는 사건이 배당되고 있었다. 문제점은 새론의 적은 변호사의 수. 노형진까지 합친다고 해도 인원이 고작 열두 명이라는 것. 즉, 마구 밀려드는 약 3천 건의 사건들을 커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좀 보내요.”
“나야 그러고 싶지. 하지만 의뢰인들이 막무가내인걸. 청구 기간이 3년이니까 그 기간을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하겠다는데.”
“젠장.”
“성부하고 제티스가 그렇게 죽 쑬 거라고 예상이나 했나.”
성부와 제티스는 새론과 마찬가지로 노예 구출 사건에 어떻게 선을 대서 사건을 일부 넘겨받은 로펌이었다. 정부에서는 전국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검문과 현장 확인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납치나 구타 등으로 잡혀 있던 수많은 노예들을 발견했다.
분노한 대통령은 납치 및 노예 문제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이제 염전이 아닌 공장부터 사창가에까지 수사가 퍼지고 있었다. 그 결과, 수천 건의 민사사건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문제는 성부와 제티스는 노형진의 스킬과 공략 방식 등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과거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재판에 임했고 그 결과, 배상금이 새론에 비해서 채 절반도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사건이 죄다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그쪽에 있던 사람들까지 2심을 이쪽에 맡겨 버리는 바람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사람 좀 뽑읍시다. 네?”
오죽하면 회귀 이후에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노형진조차 진심으로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끙…….”
사실 미래에는 소속 변호사가 백 명이 넘는 초대형 로펌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곳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몰려드는 사건을 처리하려면 일시적으로라도 인원을 늘려야 한다.
“알았네. 알았어. 내 급하게 사람을 뽑아 보도록 하겠네.”
결국 송정한은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결심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본인 스스로도 과로로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새로 뽑은 열 명의 변호사들은 바짝 얼어붙어 있었다. 하긴 요즘 새론의 이름은 대한민국을 쥐고 흔들고 있으니까.
“어? 이은영 변호사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 여기로 입사한 겁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